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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출교' 사태에서 우리의 미래를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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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고려대 '출교' 사태에서 우리의 미래를 엿보다

[기자의 눈]대학 구조조정, 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

  19일 고려대는 이 학교 학생 7명에게 개교 이래 초유의 징계를 가했다. 학교의 공식적인 기록에서 해당학생들의 자료를 말소하는 '출교' 조치를 취한 것이다.
 
  징계의 사유는 지난 5일 이 학생들이 고려대 병설 보건대 학생들의 총학생회 투표권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보직교수들을 대학본관에 억류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학생이 교수를 억류했다는 점, 또 학교 측이 학생에 대해 '출교'라는 초강경 대응을 했다는 점 등이 부각되면서 여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단지 '출교'라는 낯선 징계의 정당성 여부만이 아니다. 현재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대학 간 통합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대학 통합 과정에서 빚어지는 갈등의 양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통폐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학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올해 고려대가 3년제로 운영되는 이 대학 병설 보건대(이하 보건대)를 흡수하여 고려대의 한 단과대학으로 만들면서 비롯됐다. 고려대 보건과학대학을 신설하는 대신, 보건대 신입생 모집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대학 간의 흡수 통합은 고려대와 보건대 사이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전남대와 여수대, 그리고 부산대와 밀양대가 올해 통합됐다. 그리고 이들 대학이 모두 심각한 학내 갈등을 겪고 있다.
 
  전남대 총학생회는 지난 14일 총장실을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등록금 인상 반대와 함께 여수대와의 통합 과정에서 빚어진 부작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남대는 여수대를 여수캠퍼스로 흡수해 1대학 2캠퍼스 체제로 탈바꿈했지만, 신입생들이 대부분 광주에 있는 캠퍼스에서만 수업을 듣겠다고 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또 부산대와 밀양대가 통합돼 출범한 '통합 부산대'는 옛 밀양대에 재학 중이던 학생들에게 이미 폐교된 '밀양대' 졸업장을 수여하기로 하면서, 학생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부산대 총학생회 역시 이 문제의 해결과 등록금 인하 등의 조건을 걸고 수업 거부 투쟁을 벌였다.
 
  규모가 작은 대학 학생들을 희생하면서 진행되는 통폐합
 
  이처럼 대학 통합으로 인한 갈등은 단지 고려대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대학 통합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의 양상도 서로 닮았다. 대부분 규모가 작은 대학의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고려대와 보건대의 통합 과정에서 이런 양상이 잘 드러난다. 이번 대학 통합을 통해 보건대 교수들은 모두 고려대 교수직을 얻었다. 그런데 보건대 학생들은 고려대 학적을 얻지 못 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기존에 보건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1학년 과목을 재수강하려 할 때 문제가 생겼다. 고려대와의 통합에 따라 보건대가 신입생을 뽑지 않았기 때문에 보건대는 1학년 강의를 개설하지 않았다. 그런데 보건대 2, 3학년 학생들은 고려대 학적이 없어서 고려대에 개설된 1학년 강의를 들을 수가 없다. 보건대 학생들 중에는 재수강 등의 사유로 1학년 강의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 있는데 이를 들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단지 재수강의 문제만이 아니다. 고려대 측은 현재 재학 중인 보건대 2, 3학년 학생을 위해 2011년까지 보건대 교육과정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군 입대나 경제적인 형편 등의 이유로 휴학이 길어질 수도 있는 학생들의 경우는 미래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보건대 학생들의 처지는 더 열악해졌는데, 등록금 부담은 더 늘었다. 고려대와 같은 등록금 인상률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보건대 학생들이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김진표 부총리 취임 후 대학구조조정 시동 걸려
  

