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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 '침묵의 살인자'로부터 아이를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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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 '침묵의 살인자'로부터 아이를 지킵시다"

[기고] '석면 어린이집' 해결을 위해서 오 시장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서울 성동구 왕십리 뉴타운 지역의 홍익 어린이집 사건을 처음 접하고 아직 우리 사회가 선진사회로 가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1급 발암물질인 석면에 어린이와 교사 등이 노출됐는지, 얼마나 고농도로 노출됐는지도 운동경기에 비유하자면 물론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겠지만, 나를 서글프게 만든 것은 어른들의 이기심과 욕망이 이런 사건을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 어린이들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 방치됐는지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린이들이 모두 또는 상당수가 장래 석면 관련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것과 어린이들이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제로라고 말하는 것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해물질의 노출과 질병 발생과의 원인 관계를 따지는 역학조사나 과학적인 연구가 아닙니다.

어린이를 이런 유해 환경 속에 방치했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자괴감을 느끼는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영문도 잘 모른 채 시위 현장에 나가고 이번 사건으로 알게 모르게 상처를 입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더는 이와 유사한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어른들이, 또 사회가 각성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홍익 어린이집 사건은 지난 4월 베이비파우더 석면 탈크 검출 사건에 이어 일반 대중이 석면의 위험성을 다시금 느끼도록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안전한 석면 해체 제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사건으로 자리매김을 해가고 있습니다. 한 번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기 힘들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석면이 한 번 우리 몸(폐) 속에 자리 잡게 되면 이를 몸 밖으로 배출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자신이 오랜 기간 또는 고농도의 석면에 노출됐다고 여기는 사람이나 고농도 석면 노출의 확실한 증거인 흉막반으로 진단된 사람은 늘 불안 속에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 어른의 이기심으로 석면에 노출된 아이를 위해서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프레시안

여기서 잠깐 '다모클레스의 검'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다모클레스의 검 고사(故事)는 이렇습니다.

그리스의 전설에 의하면 시칠리아 섬의 도시국가 시라쿠사의 왕 디오니시우스의 신하 중에 다모클레스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왕의 행복을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왕은 다모클레스에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그렇게 부러워하던 왕의 자리에 하루 동안만 앉아보게."

다모클레스는 왕의 후대(厚待)에 감격하면서 왕좌에 올랐습니다. 눈앞에는 산해진미(山海珍味)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득 천장을 쳐다보니, 머리카락 하나로 매달아 놓은 예리한 칼이 보였습니다. 다모클레스의 감격은 단박에 공포로 변하고, 왕좌에 올라 앉아있는 동안 살아있는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권력의 자리라는 것이 결코 밖에서 보는 만큼 편안한 것이 아니며, 항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 석면 소송에서 이 '다모클레스의 검' 고사가 등장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03년 3월 미국 철도 회사에 근무했던 철도 근무자들이 석면분진 노출로 인한 치명적 질환 유발 가능성을 인정하고 이들이 언제 '죽음의 병'에 걸릴지 모르는 공포 속에 살면서 느끼는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웨스트버지니아에 있는 노포크와 웨스턴 철도회사에 근무했던 노동자 6명이 근무 당시 석면에 고농도로 노출돼 진폐증의 일종인 석면폐증에 걸린 사실과 이 병에 이어 석면 관련 암에 걸릴 위험성에 대해 원고가 느끼는 정신적 피해보상액을 보태 500만 달러(10월 16일 환율기준, 약 58억원)의 배상액을 지불하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법원은 이 소송을 '다모클레스의 검'에 비유했습니다. 법원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칼(석면 암을 비유)이 자신의 머리(석면 노출자의 몸) 위에 있다는 것을 원고는 알고 있으며 이는 이미 석면 관련 질환인 석면폐에 걸린 사람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극히 일부 사건에서 정신적 피해 보상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이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실질적인 물질적 피해가 있어야 보상 판결을 내립니다.

최근 홍익 어린이 집 사건과 관련해 서울시가 피해 보상의 성격은 아니지만 석면에 노출된 어린이와 교사 등을 대상으로 건강영향조사를 하고 단체암보험 지원 등의 방안을 놓고 학부모들과 협의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비록 예방에는 실패했지만 잠재적 피해자들을 어루만지고 위로할 수 있는 성격이어서 미국 대법원의 '다모클레스 검' 비유 석면 판결에 비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석면 노출 사건과 관련해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하던 정부나 지자체, 기업 등의 태도와는 다른, 진일보한 태도여서 눈길이 갑니다.

