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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인(仁)일까, 자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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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인(仁)일까, 자비일까'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10장 지극한 정치로 가는 길<53>

양팽손은 꼭두새벽에 주막을 나와 한강 도선장으로 갔다. 먼동이 트려는 하늘에는 아직도 별 하나가 차갑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른 새벽이었으므로 배를 타는 손님은 적었다. 양반 옷차림의 손님 두어 사람과 큰 봇짐을 든 상인들이 몇 사람 타고 있을 뿐이었다. 포졸들도 졸린 듯 검문하는 시늉만 하고 배를 띄워 보냈다. 강바람이 차가웠지만 배가 도선장에서 점점 멀어지자 그제야 양팽손은 서울에 당도한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박경의 옛집에 조광조가 미리 와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용인의 초당에 있을까 하고 벌써부터 궁금했다. 한천이 사신을 따라 중국에 갔다고 하니 빈 집을 누군가는 지키고 있을 것 같았다. 가을 추수 전 조광조가 인편으로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자신은 진사시를 준비하고 있으니 양팽손더러 박경의 옛집에서 함께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양팽손은 뱃머리에 앉아 미소를 지었다. 조광조가 진사시를 보아 장원을 하고, 자신이 생원시를 보아 장원을 하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렜다. 생원시의 시험문제는 보통 사서(四書)에서 한 문제, 오경(五經)에서 한 문제가 출제되는데, 인생사가 그러하듯 시험도 운이 따라야 했다. 양팽손은 사서만큼은 달달 외울 정도였으니 오경은 남은 기간 동안 더 매진하지 않으면 불운이 따를 수도 있었다.
  양팽손은 문득 떠오른 <중용>의 한 문장을 외웠다. 그것도 공자의 서른세 가지 말씀 중에 가장 긴 문장을 외웠다. 양팽손은 중용의 도, 즉 하늘의 도(天道)를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노나라 애공(哀公)이 정치란 어떤 것인가 물으니 공자가 말했다.
  "주나라 문왕과 무왕의 정치사상이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그런 정치가 행해질 수가 있고, 사람에 따라 그런 정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도(人道)는 정치에 신속하고, 땅의 도(地道)는 나무에 신속한 것입니다. 대저 정치란 창포나 갈대가 자라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몸(잣대)으로써 하고, 몸을 닦는 것(修身)은 도로써 하고, 도를 닦는 것은 인(仁)으로써 합니다.
  인이란 사람이 하는 것이니 친족은 친애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의(義)란 사리에 마땅한 것이니 어진 이를 존경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친족을 친애하는 구별과 어진 이를 존경하는 차등은 예절이 탄생하는 시발점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몸을 닦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몸 닦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버이를 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버이 섬기기를 생각한다면 사람의 도리를 알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알려고 생각한다면 하늘의 이치를 알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자의 지당한 말씀에 양팽손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무릇 정치란 문왕과 무왕 같은 어진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그렇지 않고 폭군이나 어리석은 사람이 나타나면 나라는 잘 다스려지지 않는 법이었다. 그러한 예를 중국에서 찾을 것도 없었다. 선대의 왕인 성종과 연산군을 봐도 공자의 말씀은 한 치도 틀림이 없었다. 성종이 있었으므로 성종의 정치가 있었으며, 연산군이 있었으므로 연산군의 정치가 있었던 것이다.
  정치는 땅에 나무를 심는 이치와 같아서 좋은 땅에 심으면 잘 자라고, 척박한 땅에 심으면 잘 자라지 않는 것처럼 창포나 갈대와 같은 백성들은 임금이 덕이 있으면 절로 잘 다스려지는 법이었다.
  그런데 노나라 애공은 인의(仁義)의 정치를 하지 않았으므로 공자는 애공더러 사람을 얻으려면 그대 자신의 몸부터 닦으라고(修身) 말하고 있으며 몸을 닦는 데는 인(仁)뿐이라고 충고하고 있음이었다.
