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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중국 쇄국정책'? 망국의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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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중국 쇄국정책'? 망국의 첩경이다

[유라시아 견문] 逆세계화, 新세계화, 眞세계화

1. 탈세계화(De-globalization)

트럼프의 당선을 알렉산드리아에서, 취임식을 베이루트에서 지켜보았다. 혹여나 했건만, 역시나 였다. 昏庸無道(혼용무도)한 자가 세계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선거 내내 거의 모든 매체들이 트럼프 반대 진영에 섰던 것을 상기하노라면 놀라운 결과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 과점제는 물론이요, 현대사회의 제4부라고 하는 주류언론 '빅브라더'까지 탄핵당한 것이다. 몰락한 백인 노동자의 삐뚤어진, 비틀린 계급의식이 '교조적 민주주의', '자유주의 근본주의'를 갈아엎었다. 탈냉전 이래 네오리버럴과 네오콘이 합작하던 세계화의 질주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영국 민중(people)들이 글로벌 시민(citizen)들을 누르고 브렉시트를 선택한 것과도 맥이 통하는 흐름이다. 내 정치적 신념과는 다른 방향일망정, '혁명'에 준하는 사태라는 판단을 거두기가 힘들다.

신촌에서 베이루트까지, 언 2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IMF 사태와 더불어 대학생이 되었다. 사회학 입문 수업, <세계화의 덫>을 읽고 보고서를 써내는 것이 새내기 첫 중간고사였다. 두고두고 깊은 영향을 미친 책이지 싶다. 줄곧 반(反)세계화 운동에 가담해왔기 때문이다. 시애틀의 WTO 반대 시위를 지켜보며 밀레니엄을 맞은 것은 2000년이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를 구호로 내세운 세계사회포럼을 뭄바이에서 구경한 것은 2004년이었다. 2011년 LA에서는 99% 시위에도 참여했다. 헌데 그 반세계화 운동들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뜻밖의 모습으로 영미식 세계화가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영국은 유럽으로부터 떨어져나가고, 미국은 보호무역과 반(反)이민을 내세워 담을 높게 쌓는다. 결자해지라도 되는 양, 세계화의 선봉대가 탈세계화의 기수로 표변했다.


과연 말이 많다. 소란하다. 현란하다. 대가들도 한두 마디씩 보탠다. 이안 부루마가 <뉴욕타임스>에 기고문을 보냈다. 꽤 좋아하는 사학자였다. 하지만 칼럼은 실망스러웠다. 1945년을 원년(Year Zero)으로 삼는 전후질서,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종언'이라고 논평했다. 얼핏, 언뜻, 옳은 말인 양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럴듯하지만 그러하지 않은, 似而非(사이비) 진술이다. 영국과 미국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전후 세계에 전파해 왔던가?

지난 1년 내가 두 눈으로, 두 발로 견문했던 히말라야(미얀마)부터 지중해(모로코)까지, 영미는 '숨은 신'으로 타지와 타국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깔아뭉개고, 처처에서 자유주의를 척살했다. 체제 전환과 정권 전복의 사례가 숱하게 쌓여있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다.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는 백면서생의 칠판에서나 존재하는 '가짜 뉴스'에 가깝다. 인도양을 끼고 살아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기층의 실감에 기대어 말하자면, '영미식 조공체제의 종언'이라고 하는 편이 한층 실상에 근접할 것이다.

▲ 베이루트 시내에 있는 아르메니아 교회. ⓒ이병한

천주교, 개신교, 이슬람이 공생하고 히잡과 미니스커트가 공존하는 레바논에서 손에 든 책으로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가 있다. 1980년대 총기 넘치던 20대 후반의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중동 견문기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열의 기저에 깔린 영미의 패권적 세계질서에 대한 직관이 번뜩거린다. 그러나 탈냉전과 무섭게 그의 명민하던 지성은 부드럽게, 유연하게, 무디어져갔다. 정보화와 세계화를 찬양하는 설교사이자 전도사가 되었다. 부역의 대가는 달콤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라는 근사한 명함을 들고 전 세계를 주유하며 펜대를 굴리며 살게 되었다. 그 소신으로, 소산으로 발간한 책이 <세계는 평평하다>이다. 1%의 글로벌 엘리트들에게 평탄한 세계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2005년 출간 즉시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러나 불과 3년 후, 미국과 유럽이 세계금융위기의 진앙지가 되었다. 1980년대의 남미, 1990년대의 동아시아, 2000년대의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이 경험했던 울퉁불퉁 '세계화의 덫'이 부메랑이 되어 구미의 심장부를 강타한 것이다. 영어로는 블로우백(Blow Back), 역풍이 적합할 것이다. 사자성어로는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어울릴듯하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일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하겠다.


