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갖바치의 기나 긴 염불은 양팽손의 새벽잠을 깨우고 말았다. 갖바치는 양팽손을 배려하여 낮은 목소리로 웅얼웅얼 <법화경>을 염불하고 있었데, 양팽손이 몇 번이나 몸을 뒤채다가 눈을 뜬 것이었다. 양팽손은 갖바치의 염불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양팽손은 누군가가 자신을 깨우기에 눈을 뜬 것도 같았다.
"나를 깨웠소이까."
"염불을 하고 있었소."
갖바치는 주로 화두를 들고 좌선을 해 왔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염불삼매에 빠져 밤을 새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을 선가에서는 염불선(念佛禪)이라고도 했다.
"잠을 자지 않는 수행법도 있소이까."
"잠을 자지 않고 좌선을 하거나 염불을 하는 것도 수행이오."
이미 먼동이 터오는지 방문은 쪽빛이 번지는 듯 환해지고 있었다. 양팽손도 어린 시절부터 새벽 일찍 일어나 바르게 앉아서 사서삼경을 읽는 습관이 있었으므로 갖바치의 염불 소리에 잠을 깼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갖바치는 양팽손에게 사과했다.
"잠을 깨워 미안하오."
"아니오. 일어날 시각이었소."
양팽손은 밖으로 나가 세수를 하고 다시 들어왔다. 개울가로 나가 늘 찬물로 세수를 해 왔으므로 따뜻한 물은 필요 없었다. 찬물로 이마를 탁탁 치면 잠이 달아나면서 정신이 번쩍 들곤 했던 것이다. 멀리서 새벽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것을 무엇이라 하오."
"장좌불와(長坐不臥)라고 하는데 반드시 잠을 자지 않는 것은 아니지요. 눕지만 않을 뿐 앉아서 잠시 눈을 붙일 때도 있으니까 말이오."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런 수행을 하는 것이오."
"잠귀신(睡魔)으로부터 항복 받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오. 잠귀신에게 휘둘려서야 인간을 인천(人天)의 사부(師父)라고 할 수 있겠소."
양팽손은 갖바치에게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기운 같은 것을 받았다. 공부를 하다보면 자신을 가장 괴롭혔던 것이 잠이었는데, 잠귀신을 극복했다고 하니 그 점만으로도 대단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양팽손은 간밤 동안 갖바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더 궁금했다.
"대비전에서 대비마마를 뵈었습니까."
"물론이오. 대비전에서 법문을 하였소. 그 자리에는 두 분의 후궁도 있었소."
"그곳에서 불도를 얘기하였다는 말입니까."
"믿기지 않겠지만 대비전에 계신 분들은 모두 불심이 깊은 것 같았소."
양팽손은 갖바치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유도를 숭상하는 나라에서, 그것도 불도를 배척하는 나라에서 대비가 불심이 깊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유도를 믿는 나라에서 그것도 대궐 깊숙이 계신 대비마마께서 불도를 신봉하다니 난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소."
갖바치는 어리둥절해 하는 양팽손을 보더니 크게 웃어젖혔다.
"허헛헛."
"내 말이 우스운 것이오."
"우습다마다요. 대비마마께서는 대비전을 법당이라고까지 말씀하셨소."
"승려가 궐에 들어간 것만도 불가사의한 일인데 대비마마께서 대비전을 법당이라고 했다는 말입니까."
양팽손은 거침없이 할 말을 다하는 봉두난발의 갖바치에게서 귀기(鬼氣)가 전해져 등골이 오싹하기조차 했다. 대간들이 아는 날에는 갖바치는 국법을 어긴 죄로 극형을 면치 못할 것이었지만 그는 아무 것도 숨김없이 말하고 있었다.
'아, 알 수 없는 일이구나.'
양팽손은 속으로 탄식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기가 차면 말이 나오지 않는 법이었다. 그러나 갖바치 같은 대담한 승려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갖바치처럼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했던 승려가 문득 떠올랐다.