  양팽손은 또 다시 중얼거렸다.
  '그렇다. 인으로 몸을 닦다 보면 하늘의 도를 알 것이요, 하늘의 도를 아는 것이 중용의 도를 아는 것이 아니겠는가. <논어>에도 공자님은 인은 물과 불보다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이나 불을 좇다가 죽는 사람을 나는 보았지만 아직 인을 좇다가 죽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인을 주장함에 있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양팽손은 유도를 한마디로 인으로써 수신하는 공부라고 결론지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물과 불을 좇다가 망하곤 했다. 물과 불이란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재앙인 것이었다.
  양팽손은 뱃머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떠오른 <중용>과 <논어>의 한 문장으로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배는 어느새 나루터에 다가 서 있었다. 사공이 밧줄을 던지자 상대편 사람이 그것을 받아 말뚝에 맸다.
  날은 아직도 어둑어둑했고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불었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모닥불을 피웠다. 양팽손도 그들에게 나뭇가지를 꺾어다 주었다. 나뭇가지는 연기를 조금 내더니 활활 타올랐다. 불기운은 다리부터 온몸으로 전해져 강바람에 얼었던 몸이 서서히 풀어졌다. 그때 남루한 행색의 중년의 선비가 양팽손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디로 가시는가."
  "남소문 쪽으로 갑니다."
  "서울이 초행길인가."
  "그렇습니다."
  "나를 따라 오시게."
  "저에게 왜 친절을 베푸시는 것입니까."
  "그대가 나에게 의(義)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네."
  눈이 크고 턱이 두꺼운 선비는 너그러우나 강단을 느끼게 했다. 양팽손은 사뭇 기가 죽어 말했다.
  "도대체 어르신은 누구시옵니까."
  "그대를 보니 장차 나라의 큰 기둥이 될 것 같구먼."
  "어찌 저를 안다고 그러십니까."
  "어제 도선장에서 보았네. 그때 난 그대가 서 있던 줄에 있었지."
  "그렇다면 왜 이제 오시는 길입니까."
  "노량진에 볼 일이 있어 돌아갔다가 자고 오는 길이라네."
  선비는 어제 양팽손의 행동거지를 유심히 보았음이 틀림없었다. 양팽손은 포교의 배려로 앞줄로 새치기하여 배를 타려다 그만 두고 돌아갔던 것이다.
  "아, 그 일 말입니까. 명색이 도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박 대감의 기첩이라는 여자의 도움을 받는 것도 찜찜했고, 그보다는 내 자신이 새치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흐뭇하고 아름다운 일이었네."
  "어르신은 누구시옵니까."
  "언젠가 만나게 될 때가 있을 것이네."
  
  중년 선비의 이름은 정광필(鄭光弼)이었다. 그는 지금 연산주 때 귀양 갔던 아산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당시 그는 직제학을 거쳐 이조참의가 되었는데, 연산주에게 사냥이 너무 심하다고 간했다가 분노를 사 귀양을 갔던 인물이었다. 수모를 주는 벌로써 빗자루를 들고 귀양지의 관문(官門)을 지키도록 하였으나 그는 조금도 싫어하거나 괴로워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현감이 감동하여 고개를 숙이고 동헌을 드나들 정도였다. 귀양 갔을 때 모든 관원들이 그를 공경하고 따랐던 바 사흘 전에 아산으로 내려가 예전의 고마움을 표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의 자는 사훈(士勛), 본관은 동래, 이조판서 난종(蘭宗)의 아들이었다. 진사에 이어 문과에 급제한 후 공이 처음으로 오른 벼슬은 성균관 학유(學諭)였다. 이후 의정부 사록(司祿), 봉상시(奉常寺) 직장(直長)을 지냈는데, 작은 벼슬을 낮게 여기지 않고 직책에 충실하기를 더욱 힘쓰니, 좌의정 이극균이 눈여겨보고는 장차 정승 될 그릇으로 기대했다. 성종실록의 총재관이 된 이극균은 곧 그를 뽑아 도청(都廳)을 삼고 편집하는 일을 맡겼던 적도 있었다.