소 뒷걸음으로 쥐 잡는 격이지만, 다른 의미에서 세계는 정녕 평평해졌다. 선진국과 후진국, 제1세계와 제3세계가 극적으로 평준화되었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작자의 면모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지성은 빈곤하고 품성은 천박한 반면으로 선전과 선동에는 능란하다. 몰지각하고, 몰상식하며, 몰염치한 미디어형 정치인의 표본이다. 미국이 음양으로 지원해왔던 '제3세계형 지도자'와도 흡사한 것도 같다. 한국에서, 필리핀에서, 파키스탄에서, 이란에서, 터키에서, 이집트에서, 이라크에서, 칠레에서 미국이 후원해왔던 개발독재형 지도자의 수준에 근사한 것이다. 마침내 미국인들도 지구촌의 세계주민이 되었다.

따라서 미국 예외주의 또한 더 이상 통용이 되지 않는다. 평준화된 세계, 미국 우선주의,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다. 세계시장과 세계평화의 공공재를 제공하던 패권 국가이기를 그친 것이다. 세계전도를 펼쳐놓고 지구본을 돌리며 천하를 먼저 근심하던 제국의 태도를 거두어버렸다. 하여 자국의 시장을 개방하여 '반공주의 조공국'들의 발전을 견인했던 왕년의 품 넓었던 대미제국은 깨끗하게 잊어도 좋겠다. 그저 국익을 으뜸으로 치는 고만고만한 '보통국가'로 강등한 것이다. 여럿 가운데 하나(one of them), 흔하고 평범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니 성조기는 그만 좀 흔들고, 미국 유학도 줄이는 편이 낫겠다. 재조지은(再造之恩)에 감복만 하기에는 세월이 너무도 흘러버렸다.


그러나 오판은 삼가기로 하자. 대서양 사이가 벌어지고 태평양이 멀어진다고 해서, 탈세계화 또한 正名(정명)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이 일방으로 돌출되었던 세계화의 특정 단계가 끝나고 있을 뿐이다. 19세기 유럽식 문명화와 20세기 미국식 세계화가 지구촌 곳곳에서 파면되고 있을 따름이다. 즉 종언을 고하고 있는 것은 '구미적 세계화'이지 세계화 전체가 아니다. 커녕 '탈서구적 세계화'가 갈수록 면면하게, 도저하게 개창되고 있다. 하여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수사 또한 진부할뿐더러 정곡을 짚지 못한 말이다. 세계사의 흐름은 더더욱 또렷하게 '다른 백년'으로, '다른 세계화'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른 세계화의 최전선으로 '중동'이라 불리던 곳을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구미의 강점과 강압으로 가장 자잘하게 쪼개졌던 서아시아 대분열체제에도 새 질서가 움트고 있다.

2. 역세계화(Counter-Globaliation)

그 시금석이 시리아 전쟁이었다. 평화협상 단계에 들어섰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러시아이다. 무장투쟁을 방기한 반정부세력을 야당으로 인정하는 중재 역할을 맡아 교섭을 주도하고 있다. 정권 전복과 체제전환만이 유일선이라며 내전을 지속시켰던 미국과는 전혀 다른 처방전을 내렸다.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선의의 전쟁'을 지속하기보다는, '나쁜 평화'가 낫다는 입장이 주효한 것이다. 그 냉엄한 판단 아래 연립정권 수립, 헌법개정, 신헌법에 의한 총선 실시, 신정권 탄생이라는 국가 재건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로써 출범하는 장차의 시리아는 20세기의 시리아와는 퍽이나 다른 모습일 것 같다. 지난 세기 인공국가 시리아를 주조해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필두로 이란과 터키가 협조한다. 영국, 프랑스,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 이란, 터키가 신중동질서 재편의 주역이 되고 있다. 일백년만의 일대 반전이다.


