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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수출보다 내수 육성? 난 반대한다

[이권경제에서 혁신경제로 ⑩] 내수 경제 개혁하고 수출 더욱 확대해야

국제금융과 에너지 관련 사업을 하는 박창기 (주)엔오푸스 대표가 기고한 글입니다. 박 대표는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제일제당에 15년간 재직했습니다. 이 15년 중 8년은 런던과 뉴욕지점에서 근무했습니다. 1999년 증권정보 제공 인터넷 기업인 (주)팍스넷을 창업해 4년간 경영했고, 그 후 다양한 분야의 투자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브이소사이어티 창립 주주이며, 희망제작소 이사를 역임했습니다. 박 대표는 이권이 지배하는 경제를 극복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야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주제의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조만간 발간될 책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무역과 개방에 관한 논란

지난 글에서 거론한 민주개혁진영 인사들의 좋은 정책들에 내가 보태고자 하는 방략은, "내수경제는 개혁하고 수출은 더욱 확대하자"는 것이다. 내수경제에서는 국가가 이권경제를 제어하여 약탈적 요소와 무질서의 낭비를 줄임으로써 국민의 소득을 늘리고, 세계시장을 무대로 하는 글로벌 대기업과 글로벌 강소기업들을 키워서 수출을 통해 소득을 늘리자는 것이다.

이 논의를 좀 더 진행시키기 위해, 수출과 무역에 관한 논란들을 검토해보자. 장하준이 <사다리 걷어차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의 저서를 통해서 강조한 주장은 "무역자유화로는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한다", "국가가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유망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등이다. 이와 관련한 여러 가지 견해들을 비교해보겠다.

* 고전학파: 리카도는 비교우위론에서 여러 국가들이 시장을 개방하여 각 국가가 비교우위가 있는 제품 생산에 특화하여 무역을 확대하면 모든 국가들이 분업의 이점과 규모의 경제로 인해 잘살게 된다고 이론화했다.

* 올슨: 국내의 장벽 제거와 무역자유화를 통한 시장 확대는 이권집단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도 중요하다. 리카도의 자유무역 이론은 이러한 장점을 간과했다.

* 장하준: 모든 선진국들은 자신들의 산업과 기술이 어느 단계에 올라오기까지는 중상주의 정책 하에서 보호무역을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선진화되면 사다리를 걷어차서 다른 국가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따라서 국가가 산업을 장려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 리카도의 비교우위이론은 선진국의 이익에 입각한 도그마일 뿐이다. 신고전파 경제이론에 입각한 워싱턴의 자유무역정책 아래에서 후진국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졌다.

* 박창기: 리카도의 생각은 요소경제에서는 맞는다. 쌀농사가 잘되는 한국에서 사탕수수나 오일 팜을 농사지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혁신경제에서는 틀렸다. 만약 1970년대 우리가 자동차 생산능력이 부족하다고 수입에만 의존했다면 우리의 자동차산업은 지금도 후진적일 것이다. 올슨의 생각은 이권경제에서는 옳지만 혁신경제에서는 맞지 않다. 설탕 같은 제품은 무역자유화를 통해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이권집단의 폐해를 막는 좋은 수단이다. 그러나 가전제품과 휴대전화 산업 같은 기술집약적 성장기의 산업은 내수시장을 보호하여, 기업들이 내수시장에 팔아서 수익을 내며 기술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전략이 주효했다. 만약 초기부터 개방했다면 우리의 전자산업은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장하준의 생각은 혁신경제에 대해서는 옳다. 성숙하지 않았으나 전망이 좋은 혁신산업은 국가의 지원과 보호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권산업까지 정부가 보호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산업정책 기능을 지나치게 키우면 관료들과 이권집단이 결합하여 자원을 낭비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방법

1960~1970년대 일본이 초고속성장을 이룬 전략은, 혁신경제 분야를 선정하여 정부와 기업이 협력하여 육성하고, 국내시장의 문을 걸어 잠가 보호하며 실력을 쌓은 후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이었다. 카메라, 오토바이, TV, 비디오카메라에서 자동차까지 똑같은 전략을 구사했다. 우선 최신의 제조공법에 집중투자를 하고 기술을 배우면서 국내시장에 팔아 투자한 고정비용을 회수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제조기술을 향상시킨 후 더 좋은 상품과 낮은 가격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데이비드 워시, <지식경제학 미스터리>, 김영사, 336면). 일본은 내수시장 규모가 상당히 커서 이 전략을 전개하는 데 유리했다.

