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 생물학(Synthetic Biology)', '유전자 가위(CRISPR/CAS-9)' 등 지금 가장 뜨거운 첨단 생명과학의 이모저모와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살펴보는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연재를 시작합니다. 송기원 연세대학교 교수(생화학)가 사회, 경제, 윤리 등 우리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과학기술의 최전선을 친절하게 안내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관련 기사 : ① 인간, 드디어 조물주와 맞짱 뜨나?, ② 이것은 인간이 '직접 만든' 생명체입니다)
과학 연구를 영어로 'research'라고 하는데 이는 연구라는 것은 이미 누군가가 search, 즉 발견해 놓은 것을 '다시(re)' 찾는다는 의미이다. 모든 과학 연구는 그 시작의 뿌리에서 많은 후속 연구를 통해 의미가 점차로 확대되어 나온 것들이다.
오늘의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생명과학의 새로운 방향인 합성 생물학도 마찬가지로 21세기에 갑자기 튀어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연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 구성 요소와 시스템을 설계하고 제작하거나, 자연 세계에 이미 존재하는 생물 시스템을 재설계하여 새로이 제작하고자 하는 합성 생물학은 어떻게 발전되어 오늘에 이른 것일까?
그 뿌리는 멀리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에는 근대 생명 과학의 뿌리가 되는 생물학 분야의 중요한 두 가지 발견이 있었고, 이 두 가지 발견은 생명체에 대한 시각과 생명과학의 연구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첫째, 생명체는 변이에 의해 계속 변화하고 환경에 따라 변이된 개체 중에서 생존에 유리한 것이 선택된다는 '자연 선택'의 개념을 담고 있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연 선택을 통해 지구에 존재하게 되었고 물론 인간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명체 전체를 보편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생각의 틀을 제공했다.
둘째, 생물체에는 '유전 인자'라고 불릴 수 있는 물질이 존재하며 유전 인자의 전달과 발현에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그레고리 멘델의 유전 법칙이다. 사실 멘델의 등장 이전에도 부모의 특성이 자녀에게 전해진다는 '유전'에 대한 개념은 존재했었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거의 동양에서 이야기하는 '기'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그렇기에 유전 인자는 인간이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겨졌는데, 멘델은 이를 실험을 통해서 반박한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이 개념은 더 구체화되어 1910년 컬럼비아 대학교의 토머스 헌트 모건이 초파리를 이용해 멘델이 주장했던 '유전 인자'가 모든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세포의 핵에 위치하는 염색체에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다. 또 우리 몸을 구성하는 화학 물질인 DNA가 유전 인자를 구성하고 있으며, 유전 인자인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들어 냄으로써 생명체의 특성이 발현된다는 사실이 차례로 밝혀졌다.
생명체는 유전자의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며, 이 유전자는 DNA 분자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1944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유전자를 정보 운반체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두 젊은 과학자가 DNA가 이중 나선 구조로 생명의 정보를 담고 있다고 밝히면서 생명체의 정보인 DNA의 작동 원리에 대해 연구하는 분자 생물학의 발달은 인간이 생명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서서히 변화시켰다.
생명체의 암호는 화학 물질로 환원되었으며 유전자는 정보 운반체로 간주되었다. 다양한 생명 현상은 DNA와 DNA 정보를 따라 만들어진 단백질이라는 화학 물질의 생화학적 작동 방식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양한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진 단백질로부터 새로운 조절 시스템이 조합되고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이 밝혀지게 되었다.
한편,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진행된 유전자 분리 기술과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등 DNA 재조합에 필요한 기술의 발전으로 유전자 조작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갔고 인공적으로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기술적인 방법이 제공되었다. 그리고 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결을 통해 생명 현상을 전체 유전 정보의 시스템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의 기반을 갖게 되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진행에 따라 유전체 정보인 DNA 서열을 기계가 자동으로 읽어낼 수 있는 기술과 이렇게 축적된 많은 양의 유전자 서열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발전된 컴퓨터 기술이 가능해졌다. 이런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간뿐 아니라 많은 미생물, 효모, 초파리, 선충, 쥐, 침팬지 등 다양한 생명체의 유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기 시작하였다.
또 RNA, 단백질, 지방 등 생체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화학 반응을 통한 대사 물질을 측정하는 기술이 발달하여, 생명의 최소 단위인 세포의 주요 요소와 그들의 상호 작용에 관한 광범위한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생명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분자의 상호 작용에 대한 분자 생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명체의 기능을 전체의 시각에서 유전자 정보의 네트워크로 조망하는 시스템 생물학적(systems biology) 접근이 출현하였다.
분자 생물학자와 컴퓨터 과학자는 특정 기능의 세포 네트워크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알아내는 방법으로 유전자 실험과 컴퓨터의 데이터 활용을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알려져 있던 컴퓨터 등 공학적 시스템과 유사하게, 세포의 생명 현상도 명확히 구별되는 기능을 갖는 모듈(module)이 네트워크로 조직화되어 기능을 수행한다는 생명체 이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생명체라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각 부품(parts)을 만들어 내고 확산시키는 접근법이 구상되었다. 이러한 접근법을 통해 자연에 존재하는 시스템을 연구하거나, 잠재적으로 생물 기술이나 질병 치료에 응용될 수 있는 인공적인 조절 네트워크를 부품으로부터 설계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료 이후 일부 공학자를 중심으로 공학의 컴퓨터나 기계의 모듈처럼 생명체도 모듈로 나누어 접근하면 생명체 시스템의 합리적인 조작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연재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생명과학자들이 합성 생물학을 통해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공학자들이 중심이 된 이러한 실용적 접근은 '생명체를 DNA라는 소프트웨어가 담긴 유전자 회로로 구성된 하나의 기계'로 인식하는 곳에서 출발한다. 원하는 물질 생산을 위해 유전자 정보를 조합하여 모듈을 설계하고 이를 다시 시스템적으로 통합한 가장 효율적인 생산 설비인 생명체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는 인류가 직면한 식량, 환경, 의료 등 여러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기술이라는 주장과 함께 현재 미국 등 여러 선진국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도 생명공학 분야가 나아갈 방향으로 인식되는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