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저임금 심의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도급제 노동자'였다.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어느 때보다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낯설게 들리는 도급제 노동자의 구체적인 이름은 학습지 교사, 라이더, 대리운전기사, 웹툰 작가 등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에나 있는 이들이다.
계약의 형식상 일감에 따라 보수를 받는 이들은 1988년 최저임금이 시행된 이래 40년 가까이 제도 적용을 받지 못했다. 그 사이 비슷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는 870여만 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전국대리운전노조,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등이 "40년의 기다림, 870만의 열망"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도급제 최저임금 심의 기간 노동부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를 통해 도급제 노동자를 최저임금 논의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다만 도급제 최저임금 적용 안건은 최임위에서 부결됐다. 농성을 이끈 이들을 만나 올해 도급제 최저임금 논의의 성과와 과제를 물었다. 여민희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 이창배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 구교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장이 그들이다.
올해의 성과로 이들은 도급제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점을 주로 언급했다. 지난 수년과 달리 조합원 사이에서도 도급제 최저임금을 실현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정부도 더는 이 문제를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향후 과제로 이들은 도급제 최저임금 적용을 위한 보다 정교한 연구사업, 사전 쟁점 정리를 위한 플랫폼·특수고용 업종 초기업 교섭의 활성화, 실질적인 도급제 최저임금 논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최임위 구성 변화 등을 꼽았다.
이들은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에나 도급제 노동자가 있다며 도급제 최저임금은 우리 모두와 이웃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제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라이더와 대리기사는 특히 안전과 적정보수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래는 지난 3일 서울 서대문 대리운전노조 사무실에서 진행한 좌담회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프레시안 :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도급제 최저임금이 전에 없이 여론의 관심을 받은 것 같다. 먼저 올해 도급제 최저임금 논의를 준비하며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여민희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사무처장 : 현장 이야기를 많이 하자고 생각했다. 단순히 돈이 적은 게 문제가 아니라 왜 적은지 알리고 싶었다. 예를 들면, 학습지 교사는 출근하는 날에 보통 10시간 일하는데 임금이 책정된 시간은 수업하는 4시간 정도다. 나머지 6시간 동안 하는 교육, 홍보, 준비, 이동, 대기 등은 '공짜 노동'이다. 웹툰작가 등 많은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도 비슷한 상황이다. 대기하거나, 취재하는 시간에는 임금을 못 받는다. 이를 알리는 데 집중했다.
이창배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 : 대리기사도 마찬가지다. 콜을 잡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 복귀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합치면 2, 3배가 된다. 운행하지 않는 시간의 공짜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알리면서 조합원들이 최저임금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려 했다. 최저임금 적용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만드는 데도 힘을 썼다. 노동계가 따로 관련 보고서도 냈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지부장 : 조합원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노동부가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라이더 사이에서는 최저임금이라고 하면 보통 시급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게 걸림돌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시간당 1만 300원 받자고 데모하는 거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도급제 최저임금에는 건당 최저임금이 있다는 설명도 열심히 했다. 이러면 최저임금이 배달 단가에 최저선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된다. 최저보수제(계약형태와 무관하게 노무제공자에게 최소보수를 보장하는 제도. 도급제 최저임금보다 넓은 범위의 개념이다)까지도 이야기를 확장하려 했다.
프레시안 : 그 과정에서 얻은 성과는 무엇인가?
구교현 : 도급제 최저임금 논의가 그래도 많이 진척됐다. 관심도 많이 생겼다. 최저보수제가 국정과제에 올라가 있지만 실태조사나 연구가 안 돼 있었는데, 여기에도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다. 노동계 전체가 이 문제를 중심의제로 삼게 되는 변화도 생겼다. 결국 노동부도 최저보수제와 관련해 계획을 제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여민희 : 조합원들의 의식 변화가 가장 크다. 지금은 누구나 다 수업 외 시간의 노동을 공짜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전만 해도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회사에 가스라이팅당해왔던 거다. 학습지노동자뿐 아니라 많은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마찬가지다. 그럼 이건 정부가 나서서 책임지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창배 : 대리운전기사들 사이에서도 최저임금이 실현 가능하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다. 조합원 중에 하루 10시간 일하고 12만 원을 받는 분이 있다. 회사에 수수료로 20%를 떼인다. 그러면 최저임금이 안 된다. 최근에 그 분이 회사에 항의전화를 했다. '정부도 최저임금 적용한다는데 회사는 뭐하는 거냐'고 이야기했다.
대리운전노조는 지역 교섭을 하고 있는데, 여기도 분위기가 변했다. 전에는 최저임금 이상은 줘야 한다고 요구하면, 사측이 시장 상황을 이야기하며 버텼다. 관련 논의에 불이 붙으면서 사측이 그렇게 할 명분이 없어졌다.
"노동부, 연구용역 결과 내고도 '뒷짐'만"
프레시안 : 반대로 벽을 느꼈거나 아쉬운 점이 있나?