과연 시리아 평화협상의 장소 또한 의미심장하다. 아스타나였다. 카자흐스탄의 수도이다. 왕년이라면 유럽의 어드메였을 것이다. 파리나 제네바가 단골 도시였다. 구미(歐美, 유메리카)적 질서에서 구아(歐亞, 유라시아)적 질서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풍경이다. 심통이 난 구미 언론들은 '알레포 학살'이라는 프로파간다를 연신 발신했다. 혹여 내가 서구 매체만 읽을 수 있었다면, 그 '가짜 뉴스'에 깜빡 속아 넘어 갔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러시아와 이란, 터키 언론도 참조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알레포 해방'이라는 표현이 더 자주 등장했다. 아무래도 '학살'과 '해방' 사이에, 회색빛 진실이 어렴풋 자리할 것이다.


'해방'이라는 수사를 일방으로 수긍하지 않지만, 구미의 '인도주의적 제국주의'가 탈냉전 이후 중동의 대혼란을 야기했다는 러시아-터키-이란 언론의 논조에는 수긍하는 편이다. 이슬람세계의 움마를 해체시키고 외부세력이 주입한 작위적 질서, 국가간 체제(Made in the West)가 근원적 병통이다. 여기에 (자유)민주주의를 호모 사피엔스 진화의 최종 도달지라고 주장하는 유사역사학의 가짜 역사관(=역사의 종언)이 거듭 실책을 반복했다. 남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부터 중동의 시라크(시리아-이라크)를 지나 북아프리카의 리비아까지 도처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다. 게다가 체제전복에는 열성이건만, 정작 수습에는 뒷짐이다. 탓에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카불에서 기념하려 했던 견문 2년차 계획도 틀어지고 말았다. 천 년 전 '아랍의 장안'이었던 바그다드를 가보지 못한 것 또한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미국이 심은 '민주주의 괴뢰정부'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겨우 수도만을 간신히 지켜내고 있을 뿐이다. 카불 밖 광활한 산악 지대는 여전히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다. 아니 갈수록 세력이 더 강성해지고 있다. 여기서도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나라가 러시아이다. 탈레반의 후견 역할을 하는 파키스탄에 접근한다. 파키스탄과 돈독한 중국도 협조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서쪽에 자리한 이란도 동참시키고 있다. 러시아-중국-파키스탄-이란이 협력하여 카불 정권과 탈레반 간 중재와 평화 협상을 진척시키고 있는 것이다. 눈썰미가 있는 이라면, 이 국가들이 공히 SCO 참여국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NATO 공습으로 너덜너덜해진 아프가니스탄을 SCO가 재건하고 있다.


재차 시리아 평화협상이 시작되었던 아스타나를 상기해 보자. 그곳은 2013년 시진핑이 일대일로 구상을 처음 발표한 장소이기도 하다. 과연 시리아가 재건되면 SCO에 합류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시리아가 안정되면 각종 인프라 사업을 주도함으로써 다마스쿠스를 중동과 유라시아를 통합하는 일대일로의 거점으로 삼는다는 계획도 입안되었다. 군사 외교적으로는 SCO, 경제와 문화로는 일대일로와 접속하는 신중동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중해를 마주보고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던 지난 백년과의 급진적인 결별이다.

혹자는 냉소적으로 혹평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러시아, 중국, 터키, 이란 등 주도국의 면모만 달라질 뿐 강대국 정치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다. 첫째, 더 이상 20세기형 식민지가 아니다. 둘째, 구미식 분할지배를 가동시키는 것도 아니다. 촘촘하게 연결시키고 통 크게 통합시킨다. 서아시아(및 북아프리카) 대분열체제의 기원이 되었던 사이코스-피코 협정 백년 만에 대통합체제, 대공존체제의 맹아가 싹트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적폐의 청산까지 지난하고 험난한 여정일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이미 와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

딱한 사정은 중동의 대반전과 역세계화의 풍경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작년 말 푸틴이 일본을 방문했다. 12월 16일 기자회견에서는 중동 신질서의 방침을 소상하게 밝혔다. 그럼에도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기껏 러시아와 일본 간 북방영토문제만이 조명되었다. 푸틴은 현 시기 유라시아 지정학의 최고봉에 서 있는 인물이다. 모스크바에서 유라시아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아라비아와 홋카이도를 한 눈으로 조감한다. 그 폭넓은 시야 안에서 극동과 중동을 동시에 사고하며 수를 두는 것이다. 그의 육성으로 직접 밝혔던 유라시아 구상을 소상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진보언론도 보수언론도 북방영토문제만 치중했던 일본 언론 베껴 쓰기에 급급했다. 재차 정보 습득 경로의 편향,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과 정보의 속국 상태가 여전하다. 부디 중국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 유라시아 중추 문명권의 보도를 참조하면서 세계의 변화를 다기하게 살피기를 간곡하게 권한장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며, 읽는 만큼 아는 법이다. 다언어간 크로스체크가 팩트체크의 기본이다.