  연산주 병인년 가을이었다. 의금부의 관원들이 그를 머잖아 중형에 처하려고 갑자기 귀양지로 달려 왔으나 그는 정작 태연했다. 현감이 들판 밖까지 따라 나와 영결(永訣)하니 보는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며 전송했다.
  그러나 그는 말하고 웃는 것이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는데, 그때 누군가가 나타나 중종반정의 소식을 전하매 그를 전송하던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하며 기뻐 날뛰었다. 그래도 그는 태연하게 말할 뿐이었다.
  "이것은 종사(宗社)를 위한 대계(大計)로다."
  즉시 위로의 상이 마련되어 귀양살이 동안 단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귀한 육류(肉類)가 올라왔으나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상을 물리쳤다.
  "전 임금의 생사를 아직 확실히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연산을 경계함이 몹시 신중하여 그랬던 것인데 사람들은 그의 사려 깊은 처신을 두고 모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훗날 정광필이 정승이 된 것은 중종반정의 일등공신 성희안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희안은 누구에게나 항상 그를 입신(入神)한 경지에 오른 선비처럼 공경하여 말하곤 했던 것이다.
  "광필 같은 이는 가히 소리 없는 데서 듣고, 형상이 없는 것도 본다 하겠다."
  성희안이 힘써 천거하니 정광필은 함경감사를 거쳐 껑충 뛰어 찬성이 되었고, 이어 뒷날에는 정승에 올랐다. 그가 정승에 오르기 전, 중종이 대신들에게 정승을 천거하라 하니, 송일은 김응기(金應箕)를 천거했고, 유순도 김응기에게 뜻을 두었다. 그러나 유순은 성희안의 눈치를 보며 김응기와 정광필을 함께 천거했다. 이때 성희안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말했다.
  "오늘 정승을 고르는 데는 마땅히 광필로 하는 것이 옳고 신용개가 다음이요, 응기는 비록 맑은 금(金)이요, 아름다운 옥(玉)이나 국가의 일을 당했을 때는 어떻게 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거니와, 또 이미 지위가 중추부(中樞府)의 최고위직으로서 나라 정사를 같이 의논하고 있으니 반드시 정승 자리에 오를 것까지야 없지 않겠소."
  이는 김응기에게 정승의 길을 막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김응기에게 심각할 정도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광필을 그만큼 공경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김응기를 깎아내린 것에 불과했다.
  김응기에 대한 성희안의 평은 심한 것이었으나 누구 하나 반대를 못했다. 다만 김응기의 인품을 마음속으로만 아깝게 여길 뿐이었다. 실제로 김응기의 행동은 단정하고 신중하며 정성스러운 데가 있으며, 말을 빠르게 하거나 얼굴빛을 갑자기 변하는 일이 없으므로 일찍이 성종은 김응기를 중히 여겼던 것이다.
  
  남소문에 이르러 양팽손은 정광필에게 인사를 했다.
  "어르신, 다음에 다시 꼭 뵙겠습니다."
  "그대 같은 젊은이를 나는 좋아한다네. 그러니 함께 나랏일을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찬이십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타락했어. 부모의 권세와 재산만 믿고 고생을 해보지 않아서 그럴 것이네. 예도 없고 경(敬)도 없고 의도 없고 신(信)도 없어. 그저 지방으로 유람 다니며 놀기만 좋아할 뿐이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인으로 도를 닦으려고 항상 노력할 뿐이옵니다."
  "인(仁)으로 도를 닦는다고 했는가."
  "그렇사옵니다."
  "도를 닦는다, 그 말은 곧 하늘의 도를 실천한다는 말이지. 그 말이 어디에 나오는가."
