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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앓으니 나도 앓는다"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10장 지극한 정치로 가는 길<54>

양팽손의 짐작과 달리 비승비속의 갖바치는 최 상궁의 극진한 안내를 받아 대비의 사가로 갔다. 대비의 사가에는 내수사의 몸집 좋은 종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마당가에는 범상치 않은 가마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방에 들지 못하고 마당에서 떨고 있는 종들은 가마꾼이 분명했다. 가마는 대왕대비와 대비가 나들이할 때 타고 다니는 탈것으로 보석들이 주렁주렁 치장되어 있었다. 최 상궁이 가마꾼인 종들에게 엄하게 지시했다.
  "해가 떨어지면 바로 움직일 터이니 준비하라."
  "어디로 모실갑쇼."
  "대비전으로 귀하신 분을 모실 것이니라."
  갖바치는 최 상궁을 따라 대비 사가의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낮부터 불을 들여 온기가 훈훈하게 돌았고, 방 가운데는 음식이 가득한 교자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최 상궁이 말했다.
  "대사님께 저녁공양을 정성껏 올리라는 대비마마의 분부가 계셨사옵니다."
  "그렇습니까."
  갖바치는 정오 이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오후불식(午後不食) 수행 중이었으나 차마 말을 못하고 감사의 표시로 합장만 했다. 갖바치가 상 앞에 앉아 수저를 들지 않자 최 상궁은 자리를 비워주면서 말했다.
  "대비전 궁녀들이 저녁공양을 준비한다고 했습니다만 대사님의 입맛에 맞을지 걱정됩니다."
  "소승이 이런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부끄럽습니다. 대비마마께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상에는 지금까지 갖바치가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음식과 반찬들이 가득했다. 육류와 해류 음식과 반찬은 물론이고 내수사에서 조달한 지방의 특산물들이 올라와 있었다. 갖바치는 끝내 대비의 정성이 담긴 저녁공양을 받지 않았다. 밖이 일순 조용해지자 갖바치는 문을 열고 밖의 동정을 살폈다. 마당에는 가마꾼들만 추위에 떨고 있었다.
  "이보시오."
  "쇤네를 부르셨습니까요."
  "그렇소."
  가마꾼들이 사랑방 문밖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그러자 갖바치가 방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추우니 들어오시오."
  "쇤네들이 들어갈 방이 아닙니다요."
  "중이 든 방이니 괜찮소. 그대들이나 나나 천민이 아니오. 동병상련의 정이 있어 그러니 어서 들어와 언 몸을 좀 녹이시오."
  "지밀상궁님에게 들키는 날이면 별감 나으리께 매를 맞을 겁니다요."
  "춥고 배도 고플 터이니 어서 들어오시오. 방에는 산해진미가 있소. 내가 변호해 주겠으니 안심하시오."
  추운 것은 견딜 수 있으나 배고픔은 참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산해진미가 있다는 말에 가마꾼들이 짚신을 벗는 둥 마는 둥 잽싸게 들어왔다.
  "잘 먹고 죽은 귀신은 혈색도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요."
  "대사님, 고맙습니다요."
  가마꾼들은 상에 차려진 음식들을 순식간에 비워버렸다. 어찌나 샅샅이 훑어먹는지 그릇이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잠시 후 나타난 최 상궁이 방에 든 가마꾼들을 보고서는 기절할 듯 놀랐다.
  "무엄하다. 어찌 아랫것들이 대사님과 함께 있는 것이냐."
  "대사님이 불러서 들어왔습니다요."
  "소승이 불러서 들어왔으니 나무라지 마시오."
  "너희들이 상에 차려진 음식도 먹은 것이냐."
  가마꾼들이 대답을 못하자 갖바치가 대신 말했다.
  "몸을 녹이라고 방으로 불러들인 것도 소승이요, 음식을 먹으라고 한 것도 소승이니 가마꾼들을 책하지 마시오."
  상궁은 대비의 명을 거역한 것이 부담스러운 듯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비마마께서 아시는 날에는 저나 궁녀들이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비마마의 명이라고 하셨습니까."
  "대사님께 저녁공양을 잘 올리라는 분부를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하셨습니다. 하온데."
  "그렇다면 상궁께서는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대사님, 왜 그렇습니까."
  "소승은 오늘처럼 저녁공양을 잘 한 적이 없습니다."
  상궁이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대사님께서는 어찌 저녁공양을 받지도 않고서 저녁공양을 잘했다고 거짓말을 하시는 것입니까."
