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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주사를 싫어한 할아버지, 이유를 알고 보니…

[의학사 산책] 우두, 두창을 몰아내다!

제중원 원장 에비슨이 진찰실에서 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부인은 11명의 아이를 낳았다. 에비슨이 물었다.

"그 중 몇 명이나 살아 있나요?" "유아기 때 모두 죽었습니다." "안됐군요. 어떻게 죽었나요?" "두창으로요." "뭐라고요! 그런 병으로 그 애들 모두가 죽었어요?" "예, 사실입니다. 오죽 많이 죽으면 아이가 두창을 마칠 때까지 식구로 치지 않으려고요!"

주위의 어르신들 중에는 호적 나이가 실제보다 두어 살 어린 분들이 있다. 위의 이야기는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두창에 걸렸다가 낫지 않은 아이는 내일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호적에 올릴 이유가 없었다.

18세기가 저무는 1796년 눈매 매운 영국의 의사 제너가 발견한 우두법은 두창의 공포로부터 인류를 구원해주는 수호신이 되었다. 우두법은 전 세계로 확산되어 나갔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국으로 들어오는 서양 문명에 항상 귀를 열어 놓고 있던 정약용은 우두법 역시 놓치지 않았다. 그는 비밀리 중국에서 우두법 서적을 들여와 실제로 소아에게 우두를 시술하기까지 했다.

우두법과 수용과 지석영

▲ 이재하의 제영신편(1889). ⓒ동은의학박물관
그러나 우두법의 본격적인 수용은 1876년 한국이 문호를 개방한 이후에 이루어졌다. 특히 지석영의 노력은 눈부셨다.

지석영은 우두법을 시술하는 병원이 부산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길을 떠난다. 손에 든 것은 엽전 열 냥이 전부였다. 아침은 구걸을 했고, 점심만 사먹었다. 짚신이 닳을까 두려워 길에 있는 소똥을 밟으며 걸었다. 얼마나 절약을 했는지 부산에 도착했을 때는 석 냥이 남았다. 1880년 그는 직접 일본을 방문하여 우두법을 배웠고, 1880년대 지방에 우두법이 확산되는데 기여를 한다.

그러나 우두법은 지석영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지석영이 일본을 이용했다면, 최창진은 중국을 통해 우두법을 수용했다. <제영신편>(1899)를 저술한 이재하는 계득하라는 한국인에게서 우두법을 배웠다. 이들은 모두 한국에 우두법을 소개한 개척자들이다.

우리에게 지석영이 익숙한 이유는 그가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은 자신에게 우두법을 배운 지석영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최창진, 이재하, 계득하는 일본이 애정을 쏟을 대상이 아니었다.

<종두규칙>과 강제 접종

▲ 종두규칙(1895). @규장각 학국학연구원
18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우두법은 전국적으로 시술되기 시작했다. 중앙에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각 도에는 우두교수관, 각 군읍에는 우두의사가 활동하였다. 실제로 우두를 시술하는 우두의사들은 독점권을 인정받았다. 근대적 전문직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우두의 확산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흥분한 군중들은 지석영의 종두시술소를 불태웠다. 일본에 대한 반감도 있었고, 일본이 상징하는 근대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종래 제사를 통해 두창을 관리하던 무당 등의 선동도 한 배경이었다. 지석영은 겨우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 정부가 가지고 있던 우두법에 대한 확신은 분명했다. 1895년 반포된 <종두규칙>은 "이 무서운 재앙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은 우두법 이외에는 없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확신은 강제로 이어졌다.

생후 70일부터 만 일 년 사이의 소아는 반드시 우두를 맞아야 했다. 성년이라도 우두를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규정을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이나 구류에 처해졌다. 강제 접종이 시작된 것이었다.

종두의 양성과 접종의 체계화

▲ 종두 기구. ⓒ동은의학박물관
우두를 시행할 의료인 양성도 이어졌다. 1896년 일본인 의사 후루시로 바이케이는 자신의 병원인 찬화병원에 종두의양성소를 설립하였다. 대한제국 정부는 이 양성소를 인가하였다. 80명이 넘는 졸업생들은 전국에 파견되어 우두법의 전국화에 공헌하였다.