1960년대 이후 한국도 비슷한 전략을 써왔다. 일본 등으로부터 최신장비를 들여오고 기술을 배워온 후 정부의 지원과 보호 하에 국내시장에 팔아 투자를 회수했다. 다만 우리는 국내시장이 작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수출전략을 구사했다. 1990년대 이후 중국도 비슷한 전략을 써왔다. 성장산업과 첨단기술 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보호하고 동시에 자금 지원도 해준다. 중국은 정부의 특성상 과감한 지원이 가능하고, 내수시장의 규모가 커서 유리한 점이 많다. 이 전략으로 중요 산업에서 중국이 한국을 가까이 따라왔고 어떤 분야는 이미 한국을 능가하고 있어 위협적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정부 관료들이 산업분야를 선택하고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므로 잘못된 과잉투자로 인한 부작용도 많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중국은 태양전지용 폴리실리콘 산업에 수조 원의 자금을 지원하여 10개 이상의 공장을 설립했으나, 공급 과잉을 초래했고, 대부분의 공장은 기술 부족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관료와 결탁하여 혁신산업에 대한 지원을 이권화한 탓이다.

이미 선진국 수준의 기술에 도달한 우리의 제조업 분야는 큰 규모의 세계시장을 필요로 하므로 타국들에 시장 개방을 요구한다. 한편 제약산업을 비롯한 소재, 부품 등의 산업에서 한국은 아직 부족하다. 정부가 이 산업들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하지만, 과보호로 인하여 경쟁력이 약화되지는 않도록 해야 한다. 새로이 떠오르는 혁신산업은 정부가 현명하게 예산을 지원하고 R&D 투자를 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부가 집행한 R&D 자금의 상당 부분이 성과는 내지 못하고 교수들과 재벌기업의 이권으로 전락해왔다는 평가도 새겨들어야 한다.

수출보다 내수를 중시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한 반론

우리나라에서 보수진영과 진보개혁진영의 경제를 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 중 하나가 수출에 대한 시각이다. 진보개혁진영에서는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서 외국의 상황 변화가 국내경제에 주는 충격이 크고, 수출에 대한 지원이 너무 커서 내수경제가 위축되므로 내수를 진작하는 경제정책을 써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에 대한 보수진영의 지배적인 견해는, 수출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서 계속 장려해야 하며, 외환보유고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환율을 저평가하여 수출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견해는 수출은 장려하되, 환율은 서서히 평가절상하여 국내물가를 안정시키고 국부를 증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수출은 주로 혁신산업에서 나온다. 수출산업은 이권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고 꾸준히 혁신하지 않으면 뒤처지기 때문에 수출을 촉진하면 국내의 혁신산업까지 발달한다.

나는 일부 경제평론가들이 수출보다 내수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그들은 한국이 '수출과 수입을 합한 금액과 국내총생산(GDP)의 비율인 무역의존도'가 지나치게 크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102%인데 미국 25%, 일본은 25%, OECD 평균은 50%이고 중국도 49%라는 통계를 제시한다.

대외의존도가 너무 커서 국제시장의 변동에 심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은 그럴듯하지만, 무역의존도의 높낮이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대외의존도가 낮고 내수의 비중이 큰 일본과 미국이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반면, 무역의존도가 87%인 독일과 96%인 스위스, 그리고 94%인 스웨덴은 경제상황이 좋은 편이다. 참고로 경제위기를 맞은 그리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각각 50%, 55%, 55%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면 GDP는 부가가치를 측정하는 것이고 무역금액은 수입금액과 수출대금의 총액을 합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무역의존도라는 개념은 손쉬운 비교지표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무역에 의존하는 비중을 과장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2010년 산업연관표를 보면 국내 총수요 3733조 원 중에서 수출은 619조 원이고 수입은 609조 원이어서 수출입의 합은 1228조원으로 총수요의 33%를 차지한다. (경제에서 대외부문이 차지하는 수출입 비중을 계산하는 더 합리적인 방법은 수출입 총액을 총공급량으로 나누는 것이다. 수출입비중(33%)=(수출액619+수입액609)/총공급3733.)

