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샤리아
울라마 : 샤리아는 아랍어로 물길이라는 뜻입니다. 물이 나는 곳으로 난 길을 말하죠. 사막에서 우물에 이르는 길, 구제에 이르는 길입니다. 진리에 이르는 길, 알라의 뜻에 이르는 길이 이슬람의 법, 샤리아인 것입니다.
이병한 : 재미있습니다. 한자로 '法'(법) 또한 물(水)처럼 흐르는 것(去)으로 풀어볼 수 있는데요. 그럼 샤리아가 구현된 이슬람 사회는 '법치국가'인 것입니까?
울라마 : 서구에 '법치국가'는 있어도, '법의 지배'는 없습니다. 법의 지배가 부재함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이 법학 교육입니다. 서구적 교육에서는 초등학교에서도 중고등학교에서도 법학 교육을 받지 않습니다. 헌법의 일부를 사회 교과서에서 배우는 경우가 있을 뿐이죠. 법치국가라면서 정작 법학의 기초가 없는 시민들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법을 만들고(입법부) 다루고(사법부) 집행하는(행정부) 소수의 사람들에게 과도한 권력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즉 사람의 사람에 대한 지배, 소수의 다수에 대한 지배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 '법의 지배'는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고 법의 지배를 실현하는 것이 이슬람의 정신입니다.
이병한 : 법치와 법의 지배는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울라마 : 이슬람의 법, 샤리아는 인간이 작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신의 뜻이 곧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정한 사람들만 법을 배우지도 않습니다. 만인이 신의 법 아래 평등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샤리아를 익히는 것입니다. 가정교육과 마을교육, 또 국가가 세운 학교의 공교육을 통해서 끊임없이 샤리아 공부를 하게 됩니다. 하루에 다섯 번씩 코란을 소리 내 읽으며 기도를 올리는 것도 나의 일상 속에서 샤리아를 관철시키기 위한 방법이지요. 즉 샤리아는 일상과 떨어져 있는 법치가 아니라, 천상과 지상을 하나로 이어주는 법의 지배입니다. 칼리프 역시도 샤리아의 집행자에 불과합니다. 샤리아를 구현하는 칼리프의 지배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에서 해방됨을 의미합니다.
이병한 : 그러나 입법권은 결국 울라마에게 있지 않습니까? 서구에서 국회의원이 입법권을 행사하는 것과 이슬람에서 울라마가 샤리아를 해석하는 것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라고 할 수 있지 않는지요?
울라마 : 울라마는 국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따라서 국법을 입안하는 사람들도 아니지요. 여전히 입법을 국가의 단위에서 사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슬람은 개인을 부정하는 것만큼이나 국가도 부정합니다. 개인도 국가도 자기중심주의의 표출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공공성을 국가는 담지 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를 최상위 집단으로 여기고, 국가의 공과 개인의 사를 대립시키는 사회과학의 전제부터가 이슬람의 견지에서 보자면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슬람법은 국법이 아니라 보편법입니다. 즉 개인과 국가보다 더 위에 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진정한 공공성으로 가는 중간 단계일 뿐입니다. 따라서 울라마 또한 국가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통치자를 찾아서 나라를 옮겨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사명은 민족과 국가에 충성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알라의 말씀을 실현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칼리프 통치의 정당성 또한 샤리아의 시행 여부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한 보편주의를 담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쪽으로는 모로코부터 동쪽으로는 인도네시아까지, 놀라울 만큼의 적응성과 융통성을 보이며 확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말하는 '법치'란 특정한 지역에 사는 일정한 사람들(민족, 국민)의 습관이자 관습을 말할 뿐이죠. 그것을 '법의 지배'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병한 : 알듯 말듯 아리송합니다.
울라마 : 샤리아의 본질을 위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정치사상을 참조하고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정치의 핵심은 유가의 덕치주의죠. 도덕 교육을 으뜸으로 칩니다. 그 가르침을 받드는 나라가 중화가 되는 것이요, 그 배움이 미치지 못한 곳이 오랑캐의 땅입니다. 황제 역시도 그 천명을 받고 수행하는 천자라고 불리었죠. 황제가 화이질서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덕화야말로 정치질서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황제조차도 그 가르침을 초월한 존재가 아니라, 거꾸로 그 유교적 덕을 체현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받는 대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유교의 가르침에 위배되고 덕을 상실하면 방벌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것이고요.
