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 생물학(Synthetic Biology)', '유전자 가위(CRISPR/CAS-9)' 등 지금 가장 뜨거운 첨단 생명과학의 이모저모와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살펴보는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연재를 시작합니다. 송기원 연세대학교 교수(생화학)가 사회, 경제, 윤리 등 우리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과학기술의 최전선을 친절하게 안내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관련 기사 :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컴퓨터 공학이나 정보 기술(IT)의 급격한 발전 뒤에는 실리콘 밸리 부근에서 차고를 빌려 시작했던 개인이나 작은 벤처 기업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컴퓨터나 IT에 사용되는 부품들은 표준화 되어 있어 관심 있는 누구라도 쉽게 이들을 조립하여 컴퓨터 등 원하는 기기로 만들 수 있었다. 또 이런 과정에서 기발한 혁신이 가능했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컴퓨터를 만들고 싶으면 부품들이 모두 표준화되어 있으므로 용산 전자상가에 가서 원하는 부품들을 사서 원하는 방식으로 조립하면 된다. 그러므로 부품의 표준화는 어떤 기술이건 기술의 대중화에 반드시 필요한 선(先)조건이다.
이전 글에서 합성 생물학에 공학적으로 접근했던 연구자들은 '생명체를 DNA라는 소프트웨어가 담긴 유전자 회로로 구성된 하나의 기계'로 인식하는 곳에서 출발했다고 언급했다. 생명체를 기계로 인식했으므로 생명체를 이를 구성하는 부품으로 나누어 해체할 수 있었고 합성 생물학의 유전체 변형 과정을 DNA, 부품(parts), 설비(device), 시스템(system) 등 4단계로 구분하였다.
합성 생물학에서 공학적 전략을 따르는 대표적 연구자인 스탠퍼드 대학교 드루 엔디의 말을 빌리면 합성 생물학이란 "생명체를 제작하기 쉽게 하고자 생명체의 생명 현상을 컴퓨터 부품처럼 단순화시키고 이들을 조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특성과 물질을 대량으로 얻는 것"이다.
따라서 합성 생물학이 다른 기술처럼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생명의 부품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이의 표준화가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합성 생물학 초기 연구자들은 DNA는 유전 물질, 부품은 DNA의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 설비는 인간이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부품이 다양하게 조합된 단계, 그리고 시스템은 이런 다양한 설비의 조합으로 설명하였다.
또 설비와 시스템 수준에서 독립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표준화된 '생명 부품'을 정의하고 이를 건축물의 벽돌에 비유하여 '바이오브릭(biobrick)이라 명명하였다. 2006년에는 바이오브릭을 모으고 표준화하며 관심 있는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바이오브릭 재단(☞바로 가기 : The BioBricks Foundation)을 설립하였다.
그 홈페이지에는 바이오브릭 재단의 미션을 "생명 공학의 지식은 모든 사람과 지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그 지식은 도덕적이고 공개된 혁신을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공유되어야 하고 이것이 새로운 바이오브릭 재단이 천명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대중화를 통한 생명공학 분야의 혁신이 가능하도록 생명공학 지식을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이 사이트에 등록하여 정보를 받아볼 수 있으며, 자신의 지식을 공유할 수도 있다. 2009년부터는 바이오브릭의 표준화를 위해 'BIOFAB : International Open Facility Advancing Biotechnology(BioFab)'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생명체를 설계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기본 부품을 제조하고 등록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바로 가기 : BioFab)
BioFab 프로젝트의 홈페이지에는 이미 수천 개의 바이오브릭이 등록되어 있고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관심 있는 누구라도 이 홈페이지에서 공유되는 바이오브릭의 정보를 조합해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고 컴퓨터에서 이들의 작동 여부를 시뮬레이션한 후 이들 시스템의 부품에 해당되는 유전자의 DNA를 실제로 합성해 세포 내에 집어넣고 그 작동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더 많은 새로운 바이오브릭을 찾아내고 합성 생물학의 대중화를 유도하고자 2009년부터 매해 1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국제 합성 생물학 경진 대회 iGEM(International Genetically Engineered Machine)이란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iGEM은 전 세계의 개인 또는 그룹의 합성 생물학 연구자들이 참가해 자신들의 연구 성과와 새로운 '발명품'을 경연하는 장으로써 합성 생물학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과학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 확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작년 iGEM에는 전 세계에서 2700여 명의 참여했고 올해도 10월 이 행사가 열리는데 이미 300팀 이상이 참가 신청을 했다고 한다.
합성 생물학 연구자들은 IT 산업의 혁신이 주차장을 빌려 시작한 많은 작은 벤처에서 왔음을 상기하고, 대중화를 통한 합성 생물학의 혁신을 위해 일반인이 생명공학 실험을 직접 실행할 수 있도록 동네에 커뮤니티 랩(community lab)을 만들 것을 제안하여 전 세계적으로 빠른 속도로 커뮤니티 랩이 확장되고 있다.
즉, 지금까지 주로 대학이나 연구소의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던 생명 과학 연구를 이제는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실제로 이들의 연구와 실험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 세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커뮤니티 랩은 생명 과학의 탐구와 적용에 관심이 있는 그 동네 주민인 누구나가 와서 생명 공학에 관한 실험을 배우고 실행하는 장소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사무소에 있는 동 주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운동 시설이나 경로당이 있듯이 여기에 실험실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커뮤니티 랩은 2010년 뉴욕의 브루클린에 처음 문을 연 'GENSPACE(☞바로 가기)를 필두로 급속히 미국 등 북미와 미국과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2015년 북미에만 28개소, 유럽 전역에 23개소 등 세계적으로 60여 개가 운영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일본의 도쿄, 싱가포르, 태국(타이)의 방콕, 인도의 뭄바이 등에 문을 열었다. 세계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커뮤니티 랩에 대한 정보는 다음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가기 : DIYbio) 반조립의 재료나 물건을 사서 집에서 스스로 만들거나 조립하는 것을 'Do It Yourself'의 앞머리 알파벳을 따서 DIY 제품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DIY로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DIYbio 재단이다. 이 재단은 2008년 설립되었으며 바이오테크노로지 대중화와 DIY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
일반인들이 모여 생명과학 연구를 진행하는 커뮤니티 랩에서 합성 생물학은 중요한 연구 주제이며, 이미 이러한 자가 연구 집단이 세계적으로 수천 명 규모에 이른다고 한다. 합성 생물학의 대중으로의 확산은 관심의 확산과 연구 방향의 다양성을 통해 생명 공학 기술의 혁신을 이룬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아무런 규제와 안전 장치 없이 이루어지는 자가 연구의 위험성은 제어하기 어려운 수준의 결과로 증폭될 가능성을 품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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