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시대의 막내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친구가 프랑스의 대통령이 되었다. 제5공화국의 8번째 대통령이다. 40대도 못자라 30대 기수란다. 싱싱한 영건이고, 새파란 샛별이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데, 연애담과 결혼담마저 훈훈하다. 입에 올리고 카메라에 담기 좋다. 과연 대선 출마를 알리는 첫 출현부터 남달랐다. 홀로그램을 활용하여 환영인양 등장했다. 그래서 비주류인 듯, 아웃사이더로 착각하기 쉽다. 새 물결을 몰고 올 새 정치가 시작이라도 된 듯 환각을 일으킨다.
거짓말이다. 새 얼굴이 새 정치를 담보하지 못한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신상품이다. 선거 시장에 맞춤하여 내놓은 내부자들의 기획물이다. 기시감도 없지 않다. 세기말 영국의 토니 블레어를 연상시킨다. 신노동당을 기치로 신자유주의의 기수가 되었던 젊고 매력적인 40대 정치인이었다. 마크롱이 빈사지경의 사회당을 박차고 나와 꾸린 새 모임이 '전진'(En Marche)이었다. 올 초만 해도 아무도 없고, 아무런 정책도 없는 깡통 정당이었다. 그 빈자리를 채운 이가 자크 아탈리이다. 사회주의자에서 신자유주의자로 전향한 원로 지식인이다. 이 파릇파릇한 친구가 그 지긋(지긋)하신 분을 멘토로 모신 것이다. 비록 나이는 어릴지언정 생각은 고리타분한 애늙은이다. 새천년하고도 17년째, '제3의 길'은 구태의연을 넘어 고색창연한 감도 든다.
그럼에도 바람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주류 언론들의 전폭적인 지지 덕이 컸다. 국민전선의 르펜을 주저앉히기 위하여 총력전을 펼쳤다. 노회한 프레임도 주입되었다. 르펜은 반세계화, 반EU, 반신자유주의의 선봉장이었다. 내부자와 외부자, 기득권과 소외권, 승자와 패자, 체제와 인민, 금수저와 흙수저의 구도로 선거에 임했다. 이에 맞서 주류 언론은 공화국의 수호와 반대의 대결로 판을 몰았다. 르펜을 공화국의 가치를 부정하는 반체제 극우인사로 낙인찍은 것이다. 딸의 사상에 아버지의 이념을 들이대는 연좌제도 노골적이었다. 진보언론과 보수언론이 합작하는 '왕따의 정치학'이 가동된 것이다.
하더라도 낡은 사회당을 늙은 공화당으로 대체하는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도무지 희박했다. 유권자들이 양당 정치에 신물을 낸지 이미 오래이다. 원체 올드보이들이 오래토록 해먹었다. 사회당의 미테랑은 첫 장관 역임부터 대통령까지 34년을 우려먹었다. 그를 대신한 우파 정치인 시라크도 처음으로 총리가 되었던 것이 1970년대였다. 올랑드 또한 1981년부터 정치권에 몸담은 인물이다. 20세기 후반 국가 요직을 두루 경험했던 이들이 21세기에도 건재했던 것이다. 프랑스 정계는 마치 정치 계급들의 귀족원 같은 곳이었다. 고인 물은 썩는다.
이게 나라냐? 이것이 공화국이란 말인가? 자괴감에 빠진 인민들은 응당 정권교체 너머 체제교체, 시대교체를 원했다. 그렇다면 판을 통째로 갈고, 말을 바꾸어야 했다. 말을 바꾸어 탄 것이 아니다. 내부자들이 상황에 즉하여 판을 바꾼 것이다. 적임자로 낙점된 이가 마크롱이다. 옛 술을 새 병에 담아 근사하게 포장했다. 마크롱도 '밤의 대통령'의 교시에 화답하여 '공화전진당'이라고 당명을 수정했다. '진보하는 공화당'의 출현에 기존의 진보/보수 구도는 교란되었다. 사회당 우파도, 공화당 좌파도 우왕좌왕했다. 판이 흔들리자 주류언론들은 쐐기를 박았다. 르펜을 트럼프에 빗대고 푸틴과 연결시키는 선전선동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 문화를 깔보고 러시아의 선거 개입을 우려하는 프랑스인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든 것이다.