하나만 일러두자. ECO라는 것도 있다. Economic Cooperation Organization의 약칭이다. 이란의 페르시아어로는 سازمان همکاری اقتصادی‎‎, 파키스탄의 우르드어로는 اقتصادی تعاون تنظیم‎, 터키어로는 Ekonomik İşbirliği Teşkilatı라고 쓴다. 1985년 테헤란에서 발족되었다. 이란과 터키, 파키스탄이 원년 멤버이다. 공히 이슬람제국의 후예들임을 각별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각기 페르시아와 오스만, 무굴제국의 후신임을 자처한다. 이들이 이슬람세계의 재건과 쇄신을 위하여 30년 넘게 뜻을 모아온 것이다. EU에 필적하는 경제공동체를 목표로 삼고 있다. 나아가 한결 민주적인 국제기구를 도모한다. 문화부는 이란에, 경제부는 터키에, 과학부는 파키스탄에 본부를 두고 있다. 응당 삼국연합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터키를 통해서는 북아프리카와 남유럽으로, 이란을 통해서는 중앙아시아로, 파키스탄을 통해서는 동남아시아까지 연결된다. 지난 3월 1일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정상회담에는 유라시아 10개국이 참여했다. 올해의 열쇠말로는 이슬람사상의 근간이 되는 '공정'을 내세웠다. 실제로 ECO 외에도 이슬람협력기구에 포함된 60개가 넘는 국가들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지역협력체가 가동되고 있다. 국가와 민족으로 분열되지 않았던 무슬림공동체, 움마가 소생하고 있는 것이다.

3. 신세계화(New-Globalization)

2015년 8월 싱가포르에서 만났던 두아라 교수를 재회한 것은 2016년 4월 '인도양의 진주' 스리랑카에서였다. 석양이 유독 아름다운 콜롬보에서 인도양세계의 해양도시 연결망을 주제로 국제회의가 열린 것이다. 콜롬보는 나로서도 각별한 장소이다. 박사논문의 한 챕터였던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의 본부가 자리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더 오래 전, '실론'이라고 불리었을 때 이곳을 방문한 이들도 범상치가 않다. 1411년 북쪽에서 정화가 내려왔다. 그의 대원정선이 정박했던 갈레항에는 기념비도 세워두었다. 한문과 타밀어, 페르시아어로 태평천하를 다짐했다. 정화보다 더 이른 시기에 서쪽에서 온 반가운 손님으로는 이븐 바투타를 꼽을 수 있다. 신밧드가 발견했다는 전설의 보물섬이 바로 이곳 스리랑카였다.

▲ 갈레항의 정화 대원정 기념비. ⓒ이병한


회의 참가자들의 면모도 다종다양했다. 자카르타부터 몰디브, 나이로비까지 인도양을 접하는 아시아-아프리카 연안도시 지식인들이 집결했다. 장소가 다시금 의미심장하다. 벵골만과 아라비아해로 구성된 인도양의 한 복판에 자리한다. 인도양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물류가 활달한 바다이다. 남아시아에서 가장 활기찬 항구가 콜롬보항이기도 하다. 인도의 뭄바이항을 제친 것이 2013년이라고 한다. 여기에 함반토타 항구까지 건설이 한창이다. 중국 자본이 대거 투입되었다. 함반토타가 광저우와 자매도시를 맺은 것이 2007년이라고 한다. 인도양세계와 중화세계를 접속시키고 있다. 광동-홍콩-마카오를 묶는 남중국을 남아시아와 결합시키고 있다. 동아시아의 제조품이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까지 판매되는 중간지 역할을 맡게 된다. 나아가 콜롬보를 남아시아의 국제금융도시로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한다. 동북아의 상하이, 동남아의 싱가포르, 중동의 두바이를 모델로 삼고 있다.


▲ 콜롬보의 함반토타 항구. ⓒ이병한

바닷길만 활짝 열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5월에 방문한 네팔에서는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험준한 장벽이었던 히말라야에도 어마어마한 길이의 터널이 뚫리고 있었다. 중국의 동부와 연결되었던 티베트의 고속철도와 고속도로가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아대륙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범아시아적 연결망'의 구축이 아닐 수 없다. 해양의 스리랑카도 내륙의 네팔도 마다할 이유가 크지 않다. 압도적인 대국 인도의 곁에서 살아야 하는 소국의 숙명을 안고 있는 처지이다. 역외 대국, 중국과의 연결망을 통해 남아시아 특유의 비대칭성을 교정하는 세력균형을 취하고 있다.