대한제국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한 후루시로에게는 칭송이 이어졌다. 의료를 담당하던 내부대신은 편작이 다시 살아난다 해도 후루시로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이라고 극찬을 하였다. 우두법은 일본인 개원의를 의술의 신으로 격상시킬 만큼 힘이 셌다.

1890년대부터 지방에는 종두위원들이 파견되었고, 1900년 서울에는 한성종두사가 설립되었다. 1903년 한성종두사를 방문한 독일인 의사 분쉬는 "놀랍게도 모두가 혈청 제조법을 잘 알고 있었고, 꽤 위생적으로 처리되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대한제국 정부의 우두 정책은 점차 체계화되고 있었다. 대한제국이 추진한 거의 모든 근대화 정책을 무시했던 일제도 우두 정책은 인정했다. "한국 정부도 비교적 일찍부터 주의를 기울였다"는 평가였다.

▲ 한성종두사와 소장 박진성(1903). ⓒ동은의학박물관

경찰의 우두 사무 개입

1906년 통감부 설치로 본격화한 일제의 한국 지배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우두 정책도 변화시켰다. 가장 큰 특징은 경찰의 전면적인 개입이었다. 경찰은 종두의를 '독려'했을 뿐 아니라 직접 접종에 나섰다.

한국인의 '무지'도 강조되었다. 한국인들은 두창을 하늘이 내린 피할 수 없는 벌이자, 인생에서 반드시 한번은 통과해야 할 관문이라 생각하며 우두 접종을 피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강제성은 피할 수 없었다. 경찰은 이 사무를 맡기에 적격이었다. 우두 사무는 "오로지 경찰관서에서 담당하여 실행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강제적인 접종이 이루어지면서 우두 접종자 수는 빠르게 늘어갔다. 1908년 54만여 명, 1909년 68만여 명, 1910년 122만여 명, 1911년 290만여 명, 1912년 307만여 명이었다. 이후 우두 접종이 정기화되면서 접종자 수는 200만 명 안팎에서 고정되었다.

두창이 가까운 시일 내에 사라지리라는 낙관적인 기대가 나올 만 했다. 하지만 두창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특히 1920년에는 환자 1만 1000여 명, 사망자 3600여 명, 1921년에는 환자 8300여 명, 사망자 2500여 명이 발생했다. 예기치 못한 기습이었다.

<조선종두령>의 반포

▲ 종두증(1914). ⓒ동은의학박물관
기존의 <종두규칙>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일제는 1923년 <조선종두령>을 반포하였다. 접종 시기가 2번에서 3번으로 늘어났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2번이었다. 종두령 반포에는 한국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 내재되어 있었다. "조선과 같이 병독이 농후한 곳에서는 2번으로 종두 예방의 결실을 거둘 수 없다"는 것.

새로운 법령에 의해 모든 한국인은 생후 1년 이내, 6세, 12세, 3회에 걸쳐 우두를 맞아야 했다. 종두시행 연령의 경우 일본은 미성년자로 한정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종두 증명이 없으면 연령에 관계없이 종두를 맞아야 했다.

우두의 강제 접종과 예방주사

두창을 막기 위한 일제의 노력은 식민지 시기 동안 지속되었다. 그 노력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일제가 우두법을 경찰의 지휘 아래 진행한 점만 지적하자. 식민 지배가 시작되기 전 대한제국은 우두법의 확산을 위해 민간인을 활용하였다. 하지만 일제는 달랐다. 그들에 따르면, 한국인의 '무지'는 자발적인 우두 접종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경찰이 지도하는 강제 접종은 불가피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설사 우두의 강제성에 거부감을 가졌다 해도 저항은 쉽지 않았다. 생명 보호라는 명분은 저항 의지를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인들은 점차 예방주사가 주는 강제성에 익숙해져갔다. 한국인에게 예방주사란 반드시 맞아야 하는 대상이 되어 갔다. 그 강제성에 의문을 던져볼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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