양팽손이 12세 때 능주에 있는 천년 고찰 쌍봉사로 들어가 독학할 때였다. 당시 쌍봉사는 선종 사찰로서 여러 명의 승려가 좌선을 하며 정진하는 중이었는데, 하루는 한 늙은 승려가 선방의 승려들을 미친 듯이 죽비로 후려쳐댔다. 선방 승려들은 매에 쫓기는 닭처럼 혼비백산하여 선방에서 나와 도망치기에 바빴고, 그때 양팽손은 절 입구인 돌다리 위의 삼청각(三淸閣) 그늘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늙은 승려는 양팽손에게도 쫓아와 죽비를 들어 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양팽손은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삼청각 위로 올라 옛 선비의 시를 큰소리로 외웠다.
시냇가 높이 지은 교당(橋堂)이여
삼청각 현판 글씨 또한 시원하다
못 가운데 비친 달 고기들의 거울이요
구름 걷힌 산마루에 학은 둥지에서 노닌다
금원에 끼는 안개 항상 상서롭고
옥동의 솔바람은 언제나 시원하다
난간에 기대어 물그림자 굽어보니
낙화도 유정인 양 물결 따라 가더라.
橋堂別構大溪間 揭號三淸快眼看
月照潭心魚鏡淨 雲收嶺上鶴樓寬
金園宿霧常呈瑞 玉洞松風每送寒
憑橄更觀簷下水 洛花有意逐微瀾
늙은 승려는 양팽손이 외우는 시를 다 듣고 나더니 고개를 길게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인 것은 양팽손의 태도가 어린 나이답지 않게 의연했고, 시를 낭송하는 그의 목소리는 삼청각 아래로 소리치며 흐르는 개울물처럼 청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대는 누구신가."
"묻는 화상은 누구십니까."
"보잘 것 없는 운수승이오."
"소년은 유도를 공부하고 있는 양팽손이라 하오."
양팽손은 자신이 양반의 신분임을 내세워 늙은 승려에게 극존칭은 피해서 말하고 있었다.
"절은 중들이 불도를 닦는 곳인데 어찌하여 그대는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이오."
"주지승의 허락을 받고 내 먹을 것을 가져와 숙식하고 있으니 화상은 더 이상 내게 말하지 마십시오."
"허허허. 방금 송(誦)한 시는 그대가 지은 것인가요."
"아니오. 일찍이 노봉(老峰) 선생이 쌍봉사에 들러 지은 시입니다."
"노봉이라 함은."
"고려 명종 때의 김극기(金克己) 선생이오."
양팽손이 외운 시는 삼청각의 여덟 기둥에 주련으로 걸려 있었다. 김극기는 문과에 급제했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일생 동안 고려의 산하를 주유하며 시와 문장을 남긴 방외지사(方外之士)로 쌍봉사에도 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양팽손이 늙은 승려에게 물었다.
"화상은 무엇 때문에 절의 승려들에게 죽비를 휘두르는 것입니까."
"안거 동안 좌선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다면 공양간의 양식을 축낸 밥도둑이 아니겠소. 그래서 죽비로 경책을 한 것이오."
"공부하여 무엇을 얻는다는 것입니까."
"불도들이 말하는 공부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오. 내 몸뚱어리를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지요."
"불도는 오직 자기만 알려고 하는 이기적인 공부인 것 같소. 허나 우리 유도는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이니 공부하는 포부가 다를 수밖에 없겠소."
그러자 늙은 승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기를 밝히려고 함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버리려고 하는 것이오.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찌 중생을 내 몸처럼 돌보겠소. 그러니 불도 또한 결국에는 유도와 같은 길에서 만나게 되는 진리라고 할 수 있소."
비로소 양팽손은 공경의 예를 표시하여 오른손 위에 왼손을 올리며 말했다.
"화상이 자기를 밝힌다 함은 유도의 수신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양팽손이 방금 보인 손모양을 공수(拱手)라 하는데 늙은 승려는 술을 마신듯 기분이 좋아져 양팽손을 치켜세워주었다.
"그대는 참으로 세상에 드문 사람이 될 것이오. 그대의 기상을 내가 살며시 시험해 보았는데 근기가 예사롭지 않소. 훗날 입신양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름이 백세에 이르고 천추에 혈식(血食)을 할 것이오."
혈식이라 함은 제삿밥을 먹는다는 뜻이니 죽은 후에도 세상 사람들로부터 추모의 정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늙은 승려는 양팽손이 겪어야 할 미래의 일까지 상세하게 일러주었다. 그러나 양팽손은 늙은 승려가 쌍봉사를 떠나자 곧 그가 한 얘기를 잊어버렸다.