즉 이슬람 사상에서도 중국의 정치 사상에서도 중추적인 이념은 사람의 지배가 아니라, 정치에 의한 성스러운 질서의 확립에 있습니다. 그것을 이슬람에서는 샤리아의 구현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중국에서는 왕도의 실현이라고 표현했던 것이죠. 중국이 '덕의 지배', 이슬람이 '법의 지배'를 실현하고자 한 반면에, 서구의 근대정치는 '인간의 지배'였던 것입니다.
이병한 :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배격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는 이념으로 샤리아를 고수하기에 ‘'정당 정치'의 발전이 더디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까? 근대정치의 핵심은 정당 정치입니다.
울라마 : 정당을 아랍어로 히즙, 이라고 합니다. 어감이 좋지 않습니다. 분파, 당파, 도당에 가까운 뜻입니다. 부정적인 견해가 이미 내장되어 있죠.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초기 이슬람의 와해가 파당간의 분열 탓이었습니다. 칼리프 폐지 이후에 이슬람 결사체가 무슬림동포단과 같은 NGO로 등장한 이유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인도네시아에서 등장한 단체의 이름도 이슬람 동맹이었죠. 한사코 정당이라는 이름은 피했던 것입니다. 20세기 중반에서야 '중도 이슬람개혁당' 등 중도라는 수사를 포함하여 정당들이 들어섭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히즙'이라는 단어의 부정적 어감을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헤즈볼라(히즙+알라), 즉 '신의 정당'이라는 이름을 단 정당까지 출현하게 되죠. '신의 말씀을 따르는 정당'을 표방함으로써 중도라는 수사를 떼어내어도 되었던 것입니다. 헤즈볼라 역시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에 등장했고, 1982년 레바논에서도 결성되었습니다. 지금은 예멘, 리비아, 사우디, 바레인, 터키 등에서 헤즈볼라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병한 : 그 이슬람주의 정당들이 냉전의 종식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약진하고 있습니다. 민주화와 재이슬람화가 공진화하고 있음이 이슬람 세계의 가장 큰 특징인 것 같아요. 이슬람의 후진성 때문에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한다는 상투적인 인식과는 정반대의 현상입니다.
울라마 : 이슬람 세계에서도 응당 정치가 민의를 반영하기를 바랍니다. 민주주의가 구현되기를 희구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코란>이 설파하는 이슬람의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희망합니다. 본디 이슬람이 내면의 신앙으로 그치는 종교가 아니지 않습니까. 장대한 이슬람법과 결합되어 있는 정치적 종교입니다.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했던 개별 국가들의 국법을 샤리아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라고 요구하는 흐름이 민주화로 표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슬람적 정의를 조금 더 잘 실천하는 국가로 바꾸어달라는 것이 무슬림의 민의인 것입니다. 그래서 히즙(정당)조차도 방편으로서 인정하게 된 것이지요. 국법에서 이슬람법으로 귀의하는 수단이자, 국가에서 움마로 귀의하는 도구라는 관점에서 이슬람 정당을 승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병한 : 이슬람주의 정당의 활약 또한 '정당 정치의 성숙'보다는 '샤리아의 실현'으로 가는 이행기의 지표라고 보아야 하겠군요.
울라마 : 개인은 사회를 분절시키고, 국가는 움마를 파편화시키며, 국법은 샤리아를 왜곡시킵니다. 무슬림의 민의는 움마를 복원하고, 샤리아로 귀의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화가 진척되면 될수록 재이슬람화는 더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화=재이슬람화는 비가역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병한 : 그렇다면 재이슬람화, 즉 이슬람의 부흥 현상을 20세기 근대화로 말미암아 비대하게 확장된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이슬람적 시민사회(=움마)를 복원해가는 운동이라고 표현해도 되겠습니까?
