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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와 이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9장 끊이지 않는 역모<48>

초설은 역과 복시에 합격한 한천을 위해 늦으나마 축하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런 저런 일로 미루다 장령 신복의(辛服義) 옥사 사건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에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다. 한천도 이제는 명경을 떠나 박경의 옛집에서 살고, 갖바치는 금강산으로 다시 입산하여 정진 중이었다.
  초설은 명경 출입이 뜸해진 심정도 불렀다. 조광조 동지들에게는 한천이 돌아다니며 소식을 전했다. 초설은 한천이 좋아하는 소옥이도 불러 잔치상을 보게 했다. 당연히 좌장은 나이가 많고 벼슬을 하고 있는 심정이 맡았다. 퇴청한 심정은 일찌감치 명경에 들어 그동안 관의 일로 바빴던 탓에 초설과 소원했던 회포를 풀었다.
  "역모가 끊이지 않으니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소. 김공저 역모에다 이과의 역모에 최근에는 신복의 역모까지 연이어 일어났으니 조정에는 늘 비상이 걸려 있었던 것이오."
  "신복의 어른은 그럴 분이 아니옵니다. 나으리께서는 이번 사건까지 역모로 보는 것이옵니까."
  "역모로 보기보다는 옥사(獄事)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소만 이번에는 공기가 좀 다르긴 했어요."
  "무엇이 다르다는 것이옵니까."
  "이과 역모 사건 때는 반정 공신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연루된 자들을 때려잡더니만 이번에는 임금님께서 나서서 사건을 확대시키는 것 같아서요."
  "그렇습니까."
  "주저주저하던 임금님이 나서 고문을 해도 좋으니 끝까지 국문하라고 했소. 그러니 잡혀온 죄인들은 고문을 받다 못 견디고 사소한 것을 부풀려 말하고 심지어는 없는 얘기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중종은 무슨 일인지 추관들에게 고문까지 주문했다. 주리를 틀어서도 자복하지 않으면 이미 국법으로 금지된 불에 지지는 당근질까지 하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어찌 보면 역모 사건을 오히려 역이용해 왕권을 강화시키고 싶은 의도를 숨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가벼운 죄를 침소봉대하여 사람 목숨을 해치는 것은 임금으로서 할 도리는 아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왕위에 오른 중종도 차츰 권력의 속성에 물들어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때 한천이 들어와 심정에게 인사를 했다.
  "호군 나으리, 강녕하시옵니까."
  "아, 자네가 저번 역과 복시에 급제했더구먼. 축하하이."
  초설이 물었다.
  "손님들은 초저녁이 지나서야 오실 것이다. 어서 나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거라."
  "네, 누님. 소옥이도 와 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천은 소옥이와 함께 있고 싶어 바로 방에서 나왔다. 소옥은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느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명경의 여인들과 섞여 있으니 한천은 다가가지 못하고 먼 발치에서 소옥에게 눈웃음을 보내곤 했다. 소옥이도 한천의 시선을 눈치 채고는 가끔씩 눈길을 돌려 눈을 찡긋거려 주었다.
  한천은 소옥을 박경의 옛집으로 맞아들여 함께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갖바치를 증인으로 삼아 혼례를 치르고 싶다는 생각에 몸이 달아오르기도 했다.
  심정은 신복의 옥사 사건을 자신이 본대로 초설에게 얘기해 주었다. 초설은 신복의가 장령으로 승진했을 때 명경에서 축하연을 연 바 있으므로 심정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 능지처참의 극형을 받아 죽은 신복의의 영가라도 천도재를 지내 극락 왕생시켜주고 싶었다. 지난번에는 갖바치에게 부탁하여 박경의 영가를 위해 그리 했던 것이다.
  사정전에는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 홍경주, 신윤무, 박영문 등이 중종의 부름에 부복하고 있었다. 중종이 신복의 사건을 보고 받고는 아침 경연 후 대신들을 불러들였던 것이다.
  "이번 사건을 모두 다 온당치 않게 여기고 있을 터이니 경들은 툭 털어놓으시오. 또한 그 죄를 엄격히 다스려야 할 것이오."
  그러자 박원종이 말했다.
  "어떻게 감히 숨기겠습니까. 이번 사건을 함께 아는 사람은 유순정, 홍경주, 성희안입니다."
  "누가 어서 말해보시오."
