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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덩샤오핑의 공통점, 김일성과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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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정희와 덩샤오핑의 공통점, 김일성과 차이점

[이권경제에서 혁신경제로 ⑨] 한국경제의 성격과 대안에 관한 논쟁들

국제금융과 에너지 관련 사업을 하는 박창기 (주)엔오푸스 대표가 기고한 글입니다. 박 대표는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제일제당에 15년간 재직했습니다. 이 15년 중 8년은 런던과 뉴욕지점에서 근무했습니다. 1999년 증권정보 제공 인터넷 기업인 (주)팍스넷을 창업해 4년간 경영했고, 그 후 다양한 분야의 투자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브이소사이어티 창립 주주이며, 희망제작소 이사를 역임했습니다. 박 대표는 이권이 지배하는 경제를 극복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야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주제의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조만간 발간될 책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이제부터는 앞서 제시한 '이권집단 누적 폐해론', '혁신경제론', 그리고 '공평하고 건강한 질서론'을 바탕으로 현재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정책에 관한 논란들을 평가하고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둔 현재 새누리당의 일부 의원들이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 4개의 법안을 제안하며 경제민주화 논의를 하고 있다. 1호 법안은 재벌총수에게 집행유예를 판결하기 어렵게 하는 법안이고, 2호 법안은 일감 몰아주기를 억제하는 법안이고, 3호 법안은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 지분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법안이고, 4호 법안은 금융범죄자에게는 금융회사의 대주주 자격을 제한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들은 모두 타당한 근거를 가진 좋은 법안들이지만 이한구 원내대표는 반대하고 있고 박근혜 후보는 지지를 표명하지 않아 김종인 박사의 경제민주화 주장은 물거품이 되는 양상이다. 재벌들과 그 오너들을 비호하는 집단인 새누리당이 재벌을 개혁할 수는 없다는 나의 판단이 틀렸기를 바란다.

한편 진보개혁 성향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재벌문제를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성격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 이종태 <시사IN> 기자가 함께 펴낸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논쟁을 촉발했다. 장하준, 정승일 측은 재벌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세금을 더 내도록 하여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활용하자는 주장을 했다. 그들은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을 중시하고 주주자본주의와 외국 자본의 폐해를 강조한다. 이 논쟁의 상대편에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 이병천 강원대 교수,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등이 있다. 민주통합당의 홍종학 의원과 유종일 교수도 비슷한 입장이다.

장하준, 정승일 측은 민주개혁진영의 경제학자들 중 몇 명을 주주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까지 이름 붙이며 비판했다. 장하성, 김상조 등이 추진했던 소액주주운동이 자칫하면 외국자본에 주요 기업의 경영권을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했다.

이에 반박하는 정태인, 김상조, 이병천, 김기원 등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지배구조 개선 없이는 복지를 이루기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김상조 교수는 <종횡무진 한국경제>에서 독일의 콘체른법과 같은 '기업집단법'을 제정해서 기업집단의 법적인 구성요건과 의사결정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또한 그동안 발생했던 금융위기들과 수많은 공적자금의 낭비 사례를 들면서 '모피아'의 폐해를 강조하고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정책의 위험성을 경계했다.

장하준, 정승일이 이들을 좌파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타당할지 모르나 신자유주의자라고 몰아가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신자유주의의 문제들을 파헤치고 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실천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장하성 교수와 김상조 교수가 치열하게 전개한 소액주주운동은 재벌 지배주주들의 과도한 소액주주 권한 침해와 독단적인 경영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개된 것으로 건전한 경제질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자료 사진

박정희식 경제모델에 관한 논쟁

이 논쟁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박정희식 경제모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이다. 경북대 이정우 교수 등 이른바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오늘날 경제문제의 상당 부분이 박정희 개발독재체제의 부정적인 유산인 재벌과 관치금융 그리고 토건주의 때문이라고 보았다. 반면 장하준 교수 측은 지금 우리나라가 겪는 심각한 빈곤층과 양극화 문제가 1998년 IMF체제 이후의 신자유주의 정책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의원의 대통령 선거 프레임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민감한 사안이다.