  "허허허."
  갖바치는 정말 포식한 사람처럼 자신의 배를 쓸어 만지는 시늉을 하며 웃어젖혔다.
  "대사님, 가마꾼들을 배불리 먹여놓고서는 어찌 대사님께서는 저녁공양을 잘했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중들의 공양은 이와 같습니다."
  최 상궁은 갖바치의 얘기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기는커녕 갖바치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어 사실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갖바치에게 정성껏 저녁공양을 올리라는 대비의 명을 어겼으니 책임의 소재라도 명확히 해두어야 했다.
  "먹지 않고도 공양을 하셨다니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다시 상을 차려 올리겠사옵니다."
  "배고픈 중생이 공양했으니 중도 공양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양했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소이다. 그러니 가마꾼들을 탓해서는 아니 됩니다."
  최 상궁은 그제야 갖바치의 행동거지를 이해했다. 승려가 탁발만 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갖바치를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자기를 위해 차려진 음식을 베고픈 가마꾼들에게 베풀고 있음이었다. 최 상궁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대사님의 깊은 뜻을 모르고 함부로 얘기를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참 공양이란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까."
  "대비마마께서 왜 대사님을 대궐 안으로 부르시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천축의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중생이 앓는 고로 나도 앓는다고 했습니다. 수행자는 중생과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처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한겨울의 짧은 해가 방문에 비쳐들었다. 석양이 막 지고 있었다. 석양이 지기를 기다리던 가마꾼들이 외쳤다.
  "대비님 가마를 대령했습니다요."
  "알겠다."
  가마는 갖바치를 태울 모양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대사님, 어서 타시지요."
  그러나 갖바치는 가마타기를 거부했다.
  "수도하는 수행자가 차라리 가마꾼이 될지언정 어찌 가마를 타겠소이까."
  "대사님, 대비마마의 분부이옵니다."
  "아무리 대비마마의 분부라 하더라도 소승은 가마를 타지 않겠소이다."
  "가마를 타지 않고는 대비전으로 단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제야 갖바치는 왜 자신이 가마를 타야 하는지 눈치를 챘다. 승려에게 성안은 금족령이 내려진 구역이었다. 더구나 대궐 안으로 승려가 출입한다는 것은 왕의 부름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갖바치가 주춤거리자 최 상궁이 말했다.
  "이제야 아시겠습니까. 대사님께서는 가마를 타지 않고서는 대궐 문을 들어설 수 없습니다. 대비전의 궐문에는 액정서(掖庭署) 별감이 지키고 있습니다만 하오나 가마를 타고 있기만 하면 대비마마께서 다 손을 써 놓으셨으니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액정서 별감이라 하면 궐문의 열쇠를 쥐고 있는 관리이므로 대비의 가마를 보고서 출입을 막을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비는 내시 김귀지를 시켜 별감이 실수하지 않도록 미리 조치를 취해둔 터였다.
  갖바치는 난생 처음으로 대비의 가마를 타고 대궐로 향했다. 궁녀들이 앞서고 상궁이 뒤따르니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대비의 행차나 다름없었다. 오가는 양인들이 대비의 가마가 지나칠 때까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길을 터주곤 했다.
  마침내 대비의 가마는 궐문 안으로 무사히 들어왔고, 내금위의 대장과 액정서의 별감이 나타나 가마를 호위했다. 그러나 그들도 대비전에 도착한 뒤 최 상궁과 잠시 말을 나누더니 곧 돌아갔다.
  "대사님, 이제 대비전으로 드셔야 합니다."
  갖바치는 삿갓을 목 뒤로 넘기고는 말했다.
  "이곳이 대비마마께서 계시는 곳입니까."
  "그렇습니다."
  숲이 가까운 대비전 주위는 벌써 어둑어둑했다. 어둠이 숲속에서 먹물이 번지듯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어린 궁녀가 대비전 안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대비마마께서 듭시라 하옵니다."
  갖바치는 상궁을 따라 대비전 안으로 들어갔다. 어둑하고 칙칙한 복도 안에는 궁녀들이 대비의 지시를 기다리는 듯 모두들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대비가 손님을 맞이하는 방은 등마다 불이 켜져 환했다. 불빛을 받고 있는 대비의 얼굴에 자애로운 미소가 어렸다.
  "대사, 어서 오시오."
  "대비마마, 강녕하시옵니까."
  "최 상궁을 통해서 대사님의 법문을 간간히 들었소만 이렇게 직접 뵈니 기쁘기 한량이 없소."