▲ 네팔과 티베트를 잇는 국경지대의 다리. ⓒ이병한

싱가포르에서 만난 또 다른 인도계 지식인으로 키쇼어 마부바니가 있었다. 그 분의 소개로 델리에서 만난 이가 샤시 타루르였다. 이번에는 그의 권유로 오만의 무스캇을 방문해 보았다. 오만에서 대사를 역임한 적이 있다고 한다. 동남아-인도-중동으로 이어지는 인디안 디아스포라 연결망의 혜택을 입은 셈이다. 무스캇은 아라비아반도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다. 여지껏 가장 영롱한 월출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한낮의 혹서가 지나고 떠오르는 달빛의 청량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왜 무슬림들이 유독 달을 사랑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달을 노래하기를 즐겨했던 대당제국의 시성 이백은 필히 아랍 출신이었을 것이다.

저 달빛 너머로 파키스탄의 과다르항과 인도의 구자라트가 지척이었다. 서인도와 아라비아반도가 이웃지간임이 확연하다. '무스캇의 보석'이라는 대규모 전시회가 열린 것은 2010년이다. 아라비아해를 오갔던 전통적인 항해선을 복원한 것이다. 그 복원 사업의 주역이 인도의 케랄라 출신 뱃사람들이었음이 흥미롭다. 석유자본에 힘입어 급속한 현대화가 진척된 오만에 견주어 케랄라에는 여전히 옛 방식으로 어선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9세기 이래 천 년 간 무스캇과 케랄라, 스리랑카를 거쳐 싱가포르까지 누볐던 배라고 한다. 인도양세계의 귀환을, 구세계의 재건을 상징하는 행사였던 것이다. 누가 21세기를 '태평양의 세기'라고 했던가. 대서양의 세기(19세기)와 태평양의 세기(20세기)를 지나 지난 2천년 호모 사피엔스의 물류망과 문류망의 중심이었던 인도양의 세기가 재귀하고 있다 하겠다.

▲ 무스캇에서 복원된 인도양 항해선. ⓒ이병한

물론 태평양도 마냥 한적하지만은 않다. '다른 태평양'이 꿈틀거린다.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거들었던 '환태평양'(TPP)은 트럼프의 취임과 함께 수장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자진 철수에도 태평양은 유장히 전진한다. 트럼프 당선 직후 APEC 정상회담이 열린 장소가 페루의 수도 리마였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성토하고 자유무역의 수호를 다짐하는 회합의 장이 되었다. 특히 중국이 태평양을 공유하는 아시아와 아메리카 간 자유무역을 선도해가는 책임대국 역할을 자임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에서 세계의 개혁개방을 주도해가겠다는 뜻이다.


리마에서는 페루와 칠레가 앞 다투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가입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RECP에는 아세안 10개국에 중국, 인도, 일본, 한국은 물론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참여하고 있다. RECP가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경제기구라는 오해가 상당하다. 미/일의 TPP와 중국의 RECP를 대비시키는 '가짜 뉴스'가 범람한다. 팩트체크를 하노라면 전혀 그러하지 않다. RECP의 허브는 아세안이다. 중국과 인도, 일본과 호주를 바퀴살로 엮는다. 그 중에서도 동남아시아 최대국가 인도네시아가 견인하고 있다. 2015년 4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만난 지식인으로 라이잘 쿠크마가 있었다. '인도태평양' 구상을 제출했던 인물이다. 인도양과 태평양 두 바다를 잇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국가로서 인도네시아를 자리매김했다. 2년 사이 더욱 진일보했다. 인도태평양 너머 아메리카까지 장착시켜, 범태평양 구상으로 진화한 것이다. 중국을 봉쇄하지도 않을뿐더러, 이슬람을 배타하지도 않는 '다른 환태평양'이다. 과연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이자 인도태평양에 자리한 인도네시아의 위치와 위상이 절묘하다.