한편 일부 학자와 경제평론가들은 수출제조업의 부가가치유발계수가 하락하는 것을 지적하며 수출산업의 중요성을 폄하한다. 예를 들자면 김상조 교수가 <종횡무진 한국경제>에서 삼성전자 같은 전기전자업종의 부가가치유발계수가 1995년 0.653에서 2009년 0.501로 떨어진 것을 거론하며 "1000원짜리 전기전자제품에 대한 최종수요가 발생하면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경제활동의 결과 최종적으로 국내의 부가가치로 남는 것은 501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수입 소재 부품 완제품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다는 말인데, 이래서야 국산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같은 기간 동안 기초소재제조업의 부가가치유발계수는 0.654에서 0.497로 떨어졌고, 자동차등 수송장비제조업은 0.722에서 0.603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나는 이 데이터가 수출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고 해석한다. 지난 15년간 제조업의 수입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우리나라 산업의 국제분업이 고도화되었고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출 비중이 늘어났으며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올라간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공장들을 외국으로 이전했기 때문에 국내경제에 낙수효과가 줄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이 데이터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강화할 필요성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수출이 우리 경제에 기여하는 역할이 줄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나라는 국내시장이 작고 앞으로 고령화에 따라서 국내 수요가 축소될 것이므로 세계시장에서 수요를 발굴하는 사업을 해야 한다. 우리는 에너지의 97%와 식량의 75%를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자원가격 상승에 대비해서라도 수출을 많이 늘려야 한다.

수출이 고용 증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내수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수출은 고용유발 효과가 적고 수출 대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지어 국내고용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내수시장에서 고용을 창출하는 좋은 전략이 있냐고? 2010년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수출 10억 원당 취업유발계수(2005년 10.8명→2010년 7.9명)와 수출의 부가가치유발계수(2005년 0.62→2010년 0.56)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수출을 100억 원 늘리면 79명의 고용이 창출되고 56억 원의 국민소득이 증가하여 임금과 이윤 등으로 배분된다. 수출액의 증가속도보다 일자리 증가속도가 느린 것은 기술의 발달과 산업구조의 고도화 때문이다. 오히려 기술을 더 발달시키고 국제경쟁력을 높여서 세계인들이 좋아하는 가치 높은 상품을 창조해야 기업이 커지고 일자리가 늘어난다. 수출이 늘어난다는 것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높다는 것이다.

▲ 부산 신선대부두에 선적을 기다리는 수출 물량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소득 격차는 서비스업 생산성 저조 때문?

이제 내수시장을 진작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내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의 내수경제가 어려워진 결정적인 이유는 업종 간 임금 격차가 지난 20년간 지나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80%에 이르는 저임금 근로자들과 자영업자들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지 않는 한 내수경제 활성화는 어렵다.

2012년 4월 OECD가 발간한 한국경제보고서를 인용하여 여러 신문들이 "한국의 소득격차, 서비스업 생산성 저조 때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획재정부,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이에 동조하는 논평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본말이 전도된 잘못된 분석이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다음은 OECD 한국경제보고서의 주요 내용이다.

제조업에 대한 서비스업 생산성의 2008년 비율은 한국이 53%로, OECD 32개 회원국 중 31위이다. OECD 평균은 87%였다. 이는 도소매업, 음식업 등 저부가가치 업종이 과당경쟁 상태이고, 교육과의료 등 고부가가치 업종은 개방과 경쟁이 제한된 탓도 있다. 지난 25년 동안 고소득국가 GDP 성장의 거의 85%가 서비스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서비스 부문의 낮은 생산성은 낮은 임금으로 이어진다. 제조업 임금에 대한 서비스업 임금의 비율은 1991년에 거의 100%였으나 2009년에는 54%까지 낮아졌으며 이는 주요 OECD 국가들에 비해 큰 격차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OECD의 분석은 두 가지 점에서 크게 잘못되어 있다.

첫째, 제조업과 서비스업 사이의 임금 격차가 아니고 서비스업 업종 간 격차가 더 큰 문제이다. 전산업의 평균임금은 288만 원이고 18%의 취업자들이 종사하는 제조업의 평균임금은 297만 원이다. 서비스업인 금융보험산업(취업자의 3%)은 528만 원이며, 방송통신업(취업자의 1%)은 409만 원이다. 반면 영세사업자가 많은 숙박음식업(취업자의 8%)과 부동산서비스업(취업자의 11%)의 임금은 165만 원과 172만 원에 불과하다.

둘째, 결정적인 오류는 인과관계를 거꾸로 본 것이다. OECD 보고서에서는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임금이 낮다고 주장했는데, 실상은 이와 반대다. 임금이 낮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은 것으로 측정될 뿐이다. 우리나라의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택시기사들의 노동강도나 노동의 질, 즉, '실제 서비스생산성'은 매우 높다. 스위스나 뉴욕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다만 임금이 낮을 뿐이다.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은 서비스산업의 가격에서 원가를 뺀 부가가치를 종사자의 수로 나눈 숫자이다.

