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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 부작용으로 평생 고생했는데, 죽고 나니 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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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석면 부작용으로 평생 고생했는데, 죽고 나니 보상은…"

석면 피해자 "석면피해자구제법 1년, 외면당한 피해자 너무 많다"

석면 피해 구제 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조건이 까다롭고 행정 절차가 복잡해 여전히 실제 석면 피해자들을 구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는 17일 서울시 연건동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석면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1년간 석면피해구제법에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석면피해구제제도는 석면으로 인한 피해자와 유족에게 치료비, 생활수당 유족 조위금 등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날 오전 환경부는 "석면피해구제제도 시행 첫 해 피해자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제도를 운영해 총 459명의 피해자 및 유족이 석면 피해를 인정받아 구제됐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실제 피해자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라는 지적이다.

전체 피해 인정자 459명 가운데 피해자는 249명이며 나머지 210명은 특별유족으로 인정 받았다. 지역별로는 보령, 홍성 등 과거 석면광산이 많았던 충남 지역이 34%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석면으로 인한 폐 질환 중 일부만 인정…다른 증상 피해자는?"

일단 석면피해구제법에 따라 구제 받을 수 있는 석면 질환의 종류가 너무 적은데다 이들 병이 걸려도 인정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비판이 나왔다.

현재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석면 관련 질환은 원발성 악성중피종, 원발성 폐암, 석면폐증 등 3가지로 제한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석면의 대표 질병인 악성중피종은 인정률이 높지만 석면폐증이나 원발성 폐암의 인정률은 61.7%, 40% 등으로 낮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박정수 씨는 1960년대에 7년 가량 충남 홍성군 은하면 화봉리 석면 광산에서 일했다. 그는 2011년 구제법이 시행되기 전에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그는 "수술 받고 나서 동국대 병원에서 폐에 석면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재검사에서 '원발성 폐암으로 진단되나 석면폐증과 흉막반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인정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폐암의 경우 흡연 등 다양한 발병원인이 있다는 이유로 구제법에서 석면폐증과 흉막반 등의 증상이 동반될 경우에만 구제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이 3가지 질환 외에 흉막반, 폐섬유화 등의 질환에는 구제 신청 접수 자체를 받지 않고 있다. 프랑스 등에서는 흉막반, 석회화, 석면 흉수 등 석면으로 인한 모든 질환을 보상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과의 차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이같은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석면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는 점은 무시된다"면서 "환경성 석면노출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왜 중복으로 행정비용을 지출하면서 환경부에서 이 문제를 담당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석면 피해를 인정 받지 못한 피해자와 피해자 유족. ⓒ프레시안(채은하)

"평생 석면으로 고통받아도 다른 병으로 죽으면…"

또 역시 충남 홍성군의 석면 광산 노동자였던 고 정지훈 씨의 경우 석면폐증을 인정받았으나 사망 원인이 석면폐증이 아닌 췌장암이라는 이유로 유족이 인정받지 못했다. 정지열 위원장은 "병원에서 석면폐증으로 인정받아서 폐활량 검사까지 했지만 법이 시행된 2011년 1월을 며칠 앞두고 사망했다"며 "평생 석면 질환으로 고통 당하며 살았는데 사망 원인이 석면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한 것"규탄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원장은 "현재 석면피해 구제제도는 인정 조건은 엄격한 '피해배상'에 가까우면서 정작 돈은 병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구제 비용만을 지급하는 식"이라며 "보통 폐암의 5%가 석면폐암으로 추산되는데, 지난 한해 석면 폐암으로 구제받은 사람은 63건에 불과한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백도명 원장은 "제도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석명으로 인한 질환임을 인정했다가 나중에 번복하는 어렵기 때문에 제도를 좀 더 쉽게 운영하기 위해 일단 '불인정'하는 관행이 있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길고 긴 행정 절차 중 사망…그러자 '보류'?"

지나치게 까다로운 행정 절차로 인해 제때 구제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석면 심사는 석면피해판정위원회-석면피해구제심사위원회-석면피해구제재심사위원회 등 3심으로 이뤄진다. 신청 이후 1차 통보를 받기까지 보통 7~8개월, 이르면 5~6개월이 걸린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호소다.

석면폐증으로 사망한 정관섭 씨의 경우다. 그의 형 정완섭 씨는 "동생은 폐가 좋지 않아 병원을 오래 다녔고 석면폐증으로 인정을 받았다"며 "그러나 판정위원회에서 '석면폐증은 인정되나 등급을 구분하기 어려우니 장애검사를 다시 받아오라'고 했고, 그 통지를 받았을 때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고 말했다.

정완섭 씨는 "사망하고 나니 당연히 재검사를 할 수 없었고, 구제 신청은 결국 보류 처리 됐다"며 "판정위원회에서 '석면폐증은 인정한다'고 했으면 적어도 3등급으로라도 판정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특히 이 병으로 사망했으면 심각성을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호소했다.

고 정관섭 씨의 사례는 판정위원회가 신청에서 판정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탓에 피해자에게 적절한 구제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정지열 석면피해자와가족협회 석면광산위원회 위원장은 "1차 검진에서 통보까지 보통 7~8개월 걸리는 등 검사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행정 처리에 너무 오래 걸리니 기다리는 사람도 지치고 그 사이 죽는 사람도 나온다"고 비판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석면질환은 일찍 사망하는 등 예후가 나쁘고 치료가 불가능한 치명적인 질환인 경우가 많다"며 "신속한 피해자 구제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차원의 구제금을 신속하게 지급하고 석면 생산 기업에게 산업재해보상 수준으로 피해를 보상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판정위원회의 공정성 문제도 지적됐다. 최 소장은 "현재 판정위원회에는 부산지역 석면 방직회사 피해자 소송에서 가해기업의 변호를 맡고 있는 변호사가포함되어 있다"며 "국가가 석면 산업을 비호한다는 비판을 자초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석면으로 돈 번 기업은 누구나 기금 내게 하라"

이러한 석면피해구제제도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재원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환경부는 석면 생산 기업의 법정분담금과 정부 출연금으로 조성되는 석면피해구제기금의 규모는 2011년도 139억 원이며 2012년도에는 145억 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기금에 특별교부금을 내는 대상 기업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다. 현재는 연간 1만톤 이상의 석면을 사용하는 기업만을 특별교부금 대상으로 지정해 구제할 수 있는 피해자 수도 한정적이고, 액수도 적다는 것.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석면피해구제금이 이렇게 작은 이유 중에는 법 제정 초기부터 기업에 너무 저자세로 나가 부담 비율, 부담액이 너무 적게 책정된 탓이 있다"며 "가령 석면으로 자동차에 들어가는 '브레이크 라이닝'을 제조했을 경우, 이 부속품을 만드는 회사만 교부금 대상이고, 이로써 돈을 번 현대자동차 등과 같은 업체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석면피해 보상 부담은 석면을 이용해 돈을 벌었던 모든 기업에 적용해야 한다"면서 △석면슬레이트를 생산 시멘트 회사 △석면건축자재 사용한 건설사 △자동차 회사 △석면함유 사문석 사용 제철회사 등으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 우리나라 상당수 대기업들이 포함된다. 그는 "이렇게 하면 재원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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