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순례와 학살
걷는다. 또 걷는다. 하릴없이,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 한 달을 꼬박 채운다. 프랑스 남부에서 스페인 서부까지, 800km 여정이다. 뱀 마냥 꼬불꼬불 난 길을, 꼬물꼬물 행렬이 개미처럼 잇는다.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이다. 언감생심, 합류하지는 못했다. 견문은 한가를 허락하지 않는다.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가는 곳마다 노트북을 켜고 온갖 신문을 살핀 후, 킨들로 독서하며 심화학습을 거친다. 새 말도 바지런히 익혀야 한다. 늘상 정보의 포화 상태로 지낸다. 갈 곳과 말 곳을 가르고, 쓸 것과 뺄 것을 가리는 일도 여간 골칫거리다. 그나마 매일 요가 수련으로 지친 뇌를 씻어내는 정화의 시간을 갖는다. 그 덜어내고 비워내는 시간을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만끽하는 것이 순례이다.
그래서 철두철미 반(反)근대적이다. 비생산적이며, 탈소비적인 '중세적 시간'(De-Modern Time)을 음미한다. 굳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산티아고를 찾는 까닭이다. 아파도 청춘이라며 재촉하고 채근하는 피로사회로부터 필사적으로 탈주하여, 비근대적인 시간을 확보하려는 이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근대의 속도에 맞서서 자아를 치유하고 자존을 지키는 묵상의 시간, 신독의 시간, 침묵의 시간을 획득하려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말을 (내)뱉어내는 SNS 시대, 멈추고 닥치고 끊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중세적 시간이 늘어날수록, 중세와 근대가 공진화할수록, 삶의 질도 높아진다. 사서 고생을 마다치 않는 연유이다. 가격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를 추구한다.
산티아고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1985년이다. 유럽의 문화수도로 선정된 것은 2000년이었다. 베네딕트 교황이 몸소 방문한 것은 2010년이다. 갈수록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탈세속화, 재영성화의 트렌드와도 부합한다. 관련된 책과 영화, 다큐도 여럿이다. 관광 상품을 넘어서 영성 산업에 이르렀다. 하루짜리 단기 코스마저 등장했다. 도착 지점인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얄팍한 유커들도 눈에 띈다. 비행기를 타고 먼 길을 날아와서 '중세'를 소비하고 있음을 온라인으로 과시하는 포스트모던 한 풍경이다.
그만큼 유서가 깊다. 천 년이나 묵은 순례길이다. 9세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샛길이었다. 당시 서유라시아(=유라비아)의 모든 길은 바그다드로 통했다. 영성의 중심 또한 메카였다. 남유럽부터 북아프리카까지 메카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꼬리를 물었다. 예루살렘마저도 무슬림의 땅이 되었다. 북서유럽 기독교인들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는 방편으로 전설에 의탁했다.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산티아고까지 전도를 왔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더라도 유라비아의 서북으로 쪼그라든 로마 가톨릭 세계의 신도들로서는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11세가 되면 범유럽적 순례길이 만들어진다. 많은 길이 은총의 땅, 산티아고로 통했다.
역사적으로 고증 가능한 사실은 산티아고의 행적이다. 순례길 곳곳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스페인 교회마다 그의 초상화를 만날 수도 있다. 그의 조각상을 배경으로 셀카와 단체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다. 사연이 구구한 사람이다. 평판이 크게 갈리는 인물이다. 'Santiago Peregrino'(순례자 산티아고)라고 추앙받는 반면으로, 'Santiago Matamoros'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Matamoros란 '무어인들의 살인자', 라는 뜻이다. 무어인이란 왕년의 무슬림을 가리킨다. 무슬림 킬러였다는 말이다. 학살의 추억이 어른거린다. 실제로 그는 순례길을 걷지 않았다. 달렸다. 백마를 타고 질풍처럼 달렸다. 한 손에는 말고삐를, 다른 손에는 칼을 쥐었다. 그 칼을 휘둘러 터번을 두른 검은 피부의 목을 사정없이 베었다. 십자군의 선봉대였던 것이다.
즉 천 년 전 이 길은 평온하지도 한적하지도 않았다. 적개심과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산티아고가 가는 곳마다 붉은 피로 땅을 적셨다.
2. 검은 마리아 : 西洋(서양)과 西歐(서구)
북아프리카의 무슬림이 남유럽에 북상한 것은 711년이었다. '이베리아의 봄'을 일구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었다. 로마제국 붕괴 이래 다시금 문명의 전성기를 구가한 것이다. 지중해의 동남부 이슬람권에서 향유하던 르네상스를 더불어 만끽했다. 약 천 년 간 안달루시아는 '이슬람적 유럽'으로 화려하고 화사했다.
