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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드디어 조물주와 맞짱 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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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인간, 드디어 조물주와 맞짱 뜨나?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연재를 시작하며

'합성 생물학(Synthetic Biology)', '유전자 가위(CRISPR/CAS-9)' 등 지금 가장 뜨거운 첨단 생명과학의 이모저모와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살펴보는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연재를 시작합니다. 송기원 연세대학교 교수(생화학)가 사회, 경제, 윤리 등 우리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과학기술의 최전선을 친절하게 안내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지난 3월 서울에서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있었다. 그리고 그 대결에서 알파고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대결은 우리에게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가를 직접 실감할 수 있게 해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갑자기 한국 사회는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인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처음으로 인공지능에 의해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이 사건이 평소 과학 발전에 무관심한 우리나라 국민에게 과학의 발전 내용과 그 속도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인공지능 이상으로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과학이 바로 생명과학과 그와 연관된 기술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생명과학 기술이 너무나 빠르고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인간이 의도에 따라 생명을 디자인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이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왔거나 오고 있는 것이다.

생명과학이나 기술은 그 대상이 우리 자신을 포함한 생명체이므로 인공지능이나 정보 기술보다 그 파급 효과나 관련된 사회 문제가 더 중대하고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나는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도 생명과학과 기술이 어떻게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또 이러한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는 과학자도 관성에 따라 아니면 나름의 호기심과 필요성에 따라 자신의 연구에 매진하고 있지만, 연구나 연구로 파생될 결과들이 정말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것인지를 한번쯤 성찰해 볼 시간이 꼭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지면을 통해 '조물주와의 맞짱'이라고도 표현될 수 있는 최근 생명과학 기술의 발전 내용을 공유하고 그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공론의 장(場)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지난 5월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 의과 대학에서는 합성 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과학자와 의료인을 비롯해 법률가, 기업가 등 사회적 리더 150여 명이 모여 인간 유전자를 합성하는 문제를 놓고 비밀리에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 모임은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됐으며, 뒤늦게 일부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고 전해졌다.

이 회의를 주관한 학자는 세계에서 합성 생물학 분야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 과학자인 조지 처치(George Church) 박사로 참석자에게 발송한 초청장에 따르면 이 회의는 '향후 10년간 인간 유전자 합성이 가능한지'를 협의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6원 2일 이 회의 내용을 중심으로 세계적 권위의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는 'The Genome Project- Write'라고 명명된 인간 유전체 정보를 합성해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다는 과학자의 열망과 계획이 보도되었다.

게놈(genome)은 인간을 만들 수 있는 DNA 정보 전체인 유전체를 뜻한다. 1990년 시작되어 2003년 완결된 인간 유전체 30억 DNA 염기쌍의 서열을 밝혀낸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fect HGP)를 그 서열을 읽어내는(read) 데 중점을 둔 HGP-read로 보고, 그에 대비해 이제는 읽어낸 유전체의 유전 정보 전체를 직접 작성하는 HGP-write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성한다는 의미는 인간의 유전체를 구성하는 DNA 정보 서열 전체를 실험실에서 합성하여 그 작동 여부를 시험한다는 것이다. 그 기사에서 과학자들은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은 인간을 합성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유전자가 세포 내에서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즉, 이번 프로젝트의 과학적 의미는 인간의 유전 정보가 속해 있는 염색체의 구조나 유전체 작동 방식 등에 대한 이해를 향상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유전체 합성 프로젝트의 진행이 법적, 윤리적 틀 안에서 진행되기를 바라고 이런 기사를 발표한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사이언스>의 보도에는 "우리는 유전체 제작을 위한 기술과 윤리적 체계가 필요하다"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 대해 벌써부터 일반인 사이에는 그 논리가 비약되어 인조 인간이나 생물학적 부모 없이도 인간을 창조할 가능성을 여는 것이 아닌지 등 여러 가지 논란이 뜨겁다.

찬반 논란은 과학계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제안하는 것처럼 인간의 유전체를 합성하고 그 작동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아직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유전체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는 많이 배울 수 있겠지만 인간 유전체를 완전히 합성했을 때 그것을 무엇에 혹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인들의 우려나 과학자의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는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현대에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포함한 거대 규모의 과학 프로젝트들은 항상 찬반 논쟁과 윤리적 쟁점 속에서도 그대로 진행되어 온 전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인류의 역사에서 과학이 논쟁과 쟁점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춘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강 건너 불구경쯤으로 생각되는 것 같다. 유전체가 무엇인지도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에게 합성 생물학이란 어떤 분야이며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인지, 유전체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또 더 나아가 인간이 유전체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대체로 첨단 과학과 관련된 이런 기사는 대체로 우리의 머리를 잠깐 복잡하게 했다가 이해가 안 된 채로 아니면 별 의미 없이 스쳐지나가고 있다. 꼭 인간 게놈 프로젝트뿐 아니라 대부분의 과학 발전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과학은 국경이 없는 공공 지식이기에 세계 어느 곳에서 앞서 진행되어도 결국 그 연구 결과는 우리를 포함한 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그냥 강 건너 불구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과학의 발전에 일반 시민의 관심과 이해가 부족한 현실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한 독자들과 함께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생명과학 기술의 발전 배경과 내용, 그리고 이러한 과학기술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지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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