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이권평형은 인간 불행의 근원이다
차별적인 인센티브가 있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특별한 이권을 얻기 위한 집단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 전문직업인 협회가 잘 유지되는 이유는 '자격증' 부여 등 차별적 인센티브가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이 비교적 소수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모여서 수많은 협회들을 만드는 것도 소수라는 특성과 차별적인 인센티브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가 많은 소비자집단, 납세자집단, 빈곤자조직이나 실업자조직은 좀처럼 형성되지 않는다.
특정한 이득과 권력을 갈망하는 소수의 집단은 그 이득을 얻기 위해 집단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열광자로 구성된 작은 집단들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와 그 주변의 소수가 조직되어 '전쟁이라는 집단재'를 만들어나갔다. 히틀러에 반대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염원이던 '평화를 위해 군대에 가지 않는 모임'은 만들어지지 못했고 수많은 독일인들이 군대에 들어가 히틀러의 범죄행위에 협력자가 되었다. 역사상에 수없이 나타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착취'(exploitation of the many by the few) 현상은 이런 방식으로 일어났다. 부조리한 이권평형 현상이 인간의 고통과 인류사회의 악의 근원인 빈곤과 착취와 전쟁 발생의 원천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이권집단'들이 '침묵하는 다수'를 착취하는 부조리에 저항하여 이를 개혁하려는 노력은 실패를 거듭해왔다. 이러한 실패는 세상의 작동원리를 간파하지 못한 탓이 크다. 앞에서 설명한 집단행동의 원리를 응용하여,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부조리한 이권평형을 극복할 수 있는 세 가지 정책의 예를 제안한다.
정책 1. 설탕 수입관세 30%를 없애자.
정책 2. 담합범죄를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벌하자.
정책 3. 병역의무 이행 퇴직금을 1000만 원씩 지급하자.
[정책 1] 설탕 수입관세 30%를 없애자
내가 제안하는 첫 번째 정책은 "설탕 수입관세 30%를 철폐하자"는 것이다.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고 법적으로 처벌도 받은 설탕 담합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관세를 없애는 것이다. 시장이 개방된 상태에서는, 한국의 설탕가격이 높으면 전 세계의 수많은 설탕 공급자들이 싼 가격에 설탕을 공급할 것이므로 담합은 불가능하고 국민들은 값싼 국제시장가격에 설탕을 구매할 수 있다. 이것이 담합을 하는 세력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일이다. 이는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시장경제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국민에게는 이익이 돌아간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불법과 부패가 줄어들고 정의로운 세상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더 이상 정부나 관료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진다. 설탕이 독과점품목에서 제외될 것이고, 지식경제부가 가격을 관리할 필요도 없어진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공무원들이 할 일이 줄어들어 예산도 절감할 수 있다. 담합을 위해서 국회의원, 언론인, 학계, 관료, 판사, 검사들을 포섭하고 향응을 제공할 이유도 없어진다. 더 청렴하고 깨끗한 사회가 되는 것이고, 뇌물 등의 지하경제도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좋은 일자리들이 많이 생긴다.
일부 진보개혁세력들과 다수의 공무원들은 문제가 생기면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권집단들이 만들어놓은 관세장벽 같은 교묘한 규제를 없애고 시장에 맡기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인 해결책인 경우가 많다.
규제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이권집단에 역이용당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입증한 경제학자가 있다. 198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 1911~1991) 교수는 이런 현상을 '규제의 포획이론'(Capture theory of regulation)으로 설명했다.
조지 스티글러가 1971년에 발표한 '규제의 경제이론'이라는 논문에서 제시한 이 이론에 따르면, 기업들은 정부의 규제를 무조건적으로 배격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기업들은 특정 규제를 조장하고 이를 이익창출의 기회로 삼는다는 원리이다. 시장원리가 잘 작동하지 않는 독과점 제품이나 전문성을 띤 산업분야에서, 관료들은 이익집단의 그럴듯한 주장과 설득에 사로잡혀 이익집단의 의도대로 규제정책을 펴기 쉽다는 뜻에서 '포획이론'이라는 말이 쓰인다. 다시 말해 기업이나 이익집단들이 관료와 언론을 논리와 뇌물로 포획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규제를 만드는 것이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 CJ제일제당 홈페이지. ⓒCJ |
[정책 2] 담합범죄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시키고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없애자
라이신 담합사건은 앞에서 제시한 부조리한 이권평형의 국제적인 확장으로 보면 된다. 5개 공급사가 전 세계에 있는 축산농가로부터 연간 3000억 원가량 갈취하는 담합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전 세계의 축산인들은 이것을 알기 어려울 뿐 아니라 알아도 나서서 해결하기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은 이런 범죄를 징벌적으로 처벌한다. 미국에서 몇 년간 3000억 원 정도를 부당하게 이익을 본 사건에서 벌금이 수천억 원이었다. 그리고 관련자들인 회장급, 사장급 인사들이 3년 내지 9년까지 실형을 살았고, 이에 더해 개인적으로 막대한 벌금도 물었다. 회사는 법의 처벌을 받는 동시에 피해 소비자들에게 보상을 해야 했다. 또한 경영진들은 주주들로부터 '회사경영을 잘못한 것'에 대한 배상까지 하고 회사에서 쫓겨났다. 미국의 법률체계는 담합을 징벌적으로 처벌해야만 자본주의 질서를 지킬 수 있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
만약 CJ제일제당이 미국 회사였다면, 경영진은 구속되어 여러 해 감옥살이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담합에 대한 벌금과 소비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수조 원을 변상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경영자로서 주주들에게 피해를 준 것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고 회사의 경영권을 박탈당하고 쫓겨났을 것이다.
