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치와 치주질환을 예방하고 치태를 없애는 치약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최근 벌어진 가습기 살균제 성분 치약 파문을 보노라면, 이 속담이 바로 떠오른다. 여기서 '자라'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말한다. '솥뚜껑'은 다름 아닌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들어간 치약이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은 흡입 형태로 쓰였기 때문에 치명적 재앙을 가져왔다. 반면 치약에 들어간 성분은 흡입으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결론을 말하자면, 가습기 살균제 성분 치약에 놀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루에 세 번 이상 쓰는 치약은 생활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많은 소비자는 치약에 어떤 성분들이 들어 있는지에 별로 관심 두지 않고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치약이 충치와 치주질환을 예방해 주고 치태를 없애 주며 치석이 생기는 것을 막아 준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이와 함께 치약을 사용해 칫솔질을 하고 나면 입안이 상쾌해지고 치아를 희게 해준다는 것도 알고 있다. 치약 포장지에 적힌 제품명과 효능·효과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제품에서 그런 설명을 하고 있다. 이러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 효능·효과에 걸맞은 성분들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치약은 제품마다 들어 있는 성분이 약간씩 차이가 난다. 모든 치약에 세균 번식을 막아 주는 보존료가 들어가지만 이 또한 제조사마다 사용하는 보존료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 세균 번식을 막는 보존료: CMIT/MIT
A사에서 시판한 한 치약을 살펴보자. 치약 포장에 주성분만 표시했는데 '실리카, 토코페롤아세테이트, 불화나트륨, 피로인산나트륨'이 들어 있다고 쓰여 있다. 이외에도 향 성분과 보존료가 들어 있을 것이다. 인공색소가 들어 있는 치약도 있다.
현재 식약처 심사 규정에는 치약에 사용할 수 있는 보존료로 파라옥시벤조산메틸과 파라옥시벤조산프로필 등 파라벤 계열 2종과 벤조산나트륨 등 총 3종만을 허용하고 있다. 문제가 된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과 메칠이소치아졸리논 혼합물(CMIT/MIT)은 사용할 수 있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물질이 치약에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어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미국, 유럽 등에서 치약의 보존료로 이들 성분을 15피피엠(ppm은 '백만 분의 1'을 뜻하는 단위로, 15ppm은 0.0015%에 해당한다) 범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CMIT/MIT는 독성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화학물질로 화장품이나 물휴지 등 각종 생활용품에 미생물이 번식하는 것을 막아 주는 보존료로 널리 쓰여 왔다. 나라마다 보존료든 인공감미료든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종류가 약간씩 차이가 있다. 가습기 살균제 치약 소동은 그래서 벌어진 일이다.
○ 치석 제거·침착을 막는 성분: 피로인산나트륨, 실리카 등
○ 염증 예방: 염화나트륨, 초산토코페롤 등
치약에 들어간 피로인산나트륨은 치석이 치아에 들러붙는 것을 막아 주는 기능을 한다. 이 성분은 미생물 증식에 의한 산패를 막고 탄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어 어묵을 탱탱하게 하거나 아이스크림이 부풀어 오르게 하고 치즈의 유화제로도 쓰이는 물질이다.
또한 치태나 치석 제거를 위해 실리카(이산화규소), 탄산칼슘, 인산수소칼슘 등도 쓰인다. 이들 성분은 칫솔질을 할 때 치아 표면에 단단히 붙어 있는 세균 덩어리를 떼어 주는 데 실력을 발휘하는 성분들이다. 잇몸에 염증이 생기는 치은염과, 잇몸과 잇몸 주위 조직까지 염증이 퍼지는 치주염 같은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염화나트륨(소금 성분), 초산토코페롤, 염산피리독신, 알란토인류 등을 쓰고 있다.
과거에 문제가 되었던 성분들은 무엇이 있나?
○ 발암 치약 소동으로 오해: 파라벤과 트라이클로산
가습기 살균제 성분 치약 소동에 앞서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트라이클로산과 파라벤이라는 성분과 관련해 발암 치약 소동이 한차례 반짝하고 벌어졌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 치약 소동도 이번 가을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됐듯이 당시 발암 치약 소동도 2014년 가을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김재원)이 문제를 제기해 일어났다.
그 국회의원은 파라벤이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방부제의 일종으로 몸에 한번 흡수되면 배출되지 않고 혈류에 누적되는데, 청소년의 성장기 성호르몬과 관계가 있으며 여성의 생리 주기에 영향을 미치고 성인에게는 유방암과 고환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의약외품으로 허가가 난 2050개 치약 중 '파라벤'이 함유된 치약이 1302개(63.5%), '트라이클로산'이 함유된 치약은 63개(3.1%)로 나타났다며 식약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소개했다.
암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공포를 느끼는 소비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소식이었다. 여기에 서울의 한 유명 치의대 교수가 동조하며 가세했다. 하지만 발암 치약 논란은 며칠 버티지 못하고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파라벤과 트라이클로산은 현재로서는 발암물질이란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물질을 인체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그 가능성이 상당한 것은 발암 추정물질, 가능성이 조금 있는 것은 발암 가능물질로 분류해 매년 발표하는데, 그 어디에도 파라벤과 트라이클로산이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발암 치약 소동은 정치인의 '한건주의'가 낳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 환경 영향 때문에 금지: 트라이클로산, 미세플라스틱
다만, 그 뒤 트라이클로산은 하천과 바다로 흘러들어 가 어류 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사용을 금지하는 선진국 흐름에 맞춰 우리도 치약에 사용을 금지했다.
미세플라스틱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문제가 됐다. 피부 각질이 잘 벗겨지도록 하는 화장품이나 목욕 용품과 치석을 잘 제거하기 위한 치약에 미세플라스틱을 사용해 왔는데, 환경문제를 일으킨다는 지적에 따라 최근 사용을 금지했다. 이 물질이 포함된 화장품 등을 사용하면 물에 녹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이 물에 씻겨 하수로 나가서 하수처리장에서도 걸러지지 않아 하천과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하천과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에 미세플라스틱이 축적되고 이런 물고기를 잡아먹는 갈매기 등 새들에게 치명적 악영향이 생길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물고기와 소금에 들어갈 수 있는 미세플라스틱 물질이 다시 인체로까지 들어오게 돼 우리 사람에게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 고농도 다량 섭취 시 이상 증상: 불소
한때 인기를 끌어 치약 회사마다 앞다퉈 내놓았던 불소치약의 경우도 최근에는 유해성 논란이 있다. 불소는 지구에서 흔히 발견되는 성분인데, 독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불소가 함유된 치약을 독성 치약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불소를 미량 섭취하면 치아에 침착돼 세균 번식을 막아 줘 충치를 예방할 수 있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불소 성분을 치약에 넣고 있다. 물론 고농도의 불소를 다량으로 장기적으로 섭취하면 치아에 흰 반점이 생기고 뼈가 잘 부러지는 이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불소가 들어 있는 치약을 음식처럼 매일 그냥 먹지 않는 이상 인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치약은 의약외품으로서 다른 생활용품에 견줘서는 안전성을 비교적 엄격하게 관리하는 품목이다. 따라서 치약에 들어 있는 성분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유해성을 걱정하기보다는 양치질 제때 하기, 올바른 칫솔질과 입안 헹구기 등에 신경을 더 쓰는 것이 건강한 치아 관리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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