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교원평가에 반대하는 연가투쟁을 22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육당국은 연가투쟁 참가 교사들에게 단호한 징계를 가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양측의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양측이 이런 힘겨루기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정작 교원평가의 취지와 영향에 대한 고찰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교원평가를 왜 도입하려는 것인지, 전교조는 어떤 부작용이 예상되기에 반대하는 것인지에 대해 알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교원평가에 관한 다양한 쟁점들이 서로 뒤섞여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원평가와 관련된 쟁점들을 간추려 살펴본다.
■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교원평가는 교원의 자질이나 인간성을 평가하는 게 아니다. 교원의 '교육활동'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람직한 교육활동이냐"라는 질문에 부딪힌다. 하지만 이것은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현재 입법예고된 교원평가제의 내용에 따르면 교원평가의 항목은 개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구성하도록 돼 있다. 교육부는 평가항목 구성을 위한 참고자료를 제공한다. 그러나 '바람직한 교육활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평가항목을 구성하는 것은 무리다. 평가의 기준을 세우는 것부터 쉽지 않은 셈이다.
그리고 '바람직한 교육활동'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교원평가를 추진하면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는 교사나 학생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교사가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게 교원평가에 반대하는 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교원평가 시범사업 실시계획이 발표됐을 때 전교조 측이 배포한 유인물의 내용도 이런 것이었다.
많은 학부모들이 자식의 명문대 진학을 교육활동의 목표로 여긴다는 점이 교원평가 반대 측의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시되는 교원평가는 교사들로 하여금 인성교육보다 입시지도에 더 힘을 쏟게 만들리라는 것이다.
또 사회의 주류적 가치관이 아닌 진보적 지향을 담은 교육활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전교조 조합원은 "아무리 수업을 열심히 해도 단지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낮은 점수를 매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라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찬성 측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현재 입법예고된 교원평가제는 해당 교사와 교장에게만 결과가 통보되는 설문조사 수준에 불과하다며 반대 측의 불안감은 대부분 과장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진보적 내용을 가르치거나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게 학생, 학부모 등의 정서와 어긋나더라도 실질적인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이상 불안해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교원평가 결과가 해당 교사에게 인사 및 급여 등에서 불이익을 낳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 왔다.
또 진보 성향의 교사들은 기존의 권위적인 교육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자부심 때문에 자칫 자족적인 수업을 하기 쉬운데 교원평가제의 도입은 피교육자들의 냉정한 반응을 통해 이런 함정을 피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그리고 교원평가제 실시를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이 '과연 바람직한 교육활동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평가항목을 구성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과정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 등이 교육에 대한 고민을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 부적격 교사 문제, 교원평가로 해결할 수 있을까?: 앞서의 쟁점이 다소 추상적인 논의라면 이 문제는 매우 구체적인 쟁점이다. 교사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교원평가에 대한 지지도는 매우 높게 나타난다. 인터넷 뉴스 포털의 댓글 여론도 마찬가지다.
이런 여론이 형성된 주된 이유는 '부적격 교사' 문제다. 어지간한 성인이면 누구나 학창시절에 '부적격 교사'를 만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잉 체벌, 촌지 수수, 교재 선정 비리 등 교육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적격 교사' 문제와 교원평가는 관계가 없다. 교육부는 "교원평가의 목적은 오직 '교원의 전문성 신장'에 있을 뿐 그 외의 다른 목적은 없다"며 "부적격 교사 문제와 교원평가는 별개"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설령 학생과 학부모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 교사라 해도 비리를 저질렀다면 명백한 '부적격 교사'가 된다. 즉 교원평가와 부적격 판정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교육부는 '부적격 교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교원평가와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교원평가에 반대하는 전교조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부적격 교사 문제는 교원평가가 아닌 다른 법령의 적용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게 전교조의 입장이다. 교원평가와 부적격 교사 문제를 연계시킬 경우 자칫 '마녀사냥' 형태의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대목에서는 전교조와 교육부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교조는 교육부가 부적격 교사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교원평가에 대한 지지로 교묘하게 결부시키는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며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 교원평가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일환?: 신자유주의적 교원 구조조정 문제는 교원평가에 대한 교육당국과 전교조 간 입장차이를 첨예한 대립으로 몰아간 주요한 원인이다. 현 전교조 지도부는 교원평가를 신자유주의적 교원 구조조정 정책의 신호탄이라고 여기고 있다. 반면 교육부는 교원평가는 교원 구조조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교원평가가 쟁점이 된 후 전교조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교원평가는 교사들을 서열화해 퇴출시키기 위한 것'이라거나 '교육부를 믿을 수 없다. 결국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 많이 올라왔다.