한국에서 설탕 담합으로 수십 년간 1조 원이 넘는 부당이익을 챙겼을 것으로 의심받는 CJ제일제당에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114억 원이었다. 법원은 이 범죄행위에 대해 1억 원의 벌금만을 부과하고 누구도 구속하지 않았다. 하수인들을 가볍게 처벌했을 뿐이고 정작 의사결정자인 대표이사는 처벌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사부재리의 원리를 활용하여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그동안의 범죄행위를 면책해주었다. 이것이 한국에서 끊임없이 담합이 이루어지는 이유이다. 이처럼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법질서까지 농단하는 이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살기 힘든 나라가 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동안 범죄집단처럼 조직적으로 담합을 은폐하며 오랫동안 범죄행위를 해온 제당회사들을 적당히 봐주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아니면 무능했거나. 검찰도 이를 가볍게 처리했다. 국회에서는 강력한 로비가 작동한다. 2009년 민주당의 한 의원이 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어쩐 일인지 슬그머니 그만두었다. 이러한 일들을 비단 설탕업계만 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담합이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리니언시 제도
2008년 9월 17일 <아시아투데이> 기사를 보면 "공정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제당 3사 설탕 매출액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간 약 2조6400억 원이며 이 기간 동안 매출이익률은 일반 제조업체의 두 배가 넘는 최하 40%에서 최고 48%에 달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과징금이 세 회사를 합쳐서 511억 원에 불과했다. 업체별 과징금 규모는 CJ제일제당 228억 원, 삼양사 180억 원, 대한제당 104억 원 수준이다. 이 중 CJ제일제당은 조사과정에서 담합사실을 자진신고해 형사고발을 면했으며 과징금도 50% 감면받았다.
자진신고자 감면(리니언시, leniency) 제도가 적용된 것이다. 리니언시란 '관대', '관용', '자비'라는 의미의 말이다. 기업이 카르텔 결성 등으로 담합했던 것을 자진신고할 경우 과징금을 면제해주거나 경감시켜주는 제도이다. 기업 간 담합은 내부자 고발이나 자발적인 협조 없이는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제도가 도입되었다. 주요 선진국에서도 이 제도를 시행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제도를 악용하여 범죄행위를 면책받는 경우가 많아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다. 범죄를 저지르고 자수하거나 공범을 신고하여 벌을 경감받은 후 홀가분해진 몸으로 또다시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CJ제일제당은 오랫동안 지속했던 담합범죄에 대한 면책을 받는 동시에 벌금도 줄이는 수단으로 이 제도를 이용해왔다. 2006년에는 8년간 지속해오던 밀가루 담합사건과 11년간의 합성세제사업 담합범죄도 이 제도를 이용해 면책받았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
설탕 담합사건에 대해 2011년 8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삼양사와 대한제당만 1억 원대의 벌금형을 받았다. 대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고발하지 않은 CJ제일제당에 대해선 원심의 공소기각 판결을 인정, 벌금형을 면하도록 했다. 자진신고를 했기 때문에 리니언시 규정에 따라 공정위는 CJ제일제당을 형사고발하지 않았고, 고발이 없었으므로 법원이 형사처벌을 못한다는 논리였다. 정작 주범인 CJ제일제당은 형사처벌을 면한 이유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이라는 제도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담합이나 하도급 비리 같은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경찰이나 검찰에서 수사할 수도, 고발할 수도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만이 고발할 수 있다고 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법의 원리에도 어긋나는 일인데 아직까지 버젓이 유지되는 이유는 공정거래위원회 관료들이 끈질기게 이 이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불공정행위를 계속해온 재벌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재벌들은 공정위의 몇몇 관료들만 포획하면 범죄행위를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해왔다. 담합행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이 제도는 이권경제를 장악해온 대한민국 재벌이 국민들을 손쉽게 갈취할 수 있도록 한 사법적인 장치가 아닐까? 경제 민주화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없애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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