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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 마시고도 칠십 넘게 감기 한 번 안 걸렸는데…"

[안종주의 '위험사회'] 석면 위험을 바라보는 두 시각

풍경 1

"국회의원은 무슨 얼어 죽을 국회의원이야. 석면 마시고도 칠십 넘게 감기 한번 안 걸리고 잘 살았는데 석면이 뭐 문제여. 저기 저놈! 환경단체에서 온 놈 잡아 죽여."

7월 25일 오후 1시 민주당 4대강 특별위원회 위원인 김진애 의원, 김희철 의원 그리고 민주당 환경전문위원을 비롯한 민주당 관계자와 제천과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간부, 그리고 한국석면네트워크 간부들은 장마가 한발 물러가고 30도를 넘는 불볕더위 속에 대한민국을 2년째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제천시 수산면 전곡리 폐석면 광산 옆 문제의 석면 채석장을 찾았다가 일부 주민으로부터 30분 가까이 욕설과 멱살잡이, 폭언을 들어야만 했다.

조사단 일행이 언제 오는지를 어떻게 알았는지 이들은 버스가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버스에서 내리는 찰나 거칠게 행패를 부리며 버스에서 아예 못 내리도록 막아섰다. 언행으로 보아 주민 대표는 아닌 듯한 이들은 방진마스크를 쓴 일부 조사단원에게 "우리는 그런 것 안 쓰고도 이렇게 잘살고 있는데 이상한 것 왜 쓰고 있느냐"며 마스크를 강제로 벗겨 땅에 내팽개치고 발로 짓밟아버렸다.

이들은 "환경단체에서 석면 채석장을 문제 삼는 바람에 수산면 지역 농산물이 팔리지 않는다. 환경단체 사람들이 정부에서 주는 월급을 받고 있다"는 등의 황당하고 해괴한 말을 큰 소리로 떠든다. 어떤 이는 석면 문제가 불거지는 바람에 땅값이 떨어지고 매매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 이들이 국회의원에게까지 폭력과 폭언을 한 이유를 엿보게 했다. 석면 채석장을 가동하든 안 하든 그런 것은 자신들이 알 바가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한 번도 석면 채석장 가동을 반대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석면 채석장 쪽과 짜고 온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들의 계속된 행패로 조사단은 석면 채석장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4대강 사업에 사용됐다가 다시 이 채석장으로 며칠 전 석면 돌을 돌려보냈다는 충주 지역 한강 살리기 사업 관계자의 말을 현장 확인해 보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충북도청 간부 등 조사단을 따라온 공무원은 그냥 떠나는 버스를 보고 멋쩍은 인사를 했다.


풍경 2

"석면 묻친 산에 장례식장 왠말이냐." '묻힌'을 '묻친'으로, '웬 말이냐'를 '왠말이냐'로. 어렵지 않은 철자법까지 틀린 말을 펼침막(플래카드)에 사용한 것으로 보아 현지 주민의 자발적인 반대 목소리인 것이 확실하다. '풍경 1'때 등장한 주민과는 정반대로 석면 오염과 노출이 걱정돼 장례식장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다. 물론 장례식장을 혐오 시설로 보고 벌이는 님비 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풍경은 같은 충청도인 충청남도 홍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다. 지난 5월 필자가 충남 홍성·보령·청양 지역 일대 폐석면 광산을 둘러보다 목격한 것이다. 이 지역 일대에서는 이미 많은 석면 질환자가 나왔으며 가장 일찍 언론의 주목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비슷한 기질과 정서를 지닌 두 곳에서 정반대의 모습이 펼쳐지는 것은 왜 그럴까.


▲ 석면이 있는 지층에서 대형 장례식장을 만들려고 하자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상정리 마을 주민들이 석면 오염을 우려하며 컨테이너를 차려놓고 펼침막을 내건 채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안종주

위험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이다. 제천 수산면 주민의 경우 애써 위험을 회피하고 모른 척하려는 반면 홍성 주민들은 위험을 적극 인지하고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새로운 위험이 닥치거나 이를 인지했을 때 사람은 이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대응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일반 주민뿐만 아니라 전문가와 정부 사이에서도 위험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를 수 있다. 최근 벌어진 상수원수의 석면 오염으로 인한 인체 위해성을 두고 석면 전문가와 정부 사이에는 현격한 시각차가 드러났다.

