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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때라면…신종플루, 경찰이 때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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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때라면…신종플루, 경찰이 때려잡았다?

[의학사 산책] 서양 의학, 전염병에 맞서다!

전염병은 인류가 공동체를 형성한 이후 지금까지 함께 해온 가장 오래된 '적'이다. 두창(천연두)은 이제 인류의 곁을 떠났지만, 새로운 적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에이즈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인류는 그 적들을 물리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그 중심에는 개항 이후 한국이 수용한 서양 의학이 있다.

서양 의학이 처음부터 강력한 무기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한국인에게 서양 의학은 '의학'이기보다는 '위생'으로 처음 다가왔다. 소독과 청결 그리고 격리가 서양 의학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1911년 매독 치료제인 살바르산은 인류에게 전염병이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인류가 본격적인 전염병 치료제를 만나기 위해서는 3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페니실린이 출현하기 이전 서양 의학 역시 전염병 앞에서 움츠려들 수밖에 없었다.

온역장정과 검역의 시작

▲ '온역장정'의 시행 관련 문서(1887).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개항 이후 전염병을 막기 위한 한국의 노력은 1886년 시작되었다. 한국 정부는 콜레라가 유행하자 각 개항지에 관리를 파견하여 검역을 시작하였다. 검역 활동의 지침으로는 '온역장정(瘟疫章程)'을 제정하였다. 온역장정에는 전염병 유행지에서 온 선박을 정박시키고 승객이나 승무원을 검사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온역장정이 반포되었지만 이 법령의 시행을 둘러싸고 각국 공사관과 한국 정부는 대립하였다. 검역은 각국의 외교적, 상업적 이해와 충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정부는 한 발 물러나 외국 병선(兵船)의 검역에는 예외를 두는 조치를 취하였다. 병선을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위생국의 탄생과 경찰

한국을 근대화시킨 개혁으로 알려진 갑오개혁은 방역 체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갑오개혁 정부는 1894년 내무아문(內務衙門) 안에 위생국(衛生局)을 설치하였다. 조선 시기의 대표적 의료 기관인 전의감을 대치하는 기관이었다. 위생국은 방역, 의약, 우두와 관련된 사무를 담당하였다.

위생국이 방역과 관련된 전체적인 기획을 담당하였다면 실무는 경찰이 담당하였다. 갑오개혁 과정에서 '경무청관제(警務廳官制)'와 '행정경찰장정(行政警察章程)'이 반포되었다. 기관으로는 경찰청(警察廳)이 설립되었다. 경찰은 방역, 소독, 검역, 종두, 음료수, 의약, 묘지 등 각종 위생 사무를 담당하였다. 위생 경찰 제도의 시작이었다.

1895년 콜레라와 방역

▲ 위생국 관제(1895).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위생국은 설립 직후 큰 도전에 직면하였다. 1895년 청일전쟁 와중에 콜레라가 발생해 북부지방에서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우선 검역 규칙을 반포하였다. 방역을 위해 항구에서 선박을 검역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내에서 진행할 방역 조치들의 내용도 법령으로 반포하였다. '호열자병예방규칙(虎列刺病豫防規則)', '호열자병소독규칙(虎列刺病消毒規則)', '호열자병예방(虎列刺病豫防)'과 '소독집행규정(消毒執行規程)'이었다.

동시에 한국에 와있던 의료 선교사와 일본 의사로 구성된 방역위원회도 설치되었다. 제중원의 에비슨은 그 책임을 맡았다. 방역위원회는 콜레라가 세균에 의해 발생된다는 점을 한국인에게 알렸다. 서양 의학에 기초한 방역이 시작된 것이었다.

'전염병 예방 규칙'과 방역

1899년은 한국에서 법정 전염병이 처음으로 규정된 해였다. 이 해 '전염병 예방 규칙'이 반포되었다. 이 반포로 두창,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콜레라, 이질, 디프테리아가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되었다.

이 법령은 1880년 일본에서 반포된 '전염병 예방 규칙'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다. 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일본 제도에서 보이는 위생위원의 역할을 동임(洞任)이 담당하였다. 지방 행정조직을 중심으로 방역 체계를 구성하려는 대한제국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였다.