울라마 : 이슬람은 애당초 약한 국가, 강한 사회로 작동했습니다. 19세기의 식민화와 20세기의 근대화로 이슬람의 민간 사회를 지탱했던 근간들이 해체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랍 민족주의의 좌파 국가이든, 산유국 왕정국가의 보수파이든 국가권력의 강화와 사회 능력의 약화라는 점에서는 비슷했습니다. 좌파적 시각에서 보면 나세르의 이집트, 후세인의 이라크에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통해 '복지국가'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후하게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의 시각에서 보면 국가권력의 민간 장악이 강화되면서, 전통적인 사회의 자율성을 현저하게 떨어뜨린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이슬람화=민주화'가 시민사회의 강화와 연동되는 까닭입니다.
이병한 : 개인, 국가, 법치 등의 개념에는 호의적이지 않으셨는데요. 시민사회에는 거부감이 덜하신 것 같습니다.
울라마 : 자유로운 시민의 공동체, 라는 시민사회의 원형이자 이념형이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이지 않습니까? 그 폴리스가 천 년의 공백 끝에 우연히 유럽으로 전파된 것이 아닙니다. 12~13세기부터 지중해의 북부, 유럽의 남부 도시에서 시민계급이 등장했던 것은 지중해의 남부, 즉 아랍의 북부 도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은 유대교나 기독교처럼 유목민의 종교가 아닙니다. 이슬람이 처음 등장한 메카는 당시 아라비아 반도 최대의 상업도시였습니다. 마호메트 본인부터가 상인 출신이었고요. 즉 이슬람은 그 출발부터 도시종교이자 시민종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슬람 세계에는 찬란한 도시들이 번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도시 생활을 더욱 잘 영위하기 위해서 '이슬람적 공정'이 강조되었던 것이고요. 아랍 상인과 페르시아 상인이 유명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또 그랬기에 플라톤의 이상도시론을 비롯한 그리스 사상들이 이슬람 세계에 널리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시민사회와 이슬람은 하등 충돌할 이유가 없습니다. 시민사회를 억압하며 팽창하는 국가 권력이 이슬람과 상충할 뿐입니다.
이병한 : 그 이슬람적 시민사회에서 작동했던 제도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습니까? 또 '민주화=재이슬람화'의 과정에서 그러한 제도들 역시도 복원되고 있는 것인지요?
울라마 : '재이슬람화=민주화'와 더불어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경제의 자유화입니다. 사회주의, 복지국가, 개발독재 모두 국가권력의 강화로 귀결되고 맙니다. 이슬람에서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복지사회'가 작동합니다. 와쿠프, 라는 제도가 있지요. 이슬람 고유의 기부제라고 하겠습니다. 이 역시 사유-국유-공유라는 소유의 세 형태로부터 비롯하는 발상입니다. 사유제와 국유제를 제어하는 방편으로 공유제가 고도로 발달한 것입니다. 와쿠프는 아랍어로 '정지'라는 뜻이에요. 소유의 정지를 의미합니다. 이 세계의 만물은 근본적으로 신이 창조한 것입니다. 신의 소유가 곧 공유입니다. 따라서 개인의 사유도 국가의 국유도 일시적일 뿐입니다. 사유권과 국유권을 '정지'시킴으로서 재차 신의 귀속으로 되돌리는 것이 와쿠프인 것입니다. 무슬림의 일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모스크가 대부분 와쿠프로 만들어지는 것이에요. 개인의 재산을 '정지'시킴으로써 마을 공동체에 귀속시키는 것입니다. 모스크에 부속되기 마련인 도서관과 병원, 고아원 등도 그렇게 만들어지지요. 마을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사용되는 자율적 사회안전망이 가동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와쿠프로 작동하는 이슬람 시민사회의 원리를 '재산권'에 기초한 민주주의로 작동하는 서구인들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와쿠프를 '신의 재산'이라고 잘못 번역하고는 이슬람의 후진성의 증거라며 와쿠프를 강제적으로 폐지시켰지요. 이슬람적 공유제를 파기함으로써 우파는 소유제로, 좌파는 국유제로 퇴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병한 : 소유와 국유를 '정지'시킨 그 와쿠프의 운영 주체는 누구입니까? 어떻게 재화를 (재)분배할 것인가가 복지사회를 판별하는 잣대일 텐데요.
