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의 담합 퍼레이드
'10대 대기업 및 계열사의 2000년 이후 공정거래법 위반현황'에 따르면 2000년 이후 2011년 5월까지 삼성그룹은 80건의 공정거래법을 위반하여 118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기업별로는 삼성카드가 10건 위반하여 가장 많았고, 삼성물산 9건, 삼성생명 7건이었다. 현대차그룹은 52건 위반에 과징금이 1430억 원이었고, SK그룹은 76건에 2441억 원이었다. 액화석유가스(LPG) 담합으로 994억 원을 물었던 SK의 과징금이 가장 큰 금액이었다. LG그룹은 53건에 758억 원, 롯데그룹은 69건에 349억 원이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자진신고를 통해 과징금의 절반 이상을 감면받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146건의 대기업 담합사건으로 부과된 당초 과징금은 7176억 원이었지만 이 가운데 3891억 원은 자진신고로 감면되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11번 자진신고를 통해 과징금을 400억 원가량 감면받았으며, SK그룹은 11번 담합이 적발되었으나 5번을 자진신고해 2659억 원을 감면받았다. 이를 보면 삼성카드, 삼성생명, SK가스 등 이권경제에서 주로 담합범죄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소경제나 혁신경제에는 담합이 거의 없다.
2009년 국내 LPG 업체 6곳이 담합하여 가격을 올리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되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K가스, E1 등 수입 2개사는 달마다 전화와 면담으로 72차례에 걸쳐 판매가격 담합을 결정했고, 이를 거래관계가 있는 SK가스 등 4개 정유사에 팩스 등으로 통보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담합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된 LPG 업계 담합조사에서 SK에너지와 SK가스 등 상위권 업체들이 리니언시를 통해 과징금을 면제 및 감면 받았다. 그래서 자진신고 업체에 대한 감면금액을 제외한 실질 부과액은 4093억 원이며 공정거래위원회가 각 업체에 심사보고서를 통해 통보한 과징금 1조 3000억 원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금융업계의 담합
금융분야에서도 수많은 담합이 일어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7월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의 금리를 조직적으로 담합한 혐의를 잡고 조사에 들어갔다. 2008년 8월에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회사들이 입찰담합을 하다가 적발되어 265억 원의 과징금을 물게 되었다. 24개의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회사들이 단체보험과 퇴직보험 보험료율을 담합하고, 들러리 입찰 방식으로 담합했다. 이에 삼성생명 115억 원, 교보생명 67억 원, 대한생명 30억 원, 삼성화재 22억 원, LIG손해보험 17억 원, 현대해상 9억 원, 농협 5억 원 정도씩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2011년에는 생명보험회사들이 이자율을 담합하여 소비자들의 피해가 17조 원에 이른다는 대규모 담합사건이 적발되었다. 공정위의 발표에 따르면 이들 생보사들은 2000년 보험가격 자유화 이후부터 2006년까지 이자율을 담합했다. 보험사들은 이율을 최종 확정하기 전에 각 회사의 이율 결정 내역을 상호 전달 및 교환하여 가입자들에게 정상보다 낮은 이자를 지급했다. 과징금은 삼성생명(1578억 원), 교보생명(1342억 원), 대한생명(486억 원), 알리안츠생명(66억 원), 흥국생명(43억 원) 등 12개 회사 도합 3653억 원이었다.
