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인간 유전체 합성 계획이 발표되면서 다시 관심을 끌고 있는 합성 생물학(synthetic biology).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반되는 의미의 두 단어인 '합성'과 '생물'이 만나 이루어진 합성 생물학이란 도대체 어떤 생명과학 기술이고,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2003년은 생물학에서 인류 역사에 기록될 의미 있는 한 해였다. 1990년 '인간 유전체의 정보를 모두 읽어내자'라는 목표로 시작되었던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99.9%의 정확도로 종료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유전 정보에 대해 모두 알 수 있는 '포스트 게놈' 시대를 살게 되었다.
미국 정부가 아닌 '셀레라 지노믹스'라는 회사를 만들어 민간에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과학자 가운데 한 명인 크레이그 벤터는 유전체 프로젝트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합성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이야기했다. 이제 인간이 다양한 생명체의 유전자를 다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니, 역으로 유전 정보를 조립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 주장한 것이다.
합성 생물학은 새롭게 시작되는 많은 과학적 개념처럼 아직도 뚜렷하게 정립되지 않은 개념이고, 연구의 의도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합성 생물학이란 용어가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지만, 각 연구자의 초점에 따라 '자연 공학(natural engineering)', '합성 유전체학(synthetic genomics)'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 생명윤리연구자문위원회는 합성 생물학이란 "기존 생명체를 모방하거나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 생명체를 제작 및 합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즉, 포괄적으로 자연 세계에 존재하는 생물의 구성 요소와 시스템을 설계하고 제작하거나 자연 세계에 이미 존재하는 생물 시스템을 재설계하여 새로이 제작하는 분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합성 생물학은 '생명을 합성해 내는 학문'으로 인간이 조물주의 영역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려는 시도로도 해석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유전 정보를 합성해 만들어 내는 합성 생물학이 가능해진 배경에는 중요한 기술적 진보가 있었다.
첫째, DNA를 구성하는 각각 네 종류의 염기를 포함하는 화학적 기본 단위인 뉴클레오티드로부터 DNA, 즉 유전자를 합성하는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그 비용이 급감한 덕분이다.
현재 많은 회사가 주문에 따라 DNA를 합성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비용도 최근에는 각 염기당 20~25센트 정도로 아주 저렴해졌다. 수천 개의 염기를 갖는 평균 유전자 길이의 DNA는 주문하면 쉽게 만들어 2~3일 내로 배달해 준다.
또, 오랫동안 DNA 합성 기술의 한계는 실험실에서 DNA를 길게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었는데, 최근에는 한 번에 수만 개의 염기 서열을 갖는 DNA를 합성할 수도 있게 되었다.
둘째, 차세대 염기 서열 해독 기술(Next Generation Sequencing)이 2007년 이후 빠르게 발달함에 따라 DNA 염기 서열을 해독하는 비용이 엄청나게 싸고 빨라졌으며 정확도는 매우 증가한 것이다. 염기 서열 해독 기술이 싸고 빨라지게 되면서 사람뿐 아니라 다양한 생명체의 유전체가 해독되었고, 그 정보들이 축적되면서 생명체를 디자인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의 종류가 급속히 늘어났다.
또 합성된 DNA 염기 서열의 정확도도 쉽게 검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합성 생물학이 의도하는 생명체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정보 전체인 유전체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축적된 유전체 정보와 이에 대한 지식, 막대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 나노 (10억 분의 1) 수준의 화학적 미세 조작 기술 등이 필요하므로 합성 생물학은 생명공학, 정보 공학, 나노 기술 등이 결합한 대표적인 융합 학문의 특징을 갖는다.
도대체 합성 생물학이 무엇인지 몇 년간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는 사이 합성 생물학 개념을 처음 제시했던 크레이그 벤터는 2006년 자신의 이름을 딴 유전체 연구 기관을 설립하고 2010년 5월 '화학적 합성 유전체에 의해 제어되는 세균 세포의 창조'라는 제목의 논문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그 내용은 미코플라스마(Mycoplasma mycoides)라는 동물의 장 속에 기생하는 아주 단순한 세균의 유전체를 모두 인공적으로 합성한 후 다른 종의 세균에 이식시키고, 이식된 세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유전체는 제거하여 실험실에서 합성된 유전체 정보만으로 유지되는 새로운 생명체(Syn 1.0)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이 새로운 생명체가 생명의 가장 큰 특징인 자기 복제에 의한 재생산과 대사 등 정상적인 생명체의 기능을 수행함을 보였다.
이로써 정말 데이터베이스의 유전 정보를 이용하여 생명체를 디자인하고 디자인에 따라 유전 정보를 합성하며 생명체를 디자인한 정보에 따라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2016년 3월, 합성했던 Syn 1.0의 유전체의 크기를 반으로 줄여 유전자를 채 500개도 갖지 않은 생명체를 만들었다고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생명체를 구성하기 위한 최소의 유전 정보와 유전자 수를 밝혀낸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합성 생물학 연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합성 생물학을 이용해 지구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생명체가 탄생한 그 비밀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즉, 어떻게 물질에서 생명으로 급격한 변화가 가능했는지의 과정을 이해해 생명의 본질을 밝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실제로 크레이그 벤터 연구 그룹은 최초의 합성 생물체 Syn1.0을 만들면서 그 합성 유전체의 염기 서열 내에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의 이름과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죽기 전 남겼다는 경구 'What I can not create, I do not understand(만들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를 새겨 넣었다.
이 경구가 크레이그 벤터가 추구하는 합성 생물학의 목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다. 만들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므로 생명체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합성 생물학을 통해 궁극적으로 생명체 대한 완벽한 근본 지식을 얻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크레이그 벤터는 그의 자서전에서 "나는 진정한 인공 생명을 창조해서 우리가 생명의 소프트웨어를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화학 물질에서 시작해 생명체의 구성 요소를 만들고,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생명체까지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생명의 작동 원리를 밝히고자 하는 학자들의 호기심을 동력으로 합성 생물학이 지금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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