울라마 : 물론 울라마입니다. 샤리아에 근거하여 와쿠프를 공공선에 부합하도록 사용하는 역할을 울라마가 담당합니다. 그래야 '신=보편적 공공성'에 근거하여 기부한 재산을 국가라는 또 다른 사적 권력을 매개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민중의 복지와 후생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중=신도들' 또한 신의 이름으로 기부된 공공재임을 알기에 와쿠프의 관리와 운영을 더더욱 엄격한 눈으로 감시하게 되고요. 나아가 움마로서의 공공의식 함양에도 기여를 하게 됩니다.
이병한 : 자타트, 라는 것도 있지요? 일본의 이슬람경제 책에서는 '구빈세라고 번역했던데요. 국가에 내는 세금이 아니라는 점에서 적절한 역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랍어 원뜻에 맞추어 한자를 조합하면 '喜捨'(희사)가 가장 어울릴 것입니다.
울라마 : 자타트는 무슬림이 수행해야 할 다섯 가지 의무, 오행 가운데 하나일 정도로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 고백, 예배, 단식, 순례와 더불어 희사가 있습니다. 어원을 따져 들어가면 '정화하다', '맑게 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죠. 세속에서 거두어들인 재산을 성스럽게 정화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자타트는 무슬림과 알라의 계약입니다. 세계는 신이 창조한 것으로, 본래 만물이 신의 소유물입니다. 인간은 그것을 일시적으로 대리할 권리만 있을 뿐이죠. 따라서 그 일시적인 소유로 인해 증식된 재산은 다시 신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증식된 재산 가운데 신의 몫을 바로 자타트라고 하는 것이지요. 다음으로는 공동체에 대한 의무가 있습니다. 재차 이슬람에서는 재산권에 기초한 인권이나 민법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오로지 움마가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만인은 동포정신에 기초하여 상호부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카트는 그 상부상조를 제도화한 것입니다. 실리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재산을 그냥 보존만하면 자타트의 몫도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신과의 계약을 더욱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해서, 또 공동체에 더욱 많이 봉사하기 위해서라도, 무슬림은 더더욱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펼쳐야 하는 인센티브가 되는 것입니다. 상업을 널리 장려하는 이슬람의 특징이 여기서도 잘 발현되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현세를 부정하지도 않고, 자연적 욕망을 억제하라는 금욕주의도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의 부는 자신이 실제로 사용할 만큼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가르칩니다. 욕망의 기호화에 의한 물신숭배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이지요. 이자의 취득, 증권의 선물 매매, 즉 화폐가 화폐를 낳는, 화폐가 실제 세계와 유리되어 자기 증식하는 금융자본주의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슬람 경제가 건전하게 작동하고 그 기반 아래서 시민사회 또한 건강하게 운영될 수 있습니다.
이병한 : 그런 발상의 연장선상에서 이슬람 은행도 나온 것이겠죠. 이자를 수취하지 않으면서도 상업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는 것이 곧 신의 뜻을 더욱 널리 펼치는 것이 됩니다.
울라마 : 이슬람 은행의 목표는 인간의 복리 증진에 있습니다. 그 복리에는 물질적 만족도 포함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과 행복입니다. 따라서 생산의 최대화, 소비의 극대화가 이슬람 은행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정신의 건강함과 생활의 경건함, 사회적 공정과 공평의 실현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즉 이슬람 경제는 경제적 고려를 도덕적 고려에 종속시킵니다. 이자 없는 은행이라는 특수성을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기층에 깔려 있는 이슬람적 가치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은행의 활동마저도 결국은 알라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것, 지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 궁극의 목표인 것입니다.
즉 '성장'이나 '발전'의 의미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애당초 아랍어에는 발전이나 개발 같은 단어가 없었어요. 굳이 비슷한 것을 꼽자면 울라마들의 '영혼의 성장'이라는 개념이 있었죠. 경제를 통하여 영성을 고조시키고 양심을 충족시킨다는 이슬람의 목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생산과 소비, 유통이라는 영리 활동을 통하여 도덕적 각성을 촉발하고 윤리적 실천을 이끄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병한 : 작년에 말레이시아를 견문하면서 이슬람 경제에 처음 입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할랄 제도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정작 중동에 왔더니 할랄 로고를 발견하기가 힘들더군요. 역설적이게도 이스라엘에서는 할랄 상품들이 많았습니다.
