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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종착역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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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열차 종착역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55> '진격의 거인' 철도를 회상하다

먼저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에 함께 탑승해주셨던 <프레시안> 독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어쩌다 철도 이야기에 대한 연재를 시작해 2년 3개월을 넘게 달렸다. (☞관련 기사 :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 모아 보기)

이 연재는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2012년 겨울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프레시안> 기자와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가벼운 반주가 몇 순배 돌았을 때 버릇처럼 철도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옆에 있던 친구가 나를 가리키며 "이 친구가 술버릇이 고약하다. 알콜이 혈관을 어느 정도 장악하게 되면 그 때부터 철도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는데 가끔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고 나의 음주 습관을 고발했다. 사실 기분 좋게 술을 한 잔 걸칠 경우 2박3일 정도는 쉬지 않고 철도 이야기를 할 자신이 있었던 나는 친구의 말에 적당한 반박거리를 찾지 못했다. 이때 앞에 앉았던 기자가 "그렇다면 <프레시안>에 연재를 한 번 해보면 어떻겠냐"라는 제안을 해왔고 술김에 호기를 부려 덜컥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

이후 정식 협의를 거쳐 2주에 한 번씩 금요일에 원고를 넘기면 편집 과정을 거쳐 일요일판에 기사를 게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연재를 해야 한다는 현실을 맨 정신으로 자각한 뒤에는 자신감보다 두려움이 온 몸을 감쌌다. 유력 언론사의 지면을 차지했다가 연재를 펑크 내거나 함량 미달의 글을 올릴 경우 언론사와 그 독자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또 제법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2주 간격의 기고는 나의 피를 말렸다. 2주에 한 번씩 200자 원고지 50여 매 정도를 써내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나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당시 국토부가 추진했던 철도 경쟁 체제의 문제점을 밝히는 글도 수시로 써야 해서 원고를 펑크 내지 않으려면 늘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마감을 지켜야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의 성질이 왜 더러워지는지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연재를 이어 갈 수 있었던 힘은 주변의 인내와 격려였다. 작가나 된 양 모든 일을 내 팽개친 채 집구석 책상 한 쪽을 장악하고 노트북과 씨름하는 모습을 참아냈던 아내와 두 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다. 글을 읽고 응원을 해준 나의 동료들이 없었다면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일일이 이름을 부르고 싶지만 혹시 한명이라도 누락시켜 실망을 끼치게 될까봐 단체로 고마움을 전한다. 교사로 일하는 나의 동생은 글이 실릴 때마다 평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가끔씩 술을 사 필력을 유지시켜 주었다.

▲ 독일에서 온 철도 전문가, 베르너 레 박사와 박흥수 기관사 ⓒ프레시안(최형락)

머릿속에 담고 있는 것들을 글로 옮기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이야기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문헌을 뒤져야 했다. 참고자료를 구하다 보면 감자 줄기 캐듯 더 필요한 것들이 딸려 나왔다. 이것들을 일일이 읽어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덕분에 인터넷 서점 플래티넘 회원에 등극해 구매 때마다 마일리지를 3% 더 얻고 머그컵이나 베게, 파우치 같은 사은품을 챙기는 대신 북푸어(Book-Poor)로 전락했다. 그나마 파산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시립도서관 덕분이었다. 사는 동네 인근의 강동도서관과 고덕도서관을 기본 서고로 필요에 따라서 정독도서관과 용산도서관을 애용했다. 책상 위에는 늘 십여 권이 넘는 대출 도서들이 쌓여있었다. 공공도서관은 이 연재를 이어가게 해주는 엔진 같은 존재였다. 글을 쓰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혹은 시간에 쫓겨 읽어야 했던 책들은 롤플레잉 게임 유저 앞에 나타난 거대한 괴물 같을 때도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렇게 흡수한 내용들은 뼈가 되고 살이 되었다. 게이머가 레벨을 올리고, 권투 선수가 훈련을 통해 맷집을 단련시키듯,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속도도 빨라졌고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는 능력도 나아졌다. 아주 가끔씩은 마감을 코앞에 둔 사실을 깜빡 잊은 채 책 읽는 재미에 빠졌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내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이럴 때면 시간은 뒤에서 몽둥이를 들고 뛰어왔고 나는 죽어라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밝아오는 태양을 향해 도망쳐야 했다. 어쨌든 장기간의 연재를 통해서 얻은 것 중의 하나는 공부하는 재미였다. 되돌아보면 연재 할 때 마주하게 되는 여러 가지 현실적 난관을 알았더라면 쉽게 도전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잘 모르고 겁이 없었던 게 천만 다행이었다.

이 연재는 고대 철도의 기원부터 시작해 근대 철도가 탄생하면서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워낙 큰 골격을 잡다보니 세세하게 철도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원래 계획했던 것 중에는 만주 및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한국전쟁 이후 한국 철도의 발자취, 전후 일본 철도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만주와 시베리아 횡단철도만 다뤄도 적지 않은 분량의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몇 년을 더 연재해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마감 없는 삶을 간곡히 바라는 나에게 있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 방전된 에너지가 다시 채워지면 새롭게 수행해야 하는 과제로 이월시켜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독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던 철도 이야기들의 상당 부분을 담아냈다고 생각하기에 안심이 된다.

