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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응답한 국회, 피눈물부터 닦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실 ⑰] 국회, 3등급(단계) 피해자부터 구제하라

국회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국정 조사 특별위원회가 조사 대상을 확정하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새누리당의 강력한 반대로 법무부와 검찰이 조사 대상에 빠진 것은 앞으로 국정 조사에서 국회가 과연 어떤 새로운 사실을 밝혀낼지 회의하게끔 하는 대목이다.

청문회 기간 중 여름휴가와 브라질 리우 올림픽이 열리기 때문에 시기 면에서나, 국민 관심 면에서나 모두 국정 조사를 충실하게 벌여 성과물을 내고 사회 관심을 뜨겁게 불러일으키기엔 어려운 점이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국정 조사나 청문회에서 큰소리치기나 누구 혼내기가 아니라 모든 것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묻고 따지며 대안을 내어놓아야 한다.

국정 조사에서 묻고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피해자의 고통과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핵심이다. 가해 기업이나 공무원을 대상으로 일갈하고 문제를 파헤치는 것은 보고 듣기에는 시원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만 머무른다면 국정 조사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의원들은 국정 조사를 통해 단기간 안에 할 수 있는 것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나눠 접근하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법과 제도 개선, 특히 관련 특별법 또는 일반법 제정은 적어도 4~5개월이 걸리고 실제 시행까지는 1년 또는 1년 반이란 긴 기간이 걸린다. 또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폐 질환 이외 질환에 대한 조사 판정은 그 기준을 정확하게 만드는 데만 적어도 1년 내지 1년 반이란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또한 이번 국정 조사 기간 중 가시적 성과가 나오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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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대상에서 빠진 3단계 피해자 61명에 불과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한두 달 안에 가능한 것이 있다. 바로 정부의 1차 및 2차 조사 판정 때 3등급(단계) 판정을 받은 피해자만이라도 우선적으로 정부가 구제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정부가 1차, 2차 판정에서 정부 지원 대상자로 확정한 피해자는 1단계(거의 확실) 157명, 2단계(가능성 높음) 64명 등 모두 221명이다.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빠진 3단계(가능성 낮음)는 61명, 4단계(가능성 거의 없음) 242명 그리고 판정 불가는 6명으로 3단계 대상자는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에 대한 등급 판정은 의료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전문가 판정단의 판정 결과를 정부가 그대로 받아들여 확정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이처럼 4단계로 나눠 판정해야 한다는 것은 법이나 학술 이론 그 어디에도 없는 내용이다. 전문가와 행정 편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등급(단계) 구별은 1단계와 2단계는 피해자가 맞고, 3단계와 4단계는 피해자가 아니라며 '신의 칼'로 자른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판정에 참여한 전문가의 말을 종합해보면 자신들은 3단계와 4단계 피해자는 정부 지원을 해줄 필요가 없는 집단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1차 판정 때 이를 총괄한 질병관리본부도 자신들은 전문가들이 등급을 나눈 것에 따라 정부 지원 대상자로 정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이 3단계까지 정부 지원을 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더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피해자 구제 지원은 의학적 판단 아닌 정치, 사회적 잣대 기준으로

정부가 3단계 판정을 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설명과 함께 통지를 받았다.

"가습기 살균제 노출이 확인된 사례로서, 질병 경과를 따라서 소엽 중심성 섬유화를 동반한 폐 질환이 발생하고 진행하는 과정의 일부를 일정 시점에서의 병리 조직 검사, 영상 의학 검사, 또는 임상 소견 등을 통해 의심할 수 있어 가습기 살균제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그 전체적인 진행 경과가 소엽 중심성 섬유화를 동반한 폐 질환의 발생 및 진행과 일치하지 않아 다른 원인을 고려할 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말단 기관지 부위 중심의 폐 질환 가능성이 낮음."

일반인이 이를 찬찬히 읽어보더라도 쉽게 이해하게끔 설명이 돼있지는 않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1단계는 폐 질환이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관련성이 90% 이상 되고 2단계는 50~90%가량 된다는 것이다. 문제의 3단계는 10~50% 정도 관련성이 있으며 4단계는 0~10% 미만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이런 설명도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앞서 통보한 통지서보단 이해하기가 낫다.

최초의 판정은 지난 2013년 9월과 2014년 3월 사이에 이루어졌다. 당시를 되돌아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 가습기 살균제와 폐 질환과의 연관 정도를 가부로만 결정하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피해 신고자는 일단 피해 구제를 해주었어야 했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이 국가적 재난 또는 재앙에 해당하는 사회적 사건을 푸는 데는 과학, 의학적 잣대 외에 정치, 사회적 잣대를 만들어 대처했어야 갈등의 매듭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조사 판정 초기 정부가 의사 등 전문가 집단에 너무 의존해 이들의 의학적 판단에 매달려 피해 구제 지원 대상을 결정하는 실수를 범했다고 볼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각종 인체 피해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지금도 전문가들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신체 증상과 치료에 대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3단계 등급을 받은 사람 가운데 실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단 한 명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전문가는 대한민국에서 단 한 명도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설혹 3단계 피해자 가운데 일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한 폐 질환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3단계 피해자 가운데 인과 가능성이 있는 피해자를 구제 지원해주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합당한 선택일까.

3단계 피해자 구제 못하는 국회,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만약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3단계 등급 판정자에 대해서도 정부가 구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의를 채택해준다면 정부는 정부대로,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별 이의 없이 동의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정부 구제 지원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라 정부가 책임지고 결정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가해 기업에 대한 구상권 행사 가능 여부에 정부는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고 한다. 혹 구상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경우 나중에 문책이 뒤따르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언론의 비판을 의식한 몸 사리기다.

국회의 의견을 존중해 여론을 수렴한 뒤 정부가 이를 수용해 시행한다면 정부 담당 공무원도 몸 사리기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61명에게 들어갈 구제 비용은 액수 면에서도 그리 크지 않다.

그러면 4단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3단계 피해자들에 정부가 피해 구제를 해주면 4단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불만을 강하게 제기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드러낼 수 있다. 우선 3단계 피해자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이 중요하다. 4단계와 3단계를 한 묶음으로 묶어 처리하려고 하면 '가능성 거의 없음'(4단계) 판정을 받은 사람까지 구제하려 한다는 언론의 거센 비판을 받을 위험성이 있다. 전문가들도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다. 신고한 사람은 모두 구제 지원을 해주자고 한다면 판정에서 자신들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냐고 말이다.

가습기 살균제 국정 조사에서 국회가 풀어내야 할 문제는 한둘이 아닐 것이다. 20대 국회가 여소야대 국회라고 해서 이 모든 것을 짧은 국정 조사 기간에 다 풀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래도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가야만 나중에 이것들이 모여 큰 산을 이룬다. 풀어야 할 매듭 가운데 3단계 피해자 정부 구제 지원이 비교적 쉽게 따먹을 수 있는 열매다. 3단계 피해자 구제도 해결 못하는 국회, 국정 조사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진 2011년부터 피해자 실태와 사건의 원인 등에 대한 수십 편의 글을 6년째 기고해왔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백서> 총괄편집인을 맡았으며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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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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