식당의 음식가격과 택시요금을 인상하여 종업원들과 택시기사들의 임금을 올리면 '화폐로 계량된 임금과 비례하는 노동생산성'은 바로 증가한다. 진실은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낮은 것이 아니라, 이 분야의 서비스 가격이 낮고 따라서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임금이 지나치게 낮은 것이다. OECD의 수준 높은 경제학자들이 왜 이런 착각을 했을까? 혹시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를 따져보자.

임금을 결정하는 요인은 (1) 노동의 성과인 생산성뿐만 아니라 (2) 노동의 수요공급도 중요하다.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과 경쟁하는 분야는 인건비가 오르기 어렵다. 또한 (3) 노동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가라고 할 수 있는 생활비도 중요한 요인이다. 집값, 식품가격 등 생활비가 오르는데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임금은 (4) 협상능력 즉, 렌트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방송, 통신, 금융 업계는 이권집단인 노동조합이 막강하므로 협상력이 좋아서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이고, 요소경제의 과당경쟁 속에서 노조도 없이 서로 경쟁하는 음식점 종업원이나 택시기사들의 임금은 올리기 힘든 것이다. OECD 보고서의 주장을 좀 더 살펴보자.

의료, 교육, 금융, 소프트웨어와 관광 등 서비스업에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도 서비스 부문의 투자와 경쟁을 방해하고 있다. 경쟁을 강화하기 위한 핵심 요소는 국내 진입장벽 제거, 규제개혁 가속화, 경쟁정책 개선, 무역 및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입에 대한 장벽 축소 등이다. 서비스 부문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OECD 평균이 GDP 대비 37%인 데 비해 한국은 6%에 불과하다. 외국인 직접투자를 장려하려면 한국은 핵심 서비스 분야에서 외국인 소유 제한과 같은 외국인 직접투자 규제를 더 완화해야 한다. 또한, 노동시장을 개혁함으로써 국제적인 기업 인수·합병에 대한 장애물을 제거하고 외국인 투자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OECD가 주장하는 것은 규제를 풀고 노동조합을 약화시켜서 외국자본의 진출을 촉진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자본이 진출하고자 하는 분야는 무엇일까? 은행 등 금융업, 영리병원, 영리학교, 카지노 같은 '핵심' 서비스업들이다. 삼성 등 재벌들이 진출하고자 하는 분야와 비슷하다.

그런데 이 분야는 이미 임금과 생산성이 높은 편이므로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주장인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낮아서 소득의 양극화가 생겼다"라는 논리에서 비약된 서비스업 개방 담론은 수상한 목적을 가진 요설(妖說)이다. OECD의 주장은 외국의 투기자본과 재벌들이 한국 내수의 이권적인 서비스업에 진출하려는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도대체 이 보고서를 쓴 사람이 누구일까? 프랑스 파리의 OECD본부에 파견된, 재벌에 포획된 한국의 관료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나는 금융, 의료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우리 경제에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산업들이 이권경제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도 잘 따져보아야 한다. 미국의 금융권 종사자들과 의사들은 연봉이 매우 높고 따라서 생산성도 높다. 그러나 의사, 사설의료보험, 변호사의 카르텔이 미국의 의료체계를 망가뜨렸다. 첨단 금융서비스업자들인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미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갔다는 점도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 2003년 카드대란이 터졌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후 카드 불법 모집이 다시 기승을 부렸다. 사진은 2009년 10월 1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지하 2층 주차장 입구에서 카드 회사 모집인들이 기념관을 찾은 시민들에게 접근해 '공짜 관람권'을 미끼로 카드 가입을 권유하는 모습. ⓒ연합뉴스

내수경제를 키우는 방법에 대한 논란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여 내수경제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따져보자. 자칫 내수경제를 잘못 키우다가는 부작용이 많이 생긴다. 2009년에 크게 오른 외식비용만 보더라도 그렇다. 배추 값과 돼지고기 값이 오르더니 짜장면, 김치찌개 값도 올라 점심식사 비용이 5000원 하던 것이 7000~8000원으로 올라버렸다. 전반적으로 가격이 오르면서 내수가 활성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가상승으로 서민가계에 부담을 주었다.