이창배 : 여전히 너희가 노동자냐면서 최임위 공익위원들이 도급제 최저임금을 부결시켰을 때 벽을 느꼈다. 사측의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을 주면 요금이 3배 정도 올라갈 거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꺼냈다.
여민희 : 노동부가 6개 직군의 도급제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 적용이 가능하다는 연구용역 결과를 내고도 사용자들의 반발 때문에 못 쓴다고 했을 때다. 정부가 연구용역을 냈으면, 과감하게 그 결과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부족하면 대안을 내는 방식으로 논의를 주도했어야 한다.법원이 노동 문제와 관련 실질을 봐야 한다고 판결을 내린지가 꽤 됐는데, 여전히 형식적 계약관계만 놓고 도급제 최저임금을 부결시킨 걸 보면서도 화가 났다.
구교현 : 노동부가 최임위 심의 과정에서 충실하게 자기 역할을 다 하지 않았다고 본다. 노동부 연구용역도 실제 심의자료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지는 의문이다. 최저임금 심의의 근거자료로 쓰려면, 업종별로 어떤 기준으로 도급제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있는지를 담아내는 수준의 보고서가 나와야했다.
전반적으로 노동부가 일을 제대로 안 한 것 같다. 하려는 듯 제스처만 취하고 정작 책임은 미루는 태도를 또 보였다. 그러니까 3번 만에 도급제 최저임금 심의가 졸속으로 종료됐다. 이후로도 노동부가 민망해할 상황이 펼쳐졌다. 심의 종료 바로 다음날 국제노동기구가(ILO)가 플랫폼노동 협약을 발표했다. 얼마 안 지나 법원이 라이더는 노동자라고 판결해 확정됐다.
프레시안 : 사측이 꺼낸 반대 논리 중에 더 반박하고 싶은 것 있나?
이창배 : 물가 인상을 이야기한다. 사실 업체들이 불필요한 경쟁을 벌이면서 쓰는 비용이 있는데, 그런 걸 줄일 생각은 안 한다. 임금이 오르면 요금에 전가할 생각만 한다. 그러면서 요금이 3배는 비싸질 거라는 식의 이야기를 막 던진다.
여민희 : 노동자성에 대해 더 말하고 싶다. 최근에 최저임금 심의 이의제기를 하면서 3일 동안 학습지 노동자들에게 '관리감독을 받냐'고 묻는 조사를 했다. 3일 만에 220명이 답했다. 이 정도 반응은 처음이었다. 2명 빼고는 다 관리감독을 받는다고 했다. 일하는 사람들은 관리감독 받는다는 사실을 다 안다. 회사만 아니라고 한다.
프레시안 : 구 지부장이 말한 것처럼 라이더가 근기법상 노동자라는 판결이 나왔다. 학습지 교사나 대리운전기사도 사건만 있으면 승소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이창배 : 충분히 가능하다 전에는 전속성 기준이 걸림돌이었다. '우리 회사에서만 일하냐? 왜 우리가 퇴직금 줘야 돼?' 이런 식이었다. 부당해고 기간 임금 보전에 대해서도 '다른 회사에서 일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판결에 나온 라이더는 한 회사 배달을 주로 하면서 다른 회사 배달은 부수적으로 했다. 대리기사도 대부분 비슷하게 일한다.
여민희 : 전속성만 보면, 학습지 노동자는 더 하다. 재능교육을 다니면서 대교 일을 같이 할 수 없다. 일할 구역도 회사가 정한다. 회사가 구역을 정해주면 다른 구역에서는 일 못한다. 그런데 왜 노동자가 아니라는지 모르겠다.
"업종별 초기업 교섭 있어야 쟁점 정리 가능…최임위 구조 바꿀 필요도"
프레시안 : 내년도 도급제 최저임금 적용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할 계획인가?
구교현 : 8월 도급제 최저임금을 시행한 호주의 노동계와 국제교류 행사를 할 예정이다. 라이더 안전과 보수 간 연관성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사업도 진행 중이고, 노동부에도 최저보수제 연구사업을 요구 중이다.
노동부에 또 하나 요구하고 싶은 게 있다. 노사 간 협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부터 노사가 대화를 시작해야 최저임금 관련 쟁점을 미리 정리하고, 실질적 논의에 필요한 게 뭔지 확인할 수 있다. 하반기에는 배달업계 초기업 교섭 자리가 마련하려 노력 중이다.
이창배 : 대리운전업계에도 초기업 교섭이 필요하다. 카카오모빌리티, 티맵 등 5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가진 시장의 강자들이 있고, 소규모 업체들이 하청화되는 경향도 있다. 고용관계에 있지 않은 노동자에게 적용할 최저보수제 도입을 위한 공동행동도 준비 중이다.