  "<중용>에 나오는 바 공자님이 애공에게 한 말씀이옵니다."
  "그렇지.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구먼. 도로 몸을 닦고, 인으로 도를 닦는다고 했어. 그러면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되지. 하늘의 이치라는 것이 하늘의 도가 아니겠는가."
  "임금과 군자가 하늘의 도를 알고 그것을 사람의 도로 실천하면 그것이 곧 지치가 아니겠습니까."
  "하늘의 도로 몸을 닦고 오직 그것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지극한 정치라네."
  양팽손은 끝내 그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정광필은 삼정승의 다음 서열인 찬성(贊成)의 벼슬을 하고 있었지만 옷차림은 천덕꾸러기 선비 복장이었고, 시종하는 아랫것도 대동하지 않았고, 말도 타지 않는 등 초라하게 행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팽손은 정광필이 사라진 뒤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기연인 것 같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남소문까지 안내해 준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배를 타고 건너오며 우연히 <중용>의 한 문장이 떠올랐을 뿐인데, 행색이 허름한 저 선비와 바로 그 구절을 가지고 대화를 하다니 이 무슨 조화인가.'
  양팽손은 넋이 나간 듯 정광필을 뒤쫓아 갔다. 달리다시피해서 뒤를 쫓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행인들이 붐비는 저잣거리에 들어서야 단출한 남여(藍輿) 하나가 꺼덕꺼덕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여에 타고 있는 사람은 바로 양팽손이 찾고 있는 그 선비였다. 네 사람의 하인이 남여를 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신분은 높은 벼슬아치가 분명했다.
  "나으리, 몰라 뵈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양팽손은 남여 앞으로 나가 말했다. 그러자 정광필이 당황하여 남여를 멈추게 한 뒤 내렸다.
  "이보시게, 젊은이. 분명 나라는 그대를 부를 것이네. 그때 우리 다시 만나세. 그래도 늦지 않을 것이네."
  "함자를 알고 싶어 쫓아 왔사옵니다. 저는 능주 교생 양팽손이라고 하옵니다."
  "그래, 내 이름을 숨긴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네. 이름을 대면 사람들은 그때부터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더군. 그래서 그런 것이니 이해하게나. 난 정광필이라고 하네."
  양팽손은 현기증을 느꼈다. 우연히 명재상을 만나 대화를 나눈 것도 영광스러웠고, 그것보다는 명재상에게 다시 만나자고 격려를 받은 것이 가슴을 더 설레게 했다. 정광필을 알아보는 행인들이 수군거렸다.
  "찬성 나으리가 정승이 되어 나라를 다스려야 하지. 찬성이라면 종 1품의 벼슬이 아닌가. 그런데도 옷차림이 우리보다 더 초라하지 않은가."
  정광필이 시골뜨기 교생 양팽손의 손을 놓고 헤어지려 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자 정광필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들을 바로 쳐다보면서 한동안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양팽손은 그 광경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인(仁)으로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눈과 귀가 되어 보고 들어주고, 인으로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힘써 해결해 주고, 인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케 하는 것이 지치(至治)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도(道)로 수신하고, 인으로 도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지극한 정치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양팽손은 오후 늦게야 박경의 옛집에 들어섰는데 그때까지도 정광필을 만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가슴이 설렜던 이유를 표현할 길이 없었다. 양팽손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줄 조광조도 보이지 않았다. 조광조는 용인에서 아직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박경의 옛집을 찾은 사람은 조광조가 아닌 큰 삿갓을 눌러쓴 봉두난발의 갖바치였다. 걸망을 메고 있으니 승려 같기도 하고, 머리를 산발하고 있으니 백정 같기도 했다. 비승비속의 몰골로 갖바치가 들어와 삿갓을 벗으며 양팽손에게 물었다.
  "뉘신데 남의 집을 들어와 있는 것이오."