대반전의 물결은 심지어 이스라엘에서도 목도할 수 있었다. 2016년 연말, 성탄절 전후로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이스라엘을 미국과의 특수 관계로만 접근하는 독법 또한 관성적이다. 변화의 지표는 통계 수치에서 나온다. 무역과 투자에서 '아시아로의 축의 이동'이 확연하다.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과의 연계가 갈수록 역력하다. 일대일로의 바람이 예루살렘까지 불고 있는 것이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고속철도망이, 홍해와 사해를 잇는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있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허브로, 요르단과 이집트를 연결하는 가교국가로 이스라엘을 전변시키는 것이다.


오프라인만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온라인 비단길, 디지털 실크로드에서도 이스라엘의 역할이 다대하다. 산업과 상업을 온라인으로 결합시키는 중국의 4차 산업혁명 프로젝트 '인터넷+'의 10년 계획에 이스라엘이 적극 협력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보산업과 중국의 인프라산업을 결합시킴으로써 서유라시아 연결망을 재편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스라엘 또한 AIIB에 가입했음이다. 최대 적성국 이란도 반대하지 않았음이 인상적이다. 중국이 만든 플랫폼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이슬람 간 우회적 접촉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모름지기 恒心(항심) 앞에 恒産(항산)이 있다. 구미와 일방으로 통했던 이스라엘의 연결망이 아랍과 아시아와 접속된다면, 항심이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고 하겠다. 본디 예루살렘부터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이 공히 모시는 일지삼교(一地三敎)의 성소가 아니던가. 중동의 외딴섬으로 서아시아 대분열체제의 화근 노릇을 했던 이스라엘이 유라시아 대공존체제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지 주시할 일이다.

▲ 일지삼교의 성소, 예루살렘. ⓒ이병한

세계사의 대세를 확인시켜 준 것은 2017년 1월의 다보스 포럼이다. 1% 글로벌 엘리트들이 스위스의 알프스에 집결하는 연례행사이다. 올해는 유독 특별했다. 사상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이 불참했다. 반면 중국의 국가 주석이 최초로 참여했다. 미국의 탈세계화에 맞서 중국이 신세계화의 주역임을 온 천하에 천명하는 자리가 되었다. 주빈 자리를 꿰찬 시진핑은 승자 독식의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공영주의에 바탕한 포용적 세계화를 주창했다. 탈서구적(Post-West) 세계화야말로 21세기의 뉴노멀이자 신상태임을 지구촌에 널리 선포한 것이다.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대동한 이들 가운데는 80여명의 글로벌 자본가들도 있었다. 알리바바의 마윈, 완다 그룹의 왕젠린, 바이두의 리옌훙 등이 동행했다. 가장 돋보인 인물은 마윈이다. 다보스 직전 뉴욕에 있는 트럼프 타워를 방문했다. 알리바바가 구축한 범유라시아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미국의 중소기업 상품을 팔수 있게 돕겠노라며 트럼프를 유혹했다. 백만의 신규 일자리를 미국에 제공하는 알리바바의 마법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당근의 제시만큼이나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탈냉전 이래 미국은 제3의 물결을 타고 IBM부터 MS, 애플까지 엄청난 돈을 벌어왔다. 문제는 그 돈을 어디에 썼느냐는 것이다. 지난 30년 (공식적으로) 13차례의 전쟁을 통하여 천문학적인 자금을 낭비해왔다. 그 돈을 인프라에 투자했다면 어떠했을 것인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지원했다면 어찌되었을 것인가?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앗아간 것이 아니라고 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지배하는 워싱턴의 낡은 정치체제가 월가와 할리우드, 군산복합체와 실리콘벨리만 대변하느라 '실패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마윈의 쓴 소리는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현실 인식과 합치하는 바 없지 않다. 트럼프 또한 미국의 인프라 재건 방침을 밝히고 있다. 복병은 역시나 자본이다. 연방정부는 빚투성이다. 다른 나라라면 이미 여러 차례 파산했을 것이다. 달러를 찍어내어 근근이 연명해왔다. 흥미롭게도 다보스 포럼 직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금융포럼에서 중국의 국부 펀드로 미국의 인프라 건설 자금을 충당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중국을 촘촘하게 엮어낸 고속철, 고속도로 연결망을 유라시아만이 아니라 아메리카까지 깔아보자는 것이다. 150년 전 중국의 이주노동자 쿨리가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했다면, 이제는 중국의 자본과 기술력으로 고속철도망으로 업그레이드시키자는 것이다. 왕년의 실크로드가 로마와 장안을 이었다면, 새천년의 신실크로드는 동반구의 유라시아와 서반구의 아메리카를 이어보자는 제안이다. 구대륙을 하나로 엮었던 일대일로 구상이 신대륙까지 아우르는 고금합작 버전으로 업데이트된 것이다. 다보스 포럼에 참여한 AIIB 총재 진리췬도 기민하게 응답했다. 이참에 미국까지 AIIB에 가입할 것을 적극 권장한 것이다. 지구촌을 천하로 삼는 제국의 기질이 중원에서 재점화 되고 있는 듯하다.

