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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의 동지'를 내팽개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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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의 동지'를 내팽개치다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9장 끊이지 않는 역모<47>

이과의 역모 사건이 수그러드는 시점이었다. 이번에는 이미 처형당한 조광보가 국문에서 한 말들이 대간들 사이에서 격렬하게 논쟁거리로 비화하였다. 조광조의 친척 형뻘인 조광보가 추관인 유자광에게 무오사화의 원흉이라고 소리치며 죽기를 각오하고 대들었는데, 조광보도 역시 김굉필의 제자였으므로 김종직을 높이 추앙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오년에 어진 사람들을 무함해서 김종직 같은 사람들을 모두 죽였는데, 이제 또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이오."
  "상방검으로 그대와 같이 아첨하는 신하의 머리를 베어버린다면 좋은 정치를 볼 수 있지 않겠소."
  반정의 공신들은 조광보의 외침을 애써 미친 사람의 헛소리쯤으로 치부해버렸으나 조광보가 처형당한 뒤부터 용기를 낸 대간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종종에게 유자광을 유배 보내야 된다고 간언했다.
  이 무렵 유자광은 해괴한 일을 당하여 스스로 근신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도총관으로서 입직을 하는데, 날이 몹시 더웠으므로 소매 속에서 부채를 꺼내 부치다가 갑자기 '괴이하다. 이 부채에 쓰인 글씨가 괴이하다' 하고 얼굴빛을 변했던 것이다. 부채에 '위태롭고 망할 일이 금시 닥쳐온다(危亡立至)'라는 네 자가 쓰여 있었던 바 유자광은 부채를 손가락으로 서너 번 튕기면서 '이 부채를 채롱 속에서 꺼낸 이후 내 손에서 한 번도 떠나지 않았는데 누가 썼단 말인가' 하고 탄식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유자광을 증오하는 사람이 집안사람들 중에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날 이후 유자광은 자신의 목숨에 위기를 느끼며 선왕 때 세운 공을 중종에게 하나하나 내세우며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생각하건대 정해년에 길성 사람 이시해가 군사와 백성들을 선동하여 감사와 병사 및 모든 진의 장수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온 도가 호응하여 형세가 험악하였으므로 세조대왕이 장수들에게 토벌토록 지시하였으나 장수들은 벌벌 떨면서 주저했었습니다. 그때 신이 역적을 평정할 계책을 올렸던 바 세조대왕은 기특히 여기고 비천한 신을 차출하여 특별히 병조정랑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얼마 뒤 문과 잡과에 1등으로 급제하자 정랑에서 다시 참지로 등용하였습니다.
  무자년에 세조대왕이 세상을 떠나 아직 장사도 지내기 전에 남이가 반역을 음모하고 신에게 누설하였으므로 신이 즉시 반란음모를 고변하였더니 예종이 역적의 무리들을 처단하고 신에게 공신 칭호를 주고 숭정대부의 품계에다 군으로까지 봉하였습니다. 나라의 은혜가 너무도 그지없어 그저 몸 둘 바를 몰랐을 뿐이었습니다.>
  
  유자광이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도움을 주어 세조의 눈에 띄었던 것은 분명하나 남이 장군을 모함하여 죽인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하고 있는 사실인데 그는 천연덕스럽게 거짓의 글로 중종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성종을 섬기게 되면서부터는 여러 임금들의 각별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아는 것은 무엇이나 다 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권력 앞에 굴하지 않고 3정승, 6판서로부터 대간, 홍문과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옳고 그른 것을 죄다 말하였습니다. 이것으로 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신을 원수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김종직의 문제를 듣게 되자, 신이 윤필상, 노사신, 한치형 등과 함께 보고하여 종직의 무리들을 처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종직을 위해서 신을 죽이려는 자가 있으므로 신은 하루도 목숨을 보전하지 못할 것 같아서 언제나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늘 내심으로는 여러 대의 임금을 섬겨오면서 크게 도운 것은 없으나 충성과 의리만은 저버리지 말자고 다짐하였으니 충성과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뭇사람의 중상과 비방에 걸려 죽어서 세조대왕을 저승에서 뵈는 것도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종직은 세조에 대하여 오래도록 감정을 품어오다가 못된 재주를 믿고 거짓 꿈을 빙자하여 허황한 말을 꾸며서 시도 짓고 부도 지어서 온 나라에 퍼뜨려 문학하는 선비들로 하여금 외우게 하였으며 나라의 역사까지 더럽혔습니다.
  그의 심복들인 허반, 김일손, 권오복, 권경유, 이목 등이 서로 종직을 높여서 공자라고 하였으며, 종직이 죽은 뒤에도 그의 무리들인 이원, 표연말 등은 공자와 같이 내세워 시호를 논의하였으니 참으로 통분할 일입니다.>
  
