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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이층에 사는 거미는 사람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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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이층에 사는 거미는 사람을 낳았다

[문학의 현장] 거미 인간

거미 인간

지하 이층에 사는 거미는 사람을 낳았다

자신의 영역이 확장될수록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여기는 오류가 태어나지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거미집을 짓는 일이어서
그것은 일억 사천 년 동안 권태 없는 직업이어서
기척 없는 집 모서리마다 줄을 풀어놓는다
거미의 자식은 태어나도 우는 법이 없어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거미는
오늘도 하던 일을 계속할 뿐

사방에 뻗어있는 거미줄 걷어내며 안쪽으로 들어섰을 때 거기
거미가 낳았으나 기르지 못한 사람, 얼룩처럼 누워있었다
아홉 겹의 옷과 목장갑을 낀 채
오 년여를 숨어서 마침내 백골이 된 사람이
거미의 아기가 된 사람
거미가 키우려 했지만 포기한 사람이

<시작 메모>

독거노인들이 많이 거주하시는 아파트 인근 복지관에서는 요즘 글쓰기 교실이 열리고 있다.

그분들의 면면은 살아오신 여정만큼이나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건강에 대한 걱정과 외로움에 대한 토로,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 등이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일반적으로 굳게 닫혀있을 거라는 철문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그분들의 문은 몇 번만 두드리면 쉽게 열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번히 언론에 사회뉴스로 보도되는 고독사는 단지 노년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대를 아울러 사람들의 외로움이 한계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는 현실이지만, 노년층에게 그것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사회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이러한 독거(獨居)의 치명성과 달리 아이러니하게 젊은 층에서는 오히려 자발적인 외로움을 지향하는 추세가 더 두드러지고 있다. 외로움 앞에 ‘자발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이런저런 이유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개별적인 사유가 있을뿐더러 이러한 경향이 왠지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는 구별되는 다른 옷을 입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외로움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개인이 수용해야 하는 외로움의 간극은 얼마일까? 나날이 실감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고치를 만들어가는 것에 더 열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치는 온전한 자신만의 공간이다. 안전하고 편할 수도 있지만, 바깥과 단절된.

점점 더 두텁게 고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 곁에 또 다른 고치가 있다. 고치끼리 등을 맞대고 부대끼며 누워있기도 하지만 이쪽은 저쪽의 사정을 짐작하지 못한다.

막 생성되는 고치, 고치들의 범람이다. 한 바구니에 담긴 '외로움의 공동체' 위로 따사로운 가을볕이 내리쬐는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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