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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사태, '고려대 문화' 반성의 계기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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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사태, '고려대 문화' 반성의 계기 돼야

[기고]고려대 '출교자'가 본 이필상 사태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이필상 사태'가 중대고비를 맞았다.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아 온 이필상 고려대 총장에 대한 신임투표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교수들이 "논문 표절에 대한 시비를 투표로 판정할 수 없다"며 투표 참가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이렇게 진행된 투표에서 설령 과반수의 신임을 얻는다 해도 이 총장의 리더십은 크게 손상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승종 고려대 재단 이사장마저 사석에서 "학술 문제를 투표로 해결해선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장에 대한 신임투표는 14일 저녁이면 끝난다. 현재 상황대로라면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을 착잡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고려대 학생들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조금 다른 위치에서 이번 사태를 지켜본 이들이 있다. 지난해 4월 학내 문제로 대학 당국과 갈등하다 학교에서 쫒겨난 학생들이다. 당시 이 학생들은 고려대 병설 보건대 학생들의 총학생회 투표권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보직교수들을 대학본관에 억류했다는 이유로 출교(학적 말소) 처분을 받았다. 따라서 이들은 한때 고려대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고려대와 무관한 위치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고려대에서 출교당한 학생 중 한 명이 이번 사태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을 기고했다. 고려대 법학과 02학번이었던 조정식 씨는 이번 기고에서 이 총장에게 적용된 기준보다 더 엄격한 기준에 따른 처벌을 받았다는 억울함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조 씨는 고려대의 오랜 자랑이었던 '가족적인 문화'의 맹점을 주로 이야기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시사저널> 사태 등에서도 이런 맹점이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조 씨는 고려대의 오랜 자랑이었던 '따뜻하게 챙겨주는 문화'가 학교 내부만을 향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대신 학교 밖에 있는 사회적 약자를 향해 취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 정의'와 충돌하는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조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이필상 총장의 논문 표절 논란으로 학교 안팎이 시끄럽다. 이 사태에서, 흔히 나오는 말이 '학자의 양심'이다. 학생들이 과제물로 제출하는 리포트가 종종 온라인 공간에서 베낀 것이라며 분개하던 교수가, 논문을 '표절'했단다. '양심'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 게 당연하다.

이 총장의 논문 표절이 사실이라면, 그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또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이필상 사태'가 대단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지금, 더 큰 이야기를 꺼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함성득 교수 의혹은 그냥 묻어두더니….

사실 고려대학교에서 논문 표절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지난해에도 행정학과 함성득 교수의 논문 표절 논란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당시 문과대학의 한 양심적인 노교수에 의해 제기된 이런 의혹은, 결국 불발로 그쳤다. 진상을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조차 꾸려질 수 없었던 것이다. 동료교수들의 '허물 덮어주기' 문화가 그 배경이었다.

당시 필자는 비록 학교에서 출교당한 처지였지만, 그래서 학생의 신분을 박탈당했지만 함성득 교수의 논문 표절 의혹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이런 요구를 학교 당국에 전했다. 당시 학교 측은 "조사위원회를 곧 꾸릴 예정"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유야무야 시간만 보내다 결국 사건을 묻어 버렸던 것이다.

그 때 '서로 챙겨주고 감싸주는' 교수사회의 아름다운(?) 문화를 체험한 까닭일까. 이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진 뒤, 핏대를 세우며 비난하는 고려대 교수들을 보면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고려대' 출신 총장이 아니라서"라는 세간의 음모론에 솔깃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이런 음모론이 표절 논란의 핵심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호남 향우회, 해병 전우회, 고대 교우회'의 공통점?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조직 세 개는?" 대답은 "호남 향우회, 해병대 전우회, 고려대학교 교우회".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다. 물론 각박한 개인주의가 횡행하는 세상에서 단지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까지 따뜻하게 챙기는 전통은 보기에 따라선 퍽 아름답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전통은 단지 그 가족 '내부'를 벗어나지 못 한다. 함성득 교수의 논문 표절 의혹을 서로 모른 척 묻어뒀던 것처럼. 하긴 '가족적인 교풍'을 강조하던 대학 당국으로부터 학교 방침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그 '가족'의 구성원 자격을 박탈당한 필자 같은 이들이 이런 전통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논문 표절'이라는 단순한 사안을 둘러싼 논란이 이처럼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 배경에는 고려대의 이런 특수한 문화가 있다.

동문끼리 감싼 <시사저널> 사태…'학교 사랑'은 '사회 정의'와 양립 불가?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특수한 문화를 학교 밖에서 만날 때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4월 학교 당국으로부터 '출교'조치를 당한 학생들의 대부분은 2005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를 저지하는 시위를 주동했던 이들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언론에 보도되는 <시사저널> 사태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삼성 공화국'에 맞섰던 이들이 겪는 시련이라는 점에서 닮았기 때문이다.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은 왜 이학수 삼성 부회장을 그토록 감쌌을까. 물론 일차적인 원인은 '삼성' 그 자체다. 누가 함부로 삼성을 건드릴 수 있다는 말인가.

'서로 감싸주는' 고려대 문화에 질려서일까. 자꾸만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금 사장과 이 부회장이 모두 고려대 출신이라서다. 실제로 금 사장은 같은 학교 '동문'이라는 이유로 이 부회장을 종종 감싸고 돌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왜 '학교와 동문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자꾸 '사회 정의'와는 어긋나는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일까. 위험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따뜻한 태도가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쪽으로 향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14일, 이 총장의 신임 투표가 마무리된다. 지난 연말 이후 학교를 들끓게 했던 이필상 사태가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 투표를 지켜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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