즉 국회의원 하나 없는 '전진'이라고 하여, 홀홀단신은 아니었던 것이다. 12척의 배만 남은 백척간두의 모험도 아니었다. 음과 양으로 프랑스 지배층의 지원과 성원을 등에 업었다. 가까이로는 유럽의 기득권을 상징하는 브뤼셀의 후원이 있었고, 멀리로는 구미적 세계화를 고수하는 세력들과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이 브렉시트 이후 EU의 향배를 쥐고 있는 프랑스 대선에 사활을 걸고 임했던 것이다. 과연 출신 성분이 중요하다. 걸어왔던 꽃길이 됨됨이를 보여준다. 로스차일드의 은행가로 활약했다. 유럽 금융자본주의의 아성 같은 곳이다. 여기서 프랑스 주류 중 주류인 생시몽 재단과 테라 노바 연구소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프랑스-미국 재단의 청년 지도자로 활동한 적도 있다.
그랬던 그를 정계로 전격 발탁한 이가 올랑드 전 대통령이다. 비서실 근무에서 재정부 장관까지 고속으로 승진하며 벼락처럼 출세했다. 헌데 사회당 정부의 인기 하락을 불러온 '고용 개혁' 정책이 바로 마크롱의 작품이다. 프랑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가 활발해야 한다. 고용은 유연해지고 임금은 삭감되어야 한다. 저임금 노동자의 이민과 이주가 더 많이 필요하다. 고로 프랑스의 국경을 활짝 여는 세계화는 지속되어야 한다. 여기에 거듭 어깃장을 놓는 강성 귀족노조의 타성은 타파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을 필두로 전통적인 사회당 지지자들이 정권에 등을 돌리게 만든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백마 탄 왕자처럼, 나폴레옹의 귀환처럼 화려하게 권좌에 복귀한 것이다.
과연 역대 최악의 지지율(5%)을 기록하며 엘리제궁을 떠나는 올란드의 표정도 썩 나쁘지 않았다. 바로 자신이 마크롱을 선발했던 선견지명을 흐뭇해하는 듯했다. 사회당 정권의 젊은 피가 간판을 세탁하여 후임자가 되었으니, '정권 연장'이라고 볼 여지마저 있다. 다시 말해 앞으로 5년, 지난 5년과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공장들은 점점 더 많이 문을 닫고 폴란드 등 동유럽으로 이전할 것이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옛 식민지 이주자들이 저임금 노동시장을 잠식해갈 것이다. 가진 자들은 더 많이 가질 것이며, 못가진 자들은 더욱 못가지게 될 것이다. 전진을 하면 할수록 제자리로 돌아오는 도돌이표가 반복된다. 출로 없는 회전문이 빙글빙글 계속 돌아간다.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구체제가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명을 연장하는 '뉴노멀' 상태가 지속된다. 신성 마크롱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음을 자인하고 좌측 깜빡이를 켠 채 우회전하는 '구시대의 막내'이다.
2. 가짜 민주주의(Fake Democracy)
프랑스가 정치 선진국인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커녕 프랑스 대혁명 이래 위태로운 세월이 오래 지속되었다. 19세기 백년간, 무려 아홉 차례나 체제가 무너졌다. 3번은 민중봉기, 민란이었다. 다음 3번은 군대봉기, 쿠데타였다. 다른 3번은 외세침략, 전쟁이었다. 혁명 이후 내우외환이 그치지 않았다. 공화국이 온전하게 작동한 것은 20세기, 그것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그런데 그 제5공화국마저도 백년이 못되어 크게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결선 투표 구도가 의미심장하다. 공화당과 사회당이 공히 진출하지 못했다. 20세기형 좌/우 정당정치의 종언을 상징한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을 차례차례 침몰시켰던 트럼프의 당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녕 구(舊)민주주의는 도처에서 탄핵되고 있다. 하노니 프랑스 대선으로 브렉시트 이래 민주주의의 오작동이 멈추었다는 아전인수, 곡학아세는 그쳐야 할 것이다.
20세기형 진보를 담보했던 사회당은 급사했다. <21세기 자본론>으로 명성을 쌓은 피케티가 구원투수로 가담했건만, 한 자릿수 지지율 폭락을 막아내지 못했다. 20세기의 보수를 담지 했던 공화당은 혼수상태이다. '공화전진당'의 출현으로 위상은 더욱 애매해졌다. 결선 투표의 최종 결과, 66:34도 곧이곧대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마크롱이 받은 표는 2천만이다. 2등은 르펜이 아니라 기권자였다. 자그마치 1천 6백만에 달한다. 투표장까지 부러 나가서 무효표를 행사한 유권자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만큼 가짜 민주주의(Fake Democracy)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한 것이다. 마크롱이 받은 표는 실제 유권자의 4할에 그친다. 6:4의 비율로 현재의 정치질서를 부정하는 층이 높았던 것이다. 제5공화국에 대한 탄핵 표심이 극우파와 극좌파, 기권파로 갈렸을 뿐이다.
