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와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는 지난 6월부터 5개월간 전국의 주요 염전 4곳과 20여 개 소금 제품을 놓고 석면 오염 조사를 실시한 결과, 염전이 석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 석면 안전 철거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들이 조사한 장소는 국내 최대의 천일염 생산지인 전라남도 신안을 비롯해, 전라북도 부안, 충청남도 태안, 경기도 화성 등지의 주요 염전 4곳이다.
▲ 전라북도 부안의 한 염전. 낡고 깨진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해주 창고의 모습. ⓒ시민환경연구소 |
슬레이트 지붕서 석면 25퍼센트까지 검출…시중 유통 소금에도 미량 검출
석면 오염의 원인이 된 것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1960~70년대 농어촌 지역에서 사용된 슬레이트 자재. 주로 지붕재로 사용되는 슬레이트가 수명이 오래됨에 따라 풍화되거나 부서지면서, 이 안에 함유된 석면이 먼지처럼 주변을 오염시킨 것이다. 실제 2009년 환경부 조사 결과를 보면, 슬레이트 지붕 아래의 토양 35퍼센트에서 석면이 검출됐다.
특히 염전은 소금 창고와 해주 창고(소금물을 가두어두는 창고)의 지붕재로 대부분 슬레이트를 사용하고 있다. 낙후된 슬레이트로부터 나온 석면 섬유가 노천에서 생산하는 소금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큰 것이다.
▲ 전라남도 신안의 한 염전. 지붕이 낮은 해주 창고가 염전들 사이에 위치해 있다. 해주 건물의 특성상 바람과 강우로 인해 지붕 슬레이트의 석면이 염전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크다. ⓒ시민환경연구소 |
시민환경연구소는 이들 지역을 조사한 결과, 수백여 채의 소금 창고와 해주 창고의 슬레이트 지붕에서 최저 7퍼센트에서 최고 25퍼센트까지 백석면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전남 신안과 전북 부안 지역 염전에서 채취한 슬레이트 조각에는 백석면보다 독성이 강한 갈석면이 최고 4퍼센트까지 함유된 것으로 드러났다.
비(非)석면 지붕재나 신형 슬레이트로 교체한 일부 소금 창고의 경우, 철거된 슬레이트 조각들이 주변에 방치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지붕이 낮고 염전과 염전 사이에 위치한 해주 창고의 경우, 슬레이트 지붕재의 풍화 작용으로 석면이 비산돼 염전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우려에 따라 연구소는 시중에 판매되는 15개의 소금(천일염) 제품과 염전 현지에서 구입한 5개의 소금(천일염)에 대한 석면 오염도를 조사한 결과, 시중에 판매되는 1개의 천일염 제품(전남 신안 생산)에서 미량의 백석면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 전남 신안의 한 염전 해주 창고 부근에서 채취한 시료. 왼쪽이 시료에서 검출된 백석면(23~25퍼센트)이고, 오른쪽이 갈석면(3~4퍼센트)다. ⓒ시민환경연구소 |
현장 조사를 진행한 시민환경연구소 최예용 부소장은 "대부분의 소금 창고와 해주 창고 주변에서 쉽게 슬레이트 조각을 발견할 수 있었고, 심지어 염전 바닥에서도 슬레이트 조각을 확인했다"며 "이들 창고의 지붕 대부분은 수십 년 된 낡은 슬레이트로 덮여있는데, 이들이 부서지면서 석면 먼지가 날려 염전을 오염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환경연구소는 "한국인의 식문화에서 소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염전 지대의 석면 오염 실태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며 "11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김장철로 집집마다 다량의 천일염을 사용하게 되므로, 정부와 소금업계는 석면 오염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 식품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농·어촌 지역 슬레이트 지붕 석면 문제 심각…농식품부 지원책 나와야
염전을 비롯한 농어촌 지역의 석면 위험성 문제는 비단 오늘 일이 아니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류근찬 의원(자유선진당)이 지난 10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국 소금 창고(1422개)와 해주 창고(5690개) 7113개 중 슬레이트 지붕재를 사용한 곳이 76퍼센트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어촌 지역 건물에 사용된 석면 자재의 위험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 4월 발표한 '농가 건물의 석면 함유 물질 사용 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전국의 표본 농가 981가구 중 82퍼센트에 달하는 805가구의 주거용 본채 또는 축사 등 별채의 지붕이 슬레이트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에 대한 석면 조사 결과, 1667개 슬레이트 시료 중 1665개(99.8퍼센트)에서 백석면이, 81개(4.9퍼센트)에서는 갈석면이 검출됐다. 슬레이트 지붕 물받이와 토양에서도 석면이 검출됐다.
▲ 전라남도 태안의 한 염전.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이평주 사무국장이 깨진 석면 슬레이트 조각을 들어보이고 있다. ⓒ시민환경연구소 |
그러나 환경부·농림수산식품부 등 13개 부처가 지난 7월 범정부 '석면 관리 종합 대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렇다 할 구체적인 시행 방안이 나오지 않아 정부의 대책이 '생색내기 식'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환경연구소는 "염전 지역 석면 오염의 일차적인 책임은 염전을 관리하는 농림수산식품부와 지방자지단체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2008년 석면 함유 건축 자재가 전면적으로 사용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무 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가 실질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
지난 10월 농림수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 류근찬 의원은 "농어촌과 염전의 슬레이트 지붕 처리 문제와 관련해 농림수산식품부의 예산 확보 노력이 부족하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류 의원은 당시 "농림수산식품부가 슬레이트 지붕 개선 대책과 관련해 하겠다는 일은 주택 개량 자금 물량과 융자액을 확대하겠다는 것 밖에 없다"며 "농어촌 주택 개량 사업이라는 것이 꼭 석면 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도 아니고, 설령 모든 사업 물량을 석면 사용 농가에 한정한다고 해도 이 추세대로 전부 개량하려면 40년은 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소금은 기존에 광물로 취급됐기 때문에 올해 3월에서야 지식경제부에서 농림수산식품부로 업무가 이관됐다"며 "전반적으로 환경부 차원에서 슬레이트 자재 관련 실태 조사를 하고 있으며, 내년에 결과가 나오는 대로 관계 부처와 합동해 염전 뿐 아니라 농어촌 전반의 시설 현대화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환경부는 내년까지 전국 농가의 슬레이트 사용 실태를 조사한 뒤, 석면 관리와 처리 방법 등을 명시한 지침을 만들어 지방자치단체 등에 보급하는 한편, 농림수산식품부와 협의해 농어촌 주택 슬레이트 지붕 철거 및 처리 지원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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