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새마을호 승무원 31명이 3일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5일 사실상 마지막으로 열릴 예정인 노조 측 주장으로 '집중교섭', 코레일(옛 한국철도공사) 측 주장으로 '집중대화'를 앞둔 승무원들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승무원들 "장기간 해고에 몸도 마음도 지쳤다"
단식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5월 KTX 승무업무 위탁업체 변경에 따른 기존의 승무원 280명의 계약해지에 항의하는 단식을 벌인 적이 있다. 새마을호 승무원들도 지난해 말 새마을호 승무업무의 외주화에 반발하며 서울역에서 단식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단식은 그동안 '할 짓 안 할 짓' 다해가며 싸웠던 승무원들의 '최후의 선택'처럼 보였다. 승무원들은 단식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장기간 해고에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쳤다"고 털어놨다. "1년이 훨씬 넘는 기간에 점점 잊혀져 가는 현실이 무섭다"고도 했다.
민세원 지부장도 "자해하는 투쟁은 싫어 개인적으로 반대했다"고 말을 뗀 뒤 "하지만 지금은 집단적인 우리의 의지를 보여줘야 할 시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민 지부장은 "체력이 되는 데까지가 아니라 정신력이 되는 데까지 목숨 걸고 해보려고 한다"며 "우리의 단식으로 지금 이 고비를 넘겨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현재 모든 역사 안에는 이들에 대한 출입금지가처분 신청이 내려진 상태여서 단식하는 장소도 서울역 광장이다. 31명의 승무원들과 박성수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 후 이곳에 천막을 치고 단식을 시작했다.
코레일 "공사 직접고용으로는 승무업무 자체가 없다"
'몸도 마음도 지쳤다'는 승무원들이 스스로 곡기를 끊는 단식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이번이 아니면 문제 해결이 요원해질 것 같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승무원들도 "이 단식이 언제까지 갈지, 철도공사 경영진의 마음을 움직일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철도노사는 중앙노사협의회와 별도로 승무원들의 문제만 놓고 집중적인 대화를 벌이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 "KTX·새마을호 이젠 해결하자", 코레일 "KTX 승무원 고용보장 해법, 지켜봐달라") 오는 6일 마지막 중앙노사협의회에 앞서 5일에 다시 한 번 노사가 머리를 맞대기로 예정돼 있다.
하지만 1년을 넘게 끌어 온 승무원 문제의 해결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노조는 승무직으로 복귀를 요구하는 반면, 코레일이 승무업무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 지부장은 "회사에서 매표 계약직으로 들어오라는 얘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고 코레일 관계자는 "현재 우리 공사에는 승무직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KTX와 새마을호 승무원들은 모두 외주위탁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승무직으로의 복귀는 어렵다는 입장인 셈이다.
전직 KTX 승무원 오미선 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코레일의 태도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이철 사장이 우리 문제에 대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원칙'이다. 일터에서 쫒겨난 사람들의 복직을 얘기할 때, 원래 하던 승무직으로 돌아가는 것이 원칙인가? 아니면 기존의 하던 업무와 다른 업무로 복귀하는 것이 원칙인가?"
이처럼 노사 양측의 입장이 달라 노사 간의 집중 대화에서도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승무원들은 9일 3000인 동조단식을 준비하고 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마지막 대화도 사실상 결렬될 경우 오는 12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이철 사장 퇴진'을 하반기 투쟁 안건으로 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는 13일이면 파업 500일을 맞는 KTX 승무원 문제는 이번주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철도 해고자, '원직복직' 요구 40일 동안 도보순회
한편 지난 2003년 철도노조의 총파업의 후폭풍으로 해고된 철도노동자 60명도 2일부터 부산과 목포를 시작으로 40일의 도보순회를 시작했다. 경부선과 호남선의 두 갈래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번 도보순회는 노무현 정권의 출범과 함께 만들어진 철도 해고자들의 복직을 정권 내에 이뤄야 한다는 위기감에서 시작됐다.
김갑수 철도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 대표는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으며 등장한 노무현 정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2003년 철도 총파업 이후의 8000명이 넘는 징계와 79명의 해고라는 노동자 탄압이었다"며 "당시 대량 징계와 해고의 주역이 정부였던 만큼 현 정부가 임기 내에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해고된 79명 가운데 일부는 현장으로 돌아갔고 현재 47명의 해고자가 남아 있다. 김갑수 대표는 "4년의 세월 동안 유치원생이던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30대이던 사람들이 어느덧 40대로 접어들었다"며 "이제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는 "지난해 총파업 이후 노사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이철 사장이 해고자 복직과 관련한 구체적인 약속을 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철도노사 중앙노사협의회에서는 이들의 복직과 관련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오는 8월 9일까지 40여일 동안 각각 부산과 목포를 출발해 10일 대전에서 만난 뒤 서울까지 올라온다. 10일에는 대정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1000여 명의 조합원이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다.
"그딴 일로 해고하는 회사가 어딨어?" 철도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는 2003년 철도파업 4주년을 맞아 지난 6월 28일 아직까지 해고자로 남아 있는 사람들의 수기를 모아 <47 그들이 온다>(갈무리 펴냄)를 출판했다. 이 수기들을 통해 해고자로 살았던 지난 세월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다음은 그 중 일부를 모아본 것이다. 2년 전 초등학생인 딸이 아빠 직업란에 뭐라고 쓰냐고 물어 철도해고자라고 쓰라고 했더니 싫단다. 나중에 딸에게 왜 철도해고자로 쓰면 싫으냐고 물었더니 그냥 싫단다. 그리고 왜 해고되었냐고 딸이 물어 파업해서 그랬다고 했더니 그딴 걸로 해고하는 회사가 어디 있냐는 딸다운 대답에 나는 '그러게 말이다' 했다. - 남기명 대전기관차승무지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가족의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집사람에겐 구호기금이 지급되는 매달 25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조합비가 가압류되거나 어쩌다 25일을 넘기는 날에는 눈앞이 깜깜해 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의 해고가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끼곤 한다. 그리고 집사람과 가족에게 무척이나 미안할 따름이다. - 배영대 제천차량지부 나 또한 마음은 하루속히 복직해 현장으로 돌아가 함께 투쟁하며 정든 조합원들을 만나고 싶다. 이미 기울대로 기울은 지역철도 그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굽은 철도를 펴, 더욱 빠르고 신속하게 고객의 곁으로 돌아가는 기관차를 운전하고 싶다. 철도가 시민의 사랑을 받으며 국가의 균형발전과 지역경제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고향역을 찾는 서민들의 훈훈한 정까지도 실어 나르는 기관사로 돌아가고 싶다. - 송병경 영주기관차승무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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