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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전자 가위'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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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전자 가위'가 필요한가?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유전자 가위 기술의 역사

'합성 생물학(Synthetic Biology)', '유전자 가위(CRISPR/CAS-9)' 등 지금 가장 뜨거운 첨단 생명과학의 이모저모와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살펴보는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송기원 연세대학교 교수(생화학)가 사회, 경제, 윤리 등 우리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과학기술의 최전선을 친절하게 안내합니다. (☞관련 기사 :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인간의 질병 가운데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체 정보 중 단 하나의 유전자 변이로 그 유전자 정보가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해 발생하는 치명적인 유전병이 아주 많다. 또 유전병의 소지를 갖고 있는 유전자 변이는 당장 개체에서 발현되지 않더라도 유전 정보 내에 숨어 있다가 자손 세대에서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다.

인류가 막대한 자본, 노력, 시간을 투입해 게놈 프로젝트로 인간 유전체 정보를 알고 싶어 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불합리한 유전병의 운명에 속수무책으로 순응할 수는 없다는 자각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1980년대로 접어들어 DNA 재조합 기술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과학자들은 유전체에 존재하는 질병을 유발하는 변이된 유전자를 고칠 수 있는 '유전자 치료(gene therapy)'를 꿈꾸며 가능한 여러 가지 방법의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DNA 재조합 기술은 유전체에서 특정 유전자의 DNA를 확보하고 원하는 생물체에 넣어 발현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런데 생명체 개체의 유전자를 원하는 형태로 바꾸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은 유전체 내 특정 유전자 부분을 잘라내는 것이다. 잘못된 부분을 잘라낼 수 있어야 그 부분을 새것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하는 부분의 DNA를 잘라낼 수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역사에 처음 등장한 유전자 가위는 세균에서 발견된 제한효소이다. 제한효소는 원래 세균이 바이러스나 외부 DNA의 침입에 대처하여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가지고 있는 DNA 절단 기능을 수행하는 효소다. 다양한 세균에서 이런 기능을 하는 여러 제한효소가 발견되었다.

제한효소는 바이러스 등 외부 DNA가 세군 안으로 들어오면 세균의 유전자와 구분되는 회문 구조의 특이한 염기 서열을 인식하여 절단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각 제한효소는 보통 4개에서 많게는 8개의 염기 서열로 구성된 특이적인 DNA 염기 서열을 인식한다. 1970년부터 현재 약 200여 가지의 서로 다른 인식 부위를 가지는 제한효소들이 발견되었고, 우리가 절단하고자 하는 유전자 부위에 따라 제한효소를 골라 사용할 수 있다. 제한효소는 아주 유용하게 DNA 재조합 기술과 분자생물학 기술로 이용되어 왔고 현재도 이용되고 있다.

유전자는 A, T, G, C 네 종류의 서로 다른 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보통 한 생명체의 게놈은 사람의 경우 30억 쌍 등 수십억 쌍의 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염기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확률적으로 우연히 부분적으로 같은 염기 서열이 유전체 내에 여러 개 존재 할 가능성이 있다.

제한효소는 작은 조각의 DNA에는 유용하지만 유전체에 적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유전체 내에는 이렇게 '우연히 일치하는' 염기 서열이 여럿 존재하고 제한효소는 이들을 모두 동일하게 인식하여 절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원하는 유전체의 부분을 자를 수는 있어도 더 여러 군데를 자름으로써 많은 다른 변이를 만들 수도 있다.

유전체에서 유전자 가위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제거하기를 원하는 부분만을 자르는 특이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 뒤 개발된 유전자 가위는 아연 집게라고도 불리는 'Zinc Finger'였다. Zinc Finger는 많은 생물 종에서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전사인자에 포함되어 있는, 그것이 DNA와 결합하는 부분에 존재하는 구조이다.

Zinc Finger는 특정 염기 서열을 인식하여 DNA 사슬에 결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특성을 이용해 Zinc Finger와 비특이적인 DNA 절단 효소를 연결시켜 특정 염기 서열을 인식하여 잘라내는 유전자 가위로 개발한 것이다. 8~10개 정도의 염기 서열을 인식하여 잘라내는 Zinc Finger는, 4~8개 정도의 염기 서열을 인식하여 잘라내는 제한효소보다 특이성 측면에서 오류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었으나 여전히 아주 특이적이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크리스퍼 이전 가장 최근에 개발되었던 유전자 가위 기술은 2010년 전후로 선보인 TALEN이었다. TALEN은 Transcription Activator-Like Effector Nuclases의 앞 글자를 따온 줄임말로, 특정 염기 서열을 인식하는 TAL effector 부분과 염기 서열을 자르는 endonuclase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복합체를 일컫는 말이다. TAL effector는 전사인자와 비슷하게 특정 염기 서열을 인식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TAL effector의 구조를 인위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인식하는 염기 서열을 바꿀 수 있었다.

TAL effector는 최대 10~12개 정도의 염기 서열을 인식할 수 있고, 잘라 내고자 하는 염기 서열에 따라 TAL effector의 구조를 자유롭게 변형시킬 수 있어 Zinc Finger보다 더욱 정확하게 유전체 내의 원하는 염기 서열을 선택적으로 자유롭게 자를 수 있었다. 그러나 TALEN은 매번 자르고자 하는 DNA 염기 서열에 맞추어 새로이 TAL effector 부분을 디자인하고 만들어야 해서 매우 번거롭고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모되었다. 개선된 유전자 가위인 TALEN이 막 그 효용성을 보이려 하던 2012년에 바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발견되었다.

크리스퍼 기술은 21개 DNA 염기의 임의 서열을 원래 세균이 면역 기능을 위해 가지고 있던 CRISPR 유전자 사이에 삽입하고 DNA를 자르는 효소인 Cas9 단백질과 함께 어떠한 세포 내부에서 발현시켜도 삽입된 21개 DNA 염기 서열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아가 정확하게 DNA를 절단할 수 있는 아주 특이성이 탁월한 유전자 가위 시스템이다.

기존 유전자 가위들이 적게는 4개 많게는 12개 정도의 염기 서열을 인식하기에 유전체에 사용했을 경우 비특이적 오류 가능성이 높았다면, 크리스퍼는 21개의 염기 서열을 인식하기 때문에 유전체 내에서 21개의 염기 서열이 정확하게 일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크리스퍼의 경우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4조4000만분의 1로 다른 유전자 가위 기술과 비교 불가능하게 그 오류 가능성이 낮아진다.

인간 유전체의 염기쌍이 약 30억 개라는 것을 고려 해 보면, 크리스퍼가 의도치 않은 부분의 유전자를 잘못 자를 가능성은 계산상으로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결론에 달하게 된다. 드디어 인류는 그렇게도 열망하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정보인 유전체의 원하는 부위를 아주 특이적으로 잘라 내거나 원하는 다른 것으로 교체할 수 있는 도구를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우리는 크리스퍼 가위를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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