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김앤장의 일그러진 행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옥시와 김앤장과 손발을 맞추는 연구를 하다 뇌물 혐의 등으로 서울대 조 아무개 교수가 구속 뒤 한 말을 보면 김앤장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도 분노를 감출 수 없는 '데블스 애드버킷(악마의 변호사)'의 모습을 보였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언론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김앤장의 이런 행태는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와 유사한 일은 그동안 꾸준히 있어 왔다. 다만 이번에는 김앤장이 적어도 도덕적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쩌면 수사의 칼날을 맞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
김앤장의 행태는 1997년 국내 개봉된 알 파치노,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 단 한 번도 져 본적이 없다는 변호사가 주인공이다. 그는 승소를 위해 변호를 맡은 피고인이 분명 유죄인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고 싶어 하는 '악마의 유혹'에 시달린다.
김앤장이 맡은 사건 재판에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닐 터이다. 하지만 최고의 승률을 자랑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맡은 사건마다 대부분 승리를 하니 큰 사건이나 집단 소송이 생기면 기업들이 앞 다퉈 김앤장에 사건을 의뢰하는 게 아닐까.
김앤장은 로펌 입장에서 보면 '최고로 유능한' 국내 변호사와 외국인 변호사를 수백 명이나 고용하고 있다. 막강한 인재, 돈 그리고 장관 등 고위 관료를 지낸 이들까지 고문 등으로 모시고 법조계의 대통령으로 군림해왔다.
김앤장, 환경부 장관을 고문으로 영입해 살균제 사건 자문 받아
김앤장은 노무현 정부 마지막 환경부 장관을 지낸 서울대학교 법대 출신의 이규용 전 장관을 2008년 상임고문에 앉혔다. 이 전 장관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진 뒤에도 김앤장에서 관련 자문을 하는 등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와 그 가족들한테 비판과 원망의 대상이 되어온 현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이규용 전 장관과 1980년대부터 환경청, 환경처, 환경부에서 잔뼈가 굵도록 함께 일했다. 특히 이 전 장관이 2006~2008년 장, 차관으로 재직할 때 윤 장관이 그 밑에서 국립환경과학원장(1급)(2005~2008년)을 지냈기 때문에 서로 막역한 사이다.
이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 초기에 윤성규 장관이 "현대 과학으로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을 기업이 사전에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옥시 쪽에 유리한 발언을 하자 환경부(윤성규)와 김앤장(이규용) 간에 모종의 커넥션이 작동한 게 아니냐며 일부 피해자와 환경 시민 단체 관계자의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김앤장의 행태가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국회 청문회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런 부분까지 한 점의 의혹 없이 속 시원히, 성역 없이 파헤쳐지길 피해자 가족들은 바라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와 김앤장의 위법 부분과 잘못까지 따져 묻겠다는 입장이어서 이들에 대한 수사 또는 조사는 이제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2009년 베이비파우더 석면 탤크 사건 때의 김앤장
김앤장은 2009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우리나라 최대의 석면 스캔들 베이비파우더 석면 탤크 사건 때에도 기업의 편을 드는 변호를 맡았다.
인체에 치명적인 발암 물질이며 불치의 석면폐증을 일으키는 석면이 다량 들어 있는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해온 어머니 등 소비자들은 2009년 사건이 나자마자 곧바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1인당 100만 원씩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하지만 1, 2심에 이어 소송을 낸지 5년 만인 2014년 대법원에서도 패소하고 말았다.
2011년 2심 서울고등법원 재판 때 소비자 쪽, 즉 원고 쪽 전문가 참고인 진술을 위해 나는 법정에 갔다. 석면 탤크를 공급하고 이를 사용해 베이비파우더를 만든 회사를 대리해 김앤장 변호사가 나왔다.
그는 나에게 다그치듯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외국 학술지에 석면 유해성 관련 논문을 실은 적이 있습니까?" "석면과 관련해 연구실에서 직접 유해성이나 독성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까?" 등등. 물론 대답은 "아니오"였다. 언론인이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지는 않으니까.
김앤장 변호사는 탤크에 들어 있는 석면이 인체에 어떤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지, 베이비파우더에 쓰인 석면을 어느 정도 사용하면 나중에 악성중피종 위험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것이 재판에서 다투는 본질인데도 무시했다. 한마디로 전문가 증인으로 나왔지만 전문가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판사에게 보여주기 위한 다그침이었다.
죄인 다루듯이 건방지고 안하무인격의 심한 말투가 계속되자 나에게 증인을 서달라고 부탁했던 변호사는 참다못해 재판부를 향해 "이거 너무 심하게 말하는 게 아닙니까"라고 따졌다. 재판장은 그제야 김앤장 변호사에게 "참고인으로 나오신 분에게 무례하게 비칠 수 있는 언사를 삼가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그는 알았다며 더 이상 질문할 게 없다면서 자리에 앉았다.
원고 쪽 변호사가 나를 증인으로 부른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1988년 석면에 관한 책을 쓴데다 같은 해 연구자, 과학자, 학자를 통틀어 내가 가장 먼저 우리나라 석면 질환 실태를 탐사 취재해 신문에 다루었기 때문이다. 또 1988년과 2008년에 필자가 펴낸 책 <조용한 시한폭탄 석면 공해>와 <석면, 침묵의 살인자>에서 베이비파우더 석면 탤크 문제를 다루었고 이것이 한 방송 프로듀서에 의해 부활해 베이비파우더 석면 탤크 사건이 불거졌다.
전문가 증언을 마친 뒤 그날 원고 쪽 변호사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물어보았다.
"그 김앤장 변호사는 어떤 사람이죠?" "최근 부장판사(부장판사라 했는지 부장검사라고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를 하다 김앤장에 영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듣자마자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전관예우를 받을 수 있겠군."
그리고 결과는 시민들의 완전 패소였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회자가 되고 있는 말 중에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직후인 1988년 10월 터져 나온 지강헌 등 죄수들이 집단 탈주한 뒤 벌인 주민 인질극 사건 때 지강헌이 외쳤던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돈은 권력과 붙어 다니므로 '유권무죄 무권유죄'란 말도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주범인 옥시 기업을 변호하고 있는 김앤장의 일그러진 행태가 오늘따라 지강헌의 말과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의 장면들을 자꾸 떠오르게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 보통 시민들은 언제까지 김앤장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져야만 하는 것일까?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진 2011년부터 피해자 실태와 사건의 원인 등에 대한 수십 편의 글을 6년째 기고해왔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백서> 총괄편집인을 맡았으며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