  "정암과 약속을 하고 이곳으로 온 사람이오."
  "허허. 정암이라면 용인 도학쟁이 아니오."
  "도학쟁이라니 말씀을 삼가시오."
  양팽손은 갖바치가 도학자라고 하지 않고 '쟁이'라고 하였으므로 기분이 몹시 상했다. 쟁이란 천한 공인(工人)을 말하는 것으로 도학자를 비하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정암에게 허락을 받아 이곳으로 왔소. 그러니 오늘밤은 함께 자겠구려."
  "정암에게 허락을 받았다니 무엇으로 증명하겠소."
  "이보시오, 젊은 선비. 도를 닦는다는 것은 말(言)을 닦는 것이 아니라 마음(心)을 닦는다는 것이 아니겠소. 그러니 내 말에 매달리지 마시고 나의 마음을 보시오."
  "마음을 보라고 했소이까."
  "유도의 인(仁)이나 불도의 자비나 사촌 형제 같은 것이오. 그것이 마음에 넘쳐나는데 어찌 화를 낼 틈이 있겠소. 화를 내는 사람은 마음속에 인이나 자비가 채워지지 않은 사람이오."
  양팽손은 이미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 없었다. 더구나 한 방에서 갖바치와 하룻밤을 보내야 하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자, 난 방으로 들어가 한숨 자야겠소."
  "잠을 자든 말든 알아서 하시오. 냉골일 터인데 춥지 않겠소."
  "추우면 추운 곳으로, 더우면 더운 곳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추위도 더위도 이길 수 있는 법이오. 내가 싫다고 해서 여름이 가고 겨울이 가는 것이 아니니 말이오."
  짚신을 벗는 갖바치의 발에서는 심한 악취가 났다. 양팽손은 코를 막고 참았다. 그런데 잠시 후, 방에서는 드르렁드르렁 코 고는 소리가 났다.
  '정암에게 허락을 받았다니. 그렇다면 정암과 교유가 있는 중이란 말인가. 정암이 교유할 정도라면 문식(文識)이 깊은 중이 아닐까.'
  양팽손은 마루에 걸터앉았다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방은 사람이 기거하지 않았으니 얼음장 같은 냉골일 것이었다. 양팽손은 냉기가 흐르는 아궁이에 나뭇가지를 꺾어 넣고는 불을 지폈다. 그러면서 양팽손은 피식 웃었다.
  '내가 저 무례한 사람을 위해 아궁이에 불을 들이는 것도 인일까. 불도의 자비일까.'
  얼마나 불을 지폈을까. 석양이 기울고 있었다. 한잠 늘어지게 잔 갖바치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여보시오. 이제 방이 따뜻하여 잘 만할 것인데 어디로 가시오."
  "행선지를 말하면 믿어주겠소."
  "말해 보시오. 믿을 만하면 믿어야 하지 않겠소."
  "대비전으로 가는 길이오."
  "대비전이라 했소이까, 무엇 때문에 대비전으로 간단 말이오."
  "대비는 불심이 깊은 분이오. 법문을 해달라고 대비께서 부르시니 가봐야지요. 밖에는 벌써 상궁과 궁녀들이 와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양팽손은 정광필을 만난 것보다 더 놀랐다. 중종의 어머니인 자순대비가 불도를 믿고 있다니 몽둥이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양팽손은 갖바치가 그런 몰골로 대비를 만난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 모습으로 지엄하신 대비를 뵌다는 말이오."
  "불구부정(不垢不淨), 본래 마음은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오.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리 받아들이니 그럴 뿐이지요. 그래서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하지요."
  양팽손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갖바치의 행태가 온통 의문스럽기만 했다. 천민이 어떻게 성안을 활보하고 다니는지, 그보다는 무슨 수로 감히 대비전을 들어갈 수 있는지 불가사의하기만 했다. 그러나 양팽손은 춥고 피곤하여 따뜻한 방으로 들어와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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