한편, 실수요에 기반을 둔 내수 육성이 아니라 빌린 돈으로 소비하여 경기가 부양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김대중 정부 후반에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방법으로 내수경제를 활성화하다가 국민들이 얼마나 큰 타격을 입었는지를 생각해보라. 현재 가계부채 문제로 서민경제가 파탄에 이른 것도 빚을 내어 집을 사게 유도한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을 높이려는 정치권과 관료들의 욕심이 작용한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도 집값이 오르자 집을 담보로 빚을 내어 소비를 했고 이것이 경기를 부양하여 다시 집값을 올린 양의 되먹임 현상이었다.

부작용을 피하면서 내수경제를 활성화하려면 두 가지의 요소가 결합되어야 한다. 첫째 필요는 한데 부족한 재화를 공급해주는 것이고, 둘째는 이 재화를 살 수 있도록 소득을 올려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의식주 중에서 음식이나 옷의 부족함은 별로 느끼지 않는다. 가장 부족한 재화는 쾌적한 주택이다. 약 30~40%에 이르는 열악한 주택 거주자들과 무주택자들은 싸고 질 좋은 주택만 있다면 간절히 구매하고 싶어 한다. 정부가 땅을 싸게 마련하고 교통을 편리하게 한 후 저가의 고품격 주택을 대량 공급하면 내수경기가 부양된다. 일자리를 늘리고 가 처분소득을 높여서 저소득층이 집을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내수 활성화 정책이다. 사실 고소득층은 소득이 늘어도 국내 소비를 크게 늘리지 않는다. 대신 국외 여행과 유학에 달러를 쓰는 경향이 커진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음식료업, 숙박업, 운송업 등 요소경제 종사자들의 임금이 노동조합을 가진 대규모 제조업이나 금융업, 공기업 등 이권경제에 비해서 크게 떨어진 것이 우리나라의 소득 양극화와 빈곤층 증가를 초래한 핵심 원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방법은, 지나치게 임금이 낮은 요소경제 종사지들의 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을 평준화하는 것이다. 즉, 동일노동에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들을 포함한 포괄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처럼 전국적인 범위를 갖는 포괄적인 노동조합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소비성향이 높아서 소득 증가가 내수 증가로 바로 연결된다. 또한 부채가 많은 이들의 소득을 올려주어야 우리나라 경제의 시한폭탄 같은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50%선까지 올리자는 주장이 있다. 2011년 최저임금은 4320원(x209시간=월 90만 원)이었고 2012년 4580원(월 96만 원)으로 6% 인상되었다. 노동계는 2012년 최저임금으로 2011년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226만 원)의 50%인 시간당 5410원(x209시간=월 113만 원)으로 올리자고 주장했다. 나는 이 견해에 동조한다.

하지만 이 조치가 편의점처럼 수익성이 부족한 영세상인들을 어렵게 한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아파트 관리인들처럼 장시간 일을 하는 사람들의 비용이 늘어나면 무인경비시스템으로 바뀌어 일자리가 줄어들 수도 있다. 어차피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구조조정되어야 한다. 저임금에 기대어 쇠퇴하는 산업에 매달리면 모든 이에게 해롭다. 섬유산업을 구조조정하지 못했던 대구 경제는 쇠퇴했으나, 경공업 위주의 마산자유경제지역에서 기계공업단지로 바꾼 마산, 창원은 크게 성장했다. 구조조정되어 나오는 실업자들에게 돌아갈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큰 숙제다.

결국 혁신경제만이 좋은 일자리를 새로 만든다. 서비스업 증가가 핵심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이권경제는 더더욱 아니다. 해결 방법은 고부가가치 혁신경제의 일자리를 늘리면서 정규직의 임금을 낮추어 정규직을 더 많이 고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영업과 비정규직에 유입되는 인구를 줄일 수 있다. 기업의 경영자들도 정규직의 임금이 낮아지고 정리해고가 더 수월해지면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을 뽑고 싶어 한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하면 공장을 외국으로 옮기는 일도 줄어들어 국내에 일자리가 늘어나고 동시에 기업의 국제경쟁력도 올라갈 것이다.

우리에게는 실수요에 기반을 둔 내수경제 활성화에 성공한 역사가 있다. 1987년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루자, 노동자들이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소득이 높아진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사고 집을 사게 되었다. 이른바 마이카 시대가 열려 자동차 생산량이 급증하고 이에 부응하여 전국에 도로, 다리, 터널이 건설되었다. 주택 수요가 많아지자 분당, 일산, 평촌 등에 신도시가 건설되어 장기간 호황이 유지되었다. 이때는 빈부격차도 작고 중산층 비중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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