그런데 양팽손은 또 다시 쌍봉사에서 만났던 늙은 승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갖바치와 봉두난발의 형상이 아주 비슷했고, 걸림 없는 행동이나 말투가 닮은꼴이기 때문이었다. 불도가 높은 경지에 이르면 비승비속이 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화상은 어느 절에 계십니까."
"백정들이 사는 낙산에 살고 있소."
"천민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부처님 세상에서는 모든 생명이 다 존귀할 뿐이오. 본래 귀하고 천한 것은 없었소. 어리석은 사람들이 귀하고 천하다고 이름을 붙여놓았을 뿐이오."
"불도는 어디서 닦았소."
"공부는 금강산에서 했소.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금강산으로 입산해 살았다면 이제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낙산으로 내려와 살고 있는 것이오. 하산하지 않았다면 정암이나 노천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오. 세상 사람들이 종종 낙산으로 보잘것없는 중을 찾아와 세상의 일을 묻고 가지요."
"정암이 제 발로 천민들이 사는 낙산을 찾아가 화상을 만났단 말이오."
"그렇소. 도가 어디 양반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잖소. 처음 만난 날 밤 정암과 나는 밤새 얘기를 나누었소. 그날 이후 정암은 나를 몇 번 더 찾아와 지음(知音)의 도반이 되었소."
갖바치가 조광조를 도반이라 함은 그만큼 그와 친숙하게 지낸다는 말이었다. 조광조에게 갖바치의 영향은 실로 컸다. 갖바치를 만나기 전에는 숨어서 유도를 닦는 것이 도학인 줄 알았는데, 차츰 고지식한 생각과 태도를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산천에 숨어서 자신을 닦는 것도 도학이요, 잘못된 세상에 하늘의 도를 바로세우는 것도 도학이라는 것을 갖바치의 법문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사심(私心)이 작용하면 재앙을 면치 못하고, 때를 기다렸다가 순리에 따라 공심(公心)으로 나서야 군자의 나라를 이룰 수 있을 것이오.>
조광조가 선뜻 벼슬길에 나서지 않는 것은 바로 갖바치의 조언대로 순리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세상이 아직 그를 부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갖바치는 세상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 바로 순리라고 조광조에게 말했던 것이다.
양팽손은 갖바치에게 물었다.
"무엇이 세상을 잘 사는 것입니까."
"나서고 물러서는 일이 순리에 어긋남이 없어야 하는 것이오."
그제야 양팽손은 조광조가 '이제 함께 생진사 시험을 보자'고 한 말의 깊은 뜻을 깨달았다.
"정암이 나에게 말했소. 과거시험을 보아 세상에 나아가자고 말이오."
"그렇소. 세상은 이제 정암의 동지들을 부르고 있소. 그것을 나는 순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오."
양팽손은 마치 새로운 스승을 만난 듯 오른손 위로 왼손을 올리며 갖바치에게 자신의 앞날을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왜 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는 그대들이 숨어서 닦은 도가 무르익어 보이고, 또 하나는 세상이 그대들과 같은 젊은 선비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오."
"세상이 젊은 선비들을 부르다니 무슨 근거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반정은 연산주의 패악을 무너뜨린 혁명이었소. 허나 반정은 백성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반정공신들을 위한 것이 되고 말았소. 애초부터 반정공신들에게는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하늘의 도가 없었기 때문이오. 그래서 반정공신들은 반정의 공치사 놀음이나 하며 재앙의 길을 걸었고, 그들로부터 소외된 자들의 역모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오.
어찌됐든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반정공신들도 생로병사를 피해갈 수는 없는 법, 이제 반정공신들도 가는 세월 앞에서는 무력하여 무성한 나뭇잎이 낙엽이 되어 흩어지듯 하나둘 병들거나 늙거나 죽어가고 있소. 어느새 세상은 숨어서 몸을 닦던 선비들이 앞장서 도가 바로 세워지는 나라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소. 그래서 보잘 것 없는 중은 정암 같은 젊은 선비들이 세상에 나서는 것을 순리로 보고 있는 것이오. "
"세상을 바꾸는 것이 순리라는 말입니까."
