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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사태, '음모론' 말할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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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사태, '음모론' 말할 때 아니다

[기자의 눈]표절 진실 공방, 싸우려면 끝까지 싸워라

음모론이 떠돌고 있다. 이필상 고려대 총장의 논문 표절 논란과 관련해서다. 출신 학교 등에 따라 형성된 파벌 다툼이 발단이라는 것이다.
  
  이런 음모론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주장은 위험하다는 것, 그리고 문제의 우선 순위를 잘 따져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논문 표절이 사실이라면 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게 옳다
  
  고려대 교수의회는 2일 이 총장의 논문 표절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기로 했다. 재단 측에 결정을 맡겼다.
  
  이에 앞서 이 총장은 교수의회 산하 조사위원회의 공정성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총장 취임 직후, 일부 교수들이 찾아와 사퇴를 종용했다는 충격적인 증언도 내놓았다. 이런 주장의 배후에는 역시 음모론이 있었다. 시중에 떠도는 음모론과 비슷한 종류의 것이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할 고려대 재단 측이 어떤 판단을 할지 지금 점치는 것은 무리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재단 측이 이 총장을 결국 옹호하리라는 전망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학교의 위신, 자칫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는 혼란에 대한 우려 등이 그 이유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가장 우선 순위에 놓고 판단해야 할 기준은 무엇인가?" 답은 명백하다. 이 총장이 논문을 표절했는지의 여부를 명백하게 가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연구 윤리에 있어서 가장 큰 책임을 느껴야 할 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교수의회가 이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입장 표명을 미뤘기 때문이다. 교수의회 측은 어차피 총장의 거취를 결정할 권한이 재단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논문을 표절한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면 이 총장의 사퇴를 끝까지 요구하는 게 옳다. 그것이 학자의 자존심이며 존재근거다. 재단 측이 교수들의 요구를 수용할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 총장, 억울하면 소명서를 언론에 공개하라
  
  이 총장의 처신 역시 옹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억울하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에 반대하는 일부 교수들이 허위 정보를 언론에 흘려 인민재판식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논문을 표절하지 않은 게 '명백한 진실'이라면 지금이라도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한 소명서를 언론에 공개하는 게 옳다. 여론몰이에 희생당했다고 여긴다면 논문을 표절하지 않았음을 입증할 근거를 명백하게 밝히고 당당하게 대중 혹은 지식인 사회를 설득하는 게 자연스러운 태도다. 더구나 이 총장은 자신이 속한 대학의 치부라 할 수 있는 경험까지 공개한 마당이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재단이 할 일은 이제 명백하다. 이번 사태에 대한 판단의 책임이 돌아온 이상,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리면 된다. 다른 고려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번 사태를 보며 학연으로 얽힌 학계의 파벌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옳은 지적이다. 학연에 따른 파벌 형성과 이에 따른 갈등은 우리 사회의 해묵은 병폐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번 사태의 핵심이 아니다. 그것을, 이번 사태를 통해 공론화하고 장기적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로 여길지언정, 사태의 본질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교수의회와 이 총장은 논문 표절 여부를 가릴 수 있는 근거를 보다 정교하게 공개해야 한다. 표절 논란에 대한 시시비비를 명백히 가리는 것, 그것이 이필상 사태 해결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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