4. 진세계화(Re-Orient)

안개가 자욱한 음울한 도시 런던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영화를 (잠시) 누릴 수 있었던 것에는 무굴제국의 정복이 결정적이었다. 그 영국 총독부가 자리했던 도시가 콜카타이다. 빅토리아 여왕을 추모하는 기념관(Victoria Memorial)이 지금도 우뚝하다. 그곳을 '식민지 박물관'으로 변경하는 계획이 인도 의회에 제출되었다. 제안자가 바로 샤시 타루르이다. 한때 세계 부의 27%를 점하던 무굴제국이 어찌하여 대영제국 통치 아래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인도로 전락한 것인지, '식민지 근대화'의 허상을 밝히는 장소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 또 영국이 떠난 1947년 이후 남아시아는 왜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의 대분할체제로 쪼개진 것인지, '구미적 세계화'의 적폐를 기록하고 전승하는 학습장으로 삼을 것이라고 한다. 제국주의를 자랑하던 대영박물관이 아니라 제국주의를 성찰하는 인도박물관을 지음으로써, 인도 독립 70주년을 맞이하는 2017년을 세계적으로 기념하자는 것이다. 헛개화에서 진개화로, 가짜 근대화에서 진짜 근대화로, 패권적 세계화에서 탈패권적 세계화로 이행하는 '2017년 체제'의 전범이라고 하겠다. 그가 UN 사무총장이 되지 못했던 저간의 사정이 다시금 안타깝다.

▲ 콜카타에 있는 빅토리아 기념관. ⓒ이병한

콜카타가 동인도에 자리한다면, 서인도에는 고아(Goa)가 있다. 바스코 다가마가 다녀갔던 곳이다.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던 곳이다. 그곳에서 작년 10월 브릭스 정상회담이 열렸다. 서세동점의 출발을 알렸던 상징적인 장소에서 탈서구적 세계화의 주역들이 회동한 것이다. 앞서 5월에는 흑해의 휴양도시 소치에서도 러시아-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렸다. 2025년까지 유라시아경제연합(북방)과 아세안(남방)을 통합하는 대유라시아 구상이 제출되었다.

고아에서 아라비아 해를 건너면 곧장 사우디아라비아에 닿는다. 지난 세기 미국의 중동정책을 대리하는 핵심 동맹국이었다. 그 '속국 왕정' 사우디마저도 재빠르게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살만 국왕이 몸소 아시아를 순방하는 전례 없는 이벤트를 선보였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지나 일본과 중국까지 장장 한 달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단기적으로는 석유 공급지의 다변화를 꾀하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탈석유 시대를 대비하여 이슬람-아시아 연결망에 긴밀히 (재)접속하려는 대전략에 바탕한 것이다. 여기에 영국의 식민지이자 미국의 동맹국이었던 호주가 아세안 가입을 적극 모색하고 있고, 그 아세안과 EU간 자유무역협정이 논의되고 있다는 점까지 보탠다면, 2025년 대유라시아 연합이 마냥 허황한 공상만은 아닐 것도 같다.