안달루시아에서 무슬림 축출이 본격화된 것은 1492년이다. '문명의 충돌', 십자군 원정이 때 늦게 성공했다. 하지만 기독교의 재정복, 국토회복운동(레콘키스타)은 적절치 못한 진술이다. 복합계가 단순계로 재편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합당하다. 다종교의 공존을 허용하는 다문화사회에서 이단 심문과 마녀사냥의 삭풍이 몰아치는 전체주의 사회로 변질된 것이다. 과연 무슬림만 추방된 것이 아니었다. 개종을 거부하는 유대교들도 재차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이베리아를 떠나 르네상스가 지속되는 지중해의 동쪽으로, 이탈리아와 이스탄불로 피난 갔다. 고로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한 것도 아니었다. '이슬람적 유럽'이 꽃 피었던 초기 근대가 말소되고, 기독교가 유일사상으로 군림하는 암흑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베리아 재수복 이후 역사는 다시 쓰였다. 승자가 역사를 고쳐 썼다. 유럽과 아랍을 날카롭게 가르기 시작했다. 지중해를 내해 삼아 남유럽과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가 공진화했던 '유라비아'(Europe+Arabia)를 방기했다. 유일체제만큼이나 공간 감각이 협량해진 것이다. 즉 이슬람을 축출함으로써 서구(west)를 적출해낸 것이다. 지엽과 말단이었던 극서(far west)의 기독교세계를 대문자 서구(West)로 표상하기 시작했다. 그럼으로써 근동(near East)과 중동(middle East), 극동(far East)이라는 극단적인 동/서 분류법도 등장할 수 있었다. 향후 오백 년을 지속하는 고약한 프레임이다.
그러나 극서와 근동과 중동은 무 자르듯 가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지중해와 아라비아해를 공유하는 '유라시아의 서쪽 바다(西洋)'로 아울러야 마땅한 곳이었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가 서양의 3대 사상이라면, '벵골만 이동의 동쪽 바다(東洋)'에서는 유불선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서양이 일신교의 바다였다면, 동양은 무신교의 바다였던 것이다. 그 가운데 남양(南洋)은 다신교 힌두교가 번성했다. 극서(서유럽)와 극동(동북아)의 조우는 최신의 사태지만, 서양과 동양은 남양을 통하여 오래토록 연결되어 있었다. 서구사와 서양사를 혼동해서는 심히 곤란하다.
유럽이 유라비아의 일원이었음은, 서구가 서양의 일부였음은 이베리아 반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알함브라 궁전도 이슬람 건축이다. 인도의 타지마할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바르셀로나의 몬세라트 수도원에서는 검은 피부의 마리아도 만날 수 있다. 산티아고의 인종 청소에도 불구하고, 성모 마리아 상만은 처분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붉은 이베리아의 검은 마리아가 이 땅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유라비아의 감각으로, 유라시아의 시각으로, 서구사를 다시 써야할 때가 된 것 같다. 변방사를 보편사로 추켰던 '가짜 사관'(Fake History)을 거두고, 서양사와 유라비아사의 지평으로 서구사를 재조망해야 할 것이다. 유럽을 지방화하고,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적폐 청산의 일환이다.
3. 신세계와 구세계
산티아고 기사단의 맹활약은 이베리아 탈환으로 그치지 않았다. 떠나는 무슬림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도망치는 자들을 따라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넜다. 북아프리카의 꽃이라고 불리던 모로코의 세우타(Ceuta) 항을 점령한다. 군사적 요새이자, 지중해-인도양 무역의 거점에 십자가를 꽂은 것이다. 이곳을 장악함으로써 동방무역의 이윤을 이베리아로 이전시킬 수 있었다.
콜럼버스 또한 산티아고의 후예였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들고 인도양으로 향하면서 동양의 기독교왕국을 발견할 것임을 다짐했다. 동방무역으로 얻는 수익 또한 예루살렘 정복에 바치겠노라 결심했다. 십자군 정신과 기사적 심성으로 충만했던 것이다. 하지만 1506년 숨을 거둘 때까지 기독교왕국을 발견하지 못했다. 예루살렘 또한 탈환하지 못했다. 그가 믿어 의심치 않은 바대로 메시아가 왕림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세계는 크게 달라졌다. 아니 그가 세계를 크게 바꾸었다. 본인이 메시아 격이었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신세계가 개창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이 몽땅 이베리아 반도처럼 되어가는 또 다른 창세기가 시작되었다. 원주민들의 잉카문명은 삽시간에 몰락했다. 유라시아의 극서에서 전래된 총, 균, 쇠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의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에 면역력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충격과 공포' 속에서 반도가 대륙 전체로 이식될 수 있었다. 비잔틴제국의 몰락으로 궁지에 몰렸던 기독교세계가 극적으로 회생한 것이다.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신의 가호와 주의 은총도 잇따랐다. 잉카제국에는 황금 탄광이 넉넉했다. 세우타 항을 통하여 아프리카 노예를 공급함으로써 금과 은을 채굴했다. 스페인의 황금시대가 열린 것이다. 유라시아의 극서지방 국가가 일약 유럽의 패자로 등극했다. 대서양을 잇는 유럽-아메리카의 신세계 연결망으로, 인도양에서 전개되는 유럽-아시아의 구세계 역관계를 역전시킨 것이다. 태평양 건너 필리핀의 식민화가 대표적이다. 일개 국왕의 이름(필립)이 한 나라의 국호가 되었다. 그 필리핀에도 산티아고라는 작은 도시가 자리한다. 안데스 산맥에 자리한 칠레 수도의 이름 또한 산티아고이다. 십자군의 흔적이 지구촌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대항해시대도 신대륙 의 발견도 이베리아의 확산, 중세의 확대라고 보이는 까닭이다. 심지어 멕시코에는 마타모로스(Matamoros)라는 음침한 이름의 도시도 있다.