사실 홍익 어린이집 어린이·교사 석면 노출 사건은 건강영향조사를 통해 명확한 결론을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는 한강대교 밑을 오염된 강물이 지나가 서해 바다로 빠져나간 뒤 다시 한강물을 채취해 그 오염도를 조사하자고 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어린이들이 오랫동안 들이마셨던 바로 그 공기는 더는 지구상에서 없습니다. 어린이집 주변 흙이나 창틀에 쌓인 먼지에서 석면이 검출되든 되지 않든 이를 근거로 어린이들이 들이마셨던 공기 중 석면 농도를 과학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한다고 해서 석면 관련 질환이나 석면에 노출된 흔적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석면은 잘 아시다시피 10~40년이란 오랜 잠복기를 거친 뒤 어느 날 갑자기 '시한폭탄'처럼 터지는 '침묵의 살인자'이기 때문입니다. 가래(객담) 검사를 통해 석면노출 증거의 하나인 석면소체(石綿小體)를 찾으려 해도 어린이가 제대로 된 가래를 뱉어내기 또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건강영향조사는 학부모들이 원한다면 그 실질적 효과를 떠나 불안 해소 차원에서, 또 부모가 자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라도 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는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건강관리수첩(어떤 이는 석면수첩이라고 하지만 건강관리수첩이 맞는 용어임) 발행은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건강관리수첩은 이황화탄소와 같은 만성신경 독성물질이나 석면, 벤젠 등 발암물질 취급 근로자들이 그 업무를 그만 둔 뒤에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해 관련 질환이나 암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을 때 산재보상처리를 하기 위해 만든 제도입니다.

따라서 일반인들에게도 건강관리수첩을 발행할 경우 이들 유해물질 취급 공장 인근 주민들 모두에게 건강관리수첩을 발행해야 하는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법령 개정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오랜 잠복기를 지닌 직업병 발굴과 보상을 위해 근로자 건강관리수첩 제도를 만들었듯이 오랜 잠복기를 지닌 환경성 질환을 일반 시민들에게서 발견해 보상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쪽으로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홍익어린이집 사건의 경우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기 전이라도 문제가 된 어린이와 교사들에 대한 명단을 작성해 서울시 또는 정부가 이를 30~40년간 관리하도록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만에 하나 이들이 석면 관련 질환에 걸렸을 때 제 때 보상을 해줄 수 있게 됩니다.

끝으로 단체암보험은 그 동안 석면 관련 전문가조차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아이디어입니다. 석면 노출을 핑계로 공짜 암보험 하나 챙기려든다는 오해 또는 비판에 시달릴 수도 있겠지만 변변치 못한 부모가 돼 자식들을 이런 잠재적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는 자괴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나름대로 괜찮은 해결 방안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이나 관료들은 대개 원칙과 법 테두리를 중시하지만 석면과 같은 위해물질의 위험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는 시민들의 심리적 불안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매우 중요합니다. 전문가들이 느끼는 위험과 위험 정도는 일반 대중이 느끼는 위험과 위험정도와 크게 다를 때가 많습니다. 이 때 문제 해결은 전문가의 지식이나 관점을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소와도 통할 정도'로 대중의 눈높이에서 대중의 말글로 '소통'을 벌임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문제 해결로 가는 첫걸음이요 지름길일 때가 많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산업보건학자 해치 교수는 근로자 건강 보호를 위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용자는 근로자의 작업 환경을 자신의 자녀가 일하는 곳으로 여기고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용자 바로 자신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작업환경을 만들 때 비로소 근로자의 건강이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 시장은 자신들의 자녀가 재개발 현장 한복판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아니 바로 자신들이 그 한복판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뉴타운과 재개발 정책을 펴야 합니다. 그리고 오 시장께서는 눈 앞에 닥친 서울시 국정감사 걱정보다는 해맑은 성동구립 홍익 어린이집 아이들을 떠올리며,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눈물어린 공개편지를 쓴 혜연 엄마를 생각하며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 건강을 제대로 지켜주는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가입니다. 어린이 건강을 우선하는 전문가와 공무원이 참된 전문가요 참된 공무원입니다. 어린이 건강을 첫 손가락에 꼽는 정부와 지자체가 진정 국민과 시민의 사랑을 받는 정부와 지자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린이 건강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사회에서만 어른들도 자신들의 건강을 완벽하게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왕십리 뉴타운 성동구립 홍익 어린이집 사건과 그 해결 방식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더욱 자주 벌어질 석면 노출 사건을 처리하는데 가늠자가 될 것입니다.

안종주 씨는 <한겨레> 보건복지전문기자를 거쳐 전국석면환경연합회장, 석면추방네트워크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그는 보건학 박사(서울대 보건대학원)로 <석면공해-조용한 시한폭탄>(1988), <침묵의 살인자 석면>(2008) 등을 펴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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