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철 사장은 작년에 엄마들과의 면담에서 '내 맘대로 할 수는 없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하라고 하면 하겠다'고 했었거든요. 제가 비록 나이는 많이 먹었어도 귀는 안 먹었습니다. 분명히 들었는데, 장관은 검토하겠다는데 왜 이철 사장이 못하겠다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KTX 승무원들의 어머니들이 24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딸들의 투쟁을 바라보는 심경을 털어놨다.
"이상수 장관보다 이철 사장이 더 높았군요!"
한국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330일이 넘도록 파업을 벌이고 있는 딸들을 바라보는 어머니들의 심정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우리 딸이 그 어렵다던 KTX 승무원이 됐다"며 주변에 자랑도 많이 했었던 어머니들이었다. 그랬던 어머니들에게 딸들이 파업을 한다는 소식은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파업가나 투쟁구호와는 거리가 멀었던 딸들이 1년 가까운 파업 기간 동안 참 많이 변했다. 꼭 그만큼 엄마들도 변했다. 이런 일로 기자회견에 나오게 되리라고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들은 말문이 터지자 그간의 억울함과 가슴 아픔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오늘 기자회견에 오는 길에 서울역에서 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에서 전에 내 딸이 입고 다니던 정복을 입은 KTX 승무원을 봤다. 예쁘게 화장하고 머리를 단정하게 올린 그 승무원을 보니 왜 우리 딸들은 예쁜 정복이 아니라 까만 점퍼를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길 위에 있어야 하는지 억장이 또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항공사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어 했던 딸이 KTX 승무원이 됐다고 했을 때 '하늘보다는 지상이 낫겠지' 싶어서 더 기뻤다. 딸이 지금은 그렇게 바라던 KTX열차가 아닌 파업현장에 서 있다는 것이 기가 막힌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딸은 파업을 그만뒀지만 자신은 떠날 수 없어 함께 한다"는 어머니도 있었다.
"딸은 여러 문제 때문에 파업을 그만뒀지만 승무원들의 싸움에 반대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딸은 어쩔 수 없이 떠나긴 했지만 다 내 딸 같은 승무원들이 꼭 잘 돼야 한다는 마음에 나는 떠날 수가 없었다."
"딸은 파업 그만뒀지만 나는 떠날 수가 없었다"
마산, 속초, 대구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10명의 어머니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기자회견장 곳곳에서는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들은 자기 순서에서 목이 메어 몇 번씩 말을 중단했고, 옆에 앉은 다른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도 울었다. 이를 지켜보던 승무원들도 곳곳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들은 "주변에서 '승무원들이 다 알면서 들어가 떼를 쓰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때 가장 억울하다"고 했다. "입사 전에는 항공사 승무원보다 결코 못하지 않은 대우를 해준다고 약속했던 철도공사 아니었냐"는 것이었다.
어머니들은 이날 공동명의로 이철 사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어머니들은 "우리 딸들은 (오랜 파업으로 인해) 그 나이게 의료보험도 안 되고 카드도 안 되는 신용불량자 같은 상황"이라며 "무국적자처럼 생활하는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찬바닥에서 병들어가지 않도록 하루 속히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은 또 "사장님은 우리와 면담에서 '그 날로 즉시 해결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냐"며 "설혹 우리 딸들이 그만둔다 해도 우리 엄마들은 사장님이 약속을 지킬 때까지 끝까지 갈 것이니 약속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온 이도경 조합원의 아버지 이원덕 씨도 "물론 정부와 철도공사의 경영방침이 있겠지만 이철 사장과 정부 고위직에 계신 분들이 따님이 포함돼 있다면 어떻게 하겠냐"며 철도공사와 정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한 KTX 승무원은 "엄마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오늘 오시라는 말씀도 못 드렸다"며 "하지만 언젠가 다시 승무원으로 일해 지금의 죄송한 마음을 갚을 날이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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