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과 30일 이틀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그는 인터뷰 내내 불안해하고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청문회는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만 여겨왔기 때문이다. 청문회는 분명 방송으로 중계될 터이고 그동안 제법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낸 그로서는 화면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과 자신에 결코 호의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것이 분명한 국정 조사 위원의 추궁이 걱정됐다.
그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가 많은 인명 피해와 건강 피해를 가져왔다는 뉴스를 듣고 정말 그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난 5년간 지내왔다고 털어놓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진 뒤 무려 5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노승권 씨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미생물학과를 1979년 입학해 1983년 졸업하고 나서, 곧바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물공학과에 들어가 1985년 졸업했다. 석사를 딴 뒤 곧바로 ㈜유공에 입사해 1985년부터 1996년까지 '바이오텍 사업부장' 등으로 근무하면서 곰팡이제로,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인 가습기메이트 개발에 깊이 관여했으며 유공 시절 영국 더럼 대학교에서 생물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퇴사해 유진사이언스라는 바이오 벤처 기업을 창업해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은 식품 가공 등을 하는 메타사이언스라는 아주 자그마한 벤처 기업을 새로 창업해 꾸려가고 있다. 한국생물공학회 부회장, <미생물과 산업> 편집간사, 한국바이오벤처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또 2012년부터 네이버 블로그 '출장 발명가의 행복 이야기'를 운영했으며 <스포츠경향>에 지난 2015년부터 올해 6월까지 '출장 발명가 노승권의 알면 힘이 되는 생물학'이란 팻말을 달고 칼럼을 매주 연재하기도 했다.
가습기 물에 살균제를 타는 방식의 제품 개발은 노승권 박사의 아이디어
그는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몇몇 중요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1994년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내놓을 당시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영순 교수한테 거액을 주고 흡입 독성 연구를 맡겼으며 연구 보고서에 미국 환경청(EPA)이 만든 프로토콜에 따른 흡입 독성 연구 결과 인체에 무해한 수준의 농도로 가습기 살균제 성분, 즉 CMIT/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를 희석해 가습기메이트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와 1시간가량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다.
- 1994년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만들 때 가습기 내부를 세척하는 세정제가 아니라 가습기 물에 타서 이를 공기 중으로 분무하는 제품을 만드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나의 아이디어였다. 미생물학이 전공이어서 가습기 살균제에서 미생물이 자랄 수 있으며 이럴 경우 가습기 사용자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외국 문헌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생물 성장은 최대한 억제하면서 인체에는 해가 없는 제품을 만들면 인기를 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당시 만들어 판 가습기메이트 제품은 가격이 4000원으로 지금의 돈 가치로 환산하면 2만~3만 원 하는 비싼 가격인데 구매한 사람이 얼마나 됐는가?
"정확한 판매량은 모르지만 제법 팔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2000년대 팔린 것과 같이 많은 양은 아니었다."
- 살균제 성분은 당시 많이 있었을 텐데 가습기메이트에 CMIT/MIT를 쓰게 된 경위는?
"가습기 물에 잘 녹아야 하고 또 물속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는 성분을 골랐다. 또 미생물 살균력도 좋고 흡입 독성이 이미 알려진 성분을 골라야 인체에 해가 없는 농도의 제품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후보 물질을 가지고 연구를 하다 CMIT/MIT를 최종 낙점했다."
- 미생물을 죽일 정도면 사람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터이고 또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면 사람이 이를 들이마시게 된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그렇다면 인체에 안전한 농도를 찾기 위해 엄격한 흡입독성 시험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렇다. 그래서 당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독성 전문가라고 알려진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도쿄 대학교 대학원 수의병리학 석사와 박사 출신의 이영순 교수는 서울대 수의과대학 학장과 한국수의공중보건학회 회장, 제4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거쳐 아시아실험동물합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명예교수와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지난 2월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석좌교수로 임명됐다)에게 개발 제품의 독성 시험 연구 용역을 맡겼다."
이영순 교수에게 거액의 연구 용역비 지급하고 미국 수준 독성 시험 요구해
- 이영순 교수는 어떻게 알고 연구용역을 맡겼는가?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석사 과정에 있을 때 독성 전문가인 양규환 교수(그는 나중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을 지냈으며 한남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했다) 밑에서 배웠기 때문에 양 교수를 통해 이 교수를 알고 있었다."
- 당시 연구 용역비 규모는 얼마였으며 어떤 독성 시험을 의뢰했나?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1억 원이 훨씬 넘는 연구 용역비를 주었다. 지금의 돈 가치로 환산하면 적어도 6억~7억 원은 될 것이다. 흡입 독성 연구를 충분히 할 수 있는 비용을 주었다."
- 얼마 전 언론 인터뷰에서 이 교수는 당시 서울대 수의대에는 본격적인 흡입 독성을 시험할 장치가 없어 실험 쥐의 코에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 용액을 떨어트려 보는 간이 흡입 독성 시험만 했다고 증언한 적이 있는데….
"아니다. 당시 이 교수는 쥐를 체임버에 넣고 체임버 안 공기 중으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을 가득 분무해 포화시킴으로써 쥐가 살균제 성분을 제대로 흡입하게끔 하는 포화 노출 시험(saturation test)을 했다고 했다. 당시 보고서에 그런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그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당시 미국 환경청(EPA)의 독성 시험 프로토콜(실시 요강)을 확보해 유공의 대덕연구소 연구원과 함께 서울대 수의대를 직접 찾아가서 이 프로토콜대로 시험을 해달라고 했기 때문에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 당시 보고서는 어디에 있는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없는가?
"서울대 이영순 교수한테서 받은 보고서는 유공 대덕연구소와 유공 바이오텍사업부에 있었다. 유공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면서 그 보고서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나는 1997년에 퇴사했다.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지 않다.
(유공(현 SKC)의 '가습기메이트'가 인체에 해가 없다는 근거를 제공한 서울대 수의대의 1994년 연구 용역 보고서는 보존 기간이 지나 폐기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서울대 수의과학연구소가 이 정보 공개를 청구한 송기호 변호사에게 지난 23일 통보한 바 있다. 따라서 에스케이케미칼에 이 보고서가 없으면 현재로서는 관련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진위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수사를 통해 밝혀내는 길밖에 없다.)
청문회 코앞에 두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면 작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머뭇거려
- 가습기 살균제란 제품을 세상에 처음 내놓았기 때문에 참사가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설혹 당시 유공 가습기메이트 제품을 사용한 뒤 피해를 입은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판도라 상자'의 문을 연 장본인으로서 피해자들에게 사과 또는 사죄할 생각이 지금이라도 없는가?
"모레가 청문회인데 지금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한다고 하면 쇼를 한다거나 작위적이라고 국민이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청문회에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와 인터뷰를 마치고 커피숍을 나오니 오래간만에 시원한 바람이 여의도 빌딩 숲 사이로 지나가고 있었다. 마침 커피숍 입구 바로 앞 길거리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시민 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천막을 치고 옥시 불매를 외치며 옥시를 규탄하는 농성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 강찬호 대표,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 백도명 공동대표, 조수자 환경피해지원위원장 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30일 청문회에는 노 박사와 함께 이영순 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또 가습기메이트 최초 개발과 관련해 최상락 에스케이바이오텍연구원, 가습기메이트 제조와 관련해 안영준 당시 ㈜유공 부장도 참고인 자격으로 나온다. 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대질 신문 식으로 1994년 최초 개발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면 노 박사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의 진위가 어느 정도 가려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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