  "천한 소승이 감히 마마의 가마를 타고 궐 안으로 들어왔사옵니다. 어찌 이 은혜를 잊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불은(佛恩)이 망극하옵니다."
  "그래, 저녁공양은 잘 하셨습니까."
  "대비마마, 소승은 오후불식 중이라서."
  "그게 무슨 뜻이오."
  그러자 최 상궁이 당황하여 말했다.
  "대사님께서는 하루 한 끼만 공양한다고 하옵니다."
  "난 또 그것도 모르고 대사의 수행을 방해할 뻔했구려."
  "아니옵니다. 그래서 더욱 저녁공양을 잘했사옵니다."
  이번에는 대비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좀 전에는 공양을 하지 않았다고 하시고, 지금은 공양을 잘했다고 하시니 이 늙은이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구려."
  최 상궁이 다시 나서 대비에게 말했다.
  "수행자에게는 배고픈 중생의 배를 불리는 것이 참된 공양이라 하옵니다."
  "배고픈 중생이라."
  갖바치가 합장하며 말했다.
  "대비마마, 중의 공양은 이러하옵니다. 중생이 추위에 떨고 있으면 춥지 않게 온기를 주는 것이 중의 참된 공양이고, 중생이 배고파하면 배고프지 않게 밥을 주는 것이 중의 참된 공양이옵니다. 소승은 마침 오후불식 중이라 대비마마께서 내리신 저녁공양을 배고파하는 가마꾼들에게 주었사옵니다."
  대비는 눈을 감고 갖바치의 말을 음미하더니 다시 미소를 지었다.
  "오호라, 부처님의 자비를 여기서 다시 보는구려. 법당에만 부처님이 있는 줄 알았는데 바로 여기에 있는 그대가 부처이구려."
  "대비마마, 소승은 부처가 아니옵니다. 다만 부처를 닮고자 하는 도(道)가 일천한 수행자일 뿐이옵니다."
  그러나 대비는 갖바치의 첫마디에 매료되어 고개를 흔들더니 중얼거렸다.
  "나 혼자 듣기에 정녕 아까운 법문이오. 우리 주상께서도 대사의 법문을 듣고 나라를 다스린다면 백성들이 하늘처럼 받들 것이 틀림없겠소."
  "과찬이옵니다."
  "그렇지 않겠소. 백성들이 추위에 떨고 있으면 임금은 백성들의 몸을 녹여주어야 하고, 백성들이 굶주려 있으면 임금은 백성들의 배를 부르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소. 나는 그것이 참된 임금이라고 생각하는데 대사의 생각은 어떻소."
  "소승도 그러함이 성군이 되는 길이라 생각하옵니다. 불도는 부처가 되는 것이 목적이고, 유도는 군자가 되는 것이 목적이겠으나 다만 빈도의 소견으로는 유도는 지나치게 배운 자들의 수신에만 기울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드옵니다."
  갖바치가 거침없이 유도를 비판하고 있었으나 대비는 오히려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불도가 깨우치지 못한 중생을 위한 도라면 유도는 천도에 살고 죽는 선비를 위한 도(道)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유도를 숭상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벼슬하지 못한 양인들과 천민들만 불쌍합니다. 이 늙은이는 백성들을 춥지 않게 하고 배고프게 하지 않는 정치가 으뜸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대비는 중종반정 이후 조정에 끊임없이 일고 있는 사건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나라 다스리는 일에 물러서 있는 대비였지만 그 맥을 분명하게 짚고 있었다. 대비는 유민들이 여기저기서 굶어죽고 있는데 공론을 일삼는 선비들에게 불만이 많았으므로 갖바치에게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었다.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는 대비마마가 대궐 안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이 소승은 참으로 안심이 되옵니다. 대비마마의 심덕(心德)이 어찌 전하와 대소신료들에게 미치지 않겠습니까."
  "대사에게 고백하건대 나는 이 대비전을 법당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갖바치는 대비전을 법당이라고 말한 대비를 향해 합장했다. 대비의 불심은 후궁들에게도 미칠 것이 분명했다. 대비는 연산주가 불교를 박해한 지난 일을 거론하며 몹시 안타까워했다.
  "나는 인과응보를 믿습니다. 불교를 핍박한 연산주가 결국 폐주가 된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제 서울에는 절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궐에서 가장 가까운 절은 과천의 청계사뿐입니다. 이게 다 폐주가 저지른 패악입니다."