  그러나 알 만한 선비들은 유자광이 왜 김종직을 증오했는지 그 이유를 다 알고 있었다. 함양의 학사루에 걸렸던 자신의 시판을 '자광이란 자가 어떤 놈이기에 이런 시판을 달았느냐'며 철거하도록 지시하여 모멸과 수모를 준 김종직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연산 무오년에 유자광은,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세조를 비난한 내용이라고 몰아붙였고, 사초에다 <조의제문>에 대한 평을 올린 김종직의 제자들을 참혹하게 죽이고 유배 보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자광은 당시의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거꾸로 얘기하며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중종을 설득하려 했다.
  
  <종직을 처단한 지가 벌써 10년이나 되었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잔당들이 몰래 신을 죽이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신을 사지에 몰아넣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윤필상, 노사신, 한치형은 이미 죽었으니 외로이 남은 신의 한 몸으로 어떻게 당해내겠습니까. 곰곰이 생각하건대 전하의 현명한 보살핌이 없다면 신 혼자서 어찌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굽어 살피기 바라옵니다. 음흉하게 모해하려는 짓을 하지 않더라도 조정에 만일 종직을 위하여 자광이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은 웃음을 머금고 저승으로 가겠습니다.
  아, 신은 늘 세조대왕을 마음속으로 사모하고, 언제나 하늘을 부르고 탄식하며, 언제나 하늘을 부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전하께서는 굽어 살피기 바라옵니다.
  신은 나이가 69살이어서 노환이 날로 더해가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 신을 시골로 돌아가도록 허락함으로써 종직의 잔당들이 몰래 겨누고 있는 칼날을 피할 수 있게 하여 하루를 더 살게 되면 그것도 전하의 은덕이요, 한 달 혹은 1년이나 2년을 더 살게 되면 죽는 날까지가 전하의 은덕이 되겠습니다.>
  
  유자광이 올린 글은 마음 여린 중종의 마음을 어느 정도 움직였다. 중종은 유자광이 시골로 내려가 사는 문제를 허락하지 않았다.
  "무오년 사건이 있은 지 이제는 벌써 10년이나 되었소. 헌데도 아직 그런 말들이 나돌아 1등공신인 대신을 불안하게 만드니 과인인들 어찌 마음이 편하겠소. 이 때문에 무령군이 시골로 내려가 살 수는 없소. 이 글을 조정의 관리들도 보도록 할 것이오."
  중종의 말에 힘을 얻은 유자광은 또 다시 정미수를 물고 늘어졌다.
  "김종직의 잔당이 지금 그리 많기야 하겠습니까. 정미수는 무오년 사건에 관련되지 않았지만 미수는 바로 문종의 외손자이고 소릉은 곧 그의 할머니인 바 미수도 세조대왕에 대하여 앙심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김종직, 남효온, 김일손 등이 소릉을 회복하자고 글을 올린 것도 미수가 시킨 것입니다. 무오년의 어지러운 정국을 바로잡은 뒤에 대사령을 내리고 죄를 용서해줄 대상을 의논하던 날 앞서서 죄인들을 석방하자고 주장한 사람도 미수였습니다."
  그러나 중종은 지나간 사건을 들추어 죄를 논하고 싶지는 않았다.
  "말한 것이 옳기는 하다. 그러나 사건이 마무리되었는데 이제 다시 캐게 되면 반드시 소란이 일어날 것이다."
  유자광의 글이 조정의 관리들에게 공개되자, 특히 대간들이 다시 유자광을 논박했다. 무오년 사건의 원흉인 유자광에게 죄를 주어야 한다고 강론 때마다 중종에게 아뢰었다. 마침내 성희안이 더 이상 침묵하지 못하고 연산 무오년에 자신이 목격한 대로 중종에게 아뢰어 수습하기에 이르렀다.
  