4. 천년 전쟁
2004년 3월 11일, 아침 출근길. 마드리드의 4개 지하철역에서 10개의 폭탄이 동시에 터졌다. 일시에 200명 가까운 목숨을 앗았다. 9.11 이후 테러가 대서양 건너 유럽까지 상륙했음을 알리는 사태였다. 범인들은 뻔뻔하고 공연했다. '십자군에 대한 보복'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비단 '테러와의 전쟁'을 십자군에 빗대었던 부시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산티아고 기사단 이래 십자군의 이슬람 정복에 대한 반격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새 천년의 선전포고였다. 과연 그로부터 십 수 년째 유럽은 테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랍권 매체에서도 지속적으로 십자군(الصليبيون)이라는 단어를 만날 수 있다. 아버지 부시부터 클린턴, 아들 부시, 오바마 그리고 트럼프까지 미국의 다섯 대통령이 연달아 이라크를 폭격하고 있다는 기사에 십자군의 수사가 부가되는 식이다. 천년의 전쟁이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다만 이름을 달리했다. 천주교는 민주교가 되었고, 십자군은 민주군(NATO)이 되었다. 천주화는 문명화, 근대화에 이어 민주화로 변경되었다. 구미의 신세계 연합군이 구세계를 향하여 체제전환을 윽박지르는 십자군 전쟁이 NATO군의 공습으로 진화한 것이다. 좀처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지 못했음에는 변화가 없다. 식민지 경영이라는 배타적 지배가 아니고서는 다른 종교, 다른 문명, 다른 이념과 공존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종교개혁 500년, 계몽주의 250년을 지나서도 변방의 편협함과 경직성을 떨쳐내지 못한 것이다. 아니 종교개혁과 정치혁명을 거치며 도그마는 더욱 강화되었다. 유일신앙이 유일체제로 진화했다. 무교도의 공산주의에 이어, 이교도의 이슬람주의와도 적대하는 것이다. 교조적 민주주의, 자유주의 근본주의로 세계를 석권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구촌은 갈수록 왕년의 이베리아, 중세의 안달루시아처럼 되고 있다. 다종교, 다인종, 다민족이 한 지붕 아래 이웃으로 살아간다. 산뜻한 리스본 거리를 모로코 이주자들이 채우고 있고,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화려한 번화가에도 시리아와 리비아 난민들로 가득하다. 런던과 파리, 로마와 베를린에도 모스크가 속속 세워지고 있다. '아랍의 봄'이 아랍의 유럽화를 촉발한 것이 아니었다. 커녕 유럽의 아랍화, 아랍과 유럽의 재융합을 촉진하고 있다. 이베리아에서부터 삭제해갔던 유라비아가 도저하게 귀환하고 있는 것(=眞세계화)이다.
당장은 극우의 반발이 격심하다. 인민주의(populism)와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유럽 견문 3개월이 유독 스산했던 것은 비단 계절이 겨울이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불안과 불만의 정서가 만연하다. 분노가 유럽을 잠식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금 이슬람 혐오증은 과녁을 빗나간 화살이다. 천년의 반복이고, 역사의 반동이다. 신세계의 기적을 선사해줄 신대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촌 전체가 구대륙처럼, 구세계처럼 되어간다. 남 탓보다는 내 탓이 현명할 것이다. 자만보다는 자성이 지혜롭지 싶다. 학살자의 오만과 편견을 거두고, 순례자의 겸허와 겸손으로 숙고하고 성찰할 때이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향한 곳은 아조레스 섬이다. 구세계와 신세계가 교차하는 대서양의 한 복판에 자리한다. 민주교(EU)와 민주군(NATO)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이베리아의 20세기, 굴곡진 현대사를 복기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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