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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대재앙, 정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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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대재앙, 정부는 없었다

[안종주의 안전 사회] 세월호, 메르스, 조류독감…공통점은?

판도라 상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태블릿PC 밖으로 나온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유린이 되어 대한민국을 난도질했음이 명명백백해졌을 때 사람들은 판도라 상자를 말했다. 판도라 상자를 나온 것은 국정농단·헌법유린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아수라로 만들어가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조류독감)가 또 하나의 판도라 상자 밖으로 나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바이러스들은 닭과 오리들을 난도질하고 있다. 최순실·박근혜에 이미 몸서리를 한번 친 바 있는 농축산인들은 조류독감에 다시 한 번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

이는 단지 농축산인들 문제만은 아니다. 서민들을 비롯한 모든 소비자들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대학가에선 계란말이조차 먹지 않는 등 비과학적 소비행태를 보인다고 한다. 계란을 낳는 닭들이 죽거나 살처분 돼 계란 값이 치솟고 있다. 닭·오리 판매점들은 손님들이 뚝 끊겨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울상을 짓는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렵고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조류독감마저 창궐해 닭·오리 관련 축산업계와 음식업계가 위기에 놓였다.

우리 정치권에서 탄핵 줄다리기로 힘을 빼고 퇴진 버티기에 올인하고 있는 박근혜와 그를 추종하는 새누리당 친박의원들의 반국민적 행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사이 고병원성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야금야금 닭과 오리의 목을 비틀었다. 바이러스에 목이 비틀려 죽은 닭과 오리들에게는 결코 새벽이 오지 않았다. 살아남은 닭과 오리들도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위협에 떨고 있다. 그것들을 기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황교안, 낯선 조류독감보다는 친숙한 북한 도발에 더 신경

대통령의 헌법유린이라는 사상 초유의 국면에 직면한 공무원들의 관심은 엉뚱한 곳에 쏠렸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뜻하지 않은 횡재(?)를 얻은 황교안 국무총리는 고병원성 H5N6라는, 이름도 낯선 조류인플루엔자의 숨통을 죄는데 힘 쏟기보다는 대통령에 준하는 의전 대접 받기와 아직 실제적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은 북한도발 대처 운운과 전방 시찰 등에 더 신경을 썼다.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하다. 이미 160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식탁에 오르지도 못한 채 죽거나 도살됐다. 닭과 오리의 입장에서만 참혹한 것만은 아니다. 애써 기른 닭과 오리를 죽일 수밖에, 그래서 가계에 끼칠 경제적 재앙을 생각하는 농축산인들이 느끼는 참혹은 상상불가다.

조류인플루엔자 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나 방식은 박근혜 정부 들어 벌어진 다른 위기 때와 너무나 닮았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대유행 때의 청와대와 정부 대응 모습이 시민들의 뇌리를 불안하게 스쳐 지나간다.

감염병 유행이든, 대형 사건 사고든 위기 발생 초기에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 대처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국민 상식에 속한다. 세월호에 갇힌 학생 등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대통령과 해경, 김기춘 비서실장과 김장수 안보실장 등 청와대 그 누구도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여기지 않았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 그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결코 없다.

국민 생명도 자식처럼 생각 않는 이들이 하물며 닭·오리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2016년 조류인플루엔자의 대창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많은 닭과 오리들이 자신이 기르던 것들이라고 생각했다면 대통령도, 총리도, 장관도 절대 그런 안이한 행보를 하지 않았을 터이다. 닭과 오리를 기르던 사람들이 그들의 가족이었다면 그렇게 손 놓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 살리기, 나라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최순실과 차은택, 정유라 배불리기에 모든 열정을 바쳤던 대통령 박근혜, 그리고 이제 그 때문에 탄핵 직전에 놓인 박근혜 구하기에 온몸을 던지고 있는 친박의원들과 박사모 등 극우가짜보수세력들이 진짜 국민의 고통에 관심이 있을까. 그들은 이미 세월호 참사로 무한 통증을 느끼는 유가족들에게도 심리적 고문을 수시로 자행하지 않았던가.

