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은 성(性)과 정치를 배우는 것이었다." 소설가 권여선이 '푸르른 틈새'라는 작품에서 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성에 눈을 뜨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에서는 그것으로 부족하다. '정치'를 알아야 한다. 물론 그것은 신문에 나오는 정치가 아니다. 흔히 "철이 든다"고 표현하는 것. 때로 권위에 순응하고 때로 권위를 이용하는 능력, 그리고 내 편과 네 편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배우는 것이다.
과학자도, 의사도 '정치력'으로 평가받는 사회
이렇게 보면 최근 인기를 끄는 드라마 '하얀거탑'은 전형적인 성인용(成人用) 콘텐츠인 셈이다. 야한 장면이 나온다는 뜻이 아니다. '조직 내 정치'를 다루고 있어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의사들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성공을 위해 의사로서의 전문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이 드라마는 병원에서 '의사로서의 전문성'이 매우 하찮게 취급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그 대신 중요한 것은 '정치력'.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감탄의 표정을 짓는 대목은 새로운 의료 기술을 접할 때가 아니다. 물론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헌신적인 치료를 하는 장면도 아니다. 마당발 인맥을 과시하는 장면에서,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대목에서 그들은 감탄한다. 그리고 "한 수 배웠다"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이 드라마가 인기 몰이를 하는 배경에는 '정치 과잉'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정치'에서 미숙하면 '철이 덜 든 사람'으로 취급받는 현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전문성을 쌓기 위한 노력 외에 인맥 관리와 조직 내 정치에 공을 들여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회와 다소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지곤 하는 과학자나 의사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하얀거탑'은 드라마일 뿐이지만,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연구'보다 '정치'에 주력하여 성공했던 과학자 황우석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이필상 사태'
그리고 최근 논란이 된 이필상 사태가 있다. 하필 이번 사태가 '하얀거탑'의 방영 시기와 겹치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하얀고탑'이라는 표현이 유행하기도 했다. 드라마 원제에 있는 '거'자를 고려대의 첫 글자로 대체한 것이다.
실제로 이필상 사태의 전개 양상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고려대 교수의회가 이필상 총장의 논문 표절이 사실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자, 이 총장은 또 다른 폭로전으로 대응했다.
총장 취임 직전, 일부 교수들이 자신을 찾아와 협박했다는 것. 이런 폭로는 드라마에서 '모사꾼'으로 묘사된 대학병원 의사들의 모습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여론도 출렁였다. 온갖 음모론이 번졌다. 하지만 결국 이 총장의 대응은 '논점 흐리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마치 3당 합당 당시 내각제 밀약을 담은 문건이 폭로되자, "나를 죽이려는 민정계의 음모"라며 펄펄 뛰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과 닮았다. 1992년 4월의 일이었다. 당시에는 이런 방식이 통했다. 어느 언론도 그런 파렴치한 논점 흐리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오히려 김영삼 씨가 설정한 의제를 모범생처럼 고분고분 따라갔을 뿐이다. 한국언론의 치욕에 해당하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치 9단'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2007년에는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이 총장의 폭로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 했다. 이어 나온 제안은 전체 교수에게 투표로 신임을 묻겠다는 것. 또 한 번 '정치력'을 발휘한 셈이었다. 그러나 상당수 교수들은 "학문의 문제를 투표로 판정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문제의 핵심은 '논문 표절 여부'이며, 그것을 '인기투표'로 판가름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 총장은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투표 결과가 '과반수 신임'으로 나온 다음날이었다. 투표를 통해 신임 여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논문 표절 의혹까지 비켜갈 수 없다는 여론을 의식한 것이었다.
YS 식 '정치력'의 시대는 한물 갔다. 그러나….
YS가 발휘하던 종류의 '정치력'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선례가 생겨난 셈이다. 이제 그것이 무슨 사안이든, 직면한 사태의 핵심을 정치적인 '논점 흐리기'로 비켜가려는 이들에게 작은 교훈이 던져졌다. 그게 이번 사태의 성과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문제의 핵심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 총장의 논문 표절 여부에 대한 명확한 규명이 그것이다. 사실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 앞서 고려대 재단 측은 교수의회의 조사와 별도로 자체 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총장이 사의를 밝히면서 유야무야되는 분위기다.
그래서는 안 된다. 교수 의회는 이 총장이 논문을 표절했다고 했다. 이 총장은 그것을 부인했다. 그런데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 정확히 밝히려는 이들이 없다. 이래서는 이번 사태의 교훈을 제대로 살리지 못 한다.
만약 이 총장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총장직에서 물러났으니 이제 더 이상 책임질 일이 없다는 태도는 잘못이다.
또 이 총장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교수 의회, 그리고 처음 의혹을 제기한 측이 역시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없다.
<국민일보>, 이 총장의 책임 끝까지 물어야
심지어 처음 의혹을 제기한 <국민일보>마저 '이 총장의 사과'를 주장하지 않았다. <국민일보> 보도대로라면 이 총장이 논문을 표절한 게 맞다. 그렇다면 이 총장은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 총장이 사의를 밝힌 다음날인 16일자 <국민일보> 사설의 결론은 "(이번 논란으로 빚어진) 갈등을 치유하고, 학문 연구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이 총장 표절 논란의 진실을 밝히라는 대목은 없었다.
이번 사태를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된다. '정치력'으로 '진실'을 비켜갈 수 없다는 교훈은 '거짓말'은 결국 드러난다는 교훈과 함께 서 있을 때에만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드라마 '하얀거탑'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 의료사고를 낸 주인공 장준혁이 부유한 장인과 함께 병원 부원장의 집을 찾아갔다. '로비'를 시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부원장은 "자네는 이런 방법이 언제나 통한다고 보나"라며 쏘아붙인다.
물론 드라마에서 부원장은 결국 장준혁의 편에 선다. 그리고 의료 사고의 진실도 가려지는 분위기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드라마에서건, 현실에서건 "거짓말은 결국 밝혀진다"는 교훈까지 햇빛 아래 드러내는 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원칙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정도의 교훈도 못 남긴다면 이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을 둘러싸고 벌어진 지난 51일 간의 소란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이필상 사태'를 취재한 기자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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