여민희 : 최저임금 적용을 위해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려 한다. 정부가 논의하자고 할 때 제시할 구체적인 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습지 노동자들은 시간제 최저임금을 많이 원한다.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려 한다.
프레시안 : 노동부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구교현 : 노동부가 더 넓은 범주에 적용할 최저보수제에 대한 계획을 빨리 제출해야 한다. 그래야 내년도 도급제 최저임금 심의를 그나마 의미 있게 할 수 있다.
최임위 구조도 바꿀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도급제 노동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노사위원 공히 전통적인 근기법상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심의해 온 사람들이고, 도급제 형태에 대해서는 다뤄본 적이 없다. 새로운 협의체를 만들든, 인적 구성을 바꾸든 도급제 노동을 잘 아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심의하게 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여민희 : 계약 형태만 갖고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보면 안 된다는 게 핵심이다. 실질을 봐야 한다. 실질을 보려면, 정부가 해당 직군의 노동자를 최대한 많이 만나봐야 한다. 이들의 현실이 어떻고 요구가 뭔지 경청해야 한다.
"도급제 최저임금은 우리 모두의 안전, 노동조건과 직결된 문제"
프레시안 : 도급제 최저임금이 적용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여민희 : 학습지 업계에선 영업 목표를 강제하고,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준다. 이때문에 변칙 영업이 많다. 유령회원 회비를 대납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200여만 원 받으면서 50여만 원을 유령회원 회비로 토해내는 경우도 있다. 도급제 최저임금이 도입돼 어느 정도 임금이 보장되면, 이런 일이 사라질 거고, 학습지 노동자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
또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들이 4대 보험 중에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을 적용받는데, 실업급여나 휴업급여를 책정할 때 근기법상 근로자보다 기준 임금이 낮다. 최저임금이 생기면, 이런 차별도 해소할 수 있다.
이창배 : 대리기사들도 실적을 채워 더 좋은 콜을 우선 배정받기 위해 허위 콜을 발생시키는 경우가 있다. 최저보수제가 도입돼 모든 콜에 적정한 운임이 책정되면, 이렇게 무리하는 일은 사라질 거다.
안전 문제도 중요하다. 먼 거리의 콜을 잡은 뒤 급하게 돌아오려 킥보드를 타고 도로로 이동하던 대리기사가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최저임금이 생기면 이런 일도 줄어들 거라 본다. 대리기사의 휴식, 여가시간도 늘어날 거다.
구교현 : 비슷한 구조다. 라이더들도 저운임 상황에서 더 빨리 더 길게 일할 수밖에 없다 보니, 과속과 과로를 하게 된다. 적정한 보수를 보장하는 것이 결국 안전대책이다. 라이더 산재사고가 워낙 많다. 올해도 산재 발생건수 1위 기업은 배달의민족과 쿠팡일 거다. 보수 문제를 바로 잡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프레시안 : 끝으로 도급제 최저임금 논의를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달라.
이창배 : 재계는 도급제 최저임금을 도입하면 요금이 폭등한다며 물가 인상 이슈를 들고 나온다. 사실이 아니다. 사측이 노력하면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한편으로는 요금 현실화도 필요하다. 택시요금도 오르고 자장면 값도 오르는데, 대리운전요금은 10년 전에 만 원 하던 게 지금도 만 원이다. 대리기사의 삶과 생계,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따로 취하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희생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 운전은 사람의 생명, 안전과 직결된 일이다. 저임금에 시달리며 장시간 일하는 기사가 졸음운전이나 과속을 하게 되면, 기사는 물론 승객의 안전도 위험해진다. 도급제 최저임금이 누군가의 생계와 삶은 물론 안전과도 연결된 일이라는 점을 떠올리며 많은 지지와 관심을 보내주시면 좋겠다.
구교현 : 시대가 바뀌면서 엔잡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소득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 자체가 좋은 일인가와는 별론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사는 것 같다. 그러면 어떤 일을 하든 최소한의 기본적인 보호장치가 있어야 모든 사람이 자기를 지킬 수 있다.
근기법상 근로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적정한 보수가 보장돼야 대한민국의 모든 시민이 적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일할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한다. 도급제 최저임금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다.
여민희 :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를 만나는지 한번쯤 떠올려주시면 좋겠다. 배달 노동자들이 가져다 준 식재료를 받고, 학습지 교사, 학원 강사, 보험 설계사를 만나기도 하고, 가전방문점검 노동자가 집에 오는 일도 있을 거다. 저녁에 술 한 잔 했다면 대리운전기사를 부를 거다. 또 많은 사람이 작가들이 그린 웹툰을 본다.
도급제 노동자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어디에나 있다. 이제 그 수가 870만이라고 한다. 앞으로는 더 많아질 거다. 그 노동자가 내 주변의 친척, 자녀, 아버지, 어머니 친구일 수 있다. 노동자들이 차별 받지 않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건 누구나 다 지향해야 할 일이다. 그런 일에 힘을 실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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