  "성종 때에 무슨 문제에 대하여 옳은 말을 하는 대간을 특별히 순차를 뛰어넘어 등용하게 하였으니 이는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는 임금의 미덕입니다. 모든 일을 오직 성종을 본받는다면 훌륭한 정사를 펼치시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무오년의 사건에 대하여 신이 늘 말을 올리려고 한 지가 오랜데 선비들이 지금까지 의구심을 품고 있으므로 그 경위를 밝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죄인들을 취조한 관리들이 다 죽었고 오직 유자광과 신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김종직이 유생으로 있을 때 <조의제문>을 지었는데, 그 본의는 무엇을 가리킨 것인지 모르겠지만 김일손의 무리들이 그 글의 뜻을 더 넓혀서 설명한 죄는 처단할 만합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동기로 말하면 이러합니다. 성종 때에 이극돈과 성준은 다 대신이었습니다. 극돈이 병조판서로 있을 때에 성준을 북도의 절도사로 보내게 되자, 준이 노여워서 극돈의 아들인 첨정 세정을 억지로 평사로 삼아 가지고 데리고 갔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대간들이 응당 규탄해야 했으나 당시 대간들은 모두 용렬한 사람들이어서 그것을 간하여 바로잡지 못하였습니다.
  그 뒤에 김일손은 헌납으로, 이주는 정언으로 있으면서 그 문제를 소급하여 따지었고, 차자까지 올려서 계속 낱낱이 따졌습니다. 극돈과 준은 이 두 사람을 원망하여 말하기를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소급하여 따질 필요가 있는가' 하면서 마음속으로 그를 중상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차자에는 누구나 다 말하지 못할 문제가 있었으므로 한때의 선비들이 누구나 다 탄복하였습니다.
  뒷날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에 극돈이 춘추관 감사로 있었는데, 김종직의 글이 나타나자 극돈은 당장 봉해두라고 하였습니다. 춘추관 감사 어세겸은 공명정대한 사람이므로 '이 글은 그대로 믿기가 어려운 만큼 역사 초고를 물에 빨 때에 이것도 함께 빨거나 불에 태워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누설시키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모임을 가지는 날에 가서 여러 사람의 의논에 붙이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여 그것을 다시 봉해두고 즉시 보고하지 않고 있을 때에 실록에 관계가 없는 사람들인 한치형, 윤필상, 유자광 등이 소문을 듣고 보고하였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실록청 사람들이 누설시켰던 것입니다. 김종직으로 말하면 죄를 받은 것은 옳았고 글의 뜻을 더 넓혀서 설명한 사람도 마땅히 죄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취조한 관리들이 다 말하기를 '근래에 나이 젊은 무리들은 남을 혹심하게 규탄하고 있으니 김종직의 제자들을 몽땅 취조하여 죄를 주어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노사신만은 말하기를 '이제 몽땅 죄를 준다면 동한 때의 당파관계로 벼슬길을 막아버린 것과 같은 화가 생길 듯하니 죄가 있는 사람만 죄를 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놓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그 의견들을 보고하자 폐주가 바로 노사신의 의견을 따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무오년 사건의 대체적인 줄거리입니다.
  선비들이 오늘까지도 겁이 나서 부자 형제간에도 무오년 사건을 가지고 서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이 말씀드리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전하께서 사건의 동기를 자세히 알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희안의 말도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무오년 사건의 흐름을 두루뭉수리하게 얘기했을 뿐 명명백백한 진상은 피해가면서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식으로 보고하고 했던 것이다. 실제로 무오년 사건의 단초는 이러했던 것이다. 이극돈이 전라 감사로 있을 때 성종이 승하하였는데도 서울에 향(香)을 올리지 않고 기생을 데리고 다닌바 김일손이 그 사실을 사초에 썼고, 이극돈이 그 글을 빼달라고 했는데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김일손의 스승인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트집 잡아 평소 김종직에게 원한이 있는 유자광을 조종하여 사관들을 참혹하게 보복하였던 것이다.
  