지난해 4월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한 뉴스는 단연 베이비파우더에 사용한 탤크에 석면이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긴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베이비파우더를 몇 번 또는 수십~수백 번 사용한 아기와 어머니 등은 나중에 악성중피종 등 석면 암을 비롯한 석면 질환에 걸릴 위험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이었다. 당시 국내 전문가 어느 누구도 여기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세계적인 석면 전문가를 몽땅 데려와도 해답을 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노동자 등이 석면을 흡입해 치명적인 석면 질환으로 숨진 사실이 있기에 정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베이비파우더 석면 탤크로 인한 석면 질환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호흡기 노출로 인한 석면 질환 발생 부분은 의심할 여지없이 받아들였지만 경구, 즉 입으로 통한 석면 섭취에 대해서는 일부 전문가의 입을 빌려 그 유해성을 사실상 무시해도 좋을 정도라는 자세를 취했다. 음식물이나 음용수 섭취를 통한 위장 관계 암 발생은 거의 논의되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이 때문에 베이비파우더 제조회사를 상대로 소비자들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석면 탤크를 의약품에 사용한 제약 회사들은 소송의 화살을 피해갔다.

경구(經口) 섭취를 통한 석면 질환 위험 문제는 7월 중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소홀로 석면이 다량 함유된 석재가 4대강 사업에 대량으로 쓰인 것이 환경단체에 의해 확인되면서 다시 불거졌다. 4대강 사업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베이비파우더 사건 때보다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환경부가 이 문제에 대해 발 벗고 나섰다. 이는 지난 7월 22일 과거 운영된 석면 공장·광산 인근 주민 건강영향조사 실시 결과를 보도 자료로 내면서 먹는 물 속의 석면 위해성 문제를 들고 나온 것에서 잘 드러난다.

한편, 환경부는 석면의 안전 관리는 반드시 필요하나, 이에 대한 합리적 대응을 위해서는 석면의 위해성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먼저 석면은 호흡을 통한 질환 발생 물질로서 음용(소화기 노출)과 석면 질환 유발과의 연관성은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먹는 물 석면 기준 설정을 위해 위해성을 검토한 결과, 음용으로 인한 건강상영향은 확실한 증거가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2003).

뉴욕시는 과거 상수도관으로 석면 시멘트 관을 이용(1960~1985)해 온 바, 동 기간 중 2963명에 대하여 20여 년간(1980~1998)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최종적으로 먹는 물과 석면 암 발생 관련성이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1998). * 시애틀에서는 현재도 석면 시멘트관을 상수관으로 이용 중.

이에 따라 WHO에서는 음용수에 대한 석면 함유 기준을 설정하고 있지 않으며, 다만 미국에서만 음용수 중 석면 함유 허용 농도를 1리터당 700만 파이버(fiber/L)로 설정 중이다. *하천·식수 원수에서의 석면 함유 기준은 전 세계적으로 미규정된 상태

먹는 물이나 식품 중 석면의 유해성 여부에 관한 연구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여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이 논쟁이 될 경우 매우 민감한 사안이고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므로 최대한 쉽게 이야기할 필요성이 있다.

독성 물질 가운데 노출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질병이 나타나는 암과 같은 위험은 그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 즉 인과 관계를 확정짓기가 쉽지 않다.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나 질환자가 엄청나게 나왔지만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역학 연구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잠복기가 최대 50~60년이나 되는 석면의 경우도 1800년대 말부터 석면폐 환자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석면이 석면폐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밝혀낸 과학적 연구는 1930년대가 되어서 이루어졌다. 석면이 악성중피종과 폐암의 원인이라는 사실도 역학적 연구로 입증된 것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중반이었지만 실제 환자는 1920년대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위암이나 췌장암, 결장암 등과 같은 위장 관계 암은 아주 많은 발암 원인이 있을 수 있으므로 설혹 석면이 이들 암 발생에 관여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명확하게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환경부가 뉴욕시는 최종적으로 먹는 물과 석면 암 발생과의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밝힌 20여 년간의 연구는 뉴욕주 우드스톡(Woodstock) 마을에 사는 2936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 마을은 1950년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석면 시멘트 관으로 상수도관 공사를 했다. 주민들은 1960년부터 1985년까지 이 상수도관을 거친 먹는 물을 마셨다.