  지난해 1월 김진표 교육부총리의 취임 일성이 대학구조조정이었다. 경제부총리 출신으로 교육부총리가 된 그는 "대학 졸업생은 10년 새 2.5배 늘었지만 기업에선 쓸 만한 인재가 없어 월급을 주면서 따로 재교육시키고 있다"라며 "50개 국립대를 2007년까지 35개로 줄이겠다"라고 말했다. 대학졸업생의 수가 인구에 비해 너무 많은 데다, 그나마도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입장에 따라 교육부는 현재 800억 원의 대학구조조정 지원 예산을 운용하고 있다. 국립대와 사립대를 막론하고, 대학 및 학과의 통폐합 실적이 우수한 대학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학 통합 사례는 이같은 정책 방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대학 간 통합이 교육부총리의 공언처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까지 통합이 확정된 국립대는 5곳에 불과하다. 하지만 교육부가 대학구조조정을 교육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제쳐둔 것은 아니다.
 
  지난 4일 교육부는 대학구조조정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한 정책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앞으로 정부는 대학에 대한 모든 재정 지원을 구조조정의 성과와 연계한다. 기존의 대학구조조정 지원 예산 외에도 bk21 2단계 사업,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사업, 수도권 대학 특성화 사업 등에 배정된 예산도 대학 구조조정의 성과에 따라 차등 분배하겠다는 것이다.
 
  경제계도 이에 호응하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8일 발표한 '수요자 지향형 대학교육 개혁방안'을 통해 시장수요의 변화에 따른 보다 적극적인 대학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대학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최근의 고려대 사태와 같은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대학 구조조정, 반드시 필요한 일이되 교육의 한 과정이어야
  
  최근 고려대에서 벌어진 갈등이 재연되는 것을 막기위해서는 교육부가 추진하는 대학구조조정의 방향에 대해 차분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저출산과 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라 대학의 수와 정원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대학 졸업자의 공급 과잉 상황을 인정한다면 대학구조조정에 대해 반대하기 힘들다.
 
  지난해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가 교육부총리에 임명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대학구조조정을 잘 이끌어나가는 데는 경제관료 출신이 적임자라고 여겨졌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구조조정이 산업구조조정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기업을 구조조정하는 것은 경제의 영역이지만, 대학을 구조조정하는 것은 교육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기업간 인수합병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산업구조조정의 목적은 분명하다. 공급 과잉을 해소해서 시장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과는 경제 지표를 통해 검증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구조조정의 목적은 복합적이다. 대학의 역할은 기업의 역할보다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김 부총리는 "대학 졸업생은 10년 새 2.5배 늘었지만 기업에선 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들었다. 하지만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공급하는 것은 대학의 수많은 역할 중 하나일 뿐이다.
 
  김 부총리가 언급한 것처럼 최근 10년 사이 대학 졸업생이 크게 늘었다. 그것은 노동시장에 대졸 인력이 과잉공급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대학교육의 역할이 엘리트 교육에서 시민 교육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 선다면 대학구조조정에 대해 보다 섬세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같은 구조조정을 거치며 대학시절을 보낸 이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구조조정이 교육의 영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 이유는 더 분명해진다.
 
  무턱대고 대학을 없애고, 통합하기에 앞서, 이같은 구조조정의 과정에 대한 대학 구성원 간의 민주적인 논의를 진행하는 게 절실하다. 자신이 속한 공간의 문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대학의 역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체 시민 중 대학교육을 받은 이들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대학의 이같은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최근의 대학 통폐합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에게 취해진 학교 측의 가혹한 징계가 더욱 안타까와진다. 멀쩡하게 다니던 학교가 충분한 공론의 과정 없이 문을 닫는 것을 보면서, 아무런 문제제기도 못 하도록 길러진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서 제대로 된 비판의식을 가진 시민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현재'는 '사회의 미래'
 
  올해 고려대에 통합된 보건대의 한 학생은 고려대와 통합된 보건대생의 학적을 둘러싼 논란이 기업의 인수 합병 과정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 논란과 닮았다고 지적했다.
 
  '대학의 현재는 사회의 미래'라는 말이 있다. 지명도가 높은 대학과 낮은 대학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을 매끄럽게 풀지 못한 대학의 모습에서 사회적 약자가 배제되고,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이들이 쫓겨나는 미래 사회의 풍경을 떠올린 것은 지나친 상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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