이어 6종 전염병의 예방과 관련된 세부 지침이 예방 규칙의 형태로 반포되었다. 항구에서 검역을 규정한 '검역정선규칙(檢疫停船規則)'도 반포되었다. 방역을 위한 규칙이 이 해에 대체로 완성된 것이었다. 서양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는 세균설에 입각한 방역 체계가 법률적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전염병 예방령'과 방역

▲ '전염병 예방 규칙'(1899).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일제는 1915년 식민지 시기 동안 방역을 위한 기본 법규로 작용할 '전염병 예방령'을 반포하였다. 전염병 예방령은 이 예방령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전염병의 종류를 확정하였다. 그것은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두창, 발진티푸스, 성홍열, 디프테리아 및 페스트였다. 대한제국에서 반포한 전염병 예방 규칙>의 6종 외에 파라티푸스, 성홍열, 페스트가 추가된 것이었다.

일제는 전염병 예방령의 반포로 방역을 위한 법률적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들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언제나 이 법령이 규정한 각종 방역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교통 차단, 격리, 집회 제한, 우물의 사용 금지, 어로(漁撈) 제한, 건강 검진, 청결, 소독 등이었다. 방역은 호주·관리인, 경찰·검역위원, 경무부장으로 이어지는 조직적 체계 아래서 진행되었다.

'전염병 예방령'과 경찰

전염병 예방령의 적용을 결정하는 주체는 경무부장이었다. 이 점은 전염병 예방령이 내용을 거의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 일본의 전염병 예방법과 다르다. 일본의 전염병 예방법은 각 지방의 행정 책임자인 지방 장관이 법령의 적용을 결정하였다. 일제는 본국과 달리 한국에 경찰이 중심이 된 체계를 만든 것이었다.

1924년 뇌척수막염이 전염병 예방령에서 규정하는 전염병에 포함되어 법정 전염병은 10종으로 늘어났다. 1928년 전염병 예방령 시행 규칙의 일부가 개정되었다. 그 이유는 보균자의 검사와 검색을 실시하고, 그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에 있었다.

'사립병원 취체 규칙'과 전염병

▲ 광제원 임시위원 임명장(1904). ⓒ동은의학박물관
병원과 관련된 규정도 반포되었다. 1920년 반포된 '사립병원 취체 규칙'이었다. 일제가 이 법령을 반포한 이유는 사립병원에 대한 불신에 있었다. 관·공립병원과 달리 사립병원의 설비가 불완전하다는 것이었다.

이 법령은 특히 전염병실과 관련하여 질병의 전파를 막기 위한 특수한 구조 설비를 요구하였다. 이 법령은 한편으로는 병원 설비에 대한 관심을 낳았다. 하지만 선교 병원을 비롯한 사립병원의 침체도 낳았다. 사립병원은 관·공립병원에 비해 설비를 완비할 재정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위생 사무의 일원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위생 경찰 제도가 강화되었다. 대한제국시기와 비교하면 위생에 관여하는 경찰의 권한이 더욱 커졌다. 1911년 일제는 내무부 위생과를 폐지하였다. 위생과의 업무는 경찰로 이관되었다. 1912년 탁지부 소관이던 해항검역(海港檢疫)과 이출우(移出牛) 검역 사무 역시 경찰이 담당하게 되었다. 이 변화들을 계기로 경찰은 모든 위생 사무를 관할하게 되었다.

▲ 군산항에서 선박 검역 광경(1920). ⓒ동은의학박물관

위생 경찰 제도와 식민 지배

위생 경찰이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 건강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염병의 위험으로부터 민중을 보호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는 소극적인 의미의 기관이었다. 하지만 경찰의 힘만으로 '완벽한' 방역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 보다 기초적인 조치들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의료 기관을 많이 만들고 상·하수도를 개선하며 전염병원·격리병사를 설치하거나 쓰레기를 처리해 청결한 환경을 만드는 일 등이었다.

그러나 위생과 관련된 모든 사무가 경찰로 집중화되었다는 사실은 향후 방역이 단속을 위주로 진행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은 효율적인 위생 사무의 진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개인적 이해와 권리는 '위생'이라는 명목 아래 경찰의 단속 아래 억눌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도 그랬다. 해방 직후 한국인들이 경찰 척결을 외쳤던 배경에는 식민지 시기의 가혹한 방역 조치도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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