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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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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의 현장] 연명치료 중단을 告함

연명치료 중단을 告함
나는 죽음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담보로
삶의 고통을 덜어내고자 함도 아니다
그저 마지막 길을 당당하게 걷고자 함이다
이제 모니터로는 남은 생을 기록할 수 없으니
내 몸에 부착된 고통의 계기판을 제거하고
가장 편안한 단추의 상복을 부탁한다
덩굴식물처럼 팔을 친친 감고 있는 링거줄
산소처럼 고요한 인공호흡기
울음 섞인 미음을 받아 삼키던 레빈튜브
충전이 바닥 난 심장을 감시하느라
한시도 모눈종이의 눈금을 벗어나지 못한
심전도 모니터링을 모두 제거해 주기 바란다
일체의 심폐소생술 또한 거부한다
사유의 파동이 사라진 육신의 신호음은
한낱 기계적 박동일 뿐이니
에피네피린과 도파민의 사용을 원치 않는다
기계의 호흡과 심박동은 이미 어긋났으니
심장마사지는 사양한다
썩은 육신을 인수해 갈 가족과
상한 영혼을 거두어 갈 神과 조우의 시간,
내 죄 값을 흥정하는 비굴한 모습을 원치 않으니
침대 주변을 말끔히 정리해 주기 부탁한다
이제 종언을 告하노니,
여태껏 밀린 치료비와 남은 죄값은
저당 잡힌 내 생의 이력서에 함께 청구해주기 바란다
<시작 노트>

존엄사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소위 웰다잉법으로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곧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웰다잉법이란 '더 이상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해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중지한다'는 네 가지 내용을 골자로 한다.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최소한의 물과 영양분, 산소의 단순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이 때도 사전의료 의향서가 반드시 필요한데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체는 우주와도 같은 신비한 존재이기에 과학의 힘에만 의존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눈부신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진단과 치료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모르는 병이 많고 치료에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명징한 과학에 의존할수록 인체의 모호함은 더욱 더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존엄사란 표현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란 표현으로 대체되고 있다. 연명치료를 지속한다는 것은 삶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연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은 환자뿐 아니라 그 가족한테까지도 고통을 전가할 수 있다. 삶과 죽음 환희와 절망이 교차하는 의료 현장은 시의 현장과 무척 닮아 있다. 그것은 체험 삶의 현장이고 극한 작업의 현장이고 고통과 죽음이 맞닿는 현장이기도 하다. 은유의 그늘에 가려 빛을 발할 순 없지만 어둠 속에서 늘 구호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황량한 벌판에서 외치는 그 현장의 목소리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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