울라마 : 할랄 인증제는 매신(賣神)적 행위입니다. 신의 이름으로 이윤을 취하려는 삿된 마음입니다. 그래서 유럽이나 미국에서 할랄 상품들이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입니다. 할랄 제도는 이슬람적인 것이 아니라,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국가 자본주의' 전략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종교를 활용한 마케팅이자, 후발국가의 정책인 것이죠. 유대인들의 넉넉한 주머니를 겨냥하여 도입된 코샤르 인증제를 차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슬람은 유대교와 달리 일개 민족의 종교가 아닙니다. 특정 국가의 발전 전략을 위해서 이슬람을 활용하는 것에 결연하게 반대합니다. 어찌 일개 국가가 국익을 위해서 신의 섭리를 인증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할랄 상품은 이슬람의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입니다.
이병한 : 제가 <유라시아 견문> 1권에서 썼던 내용과 상반되는 말씀을 주시니, 조금 당혹스럽습니다. 도덕 경제, 윤리적 소비 등에 할랄 제도가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울라마 : 할랄의 인증 권한을 특정 국가가 독점하고 그 이익을 국유화하는 것은 이슬람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뜻입니다. 말레이시아가 진정으로 할랄 제도를 통하여 '이슬람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실현하고 싶다면, 할랄 산업으로 인한 수익 또한 '공공의 목적=신의 뜻'의 실현을 위해서 희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슬람적 공정이 지구적 차원에서 선순환 할 수도 있겠지요.
이병한 : 할랄을 통한 이윤 또한 와쿠프를 통해 '정지'시키고, 자타트를 통해 희사해야만 이슬람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울라마 : 무슬림에게는 인류 사회에 최선의 것을 제공해야 하는 책무가 있습니다. 모세와 예수를 이은 최후의 예언자가 마호메트였기 때문입니다. 근대 유럽이 부상하기 전까지 약 1000년 간 무슬림은 그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세계를 동서남북으로 연결시킨 것도 무슬림이었고, 유럽을 중세의 암흑기로부터 구원해준 것도 이슬람이었습니다. 다만 지난 200여 년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무슬림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재차 이 세계에 이바지할 것입니다. 서구적 근대는 이미 말세에 접어들었고, 서구의 가치 또한 말법이 되었습니다. 그 말세와 말법을 대신할 유력한 자산으로 이슬람 문명이 있습니다.
이병한 : 과연 이슬람 정치, 이슬람 경제가 어디까지 진화해갈는지 '이슬람의 모험'을 계속 주시하겠습니다.
5. 학문의 권장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지금도 아이를 대여섯씩 낳은 경우가 흔하다. 1인 가구는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3대가 함께 사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방 하나 딸린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혼자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혼밥이나 혼술, 고독사는 상상하기도 힘든 문화일 것이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어울려서, 어울어져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름에서도 그런 발상은 잘 녹아 있다. 무슬림의 이름은 유독 길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는 물론 더 먼 조상의 이름까지 따오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나는 또한 누구의 어머니이자, 할머니이며, 증조할머니 등등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고로 이슬람 세계에 나 홀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진보의 척도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화적 관점에서는 성공적인 수단이 아닌 것 같다. 그런 사조가 만연한 사회일수록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종의 번식에, 가치의 전파에 실패하고 있다. '인구 절벽'이라는 말이 유럽에서도, 일본에서도, 한국서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반면 이슬람의 인구는 중단 없이 늘어나고 있다. 21세기 인구 전망 통계를 보면, 무슬림의 약진이 단연 두드러진다. 2070년이면 인류의 1/3이 무슬림이 된다. 유라시아로만 따지면 절반 가까이가 무슬림이다. 유럽조차도 15%가 무슬림이 될 것이라고 한다.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이미 조짐은 완연하다. 2016년 서유럽의 런던에서 최초의 무슬림 시장이 탄생했다. 동유럽의 루마니아에서도 무슬림 여성이 총리 후보까지 지명되었다. 당장은 유럽 극우파의 반동이 눈에 띈다. 하지만 '민주화=이슬람화'의 물결은 이미 아랍을 넘어 유럽까지 당도해 있는 것이다. 재이슬람화의 물결이 반동파의 저항을 타고 넘어 문명융합을 선도하고 강제해 갈 것 같다. 본디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은 한 뿌리이지 않았던가. 세 종교가 조화로웠던 시절이 바로 '이슬람의 집'이 작동하던 때였다.
