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05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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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문학의 현장] 심전도
심전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그가 칼을 품고 살았으리라고는,말이 없었고눈망울엔 늘 푸른 것들이 일렁거렸다맨발이기를 즐겼고몸의 틈마다 흙을 채워 넣으며먼 산의 석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그의 일과였기 때문에 설마설마 했었다소 같은 사람, 그의 주변에 늘 붐비던 말이었다그는 지금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 있다그가 평생 되새김질하듯 갈아온 칼만심전계 액정에서 불
박찬세 시인
2017.12.05 17:30:31
지하 이층에 사는 거미는 사람을 낳았다
[문학의 현장] 거미 인간
거미 인간 지하 이층에 사는 거미는 사람을 낳았다 자신의 영역이 확장될수록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여기는 오류가 태어나지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거미집을 짓는 일이어서그것은 일억 사천 년 동안 권태 없는 직업이어서기척 없는 집 모서리마다 줄을 풀어놓는다거미의 자식은 태어나도 우는 법이 없어우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거미는오늘도 하던 일을 계속할 뿐 사방에 뻗어
홍순영 시인
2017.11.29 17:21:41
나는 죽음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의 현장] 연명치료 중단을 告함
연명치료 중단을 告함나는 죽음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다목숨을 담보로삶의 고통을 덜어내고자 함도 아니다그저 마지막 길을 당당하게 걷고자 함이다이제 모니터로는 남은 생을 기록할 수 없으니내 몸에 부착된 고통의 계기판을 제거하고가장 편안한 단추의 상복을 부탁한다덩굴식물처럼 팔을 친친 감고 있는 링거줄산소처럼 고요한 인공호흡기울음 섞인 미음을 받아 삼키던 레빈튜브충
김연종 시인
2017.11.22 10:53:19
문이 열리고 새 날이 왔다
[문학의 현장] 父 기도문 -다시 청와대에서
父 기도문-다시 청와대에서 하늘에 계신 나의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여전히 저로 인해 거룩히 빛나시며아버지의 나라가 다시 오시며아버지의 뜻이 그 때와 같이이 땅에서, 지금도, 이루어지소서 오늘저에게 일용할 권력을 주시고권력에게 대드는 저들을제가 용서하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아버지의 죄를 제게 주시는아·버·지 제가 행여 유혹에 빠지지 않고철권을 끝까지 휘두르
장우원 시인
2017.11.15 13:22:02
생명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
[문학의 현장] 까치
까치 나는 어려서 까치를 좋아하기도 했고 뭣도 모르고 돌멩이를 던져 용케 맞히기도 했다 집 앞 길옆에 굳은 손바닥 같은 배과수원이 있다 덜 풀린 노을을 두 팔로 휘저으며 까치를 쫓아내고 있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서글프다 그의 큰아들은 오십이 넘었는데 젊을 때에 교통사고로 식물이 되었고 아주머니는 중풍을 앓고 있다 둘째 아들이 얼마 전에 약을 사러 무면허 운전
김명철 시인
2017.11.10 09:20:26
이미 국가는 도굴되었었다
[문학의 현장] 세월호 참사 3주기에 부쳐
이미 국가는 도굴되었었다세월호 참사 3주기에 부쳐 - 悲戀이다. 세상은 온통 안녕하건만 원고지 칸을 메워야 전할 수 있는 안부內色이다. 또 묻지 않을 수 없는 誤讀한 것들의 허구 이천십이년십이월십구일 국가는 순장되었고이천십삼년이월이십오일 국가는 도굴되었고이천십사년사월십육일 국가는 없었다 도굴된 국가는 꽃들의 부름에 단 하나의 파편도 보이지 않는 무채색이었다
박희호 시인
2017.11.01 10:48:42
지돌이 할머니를 생각하며
[문학의 현장] 깊은 회한과 한없는 죄책감
할머니는 아무런 말없이 웃기만 하셨다.푹 눌러 쓴 검정 털모자 속에서할머니의 어두운 과거사가 삐죽이 새어 나오고 있다그 언저리에 2월의 늦은 눈발이 설설 내리고동구밖 어귀엔 혹시나 동생이 들어서지 않을까내내 귀 쫑긋 올리며 눈시울을 적신다그보다 더 낭랑 십팔세 꽃다운 나이에 순정을 바친우리 서방님 이제나 저제나 오시려나늘상 그리움에 주름진 얼굴 감추던 할머
문창길 시인
2017.10.25 10:17:16
'문자 해고'라는 신개념 칼날
[문학의 현장] 바람의 성지
바람의 성지 얼기설기 엮은 비닐천막 사이로 쾌활한한숨이 안개처럼 삐져나오는 것이 보인다.그만 지치고 싶을 때그만 주저앉자고 무겁게 매어달리는탄식을 애써 털어내는 웃음들.6월 14일, 해고농성 146일째거리의 쪽잠 위에몇 배수의 무게로 얹혀지는 막막한 생계겨울을 등에 업은 바람은,여름 골목을 떠나지 못한 채후미진 농성장 인도 위를 점령하였다.차마 떠나지 못하
김림 시인
2017.10.18 09:54:18
불씨여! 박환성·김광일 독립PD여!
[문학의 현장] 불씨는 영원한 거야
불씨는 영원한 거야 살아나지 못하도록물을 부어 끈물젖은 잿더미 속에서도다시 새롭게 살아나는 거야살아나 번져가는 거야 불씨여! 박환성·김광일 독립PD여! 세상은,근로계약서 하나 쓰지 못한 채열악한 작업환경 온몸으로 때운말도 안 되는 비용으로 만든피땀 어린 그대들의 작품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다며즐기고 감상해 온세상은, 그대들이 남아공에서교육방송 '다큐 프라임-
정세훈 시인
2017.10.11 15:08:29
유일한 노랑나비만 피어올랐다
[문학의 현장] 초량, 소녀 앞에 서다
초량, 소녀 앞에 서다 밀봉된 역사가 천 번의 외침으로물의 날, 단발머리 소녀로환생하였다 맨발의 울음을 삼키고 별이 된하얀 적삼들은 갈 곳을 몰라늘 뒤꿈치를 들었다 숨소리조차 유배되는 이 땅의조직적인 난청에, 항상그림자는 낡고 야위었다 유일한 노랑나비만이생을 건너 뛸 날갯짓으로곧잘 피어올랐다 현해탄이 몰고 오는 비릿한 바람은소스라칠 듯 이곳
김요아킴 시인
2017.10.06 10:2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