인간은 이동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사물의 본질은 운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우주에서 불변의 진리가 있다면 모든 것은 변화하고 운동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거대하게 고정되어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한강철교도 어제와 오늘의 그것은 다르다. 철제 아치의 어떤 부분은 더 녹슬었을 것이고 레일들은 열차가 지난 만큼 닳아있을 것이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고, 화학반응에서 전자들이 평형을 이루기 위해 수시로 이동하듯, 우주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도 지속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운명이다. 호모사피엔스는 이동을 전제로 하는 호모노마드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이미 유전자의 명령체계 속에 담겨있을지도 모르는 이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재는 인간의 숙명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열악한 신체적 조건 때문에 하늘을 날수도 빠르게 달릴 수도 없었다. 대신 인간의 불리한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있었으니 바로 도구였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었던 것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고대 원시인들은 갑자기 옆 마을에서 전달된 날이 시퍼렇게 선 신형 돌도끼를 서로 만져보려고 다퉜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신형 돌도끼는 아이폰이나 갤럭시 시리즈의 최신 스마튼 폰 같은 희열을 주었을 것이다. 도구를 든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그 도구를 더 발달시켰다. 노동하는 인간, 도구를 든 인간, 이동하는 인간이 호모사피엔스의 진짜 모습이다. 인류가 이용한 탈것은 동물이었는데 그나마 소수의 전유물이었고 대부분은 자신의 두 다리로 이동해야 했다. 2000년 가까운 고군분투 끝에 이동 도구로 사용된 동물을 버리고 빚어 낸 거인이 바로 철도였다. 비로소 인류는 자연계 생명체의 근육을 동력으로 하는 이동수단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철도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복잡하고 커다란 도구였다. 수 천 년 인간의 노동이 축적된 퇴적층이었다. 도구로 노동하는 인간이 드디어 자연계의 물리적 장벽을 돌파하는 이동수단을 갖게 되었다. 호모노마드의 완전한 실현이자 호모사피엔스의 완결이었다.

철도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근대 산업화시대라는, 특별한 시대에 만들어진 도구였다. 또 이 특별한 시대는 자본주의의 시대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상징적인 권력은 종교에, 형식적인 권력은 정치권력에 양보했지만 실질적으로 인간을 지배했다. 자본주의의 지배도구는 시간이었다. 내가 먹고 살기위해 받는 임금역시 나의 엉뚱함이나 수려한 미모 같은 것과 상관없이 오직 시간당 단가를 기준으로 해서 책정된다. 이렇게 중요한 지배도구인 시간을 인간의 의식 속에 반도체 칩처럼 영구적으로 이식시킨 도구가 바로 철도였다. 자본주의는 시장을 필요로 했고 이 시장이란 것을 유지하기 위해 민족국가를 창조했다. 자신을 포섭한 국가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이 어제까지 한 마을 사람이었던 국경선 너머의 이웃을 절멸시켜야 하는 원수로 삼았다. 전쟁이 일상화되었다. 철도는 전쟁을 수행하는 진격의 거인이 되었고 인간들을 처참하게 짓밟았다. 제국주의는 철도를 타고 왔다. 산업화의 세례를 늦게 받은 나라들이 치른 대가는 참혹했다. 우리 주, 자본주의는 용서란 없었다. 식민지 백성들의 삶을 철저히 유린했다. 한국 사람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었다. 지정학적 특수성이라는 그 지독한 딜레마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의 제국주의 침탈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계산서는 비극적이게도 민중들에게 청구되었다.

철도는 인류의 노스탤지어다. 그것도 쓰라린 추억으로 축적된 시공간이었으며 끔찍한 트라우마를 남긴 거인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알고 있다. 의지 없는 존재, 도구에 불과한 철도의 잘못이 아니란 것을. 철도가 수많은 인간을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간 거인이란 것을 알지만 우리 인간은 이 거인의 목을 타고 여행을 계속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이 이제 철도의 2막은 새로운 반전을 준비해야 한다. 식민지 침탈과 전쟁의 도구였던 철도가 소통과 연대의 도구로 변신하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적대적 갈등을 불식시키고 더 가난한 나라와 사람들에게 희망을 나르는 착한 거인이 되는 것이다. 세계 평화의 전도사가 되어 두 가닥 쇠줄로 서로를 뜨겁게 이어주는 것이다. 그 출발점이 서울과 평양, 신의주를 잇는 노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서울역에서 런던과 파리행 열차표를 끊으며 미소 지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원고로 인해 숱한 주말마다 고생했을 김윤나영, 최하얀, 박세열 기자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소중한 지면을 허락해주신 <프레시안>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승객여러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남은 목적지 까지 안녕히 가십시오. 다음 여행에도 손님 여러분을 모시는 행운이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이 열차의 기관사 박흥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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