지난 백년 유럽은 선망하고, 아랍은 등한시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으로만 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었던 20세기의 이슬람 인식은 서둘러 떨쳐내는 편이 이로울 것이다. 지상자원에도 주목해야 한다. 때마침 적기이기도 하다. '식민지 근대화'와 '조국 근대화'를 추동했던 자본주의도 국민국가도 민족주의도 유효기간을 만료했다는 실감을 한층 더하는 2016년이었다. 지난 세월 금과옥조로 여겼던 관념과 신념들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로 진입했다. 그럴수록 '교조적인 근대화'가 군림하기 이전에 작동했던 다양한 문명권의 숙성된 지식과 농축된 지혜들, 그 '熟知'(숙지)들을 재발굴하고 채취하여 세련시키는 제련 기술이 중요해질 것이다.
150년 전 일본의 계몽가 후카자와 유기치가 <학문의 권장>을 집필한 바 있다. 대저 서학을, 구미의 학문을 배우자고 제자들과 후세들에 권한 것이다. 그 서학을 곧 진리이자 진실로 떠받들었던 한 시절이 시나브로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학문의 권장이 필요한 때에 이른 것이다. 나로서는 이슬람학을 크게 권장하는 바이다. 태생적으로 세계화, 정보화, 네트워크화 등 21세기의 시대정신과 어울리고 부합하는 학문이자 사상이다. 유럽의 근대 사상들을 처음부터 '우상 숭배'라며 비판했던 해체주의와 탈진실의 기수이기도 했다. 지난 백 년의 학문을 재고하고 성찰해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지적 모험의 기회를 제공해줄 무진장한 보물 창고임에 틀림없다.
안타깝게도 나는 다소 늦은 것 같다. 기억력이 영 예전만 못하다. 중요한 단어도 돌아서면 곧장 까먹기 일쑤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구글의 번역 능력이 갈수록 탁월하다는 것이다. 특히 아랍어-영어의 번역 정확도는 한국어-영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그만큼 아랍어-영어 번역을 활용하는 빈도가 높다는 뜻일 것이다. 3대 이슬람 제국을 분쇄시켰던 대영제국의 혜택을 이런 식으로나마 보게 된다. 하더라도 불혹을 목전에 둔 나이에 이슬람학에 매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동(아시아)학과 서(유럽)학의 곁가지로서, '이슬람의 모험'을 곁눈질하려고 한다.
그러하기에 더더욱 새 천 년의 신청년들에게 기대를 걸게 된다. 부디 뜻을 높고 크게 세워줬으면 좋겠다. 일생을 투신하여 일가를 이루어 봄직한 유망한 분야이다. 2060~70년, 이슬람 세계의 재이슬람화가 절정에 달할 무렵에 학문적으로도 만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세계의 3할이자, 유라시아의 5할을 차지할 '21세기의 색목인'들과 한반도를 긴밀하게 (재)접속시켜주는 첨단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 편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창조경제, 문화 융성에도 일조하는 첩경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작심과 분발에만 맡겨서도 아니 될 것 같다. 국가적 사업으로 진흥시켜야 할 것이다. 할랄 산업 단지를 조성하는 것만큼이나, 이슬람학의 메카가 될 대학과 연구소도 지어야 할 것이다. 독어와 불문학 이상으로, 아랍어를 가르치고 페르시아 문학을 공부해야 할 것이다. 태평양보다는 인도양으로, 신대륙보다는 구대륙으로, 방향을 크게 선회시켜야 한다. 테헤란으로, 이스탄불로, 카이로로 미래의 주역들을 과감하게 파견해야 할 것이다. 장차 이슬람을 모르는 자, 감히 21세기를 논할 수 없으리, 장담하는 바이다. 재차 읍소하건데, 부디 이슬람학을 권한다.
다음 주에는 그 마중물로서 이슬람 세계의 도서관을 탐방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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