  이에 유순정이 나서 말했다.
  "신복의는 신의 젊었을 때 벗입니다. 지난여름에 복의가 신의 집에 와서 이런 의견을 말하였습니다."
  유순정은 신복의가 자신에게 했다는 말을 소상하게 기억하며 말했는데, 임금의 병을 거론한 것이었으므로 듣기에 따라 수상쩍고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나라를 안정시킨 공에 대해서는, 위태로웠던 나라를 안정시켰다 하여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는데 지금은 여론이 그들을 헐뜯고 있으니 정국공신이 된 사람들은 이런 여론을 알고 변란을 막아야 할 것이다.
  폐주 때부터 비결(秘訣)의 얘기가 나돌아 갑년, 을년에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인년, 묘년의 일을 알만하고 진년, 사년에는 성인이 일어나며 오년, 미년에는 낙을 즐기게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풀면 갑년, 을년이란 갑자년과 을축년이고 인년, 묘년의 일을 알만하다는 것은 나라를 안정시킨 일이며 진년, 사년에 성인이 일어난다는 것은 전하가 병인년에 임금의 자리에 올랐지만 무진년에 와서야 황제의 고명을 받아 정식으로 임금이 되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성인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간사한 무리들이 임금의 몸에 병이 있다는 것만 알고 이런 요사스런 말을 퍼트린 탓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니 정국공신이 된 사람들은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중종은 '임금의 몸에 병이 있다는 것을 퍼트린 사람들'이란 말에 머리끝이 주뼛거렸다. 누군가가 왕권을 흔들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종은 의중을 숨기고 유순정의 얘기를 마저 들었다.
  "신복의 생각은 신으로 하여금 떠도는 얘기를 알게 하려는 것뿐이었는데, 신은 이 말을 듣고 놀랍고 두려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음모가 어쩌다가 실수로 말끝에 나온 얘기가 아니므로 만약 보고한다면 사람들의 마음이 동요할 것이어서 곧 성희안에게 말하기를 '마땅히 보고해야겠으나 조정이 불안해질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성희안은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화가 자신에게 미칠 수 있으므로 방어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순정이 신에게 말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예로부터 큰일이 있은 뒤에는 이러한 무리가 있게 되고, 그 무리를 형장으로 다스리지 않고 저절로 안정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신 등은 일이 되어가는 형편을 보려고 우리끼리만 의논하고 즉시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보고하지 않는 이유를 홍경주도 말했다.
  "신은 이 말을 듣고 성희안과 의논하기를 '복의는 순정의 젊었을 때 벗이라 하여 다만 생각한 바를 말하였을 뿐인데 만약 무뢰배들이 실없이 떠든 말을 가지고 변이 났다고 보고한다면 조정이 불안스러울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즉시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박원종은 자신이 아침 경연이 끝나고 나서 신복의 사건을 조금 들춘 것은 중종이 얘기하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도 이 일을 들은 지가 오래나 선비들에게 화가 미치고 사람들의 마음이 동요할 것 같아서 상세히 알아보고 보고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침 경연에서 정사의 폐단을 논의하다가 우연히 당파라는 말을 꺼냈더니 곁에서들 놀라며 신더러 말을 하도록 몰아대고 전하께서도 말을 하라고 하기에 신이 하는 수 없이 보고하였습니다."
  박영문까지 가세하며 말했다.
  "복의는 신과 과거시험에 함께 합격한 벗입니다. 이전에 어느 날 밤 신의 집에 와서 말하기를 '나라를 안정시킨 문제에 대하여 옳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있으니 너는 삼가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가 한 말이 순정이 보고한 것과 같습니다."
  중종은 마음이 몹시 불편했으나 그것을 숨기고 말했다. 대신들의 의중을 떠보기 위함이었다.
  "이 문제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으니 신문하지 않는 것이 어떤가."
  그러나 대신들은 풋내기 임금인 중종에게 자신의 속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중종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는 중종의 마음에 드는 말을 했다. 박원종이 먼저 말했다.
  "복의가 만약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면 그 사람의 죄는 앞으로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신문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평상시 정사 때 시비하는 것도 신문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하물며 임금에게 관계되는 것에 대해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만약 신문한다면 사람들이 불안하지 않을 것인가."
