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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 어린이집'…왕십리 뉴타운을 아시나요?

왕십리 뉴타운 지역 어린이집에서 석면 검출…6개월째 방치

책가방을 맨 유치원생이 높게 솟은 울타리 사이를 지나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간다. 군데군데 쌓인 철거 잔해. 뉴타운 개발로 황폐해진 이 동네 한 복판에 자리잡은 것은 놀랍게도 어린이집이다. 철거 공사가 한창인 서울 왕십리 뉴타운 1구역, 사람들이 떠나버린 이곳에는 '성동 구립 홍익어린이집' 원아 120명만이 6개월째 통학을 계속하고 있다.

▲ 서울 왕십리 뉴타운 1구역. 한 어린이가 울타리로 가려진 철거 현장을 지나고 있다. ⓒ왕십리 뉴타운 홍익어린이집 학부모 대책위원회

왕십리 뉴타운 1구역의 철거 공사는 지난 3월부터 시작됐다. 어린이집이 채 이전하기도 전에 철거가 강행됐고, 아이들은 매일 철거 지역의 위험천만한 통학로를 지난다. 홍익어린이집 장미반에 재학 중인 명진(6), 수진(4) 남매는 엄마를 따라 어린이집을 방문하다 공사 현장에서 떨어진 장판에 머리를 맞기도 했다.

이 곳에는 더 무서운 게 있었다. 바로 날개 달린 '침묵의 살인자', 석면이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 물질로, 적은 양으로도 발암될 가능성이 높은 위험 물질이다. 석면에 노출되면 긴 잠복기(10년~50년)를 거쳐 폐암, 악성중피종, 석면진폐, 흉막판 등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오세훈 시장님, 석면이 무서워요"

"오세훈 시장님, 제발 뉴타운 공사를 중단해주세요. 우리 아이들을 이대로 방치하지 말아주세요."

홍익어린이집에 다니는 가을이 엄마 이주연(35) 씨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2일 오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왕십리 뉴타운 홍익어린이집 학부모 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 50여 명의 홍익어린이집 원아·학부모들은 '오세훈 시장님, 석면이 무서워요'라고 쓰인 손 펼침막을 흔들었다.

병원 흉부외과의 전직 간호사였던 이주연 씨는 아이가 커서 폐암에라도 걸릴까 항상 마음이 불안하다. 가을이가 석면이 노출된 공간에서 생활한 지 벌써 6개월. 철거 공사가 시작된 이후로 어린이집 아이들이 종종 기침, 가래, 가려움증, 아토피 증세, 결막염 등을 호소했지만, 처음엔 공사 현장의 먼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지난달 31일, 어린이집 실내 공기에서 끝내 석면이 검출됐다. 아이들의 주요 통학로와 인근 아파트에서도 법적 기준치를 뛰어넘는 석면이 검출됐다. 총 18개의 고형·먼지·토양·대기 등의 시료에서 석면이 검출됐는데, 이중에는 이미 석면 철거 작업이 끝난 현장 5곳도 포함돼 있었다.

어린이집 인근에 위치한 이 공사 현장에서 6개의 고형 시료를 채취한 결과, 백석면이 5~17퍼센트 함유된 것으로 드러났다.

▲ 서울 왕십리 뉴타운 1구역 전경. 가림막 안에 위치한 건물 뒷편으로 보이는 하얀색 건물이 홍익어린이집이다. ⓒ왕십리 뉴타운 홍익어린이집 학부모 대책위원회·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홍익어린이집 장미반에 재학 중인 명진(6)이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거의 나았던 아토피성 피부염이 공사가 시작된 3월부터 급속도로 나빠졌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녀오고 나면 귀에서 진물이 흐르고, 몸이 가려워 밤에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 명진이 엄마 손경숙(34) 씨는 "둘째 아이까지 최근 아토피성 피부염에 걸렸다"고 말했다.

민들레반에 재학 중인 민건(4)이의 엄마 이은정(38) 씨의 상황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 한 차례 폐 수술을 받은 민건이에게, 석면은 치명적인 독성 물질이다. 이 씨는 "원장 선생님에게 장소를 이전할 때까지만 아이를 보내지 않겠다고 하니까, 아예 (어린이집을) 그만두라고 하더라"며 "직장을 가진 엄마들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뉴타운 정책은 '석면 남발 조장 정책'"

학부모들은 어린이집에서 석면이 검출되기 이전인 4월부터 서울시와 성동구청, 청와대에 조속한 어린이집 이전과 공사 중지를 요청하는 민원을 꾸준히 제기했었다. 인근 공사장에서 건물 철거 및 석면 철거 작업이 수시로 일어났고, 왕십리 뉴타운에서 석면 철거 신고 건축물이 모두 131채 2만2225평의 면적에 이르렀던 것.

그러나 120명의 아이들이 석면에 노출됐음에도 불구하고, 구청은 "이전 부지가 없다"며 차일피일 어린이집 이전을 미루기만 했을 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석면 논란이 확산되자, 마침내 성동구는 지난 25일 어린이집 이전을 약속했다. 그러나 여전히 시기와 장소는 미정으로 남아있다.

▲ 2일 오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석면에 노출된 성동 구립 홍익어린이집의 이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홍익어린이집에 다니는 원아 두 명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프레시안

홍익어린이집 학부모들은 "지난달 26일 성동구청은 '한 자녀 더 갖기 운동' 행사를 진행했고, 현재 홍익어린이집은 서울시가 '안심 보육'의 모범 어린이집에 대해 선정하는 '서울형 어린이집'으로 지정돼 있다"며 "'한 자녀 더 갖기 운동'만 할 게 아니라, 이미 낳은 아이의 건강권부터 보장하라"고 성토했다.

왕십리 뉴타운 지역에서 현지 조사를 시행한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최예용 부소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뉴타운과 재개발 사업 전반에서 석면 오염과 비산 먼지 등 환경오염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현재 서울시의 뉴타운 정책은 '석면 남발 조장 정책'으로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학부모들은 △홍익어린이집 이전 완료 시기까지 일시적 공사 중지 △'당장' 어린이집 이전을 실시할 것 △아이들, 학부모, 교사에 대한 석면 건강 영향평가 시행 △등·하원 과정에서 '방진 마스크 지급' 등을 서울시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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