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16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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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그 여인을 잊었거늘…"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11장 개혁을 손짓하는 세상<56>
입춘이 지나자 바람 끝이 완연히 부드러웠다. 차가운 기운은 여전했지만 바람 끝이 옷 속으로 파고들어 살갗을 애이지는 못했다. 개울물도 개울가에만 살얼음이 얇게 얼 뿐 해가 뜨면 한줌의 햇살에 곧 녹아버렸다. 남쪽에는 이미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소식이 서울로
정찬주 소설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순리인가?"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10장 지극한 정치로 가는 길<55>
이윽고 갖바치의 기나 긴 염불은 양팽손의 새벽잠을 깨우고 말았다. 갖바치는 양팽손을 배려하여 낮은 목소리로 웅얼웅얼 <법화경>을 염불하고 있었데, 양팽손이 몇 번이나 몸을 뒤채다가 눈을 뜬 것이었다. 양팽손은 갖바치의 염불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자리에서 일
"중생이 앓으니 나도 앓는다"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10장 지극한 정치로 가는 길<54>
양팽손의 짐작과 달리 비승비속의 갖바치는 최 상궁의 극진한 안내를 받아 대비의 사가로 갔다. 대비의 사가에는 내수사의 몸집 좋은 종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마당가에는 범상치 않은 가마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방에 들지 못하고 마당에서 떨고 있는 종들은 가마꾼이 분명
'이것은 인(仁)일까, 자비일까'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10장 지극한 정치로 가는 길<53>
양팽손은 꼭두새벽에 주막을 나와 한강 도선장으로 갔다. 먼동이 트려는 하늘에는 아직도 별 하나가 차갑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른 새벽이었으므로 배를 타는 손님은 적었다. 양반 옷차림의 손님 두어 사람과 큰 봇짐을 든 상인들이 몇 사람 타고 있을 뿐이었다. 포졸들도 졸
아! 진퇴양난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10장 지극한 정치로 가는 길<52>
과천 기방을 떠난 양팽손은 한강을 건너지 못하고 뒤돌아서야 했다. 나룻배를 타는 도선장에서는 포교와 포졸들이 삼엄하게 검문과 검색을 하고 있었다. 배를 타려는 사람들이 지방에서 꾸역꾸역 밀려들어 장사진을 이루었지만 줄은 좀체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차가운 강바
천재 안견, 비겁한 꾀를 내다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10장 지극한 정치로 가는 길<51>
천안의 동헌이 보일 무렵부터 눈이 내렸다. 동헌을 지키는 포졸은 눈을 맞으면서도 꿈쩍을 안 했다. 땅에 내리는 대로 쌓이는 탐스런 함박눈이었다. 그러나 양팽손에게는 갈 길을 더디게 하는 고약한 눈이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더 걸어야 했지만 양팽손은 할 수 없이 주막
'탐관오리 되는 공부'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10장 지극한 정치로 가는 길<50>
추수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자 능주 벌판에도 한두 방울씩 가는 비가 내렸다. 하루라도 빨리 서울로 가고 싶은 양팽손으로서는 다행이었다. 논밭의 알곡이 비에 젖게 되면 햇볕에 말라야 하므로 그만큼 추수가 늦어지기 때문이었다. 식구들이 추수한 벼를 내다판 돈으로 양팽
'상수리나무처럼 쓸모없는 사람'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10장 지극한 정치로 가는 길<49>
1508년. 중종 4년 3월이었다. 능주의 정여해는 해망산에 해망단을 조성하여 터를 연 지 1년 만에 다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능주 출신의 구두남도 서울에서 내려왔고, 함종의 어계선, 김해의 김경추, 함양의 박간손, 삭녕의 최언수 등이 차례로 도
혀와 이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9장 끊이지 않는 역모<48>
초설은 역과 복시에 합격한 한천을 위해 늦으나마 축하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런 저런 일로 미루다 장령 신복의(辛服義) 옥사 사건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에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다. 한천도 이제는 명경을 떠나 박경의 옛집에서 살고, 갖바치는 금강산으로 다시 입산하여 정
'반정의 동지'를 내팽개치다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9장 끊이지 않는 역모<47>
이과의 역모 사건이 수그러드는 시점이었다. 이번에는 이미 처형당한 조광보가 국문에서 한 말들이 대간들 사이에서 격렬하게 논쟁거리로 비화하였다. 조광조의 친척 형뻘인 조광보가 추관인 유자광에게 무오사화의 원흉이라고 소리치며 죽기를 각오하고 대들었는데, 조광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