  "만약 신 등의 문제를 말하는데 그쳤다면 응당 신문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전하에게 관계되는 말을 한 만큼 신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의를 데려오게 하여 그 문제를 순순히 물어보고 만약 숨기는 것이 있으면 법대로 신문해야 할 것입니다."
  중종은 즉시 신복의를 불러와 그의 얘기를 들었다.
  
  "날자는 잘 기억되지 않습니다. 신의 처삼촌인 은정부정 옥산과 평고부정 신 등이 신에게 말하기를 '우리 형제는 나라를 안정시키던 날 3대장의 지시를 받고 전하의 사저에 가서 병조참지 유경과 함께 대문을 지켰으니 그 공이 작지 않다. 나라를 안정시킨 공신록에 들 수 있는데도 원종공신으로 내리었고, 당상관으로 오른 지 3년이나 되었는데 하루아침에 고쳐버렸다. 3대장에 대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초기에는 사람들이 모두 그 의리를 두고 탄복하였는데 이제 와서는 공을 고르게 평가하지 않으므로 모두 옳지 않게 여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어느 날에는 동청례가 신의 집에 와서 말하기를 '폐주가 대궐을 나설 때 나도 공을 세웠으니 나도 나라를 안정시킨 정국 공신록에 오를 수 있다. 그런데도 원종공신으로 떨어지고 한 품계를 올려 받았던 것도 이번에 깎이었으니 이는 3대장이 공을 잘못 평가한 것으로 사람들이 모두 원망한다. 그리고 임금에게 병이 있어 올해나 내년에는 액운이 들어 종친들은 저마다 딴 마음을 먹고 있는데 사천수는 화살촉을 만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중종은 신복의의 말을 더 듣고 난 후 정색을 하며 대신들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친구들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변고에 관한 문제이다. 그가 '종친들이 저마마 딴마음을 먹고 있다'고 하였으니 어찌 사천수뿐이겠는가. 빈틈없이 신문할 것이다."
  동청례가 먼저 대궐 뜰로 붙들려와 추관들에게 신문을 받았다. 사천수가 무슨 마음으로 화살촉을 만들었는지가 초점이었다. 그러나 동청례는 주리를 트는 고문 속에서도 사냥을 좋아하는 사천수가 사냥에 쓸 화살촉을 30개 정도 만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중종을 어찌하려고 화살촉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신복의가 동청례의 얘기를 잘못 들었거나 동청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건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종친들이 공신에 불만이 있어 저마다 딴마음을 품고 있던 와중에 사천수가 사냥에 쓸 화살촉을 만들었을 따름인데, 국문하는 추관들은 '종친들이 딴마음을 먹고 임금을 음해할 목적으로 화살촉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몰고 갔다.
  주리를 틀고 당근질을 하니 동청례와 신복의의 공술 내용은 차츰 또렷하게 달라졌다. 서로가 살 길을 찾아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공술하기 때문이었다. 동청례가 중종의 수명을 걱정하는 신복의를 위해 소경인 점쟁이를 찾아가 중종의 점을 부탁한 일이 있는데, 그때 점쟁이 박종선은 '애당초 액운이란 없고 좋다'는 점괘를 들었다고 동청례는 주장했고, 신복의는 동청례가 '전하에게 올해나 내년에 액운이 든다고 하였다'고 알려주었다고 주장했다.
  서로의 말이 갈리는 것은 누군가가 거짓말을 한다는 증거였다. 소경 박종선은 혹독한 고문을 받고난 후 동청례에게 불리한 공술을 또 하나 했다.
  
  "7월 초사흗날 동청례가 나를 불러 말하기를 '폐주가 대궐에서 나갈 때 공로가 적지 않았으나 등용되지 못하였고, 또 대간들의 논박에 의해 낮은 벼슬로 떨어졌으니 몹시 울적하다. 그래서 고향을 돌아가 때를 기다렸다가 나라를 해치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대답하기를 '전하에게는 기사년과 경오년에 액운이 들 것이다. 첨지는 왜 이런 말을 하는가. 나라에서 안다면 첨지에게 말할 수 없는 화가 미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중종은 신복의 문제를 이렇게 결론을 내리며 정리했다.