  "하오나 마마, 절을 폐한 것이 어찌 패악이 아니겠습니까만 또한 중들이 저지른 업보이기도 하옵니다. 신라 시대 이후 원효와 의상 같은 고승도 많았지만 또한 사리사욕과 권력을 탐한 승냥이 같은 요승(妖僧)들도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들도 지탄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렇습니다. 대비마마, 지금 불도들이 받는 박해는 업보에 불과하옵니다. 그러니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듯 묵은빚을 갚듯 묵묵히 견딜 줄도 알아야 하옵니다."
  "대사의 말씀은 어찌 그리 구구절절 옳습니까."
  대비는 최 상궁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최 상궁이 문 안의 궁녀에게 뭔가를 지시했고, 곧 이어 두 명의 후궁이 들어왔다. 갖바치는 후궁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말했다.
  "대비마마께서 청계사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그나마 전등(傳燈)의 불이 꺼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늙은이가 불도를 얼마나 알겠습니까. 주상의 건강을 염려해서 최 상궁을 대신 보내 축원하고 기도를 하는 것이지요."
  그러자 윤지임(尹之任)의 딸로서 궁에 들어와 대비의 마음을 잘 헤아려 어여쁨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후궁이 말했다.
  "대비마마께서 권면하지 않으셨다면 소첩은 아직도 불도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을 것이옵니다. 부처님과 인연 맺어준 대비마마께 늘 감사드리고 있사옵니다."
  갖바치는 곧 <화엄경>을 펼쳐놓고 법문을 시작했다. 법문의 첫머리는 <화엄경>의 십행품을 예로 들었다.
  "대비마마의 저녁공양을 잘 받은 날이니 부처님 말씀을 빌려 회향하겠습니다. <화엄경> 십행품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살은 평등한 마음으로 자기가 지닌 물건을 남김없이 모든 중생에게 널리 베푼다. 베풀고 나서 뉘우치거나 아까워하거나 대가를 바라거나 명예를 구하거나 자기 이익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모든 이웃을 구제하고 이롭게 할 뿐이다. 모든 성인들이 쌓은 행을 배우고 생각하고 좋아하며 몸소 실천하고 남에게 말해 이웃에게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금강경>을 보면 부처님은 이렇게 또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살은 무엇에 집착해 보시해서는 안 된다. 즉, 형체에 집착함이 없이 보시해야 하며,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감촉이나 생각의 대상에 집착함이 없이 보시해야 한다. 이와 같이 보시하되 보시했다는 생각의 자취마저 없어야 한다.>
  
  "중국 양나라 무제는 늘 가사를 걸치고 불경을 강설했던 황제로 불심천자(佛心天子)라고 불렸습니다. 그런 양무제가 천축에서 온 달마대사를 만나 '짐은 절을 세우고 경을 사경하며 백성들에게 중 되기를 권장했소. 그런 나에게 무슨 공덕이 있는 것이오.' 하고 묻자, 달마대사가 '아무 공덕이 없소(無功德).'라고 말했다는데 왜 그런 줄 아시겠습니까.
  양무제가 어이가 없어 달마대사에게 '무엇이 불교의 가장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하고 묻자, 달마대사는 '텅 비어 있어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소이다(廓然無聖).'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에 양무제가 다시 '지금 짐 앞에 있는 분은 누구란 말이오.'라고 다그치자 달마대사는 '모르겠소.'라고 대답하고는 어전(御前)을 떠났다는 얘기가 선가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비마마께서는 양무제의 물음에 대한 달마대사의 대답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 대답이 바로 <화엄경> 십행품에 있고, <금강경>에 있다는 것을 아셔야 비로소 보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갖바치의 법문은 삼경이 돼서야 끝이 났다. 밤이 깊었지만 승려가 대비전에서 머물 수는 없었다. 아무리 대비의 명이라도 그것만은 궁궐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갖바치는 다시 대비의 가마를 타고 궐문을 빠져나가야 했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내금위 숙직대장과 액정서 숙직별감이 가마가 대비의 사가로 갈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놓았기 때문에 갖바치가 대궐을 빠져나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갖바치는 또 다시 최 상궁과 궁녀들의 안내를 받아 대비의 사가 쪽으로 갔다.
  갖바치가 박경의 옛집에 도착한 것은 삼경이 지나서였다. 초저녁부터 드러누운 양팽손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갖바치는 바로 잠에 들지 않고 불심이 깊은 대비를 위해 큰소리로 독경을 했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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