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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살인자'를 만난 동료를 찾습니다"

석면 피해자 모임 "부산 연산동 제일화학에서 일한 사람 찾는다"

'돌에서 뽑아낸 실'인 '석면'은 6, 70년대 근대화 시기 '기적의 물질'로 불렸다. 당시 석면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다른 가족과 함께 석면회사에 취직해 실을 뽑았고 심지어는 집에 가져다 놓고 구경하기도 했다. 또 석면이 풀풀 날리는 공장에서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먹는 일도 흔했다. 그 땐 석면이 죽음을 불러올 수 있을 만큼 위험한 물질이라는 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석면이 치명적인 '1급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최근 일이다. 피해자 가족인 안병규 씨가 석면방직업체인 제일화학을 상대로 악성중피종(석면이 유발하는 대표적인 암)으로 숨진 부인 원점순 씨의 손해배상청구를 내 지난해 12월 승소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석면 소송 승소였다. 석면 피해자의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오른 순간이기도 하다.제일화학에서 일했던 안 씨 역시 소송이 끝난 뒤, 석면 관련 질환 판정을 받았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죽어갔던 석면업체 노동자들의 사망원인이 '석면'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지만 여전히 정부의 태도는 소극적이다. 뒤이어 진행된 석면 집단 소송에서 정부는 일부 사망자와 질환자만을 추가로 산재로 인정하는 데 그쳤고 적극적인 대책도 내놓은 바 없다.

지난해 12월 안병규 씨 승소 판결을 계기로 대책위를 꾸린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여전히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전국석면피해자와가족협회,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등은 15일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석면피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고 사과와 피해구제를 요구했다.

"1969년부터 80년대 부산 연산동 제일화학에서 일한 사람을 찾습니다"

안병규 씨가 주도하여 당시 제일화학에서 일하던 노동자 3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해 말의 일이다.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피해자들이 직접 모임을 꾸려서 하기로 했다. 이들은 1969년부터 1982년까지 부산 연산동 제일화학에서 근무한 약 180명의 명단을 확보했다. 사망자 29명 중 19명이 석면과 관련된 사망자일 것으로 추정됐지만 이 가운데 산재로 인정받은 경우는 6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4월까지 산재를 신청한 16명 중 4명은 불승인, 1명은 심사 청구, 10명이 '장애' 판정, 그리고 단 한 명 만이 '요양'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개인적으로 산재신청을 해 산재인정을 받은 6명 모두 '요양'이라는 가장 높은 판정을 받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안병규 씨는 "한꺼번에 산재를 신청하자 정부가 태도를 바꿨다"며 "4월 18일에 연락을 준다던 근로복지공단에서 연락이 없어 6월 30일에 전화해보니 산재기준이 수정됐다며 산재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통보해왔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를 '석면 안전관리 원년'으로 정했지만 피해자 조사와 요구에 뒤늦게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데 그치고 있다. 대책위는 "산재 불인정 처리된 나머지 13명에 대해 정부는 즉각 산재처리를 하고 곳곳에 숨어 있을 제일화학 근로자를 찾아 역학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찾아내야 할 사람은 제일화학 근로자만이 아니다. 과거 제일화학이 있었던 곳 반경 2km 내의 환자발생률은 다른 곳에 비해 10배가 넘는다. 또 이 지역에서는 과거 10년 동안 12명의 악성중피종 환자가 발생했다.

대책위는 "정부가 왜 이 12명을 찾아내 보상해주지 않는지 의문이고 왜 이곳을 특별재해구역으로 지정하지 않는지를 묻고 싶다"며 "이 지역에는 초등학교를 비롯한 많은 학교가 있었고 제일화학이 운영되던 동안에 학교를 다닌 학생만도 7만 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석면 소송은 시작에 불과하다

석면의 심각성은 잠복기가 10~30년에 이른다는 사실에 있다. 당장 눈 앞에 질병의 위험이 포착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도 일반 시민도 그 심각성에 무뎌질 수 있다. 환경호르몬이나 중금속 등과 같은 위해 물질에 대한 인식은 매우 높은 수준이지만 석면의 위험성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하철 역사 공사나 학교 공사장에서도 아직까지 석면은 일반인들에게 공공연히 노출되고 있다.(☞관련 기사: 서울대 '석면 공포'에 학생들 '경악')

대책위는 "석면을 함유한 제품들이 우리 생활주변에 널려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석면 먼지에 노출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셈이다'라며 "그러나 석면노출로 피해를 입어도 자신이 석면노출되었는지 석면피해자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석면은 일부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2009년부터 석면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81톤의 석면은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다. 석면의 잠복기가 10~30년인 걸 감안하면 산재소송은 이제 겨우 시작일 수 있다.

그래서 <침묵의 살인자 석면> 저자인 안종주 씨는 이제 한국도 미국이나 유럽, 일본처럼 석면 소송의 시대가 열릴 거라고 예상한다. 대책위는 "지금까지 드러난 석면피해자 수는 빙산의 일각이다"라며 "잠복기를 고려하면 2045년까지 석면피해는 정점을 달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숨쉬는 공기 속에도 석면이…"

정부는 그나마 석면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난해 6월, 2007년을 '석면 안전관리 원년'으로 선포하고 2009년부터 석면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건물 폭파 현장에서 석면을 따로 폐기하지 않는 사례가 부지기수며 분리된 석면을 안전하게 폐기하는지도 확실치 않는 등 여전히 석면을 처리하는 방식은 미숙하다.

대책위는 "정부가 '석면관리 중장기종합대책'이라는 거창한 석면정책을 수립했으나 노동부와 환경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석면대책에 대한 구체적인 진행방법과 이후 대책에 대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형식적인 계획뿐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정부가 나서 석면피해에 대한 홍보와 선전을 진행하고 석면피해자 발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의 석면 피해자를 막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선은 이미 발생한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되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석면피해자 발굴을 위한 역학조사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더불어 석면특별법 제정과 석면구제기금 마련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국회와 환경부, 노동부 등에 이 같은 요구사항을 직접 전달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 석면이 치명적인 '1급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최근 일이다. 피해자 가족인 안병규 씨가 석면방직업체인 제일화학을 상대로 악성중피종(석면이 유발하는 대표적인 암)으로 숨진 부인 원점순 씨의 손해배상청구를 내 지난해 12월 승소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석면 소송 승소였다. 석면 피해자의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오른 순간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제일화학 석면 피해자 현황(2008년 5월 31일 현재)

사망자(29명)

- 청석면 라인

박태남(본명 박영희, 37세, 인타, 폐질환)

배운선

배정선(30대, 정방, 폐암)

정정이(20대, 정방, 폐암)

하경성(37세, 정방, 석면폐증)

박영숙(40대, 정방)

전복남(와인더, 포장, 흉막중피종)

강신일(와인더, 악성종피증)

정월성(와인더, 석면섬유성 폐질환)

박폐련(청백석 직수, 중피종)

박희성(주임, 폐증)

박병철(주임)

우고원(카드기)

안천진(카드기)

이오선(청백석 직수)

- 백석면 라인

조민호(기사, 석면폐증)

이재선(배합실)

곽희아(검단)

한영달(주임, 석면폐질환)

최병락(기사, 중피종)

원점순(40대, 연사기, 중피종)

지진규(주임)

이재선(배합실)

김주현(카드기)

백미숙(연사)

김윤기(연사)

백종명(중피종)

박혜련(연사기, 중피종)

김노현(카드기, 중피종)

- 사무실 근무

박용순(과장, 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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