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공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생명체를 DNA라는 소프트웨어가 담긴 유전자 회로로 구성된 하나의 기계'로 생각하고, 우리가 원하는 물질을 쉽게 생산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생명체를 설계하는 합성 생물학에 대해 논의했다.
아직 기술적으로 복잡한 생명체를 설계하고 만들어 내는 단계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생명체를 인간의 의도대로 설계하고 만들어 낸다는 것이 일반 독자에게는 매우 낯설게 느껴질 것 같다. 인간에 의한 생명체의 설계나 변형이라는 것이 영화 <스플라이싱>에 나왔던 생명체처럼 SF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이질적이고 두려운 생명체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냉정히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인간에 의한 생명체의 설계와 변형은 아주 먼 옛날에 시작되었다.
인류 역사 가운데 99% 이상은 수렵이나 채집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먹고사는 것을 해결한 선사 시대이다. 이때 인류는 다른 동물과 큰 차이가 없었다. 수렵과 채집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던 인류는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고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먹을거리가 되었던 식물과 동물을 설계하고 변형시키는 일을 시작하였다.
인류는 같은 종(種) 안에서 인간에게 유리한 변이를 갖는 소위 우량 형질을 갖는 개체를 골라내어 이들끼리 혹은 보통 개체와 의도적으로 교배시키거나 접목해 계속 생명체를 인간의 의도에 적합한 식물과 동물로 변형시켜 왔다. 이렇게 해서 대표적으로 '개'라는 동물 종이 만들어졌고 지역에 따라 식량 생산을 위해 옥수수, 벼, 밀이라는 종들이 개량되었다.
어쩌면 역사책에 기록된 인류 문명의 역사는 인간에 의한 생명체의 설계와 변형의 역사라고도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역사의 오랜 세월 동안의 생명체 변형은 같은 종끼리의 교배를 통해서만 가능하였다. 또 생명체를 변형할 수 있게 하는 돌연변이를 우연적 요소에 맡겨 둘 수밖에 없었다.
20세기에 들어서 DNA가 유전 정보를 구성하고 있으며 유전 정보인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들어 냄으로써 생명체의 형질을 발현한다는 사실이 차례로 밝혀졌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엑스레이(X-ray)나 화학 물질을 이용해 유전자를 변형시켜 돌연변이를 얻어 내는 방법이 가능해졌다. 역사에서 농부들의 영역이었던 생명체 변형이 과학자들의 영역이 되기 시작하였다.
과학자들은 이전까지 없던 생명체의 유전적 지식을 품종 개량에 적용하여 좀 더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원하는 형질을 가진 생명체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이러한 시간을 거치며 자연스레 과학자들의 생각은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조작할 수만 있다면 인간이 원하는 대로 생명체를 변형할 수 있다는 데에 이르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유전 정보인 DNA가 기능을 수행하는 기전을 밝혀내면서 시작된 분자 생물학의 발달로 인류에 의한 생물체의 변형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분자 생물학은 생명체에서 특정 유전자를 분리하고 그의 기능을 알아낼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였다.
또 DNA의 정해진 특정 염기 서열을 인식해 자를 수 있는 제한 효소(restriction enzyme)라는 유전자 가위를 다양한 미생물에서 발견하고 대량 생산하여 염기 서열에 따라 DNA를 마음대로 자르고 붙일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유전자에 해당하는 DNA 조각을 생물체 내로 쉽게 전달하여 발현시킬 수 있는 유전자 전달책(責)으로 사용 가능한 벡터(vector, 매개체)도 발견되어 이용하기 쉽도록 개발되었다.
이렇게 하여 기술적으로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이라고 부르는, 자연적인 교배에 의해서는 서로 전혀 유전 정보를 주고받을 수 없는 동떨어진 종 사이에 인간의 의도대로 필요한 유전자를 집어넣고 발현시키는 생물체의 변형이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다른 종의 유전자를 넣어 유전 정보가 변형된 생명체를 트랜스제닉(ransgenic)이라 칭하고 일반인들의 용어로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혹은 LMO(living modified organism)라고 부른다.
유전공학의 발달은 우리에게 엄청난 혜택을 가져왔다. 변형된 생명체에서 인간이 원하는 물질을 손쉽게 대량으로 얻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혈당 조절제로 알려진 인슐린 단백질이다. 다 아는 것처럼 당뇨병 환자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러나 유전공학적 방법을 사용하기 전까지 인슐린은 동물의 피에서 분리했고, 1회 주사 분량의 인슐린을 얻는데 적어도 동물의 피가 20리터 이상 필요했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인슐린 주사가 비쌀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초반 대장균에 사람의 인슐린 유전자를 주입해 인슐린을 적은 비용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인슐린의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었다. 이후 대장균을 비롯한 여러 미생물과 동물에 인간 유전자를 주입하여 항바이러스제인 인터페론, 면역 인터페론, 성장을 촉진하는 성장 호르몬, 예방 주사용 백신 등 수많은 단백질 치료제를 손쉽게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유전공학은 우리의 먹을거리가 되는 동식물에 직접 응용되어 그들의 상업적 가치를 높이는 데도 사용되었다. 1994년 미국 칼진(Calgene)이 잘 무르고 썩지 않는 토마토를 개발하였고, 1995년 미국 몬산토(Monsanto)는 제초제 내성을 가진 콩(Roundup Ready)을, 노바티스는 병충해에 강한 옥수수를 내놓았다.
이후 여러 상업적 GMO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으며 작년 2015년 11월에는 최초의 GMO 동물인 연어가 미국의 식품의약품안정청(FDA)의 승인을 받아 시장에 출시될 수 있게 되었다. GMO와 관련된 과학 연구와 산업의 급속한 성장의 뒤에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기업의 과감한 투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업과 정부 사이의 강력한 협력 관계가 존재했다. GMO에 대해 여러 가지 논란이 아직 존재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과 생물 종 다양성의 감소로 인한 미래의 위기 가능성이다.
합성 생물학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장황하게 인간에 의한 생명체 변형의 역사를 논하는 이유는 합성 생물학이 역사성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또 우리의 역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눈앞에 놓고 인류가 생명체 변형을 택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는 것을 상기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합성 생물학의 발전에 따르는 효율성과 경제적 이익을 눈앞에 놓고, 우리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합성 생물학을 지향점이 어디인가' 라는 아주 힘든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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