이에 대해 교원평가 관련 정책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 강정길 교원정책과장은 "교사에게 안정적인 공무원 신분을 보장하는 것은 한국 교원정책의 장점이다. 이것을 뒤흔들 필요가 전혀 없다"며 "전교조가 정치적 목적으로 교사들의 불안을 부추긴다"고 대답했다.
교원평가와 교원 구조조정을 결부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전교조 안에서도 미묘하게 입장이 엇갈린다. 전교조는 현재 세 후보 진영이 참가한 가운데 위원장 선거를 진행하고 있다.
현 지도부인 장혜옥, 차상철 후보 진영이 교원평가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보는 입장을 가장 강하게 취하고 있다.
반면 정진화, 정진후 후보 진영, 강신만, 김현 후보 진영은 이런 입장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교원평가와 교원 구조조정은 다소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들 후보 진영 역시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는 교원평가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교원평가도 반대한다"는 현 지도부의 입장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12월 초로 예정된 선거에서 현 지도부가 패배할 경우 교원평가를 둘러싼 갈등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 전에는 평가가 없었나?: 그렇지 않다. 기존의 평가제는 교원평가에 대한 전교조 조합원들의 심정적 반감의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교조는 "지금도 근무평정제도(근평)라는 평가가 실시되고 있다"며 "교원평가 실시에 앞서 근평부터 폐지할 것"을 주장해 왔다. 교원평가와 양립하는 근평은 낭비라는 것이다.
교원 승진의 근거가 되는 근평 점수는 교장과 교감이 매기도록 돼 있다. 전교조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교장에게 찍힌 교사나 전교조 조합원은 아무리 노력해도 근평 점수를 잘 받을 수 없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현재 입법예고된 교원평가는 근평과 전혀 다른 방식이다. 하지만 "학교장을 정점에 둔 학교의 권력구조가 민주화되지 않는 한 어떤 평가가 실시돼도 결과는 비슷할 것"이라는 전교조 조합원들의 불신을 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지난해 교원평가 시범사업 계획이 발표되자 당시 전교조 지도부가 교장선출보직제(학교장을 학교 구성원의 선거로 뽑는 제도) 도입을 통한 학교 민주화를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교육부 역시 현행 근평의 문제를 알고 있다. 김신일 교육부총리는 지난 3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현행 근평에 대한 개선안을 제시했다. 현재 교장 50%, 교감 50%의 비중으로 평가하던 것을 교장 40%, 교감 30%, 동료교사 30%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교조는 근평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입장은 현재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 진영 모두 동일하게 취하고 있는 것이어서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 누가 평가해야 하나?: "교사의 교육활동도 평가받아야 한다"라는 명제를 거부하는 교사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누가 평가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넘어가면 다르다. 진보 성향의 교사들은 현행 근평과 같은 학교장 중심의 평가에 대해 반발한다. 하지만 이와 달리 '학생이 교사를 평가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교사들도 많다. '스승'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아직 판단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학생들이 평가에 나설 경우 인기투표식의 평가가 되기 십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평가주체에 대한 이같은 불신은 학생이 교사를 평가하기에 충분한 판단능력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교원평가에 대한 질곡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교원평가 결과는 해당 교사에게 통보돼 자신의 수업을 되돌아보게 하는 자료로 활용돼야 한다. 그런데 평가주체를 신뢰하지 못 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취지를 살리기 힘들다.
이에 대해 2002년 전교조 정책국장을 지냈던 서울 서문여중 김대유 교사는 "학생을 교육의 주체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사의 교권(敎權) 역시 여타의 권리들과 마찬가지로 일방적으로 행사돼서는 안 되며, 다른 주체들로부터 평가받고 견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사는 학생, 학부모, 동료교사와의 소통을 통해 교사가 자신의 교육활동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하겠다는 교원평가제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려면 학교 자치의 보장이 관건이라며 교사회, 학부모회, 학생회가 법제화되고 이들 기구가 학칙의 제정 및 개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 자치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가 교육활동에 대한 성숙한 판단력을 키워가는 과정이 병행돼야 교원평가가 원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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