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에서 부산으로 달리던 고속열차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상황은 부산지역 일간지에 상세히 보도됐다.
"13일 오후 3시 서울역을 출발한 부산행 149호 KTX 열차가 오후 5시5분께 경북 청도역을 지나던 중 7호와 8호 객차 사이의 길이 80㎝가량의 철제 충격흡수장치가 풀리는 결함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완충장치가 바닥으로 쏠려 레일 바닥에 깔린 자갈과 부딪히면서 튀어 오른 자갈에 객차 유리창 일부에 금이 가고 마찰열로 발생한 연기가 8호 객차 내로 유입됐다. 이에 놀란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는 등 열차 안은 일순 아수라장이 됐고, 열차는 승객들이 황급히 기관실로 연락하자 뒤늦게 속도를 낮춰 10분 가량을 달린 뒤 밀양시 상동역에 비상 정차했다. 이 과정에서 객차 내에 비치된 비상망치로 객차 유리창을 깨고 비상탈출을 시도하던 승객 1명이 손등에 찰과상을 입었으며, 철로에서 10여m 떨어져 있던 도로 주변의 주민이 튀어나온 자갈에 맞아 타박상을 입었고 일부 차량 유리가 파손되기도 했다.(부산일보, 6월 14일자)
이 사고에 대해 코레일(옛 철도공사) 관계자는 '승객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아니다' '해당구간은 동대구와 부산 사이의 기존선 구간으로 최고 운행속도가 300km/h가 아닌 140km/h로 열차 안전운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코레일 관계자의 말처럼 사고 구간이 고속운행 구간이 아니어서 다행이었고, 승객들이나 인근 주민들이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만약 열차 운행속도가 300km/h인 구간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승객의 비상연락이 더 늦었더라면, 운행중단 조치가 더 지연되었더라면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사소한 우발 사고인가? 대형참사의 경고인가?
이번 사고의 원인은 충격완화장치(댐퍼)의 나사가 풀려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고속열차 사고가 일회적 우발사고에 그칠지 앞으로 일어날 대형참사의 경고가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건설교통부 철도기획관실에 따르면 지난해 열차 이용객은 28억 26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규모 운송수단에 대해 철저한 사고예방과 안전의식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불평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번 일이 사소한 우발사고에 그치기를 바라지만 대형사고의 경고로 인식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여러 모로 최첨단을 자랑하는 고속열차라고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후 승객의 비상연락을 받고 급정차까지의 10여 분 동안 어떠한 위험감지나 경고도 없었다.
둘째, 객차 안이 아수라장이 되고 승객들이 비상탈출을 시도하고, 이 과정에 승객과 인근 주민이 상해를 입는 등의 안전사고가 있었지만 코레일 관계자는 이런 일을 열차 안전사고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셋째,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이 사고에서 승무원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으며,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승무업무를 외주화한 이후로 열차에 팀장 1명만이 승객의 안전을 맡기고 있을 뿐 외주위탁 된 승무원들은 오로지 편의 서비스만 제공하도록 되어 있고, 비상대비 교육이나 훈련이 미흡해 사소한 우발 사고조차 대형참사가 될 수 있는 위험이 잠재돼 있다.
승객안전을 위해 KTX 승무원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교수들
지난 해 9월 'KTX 승무원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교수모임(이하 교수모임)'이 발족한 이후, 교수모임은 KTX 문제가 단순히 '비정규직 문제'를 넘어서 철도 안전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과 승객 안전을 위해 승무원을 직접고용 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 12월 7일, 교수모임은 국정감사 자료를 토대로 고속열차의 안전문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교수모임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KTX 지연운행이 증가하고 있고, 이로 인해 중간 환승역에서의 다른 열차로의 환승이 원활하게 이루어 지지 않아 승객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2006년 들어 지연 운행, 특히 60분 이상의 지연 운행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은 열차 운행에 있어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빈번한 열차지연운행 현상이 단순히 운행시간 조정이나 관제미숙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KTX 열차의 주요기계장치의 결함 및 시스템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기계장치 중의 하나가 트라이포드인데, 트라이포드는 동력을 KTX의 차축으로 전달하는 장치로 KTX 열차 운행의 핵심부품이라고 한다. 코레일은 2006년 11월 27일 당시 운행되고 있는 총 46편성의 KTX 중 절반이 넘는 26편성의 KTX에서 1개의 트라이포드를 차단하고 나머지 5개의 트라이포드만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KTX는 대차불안정감지센서 시스템의 부적정 문제, 제동명령 스토퍼(Stopper) 설계기준 변경의 문제 등 열차 안전운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 문제 등을 안고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코레일 스스로도 이런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고 있고, 단지 절손된 트라이포드만을 교체하면서 운행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경우 대형사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KTX 이용고객의 안전이 우려된다고 교수모임 측은 지적했다.