▲ 고아의 바스코 항구. ⓒ이병한

물류의 대반전은 문류의 쇄신도 촉발한다.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는 연동되기 마련이다. 주목할 장소는 항저우이다. 12월 포스트-반둥시대를 표방하는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예술연구원이 들어섰다. 2015년 반둥회의 60주년을 기념했던 반둥포럼의 후신이다. 반둥서원(Bandung School)을 지구촌 곳곳에 세우는 글로벌 프로젝트도 발주되었다고 한다. 항저우가 어떤 곳인가. 동아시아 문예공화국의 시심을 자극했던 서호(西湖)의 도시로 그치지 않는다.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가 찬탄해마지 않았던 세계도시의 원형이었다. 바로 그 도시에서 신세계질서의 지각변동을 알리는 G20 회의가 열린 이후에, 대륙 간 민간회의도 열렸던 것이다. 마르코 폴로가 견문했던, 바스코 다가마가 여행했던, 동인도 회사가 진출했던, 19세기 이전 아시아 중심의 세계가 성큼성큼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독 역류하던 극동의 한 나라가 있었다. 내부자들의 농단과 외부세력의 농락으로 국정이 장기간 표류했다. 개성공단을 폐쇄하여 제 발등을 찍더니, 사드를 배치한답시고 제 숨통을 죄는 자충수를 연발했다. 식민지 근대화, 분단국 산업화, 속국 민주화의 백년 누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역주행을 거듭했던 것이다. 이참에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에서 벗어나자는 황당한 주장도 들려온다. 식민지 이래 일백년이 넘도록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던 군사적 종속은 눈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중국 시장을 동남아로, 인도로 대체하면 된다는 어불성설도 파다하다. 하나만 설피 알고 둘은 모르며, 둘을 겨우 알아도 열은 미처 모르는 흰소리이다. 동남아도, 인도도, 중앙아시아도, 중동도, 나아가 유럽마저도 중국과 더불어 '동반성장'하고 있다. 이 유라시아의 거대한 분업체제에서 이탈하는 '쇄국정책'과 '주체노선'은 망국의 첩경이 아닐 수 없다.

천만다행으로 광화문을 장기간 점령한(Occupy Movement) 촛불혁명으로 시대착오적인 대반동(De-Orient)의 흐름은 막아내었다. 서아시아 대분열체제, 남아시아 대분할체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적폐를 청산하고 해소해가는 세계사의 대반전(Re-Orient)에 합류할 수 있는 물꼬를 재차 틔운 것이다. 실로 민심은 천심이다. 오작동을 반복하며 앙시앙 레짐으로 전락한 '서구 민주'를 돌파하는 '동방 민주'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축하를 나누고, 축배를 건넨다.


극동에서 타오르는 촛불을 멀리서 조감하노라니, 120년 전 동학도의 횃불이 떠올랐다. 2016년이 마침 원불교 개창 100주년이라는 사실도 포개어 보였다.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도 개벽되어야 한다 하셨던 先知者(선지자)의 말씀이 성성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식민지로 전락한 후 더욱 기승을 부렸던 개화파의 독주를 근심하셨을 것이다. 개화와 개벽의 공진화를 고심하고 숙고하셨을 터이다. 물질개벽의 총아인 사드의 배치 장소가 하필이면 정신개벽의 성소, 성주라는 점도 참으로 오묘하다. 따라서 촛불 이후가 고작 정권교체로만 그쳐서는 족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대교체 너머 문명교체(=Reset)까지 내다보아야 한다. 개화파와 개벽파의 대연정으로 지난 백년 세뇌되었던 서구화=근대화의 주박마저 허물어야 할 것이다. 세계화의 폭주로 심신이 지친 헬조선을 힐링하고 디톡스하는 탈진실 시대의 문명해방운동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좌/우가 공히 봉인시켰던 전통문명의 熟知(숙지)를 재발굴하고 재숙성시킴으로써, '문명론의 신개략', '신문명론의 개략'을 새로이 써야 할 것이다.

그럴수록 더더욱 긴 호흡으로, 깊은 호흡으로, 근본을 천착하고 기원을 탐색할 볼 필요가 크다고 하겠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하셨다. 급급하고 긍긍하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새 판을 앞두고, 지난 판을 회람하는 복기가 종요롭다. 마침 지난 이백년, '구미적 세계화'의 시발이 되었던 유라시아의 극서지방, 유럽을 둘러보고 있다. 2017년 새해를 맞이한 곳은 포르투갈의 리스본이었다. 지중해 건너 모로코를 마주하고 있는 나라이다. 모로코 출신 이븐 바투타와는 성질을 전혀 달리했던 바스코 다 가마의 여행이 시작되었던 장소이다. 구세계와 신세계를 날카롭게 갈랐던 콜럼버스의 대항해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극동의 한반도 출신이 극서의 이베리아 반도까지 닿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이제는 고국으로, 고향으로, 집으로 되돌아가는 귀로의 여정이다. 파리부터 모스크바까지, 지난 백년의 천하대란을 일으켰던 동/서 유럽의 혁명을 되짚고 곱씹어보려 한다. 내 나름으로 남북 간 대연정, 대통합을 준비하는 밑 공부로 삼고자 한다.


<유라시아 견문> 3년차는, 극서(極西) 항구 리스본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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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물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www.byeong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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