장하준, 정승일 측은 박정희가 구사한 재벌 위주의 중상주의적 경제정책이 우리 경제의 성장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국내의 산업자본을 보호하고 외국의 금융자본을 견제하며, 과도한 배당 등 주주자본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권집단누적 이론을 적용하여 박정희식 경제모델의 공과와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한 배경과 과정에 대해 해석해보는 것은 이 논쟁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이 1960년대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 기반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하여 조선의 양반집단이 붕괴되었고, 둘째로 해방 후의 격동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식민통치하에서 축적되었던 일본 자본과 친일파 일당의 이권집단이 축소된 데다가, 셋째로 1950년 이승만 정권 아래서 조봉암 초대 농림장관이 주도한 농지개혁의 성공으로 지주라는 전통적인 이권집단이 약화되고 자영농이 급격하게 늘어나서,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잘살 수 있는 평등한 상태가 구현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국민들 스스로 삶을 개척하려는 기운이 왕성해졌고 자녀교육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어났던 것이 발전의 기반이었다. 그 위에 기존의 이권집단과는 연결고리가 거의 없던 박정희 대통령과 군부가 국가권력을 장기간 장악했고, 박정희 정권이 다른 이권집단들을 억제하면서 포괄적으로 국가 이익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구사한 것이 고도성장의 원천이었다.

여기에 중요하게 추가해야 할 것이 대외개방과 수출주도정책이다. 6.25전쟁 이후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대부분의 물자를 수입해서 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수입물자에 내수시장을 개방했으며, 수입대금을 확보하자니 자연스럽게 수출주도형 산업정책을 쓰게 되었다. 그 결과 개방경제가 된 상태에서 필연적으로 수입대체산업과 수출제조업을 육성한 것이었다.

1960~1970년대에는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노동집약산업인 섬유산업, 가발산업, 합판산업, 신발산업 등 수출시장을 목표로 한 제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산업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권산업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제조업, 즉 혁신산업을 육성한 것이었다. 저임금과 선진국의 기술격차 때문에 가능했던 따라잡기(catch‐up) 효과도 고속성장의 주요 요인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국가 전체 경제를 고려하는 포괄적 관점을 가지고 혁신경제의 씨앗들을 선제적으로 준비해나간 것도 주효했다.

요약하자면 (1) 이권집단이 줄고 토지개혁으로 공평한 질서가 형성되었고 (2) 나름대로 군대식의 잘 짜인 질서가 유지되었으며 (3) 국가권력이 국가 전체를 고려하는 포괄적인 정책을 수행했고 (4) 수출을 통해 큰 시장에 편입하여 혁신경제를 활성화했으며 (5)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들이 치열하게 노력하면서 자녀들을 공부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입대체산업이자 내수 위주의 독과점적 성격이 강한 설탕, 밀가루, 시멘트 등 많은 산업에서 재벌들의 담합 횡포를 두둔하거나 방치하고 재벌들에게 외국자본 도입과 은행 대출금 등 이권을 몰아주어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이 과정에서 소수의 재벌들 사이에서 특혜와 관치금융에 따른 이권 챙기기가 횡행했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질서 파괴와 용공조작, 고문 등 인권유린을 자행하여 크나큰 오점을 남겼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후의 민주화의 물결을 1980년 5월 군대 내의 이권집단이자 사조직인 전두환 일당의 '하나회'가 국민의 군대를 사적으로 동원하여 정권을 장악한 후 자기들만의 협소한 이권을 추구해나갔다. 이들은 은행 돈과 이권산업을 재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반대급부로 수천억 원 규모의 정치자금과 개인재산을 챙겼으며 이에 따라 이권경제는 점차 커져갔다. 이에 따른 모순이 극에 달했으나 1970년대에 과잉투자해 놓았던 중공업 분야가 성과를 냈고 때마침 3저현상(국제유가 하락, 국제금리 하락, 환율 하락)으로 경제는 성장했다.