  대간들에게 밀리던 유자광은 가을까지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박원종이 더 이상 그를 옹호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간들의 기세로 보아 박원종 자신에게까지도 불똥이 튈 것 같았던 것이다. 유자광은 밤중에 부랴부랴 박원종을 찾아가 투덜거렸다.
  "나와 공이 다 같은 무인으로서 숭품(崇品)에 올랐으나 문사들 중에는 기뻐하지 않은 이가 많았소.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찬 법이오. 내가 배척당하고 나면 다음으로는 공에게 미칠 것이오."
  "무령 대감, 내가 어찌하면 좋겠소."
  "이번 일만 막아주시오. 이 무령이를 보호해 달라는 말입니다. 이 무령이는 세조대왕 때부터 산전수전을 다 겪은 몸이외다. 머잖아 다시 오뚝 일어날 터이니 이번만 대감께서 나서주라는 것입니다."
  "천하의 대감께서 귀양 가는 것이 그리 두렵소이까."
  "목숨을 내놓고 사는 무인이 무엇이 두렵겠소이까. 다만 억울할 뿐이지요."
  유자광은 울상을 지으며 마음이 불안한지 엉덩이를 들썩들썩 했다.
  "억울한 사람이 어찌 무령 대감뿐이겠소. 무령 대감으로 인하여 죽은 선비들도 억울하지 않겠소. 대감은 손에 너무 많은 선비들의 피를 묻혔소."
  "지금 무엇이라고 했소. 나는 죄인을 죽였지 죄 없는 선비를 죽인 일은 없소. 공이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실망이 크오."
  유자광은 박원종에게 싸늘한 바람을 느끼고는 절망했다. 박원종은 이제 자신의 동지가 아닌 듯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자광은 다시 한 번 더 박원종에게 매달렸다.
  "대감도 요즘 대간들에게 시달리고 있지 않소. 우리끼리 힘을 합쳐야 살 길이 보이지 않겠소."
  유자광은 박원종의 약해진 마음을 흔들어보기도 했다. 박원종은 반정할 때의 위세와 달리 요즘에는 의기소침해 있는 날이 많았다. 박원종 역시도 김공저 역모 사건이나 이과 역모 사건에 심기가 불편해 있었던 것이다. 두 역모 사건 모두 박원종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으므로 그는 어제도 중종에게 사임을 청하였던 것이다.
  "신은 원래 무관으로서 별로 재주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데, 어지러운 정국을 바로잡은 뒤에 신의 공로가 크다고 하여 특별히 정승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신은 마음속으로 불안하여 늘 사임하려고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최근에 무뢰한들이 앙심을 품고 신을 죽이려고 음모하였는데 시시한 인간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지만 김공저, 유숭조와 같은 사람들도 다 묵은 감정을 가지고 신을 죽이려 하였고, 정미수는 대신으로서 알고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늘 신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으로 하여 더욱더 마음이 불안합니다. 더구나 모든 관리들의 본보기가 되는 정승의 자리는 신이 앉아 있을 데가 아닙니다."
  박원종은 쓸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힘을 합치는 것도 때가 있는 법이오. 지금은 무령 대감과 힘을 합칠 때가 아니라 서로 헤어져 있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듯하오."
  "평성부원군 대감답지 않소이다. 반정의 동지를 어찌 이렇게 내팽개친단 말이오."
  "조정의 대신조차도 무령 대감에게 등을 돌린 지 오래 되었소. 대감이 일찍 사퇴하지 않았던 것이 한이오."
  
  결국 유자광은 한여름에 전라도로 귀양길에 올랐다. 그의 귀양길에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폐주 갑자년에 유자광의 모함으로 귀양 갔던 정붕의 하인이었다. 정붕이 귀양을 가면서 유자광에게 받았던 독약주머니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이번에는 유자광이 귀양을 가게 되자 그에게 돌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정붕의 하인이 유자광을 감시하고 있는 나졸에게 다가가 말했다.
  "정붕 나으리께서 보내 왔습니다요."
  "비켜라. 전라도까지 가려면 바쁘다."
  그러자 수레에 타고 있던 유자광이 말했다.
  "정붕은 나의 인척이오. 할 말이 있어 하인을 보냈을 것이니 면회를 시켜주시오."
  "좋소."
  나졸이 허락하자 유자광이 부르튼 입술을 겨우 움직여 말했다.
  "그래, 정 공(公)이 뭐라고 하더냐."
  "이것을 전해 주라고 했습니다요."
  순간, 유자광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하인이 내민 작은 주머니는 예전에 자신이 정붕에게 보냈던 독약주머니였다. 유자광은 헛웃음을 쳤다.
  "허허허. 은혜를 잊지 않고 갚아주다니 정붕은 참으로 곧은 선비이다. 허허허. 정 공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어라."
  나졸은 갈 길이 멀다는 듯이 하인을 밀치며 수레를 끄는 소 엉덩이를 쳤다. 수레를 뒤따르며 유자광을 향해 욕하며 고함치던 양인들도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자 하나 둘 떨어지더니 더 이상 뒤따라오지 않았다. 이윽고 천둥 번개가 치며 소나기가 쏟아졌다. 유자광은 하늘을 보지 못하고 퍼붓는 비를 그대로 맞아 비루먹은 개처럼 흉측한 몰골로 변했다. 그래도 나졸들은 비를 피하지 않고 침을 흘리며 지쳐가는 소를 재촉하였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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