"난 바꾼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소. 바꾼다는 것은 피를 부르는 말이니까."
"피를 부른다고 했습니까."
양팽손은 순진한 시골 청년에 불과했다. 자신이 상경한 것은 생원시에 합격하여 훗날 입신양명하려는 데 있었지만 세상을 보고 말하는 갖바치의 주장은 차원이 달랐다.
"무엇을 바꾼다 함은 이것과 저것이 갈등할 수밖에 없지요."
"갈등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는 말입니까."
"있지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초심(初心)으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되지요. 각자 자기 자리를 알고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 피를 부르지 않는 방법이오. 사람이 만든 제도도 마찬가지지요. 연산주가 인의를 저버리고 바꿔놓은 것을 성종 때와 같이 되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모든 것들이 초심을 떠나 제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까."
"사람이 더 문제지요. 특히 반정공신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를 거부한 사람들이지요. 그러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으니 민심이 흉흉해진 것이오."
양팽손은 갖바치의 말에 공감했다. 유도의 공부도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기 위한 수신(修身)이 분명했다. 하늘의 도(天道)는 곧 사람의 도(人道)이므로 바로 그것과 계합하고자 초심으로 되돌아감이 군자의 삶인 것이었다.
김식이 아랫것을 데리고 정오 전인 사시(巳時)에 왔다. 갖바치가 막 낙산으로 떠나고 난 뒤였다. 아랫것은 식량을 지게에 지고 왔는지 입에서 허연 김을 내뿜었다. 양팽손은 김식과 구면이므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노천 형, 오래 간만입니다."
"용문사에서 내려와 서울 집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오. 정암도 이곳에서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정암은 언제 옵니까."
"용인에서 곧 올라올 것이오. 이제부터는 이 집이 동지들의 사랑방이 되겠구먼."
"정암 말고 또 누가 옵니까."
"서울에 사는 김구나 기준도 자주 들를 것이오."
"어젯밤에는 웬 화상하고 같이 보냈습니다."
"중이라니."
"봉두난발에다 덕지덕지 기운 두루마기를 입은 비승비속의 중이었습니다. 허나 도력이 높아 그와 상대하기가 벅찼습니다."
"갖바치 대사였구먼."
"노천 형도 그 화상을 알고 있었단 말이오."
"정암이나 나나 심사가 답답해지면 찾아가 뵙곤 했소."
"그렇다면 제가 그 화상을 바로 본 것이군요."
"대사가 시대를 잘못 만나 비록 낙산에서 미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그의 지혜는 밝고, 자비는 둥근 달처럼 넉넉하고 포근한 사람이오."
"대비마마께서 그의 법문을 들을 정도이니 알 만합니다. 노천 형."
김식도 갖바치가 대비전에 들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아무리 갖바치의 도력이 높다고 하더라도 대궐 안에서 대비의 비호를 받으며 불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넘어서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였다. 그러한 소식이 대궐 안팎으로 알려지면 갖바치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이 뻔했다.
"아우님. 갖바치 대사의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말기로 하십시다. 소문이 퍼지면 아우님도 고변하지 않았다고 추궁 받을 것이고 갖바치 대사의 목숨도 남아나지 못할 것이오."
"노천 형.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마나 도력이 높은 화상이 대비전을 드나들었으니 불행 중 다행한 일이 아닙니까. 허나 더 이상 대비마마께서 갖바치 화상을 만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유도를 숭상하는 나라에서 재앙을 부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식은 순진한 양팽손에게 발설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서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김식은 서울 집을 떠나 용문사 계곡에 움막을 짓고 신선처럼 사는데, 조광조도 그곳을 자주 찾는 모양이었다.
"정암이 용문사 가는 길을 알고 있소. 아우님도 언젠가 한번 들르시오. 용문사 중들이 빚은 곡차 맛이 천하의 진미거든. 하하하."
김식은 아랫것에게 주막술청으로 가서 술을 사오게 한 뒤, 용문사 승려들과 마신 곡차에 대해서 얘기를 계속했다. 김식은 용문사 승려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자신의 움막으로 곡차를 빚어 가져오도록 시킨다고 고백하기도 했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 화순군 홈페이지 바로가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