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성지
얼기설기 엮은 비닐천막 사이로 쾌활한
한숨이 안개처럼 삐져나오는 것이 보인다.
그만 지치고 싶을 때
그만 주저앉자고 무겁게 매어달리는
탄식을 애써 털어내는 웃음들.
6월 14일, 해고농성 146일째
거리의 쪽잠 위에
몇 배수의 무게로 얹혀지는 막막한 생계
겨울을 등에 업은 바람은,
여름 골목을 떠나지 못한 채
후미진 농성장 인도 위를 점령하였다.
차마 떠나지 못하는 서슬 퍼런 바람
쉴 새 없이 천막 안을 기웃거린다.
어쩌면 그 바람은 투쟁의 배후
물러설 수 없는 교두보
쓰러지려는 어깨를 다부지게 일으켜 세우는
그곳은 바람의 성지
철옹성 같은 자본의 이기를
쉼 없이 두드리는 노동의 아픈 가슴이다.
바람아 기어이 그 벽을 허물어라
문자 해고라는 신개념 칼날을
노동자의 목에 들이대는
무례한 21세기 자본의 민낯을 고발하라.
<시작노트>
인천 경인고속도로가 지나쳐 가는 한 켠, 8개월이 넘게 노숙투쟁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설 연휴를 3일 앞두고 조합원 62명 전원에게 해고문자를 보낸 인천 동광기연
3번째 방문,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봄날에도, 여름날에도 바람이 끊이지 않던 곳
인천 작전동 동광기연 사업장 앞 인도 한 귀퉁이에 허술하게 서 있는 비닐천막이 그 곳이다.
회사의 경영세습을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고의적 거짓파산을 꾀하고 노동자들에게 고통분담을 호소하며 불법 해고를 일삼은 동광기연에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5월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고, 인천지방법원은 5월 19일 근로자지위보전 가처분 결정에서 "해고는 무효이며 동광기연 관계사도 고용보장 합의서 상의 고용보장 의무를 부담한다"라고 판결했지만 여전히 사측은 어떠한 이행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뜨거운 여름을 지나 나무그늘이 서서히 가을로 기울어지는 이즈음 들려온 슬픈 소식
작년 여름 사측의 강요에 버티지 못하고 희망퇴직서에 서명한 후 일 년 넘게 이어진 실직상태에 좌절한 희망퇴직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가 전해진 것이다.
그는 '미안하다. 사망'이란 문자메시지를 가족에게 남기고 안타까운 죽음으로 떠나갔다.
문자로 해고된 이후 8개월째 동광기연 담장 옆에서 노숙투쟁을 하며 고용보장 촉구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해고노동자들에게 '희망'은 언제쯤 미소로 다가와 줄 것인지
이제라도 해결의 실마리는 마련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의 삶은 불안하게 연명되어져 온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에 이어지는 노동현장은 백척간두의 그것과 다름 아니게 느껴진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더욱 치열한 처지에 놓여질 것이다.
노동자는 기존 사업자들과의 지난한 줄다리기와는 또 다른 고민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 사람의 일이다.
사람이 우선되어야 하는 일, 사는 일이다.
먹고 사는 일 만큼 일할 자유와 일한 만큼의 대가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누군가의 지대한 이익 너머로 희생되어선 안 되는 최소한의 복지로서의 바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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