교수모임은 이번 열차사고가 발생하고 며칠 뒤인 지난 17일 열차사고가 발생했을 때 승무원이 신속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직접고용을 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총 길이가 388m인 18량 열차를 아무 방해 없이 빨리 걸어도 7-8분이 걸린다고 한다. 코레일이 KTX를 운영하기 전인 2003년에 마련한 승무인력 운영 계획안을 보면 새마을호에 비해 고속열차의 편성량 수가 2.5배, 좌석수가 2.6배, 업무량 2.5배로 증가하므로 새마을호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승무인력이 최소 4-5명 정도가 필요하다고 추산해놓았지만 현재 이 인력도 2-3명 수준으로 줄여 놓았다.
코레일이 어느 누구에게 도움을 주거나 받을 필요가 없는 젊고 건장한 사람만 고객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현재의 승무인력으로 승객의 안전을 보장하기에 부족하다. 더욱이 장애인, 노인, 어린이, 환자, 임산부와 같은 신체적 약자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열차를 타는 사람들은 승무원들이 제공하는 일상적 도움과 비상시의 조치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코레일이 제공하는 일상적 편의나 안전 서비스, 위기상황의 비상조치로는 어떤 승객의 안전도 적절히 보장되기 힘들다. 앞으로 코레일은 외주화된 승무원들에게 판매업무까지 겸하게 한다는 경영방침을 세우고 있어 승객의 안전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게 될 것 같다.
KTX 여승무원 85명, 파업 497일째
KTX 여승무원들이 외주화 철회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497일째다. 이번 열차사고 소식을 접한 여승무원들은 교수모임 기자회견장에서 '사고 당시 저희들이 KTX 열차 안에 있었다면 승객이 유리창을 깨기 전에 유니폼이나 좌석 시트로 승객들의 몸을 감쌌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매일노동뉴스, 6월 19일). 사고 당시의 상황이 유리창을 깨고 나갈 만큼 위급하지 않았지만 만약 승강문을 비상 개방해야 하거나 내림발판을 대신하여 비상사다리를 설치해야 할 상황이었다면 이러한 일도 승객들이 직접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승무원들은 자신들이 일할 때는 승무원이 열차팀장이나 기장에게 사고 사실을 알릴 수 있었고, 이것도 여의치 않으면 열차를 통제하는 사령에게 직접 연락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외주화 된 승무원은 이런 안전조치 권한마저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고 열차에 탑승한 승객은 물론이고 승무원도 우왕좌왕했을 것이고, 열차 팀장 혼자서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승무업무 외주화로 큰 이익을 보았다는 얘기는 없는데 여승무원 파업 해결은 너무 멀고 힘들어 보인다.
나는 KTX 여승무원만 보면 가슴이 아린다
작년 봄, 서울역에서 농성하던 여승무원들이 보이지 않아 그 문제가 해결됐는 줄 알았다가 우연히 토론회에서 민세원 지부장으로부터 여승무원들이 서울역에서 용산역으로 옮겨 파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토론회가 끝나고 나는 부산행 KTX를 타기 위해, 민 지부장은 파업 현장으로 가기 위해, 서울역까지 택시를 함께 타게 되었다. 택시 안에서 그는 '지금도 승무했던 열차만 보면 가슴이 아린다'고 했다. 나는 그 순간 그 사람이 파업하는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그냥 알 것 같았다.
몇 주일 뒤 'KTX 여승무원 직접고용, 필요한가'라는 토론회 자료를 읽게 됐다. '제대로 교육받고 제대로 일해보고 싶어서' 외주철회와 직접고용 파업에 참여하게 됐다는 여승무원들의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와 일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담은 인터뷰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아! 택시에서 그냥 알 것만 같았던 바로 그런 이유였구나. 제대로 살고 싶다는, 너무 당연하여 이유라고 내세우기도 쑥스러운 그런 이유로 지금도 파업 중인 '그 사람은' 열차만 보면 가슴이 아린다고 했는데 나는 철도공사 여승무원만 보면 가슴이 아리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1 전의 일이다.
승객에게는 보다 안전한 서비스를, 승무원에게는 보다 안전한 고용을 보장하는 직접고용이 이뤄진 후, 우연히 승무원과 승객으로 만나게 되면 그 사람에게 더 이상 가슴이 아리지 않느냐고 물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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