  "생각하건대 나는 하찮은 몸으로 외람되게 큰 위업을 이어받은 뒤로 하는 일들이 위아래로 거슬리고 은혜와 형벌이 신하와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할까 언제나 밤낮으로 근심하고 깊은 못가에 서서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더욱더 조심함으로써 충성과 효성스러운 풍속을 이루고 태평스러운 정사가 되기를 기대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반역한 신하인 신복의, 동청례 등이 불순한 마음을 품고 패거리를 두어 변란을 일으키도록 부채질하며, 요사스러운 소경의 비결과 점괘를 들며 화가 되고 복이 된다는 둥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하려고 했다.
  그 죄악은 사납고 몹쓸 새나 짐승보다 더하고 그 죄상은 귀신이나 사람들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 이제 주모자인 복의와 청례는 사지를 찢어 죽이고 처자는 종으로 삼고 가산을 몰수하며, 요사스러운 소경 박종선, 김상좌, 정양귀는 참형에 처하고, 그 나머지 이유청은 강진에, 평고부정 신은 해남에, 은정부정 옥산은 동래에, 송산부정 건은 곤양에, 고안정 정은 고성에 각각 귀양을 보내겠노라."
  
  심정은 초설에게 무언가를 더 얘기하려다가 손님들이 몰려왔으므로 입을 다물었다. 김식과 김구, 김정, 기준 등이 밖에서 만나 온 듯 무리를 지어 방으로 들어왔다. 심정이 한천에게 물었다.
  "정암은 연락이 안 되었는가."
  "소식을 전했습니다. 허나 몸이 불편하여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정암이 빠져 있으니 방이 텅 빈 것 같아."
  조광조가 오지 않은 것을 누구보다 아쉬워하는 사람은 초설이었다. 초설은 심정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초설이 조광조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 못마땅한 얼굴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심정이 조광조를 찾고 있음은 좌장으로서 허세를 부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식이 심정의 마음을 꿰뚫어보고는 한 마디 했다.
  "정지 선배님께서는 정암보다는 초설이를 더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노천 아우뿐이라니까. 하하하."
  초설은 금세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방안의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말았다.
  "말씀 잘 하셨습니다. 선배님의 웃음소리를 오랜만에 듣습니다. 박경을 죽이고 나니 행복하신 모양이지요."
  "이 사람이, 그래서 우리 집으로 오던 발길을 뚝 끊어버린 게로구먼. 섭섭하이."
  "섭섭할 게 뭐가 있습니까. 나는 이미 예전에 알던 심정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습니다. 고변해서 출세하기를 좋아하는 사람과는 함께 가기가 싫습니다."
  김식이 술 한 잔도 마시지 않고 일어서 나가버리자, 한천의 축하연 자리는 시작부터 파장이 돼버렸다. 초설이 나가 김식을 붙들고 통사정을 해보았지만 김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명경을 떠나버렸다.
  심정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노천이 어려울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건만 허사로군. 나와 함께 가기가 싫다고 했던가. 노천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모르고 있군. 저 사람은 아직 거칠어. 세상에 쓸모가 있으려면 더 다듬어져야 할 것이야."
  김정과 김구 그리고 기준도 멋쩍어 하며 일어서 나갔다. 한천은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으리, 죄송합니다. 저를 축하해 주려고 오셨다가 낭패를 당하시니 제가 죄를 진 듯하옵니다."
  "아닐세. 나는 이보다 더한 능멸도 당해 봤다네. 사람은 할 말을 참을 줄도 알아야 해. 모든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뱉어버리면 이 세상은 어찌 되겠는가. 난장판이 되지 않겠는가. 자네는 오늘 축하의 술잔을 받지는 못했지만 대신 인생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게."
  "이해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저 자들은 뻣뻣한 막대기처럼 반드시 부러지고 말 사람들이지. 부드러운 혀와 단단한 이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오래 가는가."
  "부드러운 혀입니다."
  "명심하게. 내가 이렇게 살아남은 것은 혀를 잘 간수하며 살았기 때문일세. 저 자들은 반드시 부러지고 마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야. 그것을 화(禍)라고 부르지. 그러고 보면 화는 인간이 불러들이는 것이지 화가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네."
  심정은 갑자기 야릇한 표정으로 바꾸더니 자작으로 술을 한 잔 더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심정이 나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천은 달려가 말 위에 탄 심정을 향해 머리가 땅에 닿을 듯이 절을 했다. 김식에게 받은 수모를 노련하게 넘기는 심정이 왠지 대단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한천이 보기에는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그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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