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맷 데이먼 주연 'CJ-대상 담합' 영화를 아시나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맷 데이먼 주연 'CJ-대상 담합' 영화를 아시나요?

[설탕 담합 이야기 ①] 기업들,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다

국제금융과 에너지 관련 사업을 하는 박창기 (주)엔오푸스 대표가 기고한 글입니다. 박 대표는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제일제당에 15년간 재직했습니다. 이 15년 중 8년은 런던과 뉴욕지점에서 근무했습니다. 1999년 증권정보 제공 인터넷 기업인 (주)팍스넷을 창업해 4년간 경영했고, 그 후 다양한 분야의 투자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브이소사이어티 창립 주주이며, 희망제작소 이사를 역임했습니다. 박 대표는 이권이 지배하는 경제를 극복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야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주제의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조만간 발간될 책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맷 데이먼이 주연한 영화 <인포먼트>(The Informant)는 2009년에 개봉하여 미국에서는 제법 흥행이 됐지만 어쩐 일인지 한국의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았다. '인포먼트'는 '경찰이나 언론사에 정보를 제공해주는 내부 밀고자'라는 뜻이다. 미국의 식품기업 에이디엠(ADM)과 일본의 아지노모또, 쿄오와핫꼬오, 한국의 CJ제일제당과 미원(미국법인 세원, 현재 (주)대상) 등 5개 회사가 축산농가에서 쓰는 사료의 첨가물 라이신(lysine) 시장에서 가격 담합 범죄를 저지르다가 처벌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라이신은 아미노산의 한 종류로 옥수수 등에서 나온 탄수화물을 발효하고 정제하여 만든다. 전 세계 대부분의 라이신을 이 5개의 회사가 제조해왔다. 1992년 이들이 담합을 시작하여 일제히 가격을 올리자, 불과 몇 개월 만에 시장가격이 70퍼센트나 상승했다. 매년 5억 달러 정도 매출을 올리던 그들은 가격을 올려서 연간 3억 5000만 달러(약 3000억 원)나 불법적인 이득을 취했다.

담합을 하기 위해서는 협의가 필요했고 비밀 유지도 중요했다. 그들은 반독점 감시가 심한 미국을 피하여 멕시코, 도쿄, 파리, 밴쿠버 등지에서 회의를 했다. 이 회의들에는 ADM 측에서 생물제품부문 사장으로 근무하던 마크 휘태커(Mark Whitacre)와 부회장 안드레아스(Michael D. Andreas)가 주로 참석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3년간 휘태커는 회사 내부에서 미국연방수사국(FBI)의 스파이 노릇을 하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열린 담합회의 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하고 녹화했다. 이를 통해 FBI는 방대한 증거들을 수집하여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벌금을 부과한 가격 담합 범죄 사건을 적발할 수 있었다.

미국에는 밀고를 하면 그 대가로 자신은 면책을 받는 제도가 있어 이를 FBI와 휘태커가 활용했다. 휘태커는 자신의 상사들이 처벌되면 자신이 최고경영자가 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서 열심히 밀고했다. 그러나 휘태커는 900만 달러를 착복한 사실이 드러나 1998년부터 8년 반을 연방감옥에서 복역했다. 저널리스트 아이켄월드(Kurt Eichenwald)가 이런 휘태커의 행적을 정리해 <인포먼트>라는 책을 출간했고, 소더버그가 영화로 만든 것이었다.

영화까지 만들어진 한국·미국·일본 기업들의 담합 범죄

3명의 ADM 임원이 유죄 판결을 받아 막대한 벌금을 냈고 사건의 주범인 ADM 부회장 안드레아스는 결국 연방감옥에서 1999년부터 8년 가까이 옥살이를 했다. 아지노모또, 쿄오와핫꼬, CJ제일제당 그리고 미원 등 4개 회사와 그 회사의 임원들은 유죄협상제도(plea bargaining)에 응하여,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자백하고 ADM의 범죄 증거 수집에 협조하는 대가로 형을 감면받았다.


▲ The Informant ⓒmovie.naver.com
ADM에 7000만 달러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이는 당시 사상 최고의 반독점 벌금이었다. ADM은 캐나다와 멕시코 당국으로부터도 5000만 달러 규모의 벌금형 처벌을 받았다. 미국과 캐나다의 라이신 구매 회사들은 5개의 카르텔 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하여 1억 달러를 징수했다. 이와 별도로 주주들이 불법적인 경영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하여 ADM은 3800만 달러를 배상했다.

