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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수술 장면, 여기 있습니다"
[의학사 산책·끝] 연재를 마치며
우리는 지난 7월 8일 첫 연재를 시작한 이래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 근대 의학사와 관련된 35개의 주제를 소개하였다. 우선 연재에 대해 보여주신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에 감사드린다. 이 연재는 서양 의학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개항 전후부터 식민지가 끝나는 1945
박형우 연세대 교수, 박윤재 연세대 교수
2009.11.13 11:11:00
'음란한' 조선, 여성을 덮치다
[의학사 산책] 성병, 여성의 병?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보들레르, 링컨, 플로베르, 모파상, 고흐, 니체. 이들의 공통점은? 유명한 인물? 다른 것이 있다면? 모두 매독 환자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성병은 그만큼 흔한 질병이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886년에 발행된 <제중원 1차년도 보고서>
2009.11.11 07:56:00
가장 낭만적인 하지만 치명적인 그것은…
[의학사 산책] 결핵, 공포의 전염병
1935년 결핵 환자들의 '파라다이스' 해주구세요양원을 찾은 잡지 <삼천리> 기자의 글이다. 결핵에 대한 일종의 질투마저 느껴진다. 전염병 중에서 결핵은 가장 낭만적인 병이었다. 환자들의 "얼굴은 백옥 같았고, 손은 여인의 손처럼 아름다웠으며 눈에는 광채
2009.11.06 10:33:00
'소록도 살인 사건'의 진실
[의학사 산책] 문둥이, 그 천형!
이 시에서 문둥이는 아이를 먹는다. 천형(天刑)과 같았던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다. 당시 사람들은 문둥병, 즉 한센병을 하나의 생명을 바쳐야 나을 수 있는 하늘의 형벌로 생각했다. 아이들이 한센병 환자를 호랑이만큼이나 무서워했던 이유가 거기 있었다. 자신의 심장
2009.11.04 08:32:00
그것은 힘이 셌다…강제로 바지를 벗길 정도로!
[의학사 산책] 콜레라, 살이 찢기는 고통!
"콜레라는 악귀에 의해서 발병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균이라 불리는 아주 작은 생물에 의해서 발병됩니다. 만약 당신이 콜레라를 원치 않는다면 균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지켜야 할 것은 음식은 반드시 끓이고, 끓인 음식은 다시 감염되기 전에 먹기만 하면 됩니다.
2009.10.30 08:37:00
예방주사를 싫어한 할아버지, 이유를 알고 보니…
[의학사 산책] 우두, 두창을 몰아내다!
제중원 원장 에비슨이 진찰실에서 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부인은 11명의 아이를 낳았다. 에비슨이 물었다. "그 중 몇 명이나 살아 있나요?" "유아기 때 모두 죽었습니다." "안됐군요. 어떻게 죽었나요?" "두창으로요." "뭐라고요! 그런 병으로 그 애들 모두
2009.10.28 09:24:00
식민지 때라면…신종플루, 경찰이 때려잡았다?
[의학사 산책] 서양 의학, 전염병에 맞서다!
전염병은 인류가 공동체를 형성한 이후 지금까지 함께 해온 가장 오래된 '적'이다. 두창(천연두)은 이제 인류의 곁을 떠났지만, 새로운 적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에이즈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인류는 그 적들을 물리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그 중심에
2009.10.23 07:06:00
그때 의사들이 모인 진짜 이유는?
[의학사 산책] 의사들의 단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면 단체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단체는 서로의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며 각자의 발전을 도모한다. 의사들의 경우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필요가 어느 분야보다 더 절실하여 이러한 단체의 필요성이 일찍부터 제기
2009.10.21 10:19:00
외국 잡지에 논문 발표…최근 일이 아니네!
[의학사 산책] 의사들의 학술 활동
전편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인 의사들이 많아지면서 전문가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학술 활동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학문적인 바탕이 전혀 축적돼 있지 않았던 시대에는 그나마 의학 교과서의 편찬이 뚜렷한 성과였다.
2009.10.16 10:14:00
최초의 산부인과 의사는 남자? 여자?
[의학사 산책] 각 분야 최초의 한국인
의학교를 졸업하거나 검정 의사 시험을 통과해 의사 면허를 받은 한국인 의사의 배출이 많아지면서 진료에서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졌다. 하지만 인구에 비해 의사가 턱없이 부족해 일제강점기에 의사 1인당 인구가 1만 명이 넘는 상황이었다.
2009.10.14 09: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