이 생명보험회사들의 담합사건 역시 리니언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를 공정위에 신고한 업체는 보험업계 상위 3개사인 삼성과 교보 그리고 대한생명이었다. 이로 인해 교보생명은 과징금 100% 면제, 삼성과 대한은 각각 70%와 60% 정도 감면혜택을 받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또 다른 업체들에 대해서도 30% 정도 감면혜택을 줘 3653억 원의 과징금이 1000억 원 정도로 축소되었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생보사들이 이자율을 담합하여 기준이율보다 0.3%포인트 정도 낮게 적용했으며, 이로 인해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확정형 예정이율 상품에 가입한 소비자들이 도합 17조 원, 매년 2조 8000억 원씩을 추가로 부담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 대해서 국가가 했던 일은 불과 1000억 원의 과징금을 징수한 것뿐이다. 대한민국 사법기관이 과연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지 아니면 재벌을 위해 일하는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보험회사들이 17조 원을 부당하게 취득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분석해보자. 피해자의 숫자가 500만 명이라면 평균 340만 원씩 피해를 본 셈이다. 과징금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삼성생명이 약 43%으로 7.3조 원, 교보생명이 37%로 6.2조 원, 그리고 대한생명이 13%로 2.3조 원이다. 이를 합하면 93%에 이른다. 부당이득의 대부분은 보험회사 주주의 이익으로 변했다. 특히 삼성생명의 대주주 이건희 일가에게 돌아간 돈은 어마어마하다. 만약 이런 담합범죄가 없었다면 17조 원의 자금은 가정에서 저축하여 투자로 연결되고, 소비하여 경제성장에 기여했을 것이다. 이 나라의 참담한 부조리한 구조이다.
▲ 8월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소비자원에서 관계자가 수북이 쌓인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대출 집단소송 관련 서류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
휘발유-경유 시장의 담합구조
이러한 담합은 다양한 상품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특히 4개 업체의 과점시장 하에서 원유를 수입하고 정제해서 휘발유와 경유를 판매하는 정유시장에서도 경쟁을 억제하고 가격을 통제하려는 일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3개 회사가 과점하고 있는 통신시장에서도 경쟁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끈질기게 유지된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는 관료들이 부당한 일을 억제하는 역할보다는 불법적인 담합과 경쟁제한을 제도적으로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2008년에 원유가격이 140달러까지 올라갔을 때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00원 정도였다. 그런데 2012년 초 현재 원유 가격이 100달러 수준인데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겨 거래된다. 휘발유, 경유 시장은 4개 사업자가 98%를 차지하고 있는, 시장점유율 변화가 거의 없는 과점체제다. 이들은 1997년 이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경고조치 이상의 제재를 22차례나 받았다.
1990년대 후반, 정부는 휘발유 가격의 담합을 억제하기 위해 수입판매업을 허가했다. 그 후 타이거오일 등 10여 개 회사가 석유류를 수입 판매하여 가격안정에 기여했다. 수입업자가 공급하는 경질유의 비중은 2002년 9.2%까지 높아졌다. 그러자 정유회사와 관료들이 결탁하여 석유 수입에 불리한 규제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제도들은 다음과 같다.
1) 완제품의 수입관세를 올려서 수입업체에 불리하게 했다.
2) 국내시판 제품의 품질규격을 높여서 외국 제품을 수입하기 어렵게 했다. 현재 우리나라 휘발유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품질이 지나치게 높아 이런 제품은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수입하기 어렵다.
3) 저장탱크를 더 크게 해야 한다는 규제를 만들어 영세한 석유 수입업체들에 재정적으로 타격을 주었다.
결국 2006년에는 수입물량이 0.5%까지 추락했다. 그리고 휘발유-경유 시장은 다시 과점체제로 돌아갔다. 10개 가까이 있던 석유수입사업자가 지금은 거의 다 파산했다. 그 후 휘발유, 경유의 가격이 비상식적으로 올라갔다. 2011년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물가안정을 목표로 리터당 100원씩 강제로 내리게도 하고, 일본의 석유를 수입하겠다는 둥 정부가 주유소를 만들겠다는 둥 노력했다는데 뚜렷한 효과는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입관세를 낮추어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다. 경쟁을 촉진하면 담합은 자동적으로 사라진다. 실제로 CJ제일제당과 SK에너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이것이다. 그래서 수입자유화를 막기 위해 엄청난 로비활동을 벌인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담합
2012년 초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전제품 가격을 담합했다는 신문기사가 나왔다. 세계적인 소비재기업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담합을 한 것이다. 게다가 자진신고한 삼성전자는 100% 벌금을 면제받고 LG전자는 벌금의 50%를 면제받았다. 이렇게 담합한 모든 업체가 감면을 받는다면 리니언시 제도는 정당성이 없어진다.