유럽연합도 이 사건을 수사했고 유럽법원은 유럽인과 유럽기업의 피해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했다. ADM은 4390만 유로(약 650억 원), CJ제일제당은 1010만 유로(약 150억 원), 대상은 710만 유로(약 100억 원)의 과징금을 납부해야 했다. 미국의 클레이튼법 제4조는 반독점법에 위반하는 행위 때문에 영업이나 재산상의 손해를 입은 사람은 손해액의 3배와 소송비용을 배상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사과정에서 ADM은 라이신 이외에 전분당과 구연산 등도 담합한 것이 드러나 벌금과 피해자 보상으로 4억 달러 이상을 변상해야 했다.

핵산조미료 국제 담합 사건과 나

라이신 담합 사건이 채 종결되기도 전인 1999년 제일제당, 미원, 아지노모또는 또다시 미국에서 담합으로 적발됐다. 이번에는 식품의 맛을 내는 핵산조미료 담합이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담합한 사실을 공범인 일본의 타께다가 밀고하는 바람에 범죄행위가 드러난 것이었다. 결국 2001년에 아지노모또는 600만 달러, 제일제당은 300만 달러, 미원은 9만 달러의 벌금을 미국 당국에 물게 되었다.

2002년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3년간의 조사 끝에 아지노모또와 제일제당 그리고 미원(대상)의 핵산조미료 가격 담합 행위를 처벌했다. 대상에 228만 유로(약 30억 원), 제일제당에 274만 유로(약 3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며, 일본의 아지노모또에게는 1554만 유로(약 200억 원)의 벌금을 물렸다.

나는 1981년 말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고 1982년 초 제일제당에 배속되어 '원당'(raw sugar,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추출한 순도 98% 정도인 설탕의 원료)을 구매하는 부서에서 5년 반을 근무한 후, 1987년 제일제당 런던지점장에 부임하여 원당 구매와 조미료·핵산 수출 업무를 4년간 수행했다. 1953년 이병철 선대 회장이 삼성그룹 최초의 제조업으로 부산에 설탕공장을 지으면서 설립한 제일제당은, 1993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2002년 CJ제일제당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었다.

런던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본사 임원으로부터 유니레버(Unilever, 세계 3위의 식품·생활용품 기업)를 찾아가서 구매책임자와 면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때 본사로부터 받은 지시는 "공급하기로 계약했던 핵산조미료를 당분간 공급할 수 없다"고 통보하라는 것이었다. 템즈강변의 웅장한 석조건물인 유니레버하우스에서 구매책임자를 만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심문하듯이 따져 물었으나, 앞뒤 사정을 몰랐던 내가 할 수 있었던 답변은 본사가 지시한 대로 "가뭄 때문에 한강물이 더워져서 김포에 있는 핵산조미료 공장이 가동되지 않아 생산을 중단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당시 핵산조미료를 생산하던 한국과 일본의 4개 회사가 가격을 올리기 위한 담합을 했고, 세계 최대의 식품회사 중 하나인 유니레버를 압박한 것이다. 물건을 사야만 했던 유니레버는 결국 가격을 올려주었다. 이날 유니레버의 구매담당자는 국제적인 담합을 하고 있다는 심증을 갖고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암시를 나에게 주었다. 결국 10년 후 핵산조미료 담합은 적발되어 처벌을 받게 된다.

나는 핵산조미료 사건 외에도 설탕 담합 사건처럼 나와 동료 그리고 선후배들이 직접 연루된 회사의 범법행위를 책을 통해서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마음먹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이런 일들이 없어졌을 것으로 생각되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이 글을 통해서 밝힌다. 조직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기는 했지만 이에 관여했던 나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회사가 강요하는 범법행위들 때문에 수많은 선량한 선후배와 동료들이 범죄에 가담해야 했고 처벌도 받았으며, 이 범죄들로 인하여 국민경제에 해를 끼쳤다는 점에서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담합 같은 기업 범죄들이 횡행하면 어느 나라도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 땅에는 건설업계, 의약업계, 금융업계, 에너지업계, 전자업계, 식품업계 등에서 담합이 일상적이고 이와 관련된 뇌물과 향응 같은 범죄가 만연해 정치인과 공무원까지 오염시킨다. 이 문제에 대해서 잘 아는 내가 그 실체를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느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