드디어 강요된 침묵을 깨고 1987년 6월 민주화 세력은 대통령을 임명된 선거인단들이 체육관에서 뽑는 야만적인 정치제도를 무너뜨렸다. 이권의 카르텔과 엮인 잘 짜인 질서로 생산을 늘릴 수는 있었지만 그 한계가 뚜렷했다. 공평한 질서, 즉 민주정치질서가 없이는 더 이상 경제성장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민주화를 성취한 결과 대통령 직선제로 대표되는 민주헌법이 통과되고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허용되자 다양한 단체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이 대규모로 결성되었고 교육계에서는 전교조가 결성되었다. 당시 이들의 활동은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많은 노동조합들은 점차 이권집단화되었으며, 재벌과 관료 금융권의 결탁에서 비롯된 다양한 이권집단들이 누적되었다. 그러다가 한나라당 정권과 재무부의 통제 아래 있던 은행들의 부실한 운영과, 이권사업을 받아 무리한 투자를 했던 재벌들의 과도한 부채가 맞물려서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고 IMF의 경제통치를 불러들였던 것이다.

'이권집단 억제, 잘 짜인 질서 유지, 국가권력의 포괄적인 정책, 큰 시장과 혁신경제'라는 네 가지 조건 때문에 박정희 시대에 경제가 발전했다는 원리는, 2차대전 후 다른 나라들의 경제발전 양상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중국의 경우 1940년대의 일본에 맞선 전쟁, 그리고 장제스 진영과 마오쩌둥 진영의 내전에다가 1960~1970년대의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수백 년을 이어온 계급구조와 이권집단이 대부분 소멸되었고, 공평한 기회가 다수에게 주어졌다. 이 상태에서 국가의 지도자가 된 덩샤오핑은 질서를 유지하며 경제특구부터 점차 개방했고 장기적 비전을 가진 국가전략을 구사하여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반면 인도에서는 수천 년을 이어온 계급이 영국의 식민지배 시절과 2차대전 후에도 해소되지 못하여 불공평한 구조가 지속된 것이 경제발전을 저해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그리고 대다수의 중남미 국가들도 2차대전 후 식민지상태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이권집단들이 온존하는 불합리한 구조가 지속됨으로써 경제발전이 지체되었다. 즉, 이권집단 때문에 공평한 질서를 만들지 못한 것이 경제를 후진상태에 머물게 한 원인이었다.

북한의 경우 지나치게 강한 국가체제가 개인들의 자발적 혁신을 유도하지 못하게 하는, 건강하지 못한 상태 때문에 경제가 침체되었고, 일부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국가의 공권력의 힘이 지나치게 약한 '질서' 없는 상태 때문에 경제가 파탄상태이다. '공평-건강'과 '질서' 중에 하나라도 부족하면 선진문명을 만들 수 없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방법론

민주개혁진영은 비판에는 능하나 경제성장의 방안과 일자리 창출 방안에는 약하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그러나 작금에는 민주개혁진영에서도 나름대로 좋은 경제성장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장하준과 정승일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주장했듯이, 복지를 강화하고 정부가 전략산업을 외국자본으로부터 보호하고 혁신산업을 육성하면 경제가 성장할 것이다. <리셋 코리아>에 담긴 정태인의 생각대로 중소기업 클러스터와 협동조합 등 사회적 기업들을 육성하면 경제성장이 촉진될 것이다. <종횡무진 한국경제>에서 밝힌 김상조의 견해대로 재벌과 모피아의 함정에서 탈출하는 것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가 제창했고 신봉호 교수가 <잡메이킹 이코노믹스>에서 주장한 일자리 창출 전략도 유용하다. 2교대를 3교대로 바꾸고, 3교대를 4교대로 바꾸어 고용인원은 늘리고, 여유인력은 교육을 받게 하면 노동생산성이 올라갈 것이다. 우리 근로자들이 지나치게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문제도 이 방법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문국현 전 대표가 경영하던 유한킴벌리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

특히 요소경제에서 원가절감에 도움이 되고, 혁신적인 요소를 불어넣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요소경제에서는 학습의 효과가 빠르게 증가하지 않고, 1인당 부가가치가 워낙 낮기 때문에 획기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전체 부가가치 중에서 인건비로 배분되는 것이 70%나 되기 때문에 인건비 비중을 늘리기가 매우 어렵다.

한편 이 방법은 혁신경제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혁신경제의 성공은 노동의 양과는 별 상관이 없고 창조적 소수의 상품 아이디어가 중요하며, 동시에 잘 짜인 공동작업의 분업구조를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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