56만 vs. 1600만. 한국의 조류인플루엔자 대위기를 잘 설명해주는 수치 비교이다. 56만은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조류인플루엔자 유행으로 살처분된 일본의 닭과 오리 수이다. 28배 넘는 차이가 난다. 일본이 우리보다 인구가 훨씬 더 많으므로 기르는 닭과 오리 수도 우리보다 더 많을 터인데 같은 병원체에 의한 감염병으로 죽은 닭과 오리 수는 비교 자체가 머쓱할 정도로 우리가 압도적이다.

일본과 우리가 같은 유형의 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피해 규모가 천양지차인 것은 위기 대응 방식 때문이다. 일본은 조류인플루엔자가 유행할 초기에 위기 단계를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보다 더 올려 강력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우리는 늘 한 발짝 늦게 위기 단계를 설정해 대응했다. 이미 닭과 오리를 잃을 만큼 충분히 잃고 난 뒤인 지난 16일에서야 '경계'를 '심각'으로 상향조정 했다. 늑장도 이런 늑장이 있을 수 없다.

늑장, 박근혜 정부를 관통하는 위기 대응 키워드

늑장.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다. 그렇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대유행 때 많이 들어본 말이다. 대형인명사고든, 사람 감염병이든, 동물 전염병이든 박근혜 정부는 가리지 않고 늘 늑장 대응을 한다. 박근혜 정부는 위기나 재난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제1 원칙인 신속대응을 내팽개쳐 왔고 조류인플루엔자 재난을 맞아서도 마찬가지였다.

세월호 때도, 메르스 때도 초기 대응만 강력하게 제대로 했더라면 참사를, 대유행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했는가. 대통령은 올림머리를 하고 화장을 하고, 그리고 그 무엇을 하느라 사태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시다운 지시도 내리지 못했다. 그 결과 유가족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아수라에서 지옥 같은 삶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음 같은, 아니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메르스 대유행 때도 그랬다. 정부와 청와대는 환자가 발생한 병원 은폐에만 급급했다. 세월호에 이어 메르스 때도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니 그 밑에서 일하는 참모와 각료 또한 대통령의 도플갱어가 됐다.

박근혜 쪽은 세월호 참사를 아직도 단순 교통사고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메르스 유행 때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단순 중동독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3차 감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런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메르스는 대유행을 했다. 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바보야! 문제는 위기 인식이야.'

조류인플루엔자 대유행은 이미 지난 7월부터 싹이 트기 시작했다. 정부는 대유행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유행을 막을 방도를 조치하지는 않았다. 그 후 9월에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가래로 막아야 할 것을 호미로 막으려니 바이러스는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일하는 공무원은 태어날 때부터 위기 불감증 DNA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을 터이다. 국민의 생명조차 관심이 없는 대통령이고 보면 박근혜가 닭이나 오리에는 단 한순간이나마 관심을 가졌을까. 그러니 공무원들도 위기 불감증 후성유전자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위기는 늘 있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위기가 생겨도 이를 위기로 보지 않는 것이 진짜 위기다. 박근혜 정부 들어 대통령이 만든 창조적 융복합 위기 대응 인식·태도, 즉 "별 거 아냐"라는 국정운영이 조류인플루엔자의 조기 해결과 위기 확산을 막지 못하게 만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할 수 있다.

'바보야! 문제는 위기 인식이야.(Stupid! it's crisis perception)'

이제 이런 말도 박근혜에게 더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욕심과는 달리 더 이상 통치자 역할을 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앞으로 새롭게 탄생할 지도자는 이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

▲ 지난달 21일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을 받은 충북 음성군 맹동면 한 오리 농가 사육장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오리를 살처분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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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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