이권경제를 줄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담합은 물가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이며,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불신풍조를 만연시키는 행위이며 시장경제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담합을 무마하기 위한 뇌물과 향응, 부정부패의 냄새가 대한민국에 진동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담합을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국가 존립의 질서를 문란케 하는 중범죄로 처벌해야 한다. 우선 담합에 대해서 미국처럼 피해액의 3배를 국가에 벌금으로 물도록 하는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추가로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을 통해 피해의 2배 이상을 변상받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리니언시 제도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력했다. 재벌들은 범죄행위를 계속해왔고, 관료, 언론, 학자, 사법당국 등 국가의 핵심 엘리트들이 이들을 비호하며 대다수 국민들을 착취해왔다. 국민들이 잘사는 선진국에서는 카르텔과 담합을 엄격히 징벌한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가난한 후진국의 공통점은 이런 이권집단이 통제되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상공부의 핵심관료들이 장기간에 걸쳐서 협조했고, 국회와 사법부는 담합범죄에 매우 너그러운 태도를 취해왔다. 누군가가 헌법소원을 하여 국민에게 준 피해 보상을 요구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리니언시 제도를 고치자
우리나라에서는 리니언시 제도가 1997년에 도입된 후 자진신고가 저조했으나, 2005년 면제조치를 확대한 이후부터 자진신고 건수가 늘어났다. 2002년까지는 한 해에 한두 건이던 것이 2005년 이후 한 해에 7~15건의 자진신고가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이 제도가 매우 효과적이라고 자랑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제도로 당사자들 중 다수를 면책해주면서 오랜 기간의 범죄행위를 일사부재리의 원칙까지 이용하여 면책받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안한다.
자진신고를 하면 최근 2년간의 피해액은 면제해주되 과거의 모든 범죄는 징벌적 처벌을 하는 방안이다. 그리하면 가급적 빨리 자진신고를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예컨대 설탕의 담합을 과거 수십 년간 지속한 것 중 최근 2년을 제외한 기간 동안은 부당이익의 3배를 벌금으로 매기는 방식이다. 그리했다면 CJ제일제당의 벌금은 1조 원 단위가 될 것이고 이를 본 업체들은 담합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의 셔먼법 1조는 주(州) 간 또는 외국과 거래 또는 통상을 제한하는 모든 계약과 트러스트 그리고 기타 형태에 의한 결합 또는 공모는 위법으로 규정한다. 카르텔은 주로 형사사건으로 다루어지므로 법무부 독점금지국이 담당한다. 2004년부터는 처벌의 상한선을 크게 늘렸다. 개인에게 징역 상한을 3년에서 10년으로 늘렸다. 개인에 대한 벌금을 35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로 올렸다. 법인에 대한 벌금도 10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로 올렸다. 2006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반도체 담합으로 4억 85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고 임원들 7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미국은 담합이익의 두 배까지 벌금을 부과한다. 최근 몇 년간은 담합사건에 대한 징역처분이 70~80%에 이른다고 한다.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야 한다
미국에서 담합을 저지른 자들은 벌금과 별도로 피해자 보상을 해야 한다. 집단소송제를 통해서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에게도 보상해야 하며 피해금액의 3배까지 청구할 수 있어 징벌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는 집단소송제가 없어서 소송진행이 어렵다. 2001년 교복가격 담합사건에 대해 7년이 걸린 소송 끝에 소비자의 승소로 마감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수준의 처벌을 해야 만연한 담합이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담합에 가담한 개인을 처벌할 때 대표이사나 최대주주도 함께 처벌해야만 담합이 근절될 수 있다. 지금처럼 하수인들만 처벌하면 담합 근절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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