석면 관련 질환은 20~30년의 잠복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들에게서 1980~1998년에 발생한 암을 뉴욕주암등록센터를 통해 조사했다. 위장 관계 암, 호흡기암, 전체 암에 대한 표준발생비는 모두 1.00이었다. 위장 관계 암을 개별적으로 살펴본 결과 췌장암 환자는 모두 9명으로 경계선상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증가(표준발생비 2.19, 95퍼센트 신뢰구간에서 1.00~4.16)를 보였다. 초과 발생은 주로 남성(표준발생비 3.08, 95퍼센트 신뢰구간에서 1.13~6.70)에서 일어났고 여성은 약간 높았다(표준발생비 1.39. 95퍼센트 신뢰구간에서 0.29~4.06).

연구자들은 이런 연관이 직업과 생활양식에 따른 석면 노출과 우연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거주 기간이나 잠복 기간에 따른 증가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런 경향을 찾아내기에는 대상자 수가 너무 적었고 최초 노출 시기를 알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석면이 들어 있는 먹는 물을 마신 주민들, 특히 남성에게서 의미 있는 췌장암 증가 등이 있었지만 다른 요인이 관여할 수 있으므로 이 연구 결과를 가지고 먹는 물 중 석면에 노출돼 암 발생이 증가한다는 연계를 증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환경부는 보도 자료에서 관련성이 없다는 쪽으로 몰고 간 것이다.

과거 석면은 각종 술과 청량음료 등에 들어있을 수 있는 불순물을 걸러내는 여과막(필터)으로 사용됐다. 그래서 오렌지주스, 토닉워터, 맥주, 위스키 등에서도 석면 섬유가 다량 검출되기도 했다. 또 상수도관으로 석면 시멘트 관이 쓰이고 석면을 함유한 지층 때문에 상수원이 오염돼 석면이 함유된 먹는 물을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석면 시멘트 관을 상수도관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먹는 물 중의 석면 오염과 그 유해성 연구는 주로 캐나다와 미국에서 1980년대 이루어졌다. 당시 연구에서는 석면이 먹는 물에 다량 들어있을 경우 위장 관계 암 발생을 높인다는 연구와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다는 연구가 서로 엇갈려 나와 관련성을 확정하기 어렵다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결론 내렸다.

그 동안 석면 연구는 주로 호흡기 암 등 호흡기 질환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최근 다시 석면을 경구로 섭취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위장 관계 암에 대한 연구가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노르웨이 연구팀이 2005년 <Cancer Causes Control>이란 학술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석면이 오염된 먹는 물을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오랫동안 마신 노르웨이 등대지기 7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입으로 섭취한 석면이 위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팀은 1917~1967년 사이에 등대지기가 된 사람을 대상으로 했으며 이들의 1960~2002년 암 발생을 농촌 지역 일반인을 대조군으로 해 비교 조사를 해 위장 관계 암, 특히 위암 위험이 경구 섭취 석면과 연관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석면 시멘트(슬레이트) 지붕에서 떨어진 빗물을 모아 야채를 씻은 뒤 이를 장기간 먹어온 76세 네덜란드 할머니가 악성 복막중피종에 걸린 것으로 보고된 사례도 있다.

호흡기를 통해 다량 들이마신 석면이 폐암과 악성중피종 등을 유발한다는 확정적인 역학 연구와는 달리 아직 먹는 물 속의 석면이 인체에 치명적인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명백한 역학 연구는 없다. 이는 실제 위험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연구의 어려움, 많은 변수들의 존재, 실제 대상자로 할 사람들을 구하기 어려움 등에 따른 한계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 어떤 위험이 발생할지 모르는 현대 위험사회의 특성을 깊이 이해한다면, 석면이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기적의 광물' '마법의 물질'로 불리며 오랜 세월 무방비로 다량 사용되다 엄청난 수의 희생자를 낸 뒤에야 '침묵의 살인자'와 '조용한 시한폭탄'이 된 것을 안다면 석면 경구 섭취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애써 무시하려는 태도보다는 그 가능성에 대비해 미리 예방하고 회피하는 사전예방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에 따른 사고와 행동을 하고 대응 정책을 펴는 것이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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