앙시앙 레짐을 수호하는 입장에서 최악의 사태는 극우와 극좌가 결선에서 맞붙는 것이었다. EU로서도 프렉시트는 악몽 같은 시나리오였다. 좌/우 인민주의(포퓰리즘)를 폄하하는 프로파간다가 유럽 전역에서 울려 퍼졌다. 본디 인민주의란 농민, 장인, 소상인들이 당당하게 제 몫을 누리고 존중을 받는 세상을 지향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도 엥겔스도 우호적이었던 개념이다. 68혁명 무렵에도 인민주의를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파시즘과 직결시키는 프레임이 작동한 것은 역시나 1980년대 이후이다. 신자유주의가 획책하는 <1984> 체제가 만들어지면서 들어선 변종 논리이다. "대안은 없다"를 주술처럼 읊조리는 빅브라더의 세련된 마술이다. 그 '자유주의 근본주의'자들이 교묘하게 선거의 방향을 뒤틀어버린다. 마치 이민 문제가 가장 화급한 과제인 것처럼 몰아간다. 그리하여 내부자들이 공모하는 현 체제(Deep State)에 대한 인민들의 깊은 불만과 분노를 외면하는 것이다.
20세기 지성의 상징이었던 <르몽드>도 좀체 예전 같지가 않다. 이빨 빠진 호랑이, 대자본이 인수하여 입김을 행사한 지 오래이다. 마크롱의 홀로그램을 제작한 곳이 르몽드의 계열사였음을 확인한다면 정언 유착, 어용언론의 혐의마저 없지 않다. 사르트르가 필치를 날렸던 <리베라시옹>의 명성도 꺽인지 한참이다. 2005년 이 신문사의 지분을 대거 사들인 것이 하필이면 로스차일드 쪽이었음도 공교롭다. 그래서 마크롱이 장관으로 발탁되었을 때, '금융의 모차르트'라는 최고의 헌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무덤 속 사르트르가 들으면 통곡할 노릇이다.
'공화전진당'이라는 당명이 무색하게 프랑스 공화국의 집합적 정체성은 갈수록 옅어지고 있다. 시민(Citizen)과 인민(People) 간 격차가 현저하다. 유로파와 토착파 간 분열의 골이 깊다. 중산층은 유럽시민으로서 특권을 향유하고 만끽한다. 시골이나 공업지대는 일생 가본 적이 없어도, 런던과 베를린과 로마와 브뤼셀은 제 집처럼 드나든다. 재력과 학력을 겸비한 세계시민들, 프랑스판 '강남좌파'들이다. 그들이 공론장을 장악하여 계몽주의적 훈계를 늘어놓는 것이다. 도리어 결선에서도 르펜에 표를 던진 1100만의 표심을 깊이 음미해야 한다. 이들이 파시스트이고 인종주의자인가? 더러 그런 이들도 있을 것이다. 교육을 덜 받고, 자유주의적 감수성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1000만이 넘는 이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단순하고도 명백하다. 공화당 아래서도, 사회당 아래서도 지속되고 있는 불평등의 시정이다. 바보야, 문제는 불평등이야! 껍데기만 남은 공화국의 핵심 가치를 실현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반체제 극우파라는 딱지만 남발하는 것이다. 이참에도 외면한다면 5년 후 2022년에는 정말로 사단이 날 수도 있다. 21세기, 국민전선처럼 당세를 꾸준하게 확장시켜온 정당은 극히 드물다.
이렇게만 쓰고 말면 마치 내가 르펜을 지지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겠다. 오해를 덜고자 보태면, 내 눈에 든 사람은 단연 불굴의 프랑스(France Defiant), 멜라숑이다. 막판 대약진했다. 두 번의 TV 토론회, 유일한 승자라 할만하다. 보통사람들이 기성 정치에 품고 있는 회의를 빼어난 유머감각에 실어서 적확하게 포착했다. 르펜보다 한 수 위라고 여긴 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보호주의적 민족주의를 맞세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세계화'의 출로를 제시했다. 다른 네 후보가 EU냐 반EU냐를 놓고 설전을 벌일 때, 그만이 유럽의 지평을 넘어서는 발상을 제출했다. 중국의 신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에 동참하고, 구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공동개발에도 앞장서며, 향후 세계질서를 주도할 브릭스와도 돈독해져야 한다고 했다. 프렉시트와 NATO 탈퇴를 천명하되, 그 이후의 청사진도 아울러 밝힌 것이다. 소심한 민족주의로의 후퇴보다야 유라비아로, 유라시아로 포부를 넓혀가는 멜라숑에 호감을 느낀 것이다. 장차 신세계화, 진세계화에 합류하는 유럽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부디 무르익기를 고대한다. 과연 그가 새 시대의 맏형이 될 수 있을지, 2022년이 기대되는 까닭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