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 중 특정 유전자가 변이로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유전병을 치료하기 위해 변이된 유전자를 정상적인 유전자로 대체하는 것을 유전자 치료(gene therapy)라고 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우리에게 유전체를 교정하는 유전자 치료를 능하게 할 수 있는 최선의 기술을 제공해 주었다. 유전자 치료는 인간에게 적용하는 방법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경우는 우리 몸에 있는 세포 즉, 개체를 이루고 있는 체세포를 몸에서 분리하여 체세포의 유전정보를 유전자 가위로 교정이나 편집한 후 다시 인체 내로 이식하는 방법이다. 대부분 우리 몸의 체세포는 몸 밖으로 분리하고 다시 이식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이 방법의 한계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 방법은 주로 몸에서 분리가 비교적 쉽게 가능한 혈액에 있는 면역세포들에 주로 많이 적용되고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세포를 몸에서 분리하지 않고 크리스퍼 유전자와 Cas9이라는 DNA를 자르는 유전자 가위를 우리 몸의 조직 세포에 전달하여 체내의 전달받은 세포에서 유전자 편집을 가능하게 하는 접근이다. 이 접근법은 현재 유전자 가위를 정확하고 빠르게 원하는 조직의 세포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한계로 작용한다. 또한 이 두 가지 방법 모두에 적용되는 가장 큰 한계는 우리 몸 조직의 세포들은 생명의 유지되는 한 계속 새 세포로 교체되고 있기 때문에 체내 특정 조직의 세포 유전체를 교정해 주어도 교정된 세포가 계속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방법 모두 변이된 유전자에 대한 유전자 치료를 살아있는 동안 계속 반복적으로 해 주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생명체가 이미 개체로 태어난 후에 적용하는 유전자 치료는 한시적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반면 유전자 치료를 수정란이나 세포의 수가 몇 개 되지 않는 아주 초기 배아에서 진행할 수 있으면 이렇게 유전자 결함이 교정된 배아에서 발생한 개체는 몸을 이루는 세포 전체의 유전체 정보가 교정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간 배아에 유전자 가위기술을 적용하여 유전체를 교정하거나 편집하고자 하는 시도가 매우 유혹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2013년부터 다양한 동물과 식물의 수정란이나 초기 배아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기술이 성공적으로 적용되어 유전체가 편집된 개체가 만들어졌고, 윤리적인 이유로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못해도 이 기술을 인간배아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2015년 4월, 중국 중산대의 황진주 교수 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기술을 이용해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는 불임 클리닉에서 제공받은 인공 수정 후 '폐기된'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베타지중해성 빈혈에 관여하는 혈액단백질 중 하나인 헤모글로빈-B 유전자를 편집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은 86개의 배아에서 수행되었으며 그 중 54개의 배아가 생존했고, 4개의 배아에서만 표적 유전자 변이가 일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최종적으로는 '극히 일부'의 배아에서만 원하던 형태의 유전자 편집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전자 편집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전체 유전자가 아닌 단백질로 전환되는 부분만의 변이 여부만을 판정해 성공했다는 극히 일부 배아의 진정한 성공 여부도 판별하기 어려운 허술한 실험 내용이었다. 황진주 교수도 낮은 성공률과 문제점을 인정하며,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해 연구를 중단했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기술을 최초로 적용한 황진주 교수의 연구는 발표되기 이전부터 과학계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과학자들을 두 진영으로 양분시켰다. 크리스퍼를 일반적인 유전자 가위로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초로 보여주어 이 분야를 열었다고도 이야기 할 수 있는 선구자인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제니퍼 다우드나를 비롯한 17명의 과학자들은 인간 배아의 유전자 변형을 시도하는 연구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반면, 하버드 의과대학의 조지 처치를 비롯한 반대 진영에서는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을 통해 의미 있는 과학적 성과를 얻을 수 있으며, 정해진 가이드라인을 따른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아직도 과학계의 의견이 통일되지 못한 채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켰던 황진주 박사의 연구 발표가 있고 1년 뒤인 2016년 4월, 중국 광저우 의과대학의 판 용 박사는 또 다른 인간 배아의 유전자 편집 연구를 발표했다. 판 용 박사는 2014년 4월부터 9월 사이에 시험관아기 시술 과정에서 도태된 213개의 인간 난자를 기증받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기술을 이용하여 CCR5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유도하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CCR5는 후천성 면역결핍증을 일으키는 HIV 바이러스가 숙주의 인간의 면역 T 세포를 감염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세포의 표면에 있는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제공한다. 따라서 CCR5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유도해 CCR5 유전자를 불능화 시키는 편집을 하면 HIV가 T 세포에 침입하지 못하게 되어 AIDS에 대한 내성을 지니게 된다. 판 용 박사의 연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과학자들도 있는데, 보스턴 소아병원의 조지 데일리 박사는 "HIV에 대한 내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각각 하나씩 받은 한 쌍의 CCR5 유전자 모두에 돌연변이를 일으켜야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판 용 박사의 실험은 한쪽의 유전자만 편집해서 그런 효과를 기대할하기 어렵다. 단지 크리스퍼 기술을 인간 유전자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 한 것 뿐"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이 기술이 성공할 수 있다면 AIDS 환자가 임신했을 때 태아에게로 AIDS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큰 문제였는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두 연구 모두 인간 배아를 사용한 연구였고 단 1년의 시차가 있었을 뿐인데 두 번째 연구는 2015년의 황진주 박사 연구만큼 큰 논란과 파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1년 사이에 진행된 다양한 논의들을 통해 '생식 목적이 아닌 인간 배아의 조작 연구'에 대한 세계적 공감대가 형성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든다. 다음 글에서는 인간배아의 유전자 교정에 대한 여러 나라의 반응과 이 기술을 인간 배아에 적용하는 한계점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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